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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 고객에 미쳐라
케네스 블랜차드 외 지음, 조천제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1990년 대 초반에 ‘고객관리’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C.R.M’이란 단어를 보게 되었고, 곧 이어 ‘고객감동’, 그리고 이제는 ‘고객’의 수준을 넘어 그들을 회사의 ‘팬’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 다음에는 또 어떤 말이 나올 지 무척 궁금하다. 그러다 보니 “고객에 미쳐라’는 책 제목 자체가 무척 친근하게 와 닿기는 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는 인상을 독자에게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풍성한 말 잔치 속에서 ‘얌! 고객에 미쳐라’ 란 책의 내용이 돋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대상이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는 대기업의 서비스센터나 고가의 제품을 판매하는 멋들어진 매장, 또는 별 다섯 개가 붙은 특급호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집 밖으로 나가면 바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가게, 1~2만원짜리 피자를 팔고, 멕시코 음식을 파는 평범한 음식점 이야기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미국에서의 피자가게는 우리나라에서 부대찌게와 삼겹살로 유명한 ‘놀부’ 프랜차이스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음식점일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 전에 주유소 사장을 맡아 주유소를 관리해 본 적이 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 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주유원들의 생활과 그들이 받고 있는 임금,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직장과 삶에 대한 태도를 가까이서 바라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8시간 근무로 받을 수 있는 하루 일당은 2만원 정도, 한달 내내 일하면 60만원~70만원정도가 손에 들어 온다. 그들의 손과 옷은 항상 기름에 젖어 있고, 주유를 하고 세차하는 것 자체도 육체적으로 그리 편안한 일은 아니다. 파트타임이 아닌, 정규 직으로 채용되어 일할 경우 한 달에 가져가는 돈은 90만원~100만원 수준. 이들이 생각하는 내일은 무엇일까? 이런 상황에서 이들이 자동차에 기름을 넣으면서, 도로에 떨어진 여러 가지 오물로 뒤범벅이 된 남의 차를 닦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물론 회사의 정책은 항상 고객만족을 떠나 열망하는 고객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여러 가지 지침, 감시, 평가, 그리고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해서, 이를 현장에서 실행할 수 있는 세부지침까지 꼼꼼히 만들어 보낸다. 그들은 언제나 같은 말을 한다. ‘고객만족만이 주유소가 살 길이다. 아니 이제는 만족의 수준이 아니라, 고객을 감동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본사의 정책은 본사의 경영진, 기획실, 그리고 본사의 영업사원에서 각 지사 관리 임원과 그 내용을 전달하는 지사 영업담당자를 거치면서 정말 중요한 내용, 즉 이 일을 왜 해야 하며, 이 일을 통해 현장 직원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은 사라진 채 매출을 올리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마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장 담당자들에게, 그리고 주유소를 관리하는 사장들에게는 회사에 보고할 실적과 자기 손에 남게 되는 수익이 더욱 중요한 것이기에.
‘얌’이 운영하는 곳도 매장을 관리하는 직원의 대부분이 파트타임 직원들일 것이다. 이들 파트타임 직원들의 하루 일과는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는 것부터 남이 먹다 남은 그릇을 치우고 식탁을 닦는 일, 그리고 고객의 투정과 호통을 들어 주어야만 하는 힘겨운 나날들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 곳은 사회생활을 하기 전에 잠시 스쳐가는 곳일 수도 있고, 급전을 마련하기 위한 임시 방편일 수도 있다. 게다가 자신의 미래를 그려 볼 수 있는 직장은 더욱이 아닐 수도 있다.
이 책의 가치는 바로 이런 직원들을 통해, 그리고 이런 직원들과 함께 매장 자체를 ‘고객마니아’ 들이 모인 장소로 바꾸고자 노력하는 모습들을,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경영진들의 고민과 함께 생생하게 전달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제는 직원과 고객의 행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기업만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는 점이다.
나는 이 책의 내용이 지금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지식과 순식간에 죽어가는 사업을 살려내는 어떤 독특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업을 하면서 진정으로 고객을 통해 성공하고 싶어하는 경영자나 리더에게, 그들이 잊지 말아야 할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본다.
첫째, 고객은 물론이고 직원들도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
둘째, 경영자의 꿈과 생각을 글로 멋들어지게 정리하는 것보다, 현장 직원들이 이것들을 왜 해야 하는지를 먼저 교육하고 설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셋째, 고객과 직원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결정했다면, 회사의 모든 정책 결정과 목표 수립, 업무 관리,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직원 개개인의 업무평가까지도 이를 위해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넷째, 경영자 스스로가 고객을 만족시키고, 직원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만이 기업을 키우고, 그 기업을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어야만 한다. 즉 이러한 경영자의 확고한 신념만이 고객을 위하고, 직원을 위함으로서 발생할 수 있는 단기적인 손실의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아래의 세 가지 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첫째, 이 책은 고객관리나 조직운영에 대한 내용이기 보다는 현재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그리고 자신의 사업이 지속 가능한 사업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리더십에 대한 것이었다. 저자는 짐 콜린스의 말을 인용한다
“그는 훌륭한 리더를 나타내는 두 가지 특징이 의지와 겸손이라고 했다. 의지는 비전, 사명, 목표를 추구하는 결단력이다. 리더십은 리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그들의 욕구를 위한 것임을 깨닫는 바로 겸손이다.”
그리고 겸손에 대해 프레드 스미스의 말을 인용한다.
“겸손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 힘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통하여 나오는 것임을 아는 것이다.”
둘째, 현대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한 마지막 경영방식은 생산자나 판매자가 아닌 고객 입장에서 바라보아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말같지만, 이를 실천으로 옮기기에는 너무나도 두려운.
셋째, 우리도 ‘얌!’ 처럼 사업을 운영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점이다. 저자는 이 책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극단적인 예를 들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맞는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당신이라면 어떤 문으로 가고 싶겠는가? (중략) 기억하라. 결코 늦지 않다. 얌! 브랜드처럼 복잡하고 거대한 조직이 고객중심 기업을 만들 수 있다면, 당신도 할 수 있다. 관심만 갖지 말고 헌신하라.”
나는 이 책을 통해 고객중심, 직원중심으로 기업을 운영한다는 것이 어떤 것이며,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지식의 수준을 넘어, 누구든지 직원, 고객과 함께 사는 세상을 그릴 수 있다면, 그리고 이를 강한 의지와 겸손을 가지고 사업을 운영한다면, 얌!과 같은 기업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