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문
필립 지앙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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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지앙과는 이번이 첫 만남인데 영 좋은 인상이 못되었다. 독자들의 찬사와 출판사의 소개 글에 또 속았다. 예전 같았으면 눈 뒤집혀서 팩폭하고 까대기 바빴을 텐데, 이제는 기력도 없고 시간도 아깝고 해서 혹평은 잘 안 하게 된다. 물론 비평도 좋지만 매번 삐딱한 눈으로 작품을 대하기도 썩 불편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하나 <파문>은 좋게좋게 넘어가 줄 수 없는 수준이어서, 오랜만에 전투 모드가 되어 잘근잘근 씹어보겠다.


50대의 문학 교수인 마르크. 원나잇 파트너가 다음날 죽어있자, 자신만 아는 산속 동굴 속에 시신을 유기하는 것으로 서막을 연다.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가 눈에 훤했으나, 내 예상과는 전혀 딴판으로 진행되어 대략 낭패였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왔고, 실종된 학생(파트너)에 대한 내용도 쏙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 이야기는 학과장과의 신경전과, 친누나의 들들 볶음, 그리고 파트너의 계모와 눈 맞음, 이 세 가지 내용으로 굴러간다. 마르크는 학과장의 계속된 경고에도 교칙을 어기며 학생 및 학부모와 몸을 섞어댄다. 그는 섹스만큼이나 작법을 중요시하고 있는데, 통제 안되는 수컷 짐승이 그런 말 해봤자 와닿지도 않고 말이다. 여튼 살인 용의자로 몰린다거나, 추문으로 학교서 쫓겨나게 되는 전개를 바랐는데 그냥 섹스 신으로 질질 끌다가 끝나버렸다. 어이 상실.


범죄현장이 된 동굴은, 자신을 구해준 누나와의 추억이 깃든 장소로써, 아직도 시스터 콤플렉스에 매인 마르크를 설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온다. 정말 그게 다여서 실망스러웠다. 이어서 죽은 학생을 수소문하던 경찰도 결국 죽어, 마르크가 동굴에 또 집어넣는다. 헌데 두 사람이 대화하다가 다음 장에서 갑자기 죽어있는데 이 무슨 황당함인가. 파트너도 그렇고 경찰의 죽음도 그렇고, 저자는 가장 중요한 장면을 죄다 생략하고 있다. 이런 의도적인 장치가 몇 번 더 반복되는데, 그렇게 싹둑 잘라내니까 맥락이 계속 틀어져 버린다. 때문에 번역자도 고생 좀 했나 보더라. 난 이처럼 독자한테 습관적으로 떠넘기는, 무책임하고 불친절한 스타일을 아주 경멸한다. 사실 작가보다도 무조건 오냐오냐해주는 독자들이 더 문제지.


부모의 학대, 포기한 소설가의 꿈, 사랑을 못 느끼는 옴므파탈 등등. 주인공을 끝없이 방황하는 위태로운 캐릭터로 묘사 중인데, 하나같이 진부한 설정뿐이라 영 와닿지가 않는다. 게다가 머릿속은 온통 섹스로 가득 차있어, 방황이고 나발이고 간에 조금도 감정이입이 되질 않는다. 읽는 내내 프랑스판 하루키라는 생각밖에 안 들더군. 아무튼 성격이 되게 어중간한 작품이었다. 차라리 범죄 스릴러 쪽으로 밀고 가던가, 아니면 불안한 자신과의 투쟁으로 가던가, 또는 아슬아슬한 스캔들 끝에 추락하는 스토리여도 좋았을 건데. 쯧쯧. 좀 더 쓰고 싶지만 졸려서 안되겠다. 영양가 없는 작품에 이만큼 썼으면 과분하지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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