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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드타이트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29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5년 3월
평점 :
한때는 코벤의 작품들을 몰아서 읽었지만 소재나 패턴이 고만고만해서인지 금방 질리고 말았더랬다. 그래서 텀을 매우 길게 뒀다가 읽었더니 제법 볼만했는데, 이 역시도 텀이 짧았으면 그냥 그랬을 작품이긴 하다. 이번 작품도 어김없이 코벤표 가족물인데 스릴러보다는 미스터리 쪽에 더 가깝지 싶다. 단점부터 짚자면 타 작품에 비해 진도가 기어가는 데다 인물 시점도 너무 많아 산만하게 느껴졌다. 퍼즐 맞추기도 초반에나 즐겁지, 플레이가 길어질수록 재미는 줄고 피로도는 높아만 가는 법이다. 여하튼 스릴러치고 꽤나 잔잔바리여서 김빠질 법도 하지만, 요 시종일관 똑같은 모던함이 작품성을 쭉쭉 끌어올린달까. 괜히 액션 넣고, 반전 빵빵에다 스피디하게 흘러갔다면 식상하다고 느껴졌을 작품이었다.
구판의 제목인 <아들의 방>이 좀 더 작품의 성격을 잘 말해준다. 내내 우울해하던 고등학생 아들이 가출한 건지 실종된 건지 갑자기 자취를 감춘다. 낌새를 맡은 부모는 미리 아들 폰에 위치추적기를 심고, 아들 PC에 감시 프로그램을 설치해두었다. 그렇게 해서 아들이 위험한 곳에 드나들고, 질 나쁜 패거리와 어울려 다님을 파악할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과연 자식의 사생활을 침해해서까지 부모 노릇을 하는 게 옳은지는 모를 일이었다. 어쨌거나 부모로서 낭떠러지에 서있는 자식을 못 본체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 같은 믿음 하에 아들을 찾아다니지만 그럴수록 아들은 부모에게서 더 멀어지기만 하는 것이었다. 어째서 사춘기 아이들은 하나같이 자기 세계에 빠져서 부모를 차단하는 걸까.
<홀드타이트>는 위 내용 말고도 다양한 가정사가 등장한다. 병마로 고통받는 학생도 있고, 전교생의 놀림감이 된 아이도 있고, 학교 옥상에서 자살한 친구도 있다. 그리고 이들의 부모들과 친구, 선생, 의사 등등 일일이 소개 못할 여러 인물들의 서사가 나온다. 부모들 눈에는 9살이나 19살이나 보호 대상인 베이비로 보이는 법이다. 반면에 아이들은 자아가 성장하며 독립심도 강해진다. 이 사실을 간과하거나 묵인할수록 사춘기 아이들은 삐딱해지고 엇나가게 되어있다. 하나의 인격체로써 존중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여전히 자기를 꼬꼬마처럼 생각하는 부모의 시선과 선입견에 불만이 쌓여간다. 정작 부모들은 자신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아이를 대하고 사랑해 준다고 자신한다. 늘 붙어살다 보니 성숙해진 자녀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그저 귀엽던 아이의 어린 시절 중 한때의 모습으로만 기억하고 대하는 거다. 이에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의 아이들은 차라리 표현하기를 관둬버린다.
우린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쉽게 산산조각 날 수 있는지에 관해 생각하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 그걸 깨닫는 순간 정신을 놓을 수 있기 때문에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차단해버리는 것이다. 어느 누가 늘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이 정상인으로 활동하도록 치료하려고 나서겠는가? 그들은 현실이 얼마나 가느다란 줄 위에서 간신히 균형을 잡고 있는지 알아버린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는 손을 쓸 수 없는 것이다. 그건 그들이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가 아니라 진실을 차단할 수 없어서 생긴 일이다. (189p)
아들이 실종된 후로 겨우 정신줄을 붙잡고 사는 아버지의 심정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이쯤 되면 원인이 자신들 즉 부모에게 있다고 생각은 할 텐데, 아무리 찾아봐도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를 발견할 수가 없는 거다. 이와 반대로 자식들을 옥죄지 않고 프리하게 키우는 부모들도 있는데, 이거는 이거대로 잘 케어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애들도 있기 때문에 방심해서는 안 된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진짜 방도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도 어느 순간부터 부모의 방식에 의문을 품고 대들거나 동굴로 숨어버리지 않았던가. 근데 이렇게 말하면 무조건 자녀한테만 편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들 PC에 감시 프로그램을 설치함은 누가 봐도 선 넘은 것이지만, 내 자식의 타락을 멈추고자 했던 최후의 몸부림이라고 본다면 꼭 잘못했다고는 볼 수 없지 않을까.
모든 사람은 자신의 부모들의 사고방식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으면서도 자식들은 자신과 같은 사고방식을 갖기를 원한다. 마치 자신의 사고방식이 가장 뛰어나고 가장 건전한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우리가 정말로 옳은 방향으로 성장하거나 우리 나름대로 이러한 균형을 잡는 방법을 찾아냈기 때문일까? (324p)
자녀 유무와 상관없이 성인이 되면 어느덧 편협한 사고방식에 길들여진다. 혹여 그것이 틀렸는데도 나와 일치한 사람들과 지내다 보면 오답을 정답으로 착각하는 우물 안 개구리가 돼버린다. 어쩌면 이런 것 또한 부모들의 부족했던 케어를 탓해야 하는 걸까? 이 각박한 세상살이에 꼭 필요한 분별력을 알려주지도 않았다면서 말이다. 사실 코벤의 매력은 서사의 재미보다도 이와 같은 사유들에 있다고 본다. 늘 똑같은 개개인의 일상 속에서 간과할 만한 점들을 콕콕 찌른다고나 할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시각과 관점이 아니라, 알지만 잊고 지냈었던 감정과 불안요소를 수면 위로 띄우는 쪽인데, 독자도 잘 아는 그 맛이 스릴러의 장르를 만나면서 강렬하고 독특한 향수가 되고 만다. 이에 매료된 독자는 장르소설을 싫어함에도 코벤 작품은 괜찮다 하게 되는 것 같다.
빼먹을 뻔했는데, 작중에는 범죄자의 활약이나 형사들의 수사 장면도 나온다. 그런데 이들은 거의 뭐 들러리나 마찬가지이다. 이 작품이 액션 스릴러는 아니어서 쫄깃쫄깃한 맛은 전혀 없다고 보면 된다. 들러리의 분량까지도 엄마 아빠들이 다 해쳐먹는 중이다. 아무튼 집집마다 각자의 비극이 드러나면서 여러 조각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맞춰지기 시작한다. 그 끝을 지켜보면서 개인의 아픔들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것이기도 하겠구나 싶어진다. 그나저나 스릴러소설인데 계속 감성적인 글만 적고 있네 그래. 워낙 여러 갈래의 내용이라 어떻게 간추려야 할지 몰라서 그냥 되는대로 썼더니 영 불만족스럽다. 또 전두엽 고장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