파문
필립 지앙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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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지앙과는 이번이 첫 만남인데 영 좋은 인상이 못되었다. 독자들의 찬사와 출판사의 소개 글에 또 속았다. 예전 같았으면 눈 뒤집혀서 팩폭하고 까대기 바빴을 텐데, 이제는 기력도 없고 시간도 아깝고 해서 혹평은 잘 안 하게 된다. 물론 비평도 좋지만 매번 삐딱한 눈으로 작품을 대하기도 썩 불편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하나 <파문>은 좋게좋게 넘어가 줄 수 없는 수준이어서, 오랜만에 전투 모드가 되어 잘근잘근 씹어보겠다.


50대의 문학 교수인 마르크. 원나잇 파트너가 다음날 죽어있자, 자신만 아는 산속 동굴 속에 시신을 유기하는 것으로 서막을 연다.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가 눈에 훤했으나, 내 예상과는 전혀 딴판으로 진행되어 대략 낭패였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왔고, 실종된 학생(파트너)에 대한 내용도 쏙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 이야기는 학과장과의 신경전과, 친누나의 들들 볶음, 그리고 파트너의 계모와 눈 맞음, 이 세 가지 내용으로 굴러간다. 마르크는 학과장의 계속된 경고에도 교칙을 어기며 학생 및 학부모와 몸을 섞어댄다. 그는 섹스만큼이나 작법을 중요시하고 있는데, 통제 안되는 수컷 짐승이 그런 말 해봤자 와닿지도 않고 말이다. 여튼 살인 용의자로 몰린다거나, 추문으로 학교서 쫓겨나게 되는 전개를 바랐는데 그냥 섹스 신으로 질질 끌다가 끝나버렸다. 어이 상실.


범죄현장이 된 동굴은, 자신을 구해준 누나와의 추억이 깃든 장소로써, 아직도 시스터 콤플렉스에 매인 마르크를 설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온다. 정말 그게 다여서 실망스러웠다. 이어서 죽은 학생을 수소문하던 경찰도 결국 죽어, 마르크가 동굴에 또 집어넣는다. 헌데 두 사람이 대화하다가 다음 장에서 갑자기 죽어있는데 이 무슨 황당함인가. 파트너도 그렇고 경찰의 죽음도 그렇고, 저자는 가장 중요한 장면을 죄다 생략하고 있다. 이런 의도적인 장치가 몇 번 더 반복되는데, 그렇게 싹둑 잘라내니까 맥락이 계속 틀어져 버린다. 때문에 번역자도 고생 좀 했나 보더라. 난 이처럼 독자한테 습관적으로 떠넘기는, 무책임하고 불친절한 스타일을 아주 경멸한다. 사실 작가보다도 무조건 오냐오냐해주는 독자들이 더 문제지.


부모의 학대, 포기한 소설가의 꿈, 사랑을 못 느끼는 옴므파탈 등등. 주인공을 끝없이 방황하는 위태로운 캐릭터로 묘사 중인데, 하나같이 진부한 설정뿐이라 영 와닿지가 않는다. 게다가 머릿속은 온통 섹스로 가득 차있어, 방황이고 나발이고 간에 조금도 감정이입이 되질 않는다. 읽는 내내 프랑스판 하루키라는 생각밖에 안 들더군. 아무튼 성격이 되게 어중간한 작품이었다. 차라리 범죄 스릴러 쪽으로 밀고 가던가, 아니면 불안한 자신과의 투쟁으로 가던가, 또는 아슬아슬한 스캔들 끝에 추락하는 스토리여도 좋았을 건데. 쯧쯧. 좀 더 쓰고 싶지만 졸려서 안되겠다. 영양가 없는 작품에 이만큼 썼으면 과분하지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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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0
뮤리얼 스파크 지음, 서정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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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도(?) 살면서 영향력 좀 있다 싶은 인물들을 가까이서 관찰할 기회가 많았다. 이들은 잘나가는 연예인 같은 파급력을 지녔다기 보다 주변인들의 호감을 사는 매력이 타고났다고 생각된다. 그게 선천적 본능일지, 후천적인 기교일지는 알 수 없으나 대개 열에 아홉은 무장해제되어 그 매력에 흡수돼버린다. 의심병 환자인 나님의 눈으로 쭉 살펴본 바 선한 영향력은 잘 없었고, 환심을 사는 일의 이면에서 불순한 의도만 여러 번 포착되었다. 이들은 상대의 니즈를 기가 막히게 파악하여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만능 재주꾼이다. 하여 어느 소속과 집단이든지 이들을 따르는 추종자들이 꼭 있는데, 잘 보면 하나같이 자기 검열이 안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기생충한테 조종당하는 곤충과 다름없는 이 무리들은, 혹여 리더의 불순한 의도를 눈치채더라도 뭘 어쩌지 못한다.


여하간 절대 건강할 수가 없는 이런 주종 관계를 담백하게 풀어쓴 스코틀랜드 작품을 소개한다. 여학교 초등부 선생인 브로디와 간택 받은 6인의 제자들 이야기이다. 학교는 별난 교육방식을 고수하는 브로디를 이단아 취급하는 반면, 학급생들은 그녀의 스타일을 전심으로 지지해 주었다. 브로디 선생은 간단히 정의 내릴 수 없는 비범한 인물이었는데 뭐라 할까, 자만과 교양과 기품의 교집합에 위치해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똑 부러진 데다 눈치도 100단인 브로디의 제자 중 한 명인 샌디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6인의 제자가 어떤 기준으로 발탁된 건지 모르지만 브로디의 특별 교육으로 또래들보다 총명하고 재능 있는 모습을 갖춰나간다. 그 가르침에 뿌리내린 6인은 서서히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는데, 신기하게도 모두 다 브로디의 예견대로 흘러가는 게 아닌가. 자신의 전성기니까 그것이 당연하다는 브로디 선생. 그처럼 전지전능한 브로디는 훗날 잘 키운 제자 중 하나에게 배신을 당하고 학교를 퇴임하게 된다. 설마 그녀가 호랭이 새끼를 키웠던 걸까. 브로디의 전성기를 끝내버린 X는 대체 누구였을까.


6인의 제자는 자아가 선명해진 뒤에도 브로디 안에서 한뜻을 품고 나아간다. 여태 막연히 맹신했던 제자들이 브로디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그녀의 남자 문제였다. 브로디는 과거의 연인 H와의 일들을, 세계사나 미술사의 한 장면들과 교묘히 섞어가며 들려주곤 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자신의 영광을 높이고자 ‘내 사람‘을 땔감으로 갖다 쓰다니, 영 아니 될 일이었다. 이건 뭐 지나간 일이니까 그렇다 치고, 현재 브로디는 음악쌤, 미술쌤과의 어중간한 삼각관계 중이다. 말로는 연애할 생각이 없다지만 그들의 뮤즈는 되고 싶었던지, 두 남자의 집을 바삐 드나드는 브로디의 이중생활이 제자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다. 그래 이왕 들킨 거, 브로디는 제자를 하나둘씩 파견하여 두 남자의 마음을 떠보게 한다. 결국 음악쌤은 탈락하고, 미술쌤은 돌아가며 찾아오는 6인을 모델로 그림을 그려낸다. 각 모델마다 브로디의 얼굴을 하고 있어, 이건 뭐 대놓고 플러팅하는 거나 다름없었지만 정작 그녀는 점찍어둔 제자를 그의 애인으로 꽂아 넣을 심산이었다. 이 역시도 브로디 자신의 전성기를 증명해 줄 또 다른 땔감에 불과했고, 그녀에게 저항이라도 하듯 X가 미술쌤의 애인 역을 차지해버린다. 대체 어쩌다 이 끈끈한 브로디 그룹에 균열이 생겼을까.


제자 중 유일하게 통찰력을 가진 X는 브로디 선생의 정치 성향을 꿰뚫어 보았다. 브로디는 무솔리니와 히틀러를 지지하는 파시스트였고, 그 사상을 본인만의 교육 방식에 녹여서 학급을 지도한 것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물든 아이들은 각자의 미래가 그녀의 뜻대로 된 결과처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게 다 브로디의 전성기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줄기차게 심어둔 탓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내 사람을 다루는 방식‘으로 인해 브로디가 어떤 물밑작업을 해왔는지를 알 수 있었고, 뒤늦게라도 그녀의 만행을 멈출 수가 있었다. 그러나 사건의 진실을 은폐했기 때문에 세월이 흐른 뒤에도 브로디와 제자들은 여전히 잘 만나고 지냈다. 어째서 X는 배신하고도 모르쇠 하며 브로디와 계속 어울렸을까. 그건 아마도 브로디에게 내렸던 뿌리 때문이지 싶다. 가지나 줄기는 잘라낼 수 있어도 뿌리는 뽑지 못하는, 이것이야말로 영향력을 가진 이들의 무서움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화제의 인물을 만난다면 침 흘리고만 있을 게 아니라 그의 물밑작업을 눈여겨봐야 한다. 굴뚝에 연기가 나려면 땔감이 필요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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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4-02-25 2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6인의 제자도 키우고 삼각관계도 하고 진짜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에 대한 이야기군요~!! 근데 이거 가스라이팅 아닌가요? ㅋㅋ

저도 이 책 읽었었는데 막 좋지는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좀 구성이 특이했었던거 같은데...

물감 2024-02-25 21:52   좋아요 1 | URL
그쵸 사실상 가스라이팅인데, 막 브로디의 일방통행 보다는 스승제자간에 꿩 먹고 알 먹는 느낌이라 가스라이팅 표현을 쓰고 싶진 않았어요. 결과적으로는 선생보다 교주에 더 가까웠으니 그게 그걸지도요ㅋㅋ

저도 계속 별 셋이었는데요, 저자의 빌드업이 독특한 구성으로 한땀한땀 짜여졌음을 느끼고서 무릎을 탁 쳤습니다. 이 작가는 천재구나 싶더라니까요. 언젠가 다시 재독하신다면 브로디의 불순한 의도를 어떻게 연출했는지에 집중해보셔요. 고것 참 맛납니다!

coolcat329 2024-02-26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관심있는 책이었는데 물감님 글이 재밌어 꼭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여담이지만 저는 유난히 잘해주는 사람을 경계합니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이런 사람들의 돌변을 경험하고 놀랐거든요. 이런 친절에는 물감님 말씀대로 대체로 불순한 의도가 있더라구요.

오늘 날씨가 화창하니 좋습니다. 굿데이!

물감 2024-02-26 21:00   좋아요 0 | URL
저도저도요! 그 경험 덕분에 사람 보는 눈이 생겼으니 다행이라 생각해야죠 뭐.

날씨는 좋았는데 업무가 너무 많아서 정신없이 지나갔네요ㅋㅋ 쿨캣님도 좋은 하루 보내셨길 바랍니다😀
 
뜨거운 피 페이지터너스
이렌 네미롭스키 지음, 이상해 옮김 / 빛소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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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그 소릴 들었다. 넌 대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확실히 남들 눈에는 내 인생이 핵노잼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전에도 말했듯 나님은 유니콘이니깐. 이제는 해명하기도 귀찮아 그냥 오해하게 놔두지만 나도 뭐 할거 다 하면서 살고는 있다. 물론 집을 잠만 자는 곳으로 대했던 10대나 20대 때에 비하면 텐션이 확 죽은 것도 사실이다. 하기사 누군들 안 그럴까. 혼자서는 주로 독서랑 홈트밖에 안 하지만 이런 일상도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은, 지나간 청춘이 온통 마음고생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여 지금의 고요하고 태평한 나날들이 내게는 더없이 소중하다. 그럼에도 간혹 한 번씩 향수에 젖을 때면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던 어느 순간으로 날아가곤 하는데, 그때가 그립다기 보다 추억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아이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애늙은이였는데 이제는 그냥 늙은이가 다 됐다.


<뜨거운 피>는 지금의 나님과 비슷한 느낌으로 살아가는 중년이 등장한다. 실비오는 청춘을 홀라당 날려먹고 겨우 정신을 차린 본투비 탕아였다. 인적 없는 숲속에 거주하는 그는 이제야 자리 잡은 생활과 안정에 만족하는 중이다. 그의 친애하는 여사촌의 딸이 어느새 다 커서 시집을 가더니, 자기들은 완벽한 부부의 표본인 부모님처럼 살 거라나 뭐라나. 그런데 얼마 못 가서 딸의 남편이 강물에 빠져 죽는 사건으로 온 동네가 떠들썩해진다. 이후 남편을 죽인 자가 딸의 외도남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또 한 번 난리가 난다. 조카의 외도를 알고 있었던 실비오는, 비탄에 빠져있는 조카를 나무라며 이제라도 현명하게 행동하길 경고해 준다. 그건 마치 젊었을 적에 피가 끓는 대로 살았다가 후회하게 된 자신의 과거였다. 실비오 역시 열정에만 의존하던 시기가 있었고, 그때의 자신의 선택과 경험들이 헛되다곤 생각지 않으나, 누가 봐도 정답은 아닌 그 길을 조카가 걷고 있었으니 심란할 만도 했을 게다. 그러나 실비오의 마음이 혼잡한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잠깐이지만 뜨겁게 타올랐던 여사촌과의 지나간 불장난이 떠올라서였다.


사촌에 대한 여러 번의 언급이, 주인공과 보통 관계는 아닐 거란 느낌이기는 했다. 역시나 둘은 한때 뜨거웠던 사이였으나 금방 관계를 정리하고 각자에게로 돌아갔다. 이들의 연애는 절대 잊지 못할 어느 흔적을 남겼는데, 모순되게도 잊고 있었던 그 흔적이 자신들의 발목을 붙잡는 비상사태가 발생한다. 먼저 사촌은 실비오와의 만남을 일종의 죄지음으로 여겼고, 이별한 뒤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여 쭉 행복하게 살아왔다. 자기 삶에 200% 충실했던 탓일까. 실비오가 연인이었던 것도 잊고 친근하게 대했던 것과, 둘만의 그 흔적까지도 처음 알았다는 듯한 반응 등등, 온통 망각하며 살아온 그녀의 생애는 온통 거짓 투성이였다. 피가 뜨겁던 시절들을 죄다 부정하고 헛것으로 여기는 사촌과, 그런 엄마를 동경하는 아무것도 모르는 딸을 보며 쓴맛을 느끼는 주인공.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듯 누구에게나 과거와 비밀은 존재하고, 더는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이다. 헌데 그릇된 선택이었다 해서 부러 망각하고 자신을 부정해버린다면, 짜여진 각본 속에서 주어진 연기만 해야 하는 배역의 모습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 그런 그녀를 사랑한 자신은 또 뭐가 되냔 말이다.


뒷부분은 사촌에 대한 실비오의 몰아치는 감정들로 도배된다. 내내 저텐션이었던 그가 이렇게 열을 올리는 건, 소중했던 추억이 짓밟히고 난도질당해서가 아닐까 한다. 실비오는 확신했었다. 그녀가 눈부시게 찬란했던, 살아있던 순간은 우리의 그때뿐이었다는 걸. 그런데 그녀는 자신을 속이고 거짓된 연기자의 생애로 달아나버렸다. 그렇게 식어버린 순수의 열기는, 이제 냉소를 머금을 때에만 타오르게 되었으니 이런 것도 블랙코미디라 해야 할까. 나름 인생에 굴곡이 많았던 1인으로써,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여러 번 실감하고 있다. 깊게 패인 마음의 상처들이 낫는 과정에는, 내 감정에 얼마만큼 진실되고 솔직한지에 따라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뻔한 훈수처럼 들리겠지만 자기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회피하고 망각하며 지내는 경우가 허다하므로 꺼진 불도 다시 보는 습관을 가져보도록 하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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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2-22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외국은 사촌끼리 결혼을 할 수 있는데 왜 이별하게 되었는지 궁금하군요.
뜨거웠던 만큼 그 사랑을 잘 지켜야 했던 건 아닌가 생각되어요.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사랑이 뜨거웠다고 해서 반드시 결혼 생활을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에요. 결혼은 어쩌면 사랑이란 감정보다 인간성과 셩격이 더 중요한 변수가 될지 몰라요.(사람에 따라서는요)
무난한 성격이 결혼 생활에 유리한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것보다 중요한 게 있으니 서로 마음이 잘 통하는 것, 이에요. 또 서로에 대한 존중.
물론 저도 다 아는 건 아니고 여태까지 살아온 시간으로 안 것이니 앞으로 더 살아 보면 더 알게 될 것이 있을 거예요. 잘 읽고 갑니다.^^

물감 2024-02-22 14:40   좋아요 0 | URL
저도 사랑의 크기와 죽이 잘맞는 거는 비례하지 않는다고 봐요. 갈수록 높아지는 이혼률만 봐도 짐작이 가고요. 일방통행의 감정과 존중이 큰 걸림돌이지 않나 싶어요. 여튼 복잡미묘한 사랑의 허리케인은 어느 시대든지 똑같아서 재밌습니다. ㅎㅎ

coolcat329 2024-02-22 1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재미나겠는데요?
저는 작가의 단편집 <무도회>를 읽어봤는데 참 깔끔하면서도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들이었어요.
뜨거운 사랑의 감정보다는 가치관이나 취향이 비슷한 사람과 결혼하는 게 좋은 거 같아요. 근데 피가 뜨거울 때는 그 어떤 상대든 다 자기와 잘 맞는다고 생각하죠. ㅠ
후회할 때는 너무 늦었죠. ㅎㅎ
참 씁쓸합니다. ㅎㅎ

물감 2024-02-22 16:42   좋아요 0 | URL
요 시리즈(페이지터너스)가 검증된 작품이 많아보입니다. 암거나 골라 읽으셔도 될듯요ㅎㅎ
가치관이나 성향이 맞는 사람이 어쩜 이리도 보기 힘든지요. 그건 오래보아야만 알 수가 있는데, 새로운 만남과 관계는 너무 한시적이에요ㅠㅠ 반대로 괜히 뛰어들었다가 후회하기도 무섭고 참ㅎㅎㅎ

stella.K 2024-02-25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30대 아니신가요?
진짜 나이 들으면 어쩌시려고.ㅎㅎ
근데 전 정말 나이드니까 막 헷갈려요.
생각은 아직 30대 같은데 몸은 그렇지 않으니 뭔가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왜 몸이 바뀌어서 내 몸 찾아 3만리 하는 드라마 이해가 간다 싶기도 합니다.
아실랑가? ㅋㅋㅋ

물감 2024-02-25 22:30   좋아요 1 | URL
저물어가는 삼십 대입니다만, 사오십 대가 되어도 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거 같아요. 지금 제 모습이 십대, 이십대하고도 비슷했습니다. 이정도면 진짜 애늙은이 소리 들을만 하지 않나요ㅋㅋㅋㅋ
저도 몸이 계속 나빠져서 올해부터는 독서보다 운동에 시간을 더 쏟고 있어요. 살 빠지고 근육 생기니 삶의 질이 달라지네요. 스텔라님도 운동 많이 하셔요! 그리고 말씀하신 드라마는 모르겠습니다ㅋㅋㅋㅋ

stella.K 2024-02-26 10:07   좋아요 1 | URL
역변 할 수도 있습니다. ㅋㅋ

물감 2024-02-26 16:23   좋아요 1 | URL
우째 대화의 핀트가 안맞는거 같은데요 ㅋㅋㅋ
저는 정신적인 걸 얘기하고,
스텔라님은 육체적인 걸 말씀하시고 ㅋㅋㅋ
육체야 뭐... 알아서 노화되지 않을까요 ㅠㅠ

stella.K 2024-02-26 1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런가요? 아니 역변이라는 게 꼭 잘 생겼다 못 생겨지는 게 아니라 그 반대일 수도 있거든요.
아, 모르겠네요. 암튼 뭐 전 나쁜 뜻으로 얘기한 거 아니니까 오해 없으시기 바라요. 😂

물감 2024-02-26 21:02   좋아요 1 | URL
ㅎㅎㅎ오해 안합니다. 스텔라 님의 지속적인 관심 감사감사 드립니다😃
 
인생의 베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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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꾸준히 하다 보면 필자가 문과인지 이과인지가 얼추 구분이 가능해진다. 이것은 다른 리뷰에도 적었듯이 글에도 웜톤과 쿨톤이 있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철저하게 문과 쪽 갬성인 나님은 이과형 사람의 글을 버거워하는 면이 있다. 이들에게는 소위 ‘낭만‘이 결여돼있는데, 쉽게 말하면 사람 냄새가 잘 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과형들은 사실과 지식을 바탕으로 글을 쓰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소설에서도 논문이나 기사 같은 퍽퍽함이 묻어 나와 독자들의(정확히는 나 같은 문과 타입의) 말문을 막아버릴 때도 많다. 뭐랄까, ‘그들만의 세계‘, ‘그들이 사는 세상‘이라는 말이 나오는 건 전부 이과형 작가들이었다. 그렇담 서머싯 몸은 어떨까? 내게는 절대 문과 쪽 사람으로는 안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문장마다 냉기가 흐르고 있는데 풍자소설이라서 그런가 다들 눈치채지를 못하는 듯하다. 여튼 장르를 잘 고른 덕에 어렵지 않게 대중을 휘어잡았으니, 보면 볼수록 참 영리한 작가구나 싶다. 이에 모든 글쟁이들은 이같은 생태계 교란종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번 작품의 테마는 선입견의 새로고침과, 무가치의 재발견 정도가 되시겠다. 나이에 떠밀려 억지로 결혼한 키티는, 한 유부남과의 아슬아슬한 외도를 즐기는 중이다. 원체 말수가 적고 일 밖에 모르는 남편과 달리, 매력 뿜뿜 외도남은 모두가 인정하는 엄친아였다. 결국 외도를 눈치챈 남편은 그녀를 데리고 콜레라가 들끓는 지역에 자원봉사를 가게 된다. 자신을 붙잡지 않은 외도남에게 대실망을 하는 키티. 그렇다고 딱히 남편과 갈라선 자신을 받아줄 곳도 없어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다. 뭐 여기까지는 심성이 곱지 못한 자의 받을 마땅한 형벌인가 보다 했는데, 슬슬 자기 객관화를 하더니 본인의 무가치함을 벗어던지는 게 아닌가. 키티는 지역 수녀원에서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며, 사랑을 받기만 하다가 사랑을 주는 쪽으로 변모하게 된다. 그리고 여전히 냉랭한 남편에게도 전에 없던 호감이 생겨났다. 그런데 사랑할 마음은 안 든단다. 헐?


난 지금껏 서머싯 몸을, 인물 설정은 훌륭하지만 스토리텔링은 아쉬운 작가로 보았었다. 그런데 <인생의 베일>은 그 반대의 인상을 남겼다. 인물보다 서사 중심의 작품이었고, 미친듯한 흡인력에다 압도적인 가독성까지 보여준다. 다만 현대에는 이와 비슷한 플롯이 많기 때문에, 예측 가능한 전개의 연속이어서 다음 장면이 막 궁금해지진 않는다는 게 단점이다. 또한 키티에 비해 입체감이 약한 캐릭터들도 아쉬운 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몰아치는 내러티브가 단점을 모두 커버하여, 이 작가는 인물보다 서사 중심의 글이 더 낫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무엇보다도 <인생의 베일>에는 내가 줄곧 지적했던 무책임한 화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직접 화제를 만들고 질문하기 때문에 독자가 접근하기도 쉽고 사유를 내 것으로 만들기에도 좋다. 서머싯 몸을 썩 좋게 보지 않았었는데 웬걸, 진짜 다시 보게 되네.


집 나갔던 양심을 되찾은 키티는 조심스레 남편과의 화해를 시도한다. 물론 씨알도 안 먹힌다. 그녀가 거듭난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의미는 아니었으니까. 워낙 말을 아끼는 타입인지라 남편의 진심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단지 키티보다 그녀를 사랑했던 자신을 더 경멸한다는 말만 남겼을 뿐이다. 자존심에 금이 가고도 키티를 끝까지 책임지는 그에게서, 가족들에게 시달리며 살아온 부친의 모습이 겹쳐졌다. 돈 벌어오는 기계 취급했던 아내와 딸들을 묵묵히 부양했던 아버지. 남편이자 아비로써 당연한 삶이라고만 생각했던 키티는, 눈앞의 남편을 보면서 그 당연한 의무가 얼마나 서러운 것인지를 깨닫는다. 사람들은 입이 마르도록 남편을 칭찬했고, 외도남의 추문을 떠들어댔다. 똥과 된장도 구분할 줄 몰랐던 키티의 오만과 편견. 지난날의 모습들을 회개해 보지만 이미 버스는 떠나가 버렸다. 남편도 콜레라에 감염되고 말았다.


키티의 개과천선 과정이 너무 스무스한 느낌도 든다. 유리멘탈에게 여러 가지 충격요법을 써서 불가능한 얘기도 아니겠다만. 심리학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을 잘 알기를 별로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파고들수록 인간관계가 피곤해지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인풋이 너무 줄어들면 시야가 좁아지고 편협한 사고에 갇혀버린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기초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확증편향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 것이다. 그러니 데카르트가 했던 말처럼 생각하는 존재로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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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2-22 1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이 통쾌한 리뷰는 뭔가요? 멋지군요. 이제 리뷰를 쓰실 때 뛰어가는 게 아니라 날으시는 단계에 가신 듯합니다. 축하드려요. 역쉬~ 많이 쓰면 쓸수록 글이 나아지는 건 확실한 모양입니다.
제가 서머싯 몸의 소설을 좋아하는 건 줄거리도 재미있게 잘 전개하지만 그것보다 생각할 거리를 주는 점입니다. 몸의 소설을 읽고 나면 단상을 쓸 글감을 얻곤 했어요. 제가 가장 많이 단상을 쓰게 해 준 작가가 아마 서머싯 몸일 거예요. 사색적인 문장이 많아 밑줄을 많이 긋게 되는, 저에겐 최고의 작가예요. 완독도 함께 축하드려요!!!

물감 2024-02-22 13:14   좋아요 0 | URL
생각거리가 많은 작품을 읽으면 날개 달린 듯한 글이 써지긴 합니다ㅋㅋㅋ 절대 형식적인 글은 쓰지 말자는 생각으로 쓰고 있습니다^^ 이제야 페크 님이 서머싯 몸을 좋아하는 이유를 대강 알겠어요. 그리고 저자의 사색들이 ‘당신은 어때?‘하고 묻는 느낌이 아니어서 전 그게 신선하다고 느껴집니다. 이제 <인간의 굴레에서>만 읽으면 장편은 끝입니다 ㅎㅎㅎ
 
홀드타이트 모중석 스릴러 클럽 29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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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코벤의 작품들을 몰아서 읽었지만 소재나 패턴이 고만고만해서인지 금방 질리고 말았더랬다. 그래서 텀을 매우 길게 뒀다가 읽었더니 제법 볼만했는데, 이 역시도 텀이 짧았으면 그냥 그랬을 작품이긴 하다. 이번 작품도 어김없이 코벤표 가족물인데 스릴러보다는 미스터리 쪽에 더 가깝지 싶다. 단점부터 짚자면 타 작품에 비해 진도가 기어가는 데다 인물 시점도 너무 많아 산만하게 느껴졌다. 퍼즐 맞추기도 초반에나 즐겁지, 플레이가 길어질수록 재미는 줄고 피로도는 높아만 가는 법이다. 여하튼 스릴러치고 꽤나 잔잔바리여서 김빠질 법도 하지만, 요 시종일관 똑같은 모던함이 작품성을 쭉쭉 끌어올린달까. 괜히 액션 넣고, 반전 빵빵에다 스피디하게 흘러갔다면 식상하다고 느껴졌을 작품이었다.


구판의 제목인 <아들의 방>이 좀 더 작품의 성격을 잘 말해준다. 내내 우울해하던 고등학생 아들이 가출한 건지 실종된 건지 갑자기 자취를 감춘다. 낌새를 맡은 부모는 미리 아들 폰에 위치추적기를 심고, 아들 PC에 감시 프로그램을 설치해두었다. 그렇게 해서 아들이 위험한 곳에 드나들고, 질 나쁜 패거리와 어울려 다님을 파악할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과연 자식의 사생활을 침해해서까지 부모 노릇을 하는 게 옳은지는 모를 일이었다. 어쨌거나 부모로서 낭떠러지에 서있는 자식을 못 본체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 같은 믿음 하에 아들을 찾아다니지만 그럴수록 아들은 부모에게서 더 멀어지기만 하는 것이었다. 어째서 사춘기 아이들은 하나같이 자기 세계에 빠져서 부모를 차단하는 걸까.


<홀드타이트>는 위 내용 말고도 다양한 가정사가 등장한다. 병마로 고통받는 학생도 있고, 전교생의 놀림감이 된 아이도 있고, 학교 옥상에서 자살한 친구도 있다. 그리고 이들의 부모들과 친구, 선생, 의사 등등 일일이 소개 못할 여러 인물들의 서사가 나온다. 부모들 눈에는 9살이나 19살이나 보호 대상인 베이비로 보이는 법이다. 반면에 아이들은 자아가 성장하며 독립심도 강해진다. 이 사실을 간과하거나 묵인할수록 사춘기 아이들은 삐딱해지고 엇나가게 되어있다. 하나의 인격체로써 존중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여전히 자기를 꼬꼬마처럼 생각하는 부모의 시선과 선입견에 불만이 쌓여간다. 정작 부모들은 자신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아이를 대하고 사랑해 준다고 자신한다. 늘 붙어살다 보니 성숙해진 자녀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그저 귀엽던 아이의 어린 시절 중 한때의 모습으로만 기억하고 대하는 거다. 이에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의 아이들은 차라리 표현하기를 관둬버린다.


우린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쉽게 산산조각 날 수 있는지에 관해 생각하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 그걸 깨닫는 순간 정신을 놓을 수 있기 때문에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차단해버리는 것이다. 어느 누가 늘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이 정상인으로 활동하도록 치료하려고 나서겠는가? 그들은 현실이 얼마나 가느다란 줄 위에서 간신히 균형을 잡고 있는지 알아버린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는 손을 쓸 수 없는 것이다. 그건 그들이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가 아니라 진실을 차단할 수 없어서 생긴 일이다. (189p)


아들이 실종된 후로 겨우 정신줄을 붙잡고 사는 아버지의 심정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이쯤 되면 원인이 자신들 즉 부모에게 있다고 생각은 할 텐데, 아무리 찾아봐도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를 발견할 수가 없는 거다. 이와 반대로 자식들을 옥죄지 않고 프리하게 키우는 부모들도 있는데, 이거는 이거대로 잘 케어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애들도 있기 때문에 방심해서는 안 된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진짜 방도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도 어느 순간부터 부모의 방식에 의문을 품고 대들거나 동굴로 숨어버리지 않았던가. 근데 이렇게 말하면 무조건 자녀한테만 편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들 PC에 감시 프로그램을 설치함은 누가 봐도 선 넘은 것이지만, 내 자식의 타락을 멈추고자 했던 최후의 몸부림이라고 본다면 꼭 잘못했다고는 볼 수 없지 않을까.


모든 사람은 자신의 부모들의 사고방식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으면서도 자식들은 자신과 같은 사고방식을 갖기를 원한다. 마치 자신의 사고방식이 가장 뛰어나고 가장 건전한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우리가 정말로 옳은 방향으로 성장하거나 우리 나름대로 이러한 균형을 잡는 방법을 찾아냈기 때문일까? (324p)


자녀 유무와 상관없이 성인이 되면 어느덧 편협한 사고방식에 길들여진다. 혹여 그것이 틀렸는데도 나와 일치한 사람들과 지내다 보면 오답을 정답으로 착각하는 우물 안 개구리가 돼버린다. 어쩌면 이런 것 또한 부모들의 부족했던 케어를 탓해야 하는 걸까? 이 각박한 세상살이에 꼭 필요한 분별력을 알려주지도 않았다면서 말이다. 사실 코벤의 매력은 서사의 재미보다도 이와 같은 사유들에 있다고 본다. 늘 똑같은 개개인의 일상 속에서 간과할 만한 점들을 콕콕 찌른다고나 할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시각과 관점이 아니라, 알지만 잊고 지냈었던 감정과 불안요소를 수면 위로 띄우는 쪽인데, 독자도 잘 아는 그 맛이 스릴러의 장르를 만나면서 강렬하고 독특한 향수가 되고 만다. 이에 매료된 독자는 장르소설을 싫어함에도 코벤 작품은 괜찮다 하게 되는 것 같다.



빼먹을 뻔했는데, 작중에는 범죄자의 활약이나 형사들의 수사 장면도 나온다. 그런데 이들은 거의 뭐 들러리나 마찬가지이다. 이 작품이 액션 스릴러는 아니어서 쫄깃쫄깃한 맛은 전혀 없다고 보면 된다. 들러리의 분량까지도 엄마 아빠들이 다 해쳐먹는 중이다. 아무튼 집집마다 각자의 비극이 드러나면서 여러 조각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맞춰지기 시작한다. 그 끝을 지켜보면서 개인의 아픔들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것이기도 하겠구나 싶어진다. 그나저나 스릴러소설인데 계속 감성적인 글만 적고 있네 그래. 워낙 여러 갈래의 내용이라 어떻게 간추려야 할지 몰라서 그냥 되는대로 썼더니 영 불만족스럽다. 또 전두엽 고장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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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2-17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혹시 모중석이 왜 모중석인지 아시나요? 사람 이름 아닌가요?
글구 혹시 코밴의 작품 중 추천하고 싶은 작품 있으면
부탁해요.

물감 2024-02-17 18:10   좋아요 1 | URL
요 시리즈를 기획한 분의 닉네임이라 보시면 됩니다 ㅋ
생각보다 저는 코벤 작품에 점수가 좀 짠 편인데요, 그나마 <숲>, <스트레인저>가 좋았습니다. <홀드타이트>도 나쁘진 않지만 장면 전환이 너무 잦아서 좀 피곤했어요.

저는 이 작가보다는 제2의 코벤이라 불리는 ‘린우드 바클레이‘의 작품을 적극 추천합니다. 국내에 딱 4권 출간되었는데 전부다 별 넷 이상 주었어요. 컨디션이 들쑥날쑥하는 코벤과 달리 바클레이의 폼은 떨어지질 않더라고요. 읽으실거면 <트러스트 유어 아이즈>부터... ^^

stella.K 2024-02-17 18:16   좋아요 1 | URL
아오, 친절한 답변 고맙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십쇼.^^

페크pek0501 2024-02-22 1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외출할 일이 있어서 요건 다음에 읽고 좋아요, 를 누를지 말지를 정하겠습니다.^^

물감 2024-02-22 14:43   좋아요 1 | URL
에고고 갑자기 자신감 확 죽는데요....ㅋㅋㅋ

페크pek0501 2024-02-23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것 중 하나, 생각나네요. 아이는 어리다고만 보고 말하는 것보다 이제 제법 컸다고 여겨 존중해 주고 귀담아 들어 주고 하면 좋은 효과가 나타난대요. 그러니까 17세의 자식에게 20세의 성인처럼 대해 주면 정말 성인처럼 된다는 얘기예요.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도 하잖아요. 말썽꾸러기가 반장을 시켜 놨더니 반장답게 모범생이 되더라는 것. 자식을 대할 때 부모가 이 점을 알아 두면 좋을 것 같아요. 부모가 ˝너에게 상의할 게 있어.˝ 이런 말로 자식을 존중해 주는 모습을 보인다면 바람직할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저도 가끔 작은애에게 의논할 때가 있는데 이건 그 효과를 보자고 한 건 아니고 아직 20대지만 의논해서 아이의 의견을 들어보는 게 도움이 될 때가 있어서예요.ㅋㅋ 이럴 때 아이는 진지해져서 자기 의견을 말해요.
댓글이 길어졌네요. 리뷰를 잘 써 주셔서 그런 건지 이 책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물감 2024-02-25 09:56   좋아요 1 | URL
제가 자주 놀아주던 꼬마애가 최근에 이십 대 중반이 되어서 절 찾아왔는데, 기분이 참 묘하더라고요. 예전처럼 대할까, 성인 대우를 해줄까 망설이다가 결국 후자를 택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컸다‘고 여겨지면 존중부터 하고 봐야죠. 편히 대해달라는 상대방의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요. 많은 성인들(웃사람)이 요 과정을 쉽게 건너뛰는 듯 합니다. 설령 부모자식 관계라고 해도 말이죠.
경험은 윗사람들이 더 많을지 모르나, 가능성은 아랫사람들이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 또 요즘같이 급변하는 문화도 잘만 따라가는 청년, 청소년들에게 배울 점은 넘쳐나고요. 이래서 각기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봐야 하는가 봅니다 ㅎㅎ
늘 건강한 댓글로 행복주시는 페크님 감사드립니다. 좋은 휴일 보내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