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 - 제138회 나오키 상 수상작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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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가 만나 그저 하나가되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만큼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있는 이들은 알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기이한 늪이라는 것을, 한번 들어가면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이 깊고 아늑하고 어둡고 아름답지만 또한 슬프고 외롭고 괴로운 늪이라는 것을. 하나와 준고는 그런 늪에 빠져 버렸다. 누구랄 것도 없이 둘은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그것을 핥아가며 헤어나올 수 없는 늪 속으로 늪 속으로 가라앉아 버린 것이다. 그 둘의 세상에서는 이목도 상관없고, 도덕도 상관없고, 사회도 상관없고, 심지어 자신이라는 존재 자체도 상관이 없다. 그저 그 둘이 함께 있다는 그 시간, 그 순간만이 존재할 뿐." - 다락방서 허뭄 
 
  소설을 읽다 보면 아래의 인용 구절이 이렇게 읽힌다.
'어디까지가 아빠(딸)이고 어디서부터가 사랑인지.
우리로서는 도저히 선을 그을 수 없다.' 
 
  애초부터 그렇게 정해졌을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세계인 아빠와 엄마. 아빠와 엄마의 영향 아래서 겨우 독립해나갈라 하면 또 다시 의존하게 되는 사랑하는 남자 혹은 여자. 한 사람의 인생 중 반은 아빠와 엄마와 함께 나머지 반은 사랑하는 남자나 여자와 함께 살아갈테니 그 강력한 두 세계가 서로 합쳐지는 일 따위는 애초부터 허락지 않으셨을 거란 말이다. 신화에서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비극적 서사. 어둡고 불쾌하고 위험한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읽고 싶던 이야기.

 

 

`어디까지가 뭍이고 어디서부터가 바다인지.
우리로서는 도저히 선을 그을 수 없다.
무슨 일이든 그렇다.`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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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봤어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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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는 소설. 죽이는 소설. 처음엔 마뜩잖았다. <살인자의 기억법>도 처음엔 제목만 듣고 꺼리다가 작가의 이름을 보고서야 겨우 읽었을 정도니까. 그래도 사람이 너무 쉽게 죽었다. 글 두세 줄 지나가면 죽어 있었고 어쩌다 보니 죽이게 되었다. 글이야 실제가 아니니까 괜찮다 할 수 있지만, 기분이 별로였다. 이 사람들은 실제로 죽여봤을까, 마음으로라도? 어떻게 이렇게 잘 알지? 하며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도 있었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는 참 아팠다. 사실 읽는 내내 아프고 무거웠다. 이것이 김려령이라는 작가가 가진 시선일까. 사랑인데도 왜 이리 무거운 건지. 사랑 그 자체가 살거나 살게 하고픈 욕망과 죽거나 죽이고 싶을 만큼의 욕망 사이에 햄버거 패티처럼 껴있기 때문이 아닐까도 싶었다.
  아무 책이나 들고 맛있게 소화해내지 못하고 장르에 나라에 작가까지 거르고 골라내다 보니, 요즘 영 읽고 싶은 책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잘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이 조금 무거운 분위기가 있어도 그래도 살인이나 죽음이 중점이 아니라 사랑 이야기고, 스토리가 꽤 괜찮은 것 같다.

 

 

"갑자기 죽는 사람 없어요. 거기까지 간 이유가 있어. 사람들은 그러지. 죽을 용기로 차라리 살라고. 그런데 `차라리`를 다했는데도 죽어도 `차라리`가 안되니까 가는 거예요."

"산다는 게 이토록 누추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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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침대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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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가 결혼했다>로 유명해진 박현욱의 단편 소설 모음집. 8개의 단편이 속해 있는데, '그 여자의 침대'라는 작품에선 특히 <쿨한 여자>라는 책 생각이 많이 났다. 분위기가 비슷했던 걸까. 담담하게 감정들을 생략하고 압축시켜 독백투로 말하는 느낌. 특이한 점은 연애, 특히 결혼, 또 특히 이혼에 포커스가 많이 가있다. 이쯤되면 작가 프로필이 의심되는 바, 열심히 조사해봤지만 개인적 사정이 아니라 타인과 관계맺는 방식을 이혼이라는 소재에서 많이 찾는 듯 싶었다. 그리고 난 그 방식이 꽤 맘에 든다. 나이가 먹어서도 좀처럼 성장하지 못하는 남자들이 그나마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계기가 되는 것이 바로 이혼이라는 큰 난관에 부딪혔을 때라고 생각하니까. 어쨌든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소재를 너무 우울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타인과의 관계를 포기하지도 않는 방식으로 (그럴 수도 없지만) 이야기를 그리고자 했다는 것이 좋았고 재밌었다.

 

 

`비극으로 귀결되는 것은 일차적으로 무지에 기인한다. 아는 만큼 다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알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담배 피우는 일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어울리지 않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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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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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아무것도 아닌 그 무언가에 예민하게 귀 귀울이던 청춘의 이야기. 마음이 버스럭거렸고 소박한 감동이 밀려왔다. 처음 들어본 김연수 작가의 이야기. 요즘에 쉽게 접할 수 없는 옛 문인들의 시를 전해줘서 더욱 알듯 모를듯 비밀스레 전해지는 애잔함이 있었고, 갈팡질팡 정처없이 방법없이 보낸 그의 시절 이야기가 좋았다. 지나고 나니 이리도 아름다운 것을. 진한 추억색으로 기록할 수 있는 것을 왜 그 때는 그리 알기가 어려웠을까.

 

 

`어둠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제 몸으로 어둠을 지나오지 않으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어둡고 어두울 정도로 가장 깊은 어둠을 겪지 않으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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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면허
조두진 지음 / 예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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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깃한 주제와 제목이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엄청 큰 깨우침이 있다거나 하진 않았다. 가벼운 연애소설 정도의 느낌인데, 주제가 '결혼면허'라는 것일 뿐. 그런데 평은 꽤 좋으니 일반적으로는 공감을 많이 하나 보다. 세태를 잘 반영한 것 같긴 하지만, 날카로움은 「누구」 때보다 부족한 느낌이었다. 묘사 시점이 자꾸 왔다갔다 하고 서술방식이 조금 부족한 느낌도 없지 않아 있지만, 여러 매체와 사람의 속을 표현하려다보니 그리 된 것 같다.
   박현욱 님은 결혼에 기대가 없는 사람은 결혼을 하는 게 낫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도 정말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결혼에 대한 기대가 없는 사람은 결혼 할 필요를 못 느끼니 정말 잘 살게 될거라 보장이 있다 해도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 같다. 아이러니 하기도 하지. 어쨌든 잘 읽었다. 미처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결혼 전에 읽고 어떤 방향으로든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미래를 꿈꿀 때는 마땅히 악몽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꿈이 악몽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무슨 근거로 그런 어처구니없는 낙관을 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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