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 성공을 만드는 강력한 힘
리사 헤인버그 지음, 박정길 옮김 / 마젤란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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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직장 생활할 때 직원들에게 가장 강조했던 것이 멀티태스킹이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 것 말이다. 당시엔 넘쳐나는 일을 소화하기 위해 동시다발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직원은 우수한 직원이고, 한 가지 일에 매달리는 직원은 열등한 직원처럼 평가했다. 내가 일을 그렇게 하니 당신들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냐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당시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많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청소하듯이 일을 하나씩 빠른 시간 내에 해치우는 것, 단순한 일도 아닌 상품개발이나 신사업기획같은 것을 신속하게 처리한다는 것 자체가 맞는 의미였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마음으로 일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발된 상품이 성공하거나 새롭게 진행한 사업이 별 문제없이 굴러간 건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게다가 직장을 그만두고 혼자 일하다보니 이제 비로소 내 업무스타일을 조금 알게 되었는데, 그건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일 하나하나에 집중해서 하는 것이었다. 쉽게 말하면 아무리 일이 밀려있어도 한 번에 한 가지 밖에 처리 못하는 것이 나 라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과거엔 어떻게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건 말 그대로 손에 잡은 일을 처리한다는 개념으로 일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지저분한 책상을 정리하듯이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집중]은 지난날의 내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해 줬고, 앞으로의 삶에 집중이라는 것 자체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줬다. 어쩌면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 아닐까. 하지만 집중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주 멀티태스킹을 생각하는 이유는 인간의 뇌를 컴퓨터처럼 생각해서인 것 같다. CPU가 두개, 세 개인 컴퓨터가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니 인간도 몇 개의 일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개념 말이다.

그럼 책에 나온 집중에 대한 실행지침 10가지를 살펴보자.

첫 번째, 집중의 힘을 알고 느껴라. 우리는 집중한다는 것이 좋은 것은 알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경우는 드물다. 왜냐하면 집중한다는 것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체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중하기 위해서는 우선 체험이 필요하다

두 번째, 사람들과 친밀해져라. 집중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면, 몰입을 연상하다보니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것보다 혼자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집중은 혼자보다 마음에 맞는 동료들과 함께 할 때 더 즐겁고,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생각과 관심을 하나로 합칠 때 집중력은 더 커진다.

세 번째, 일을 즐겨라. 무슨 일을 하든지 재미있고 즐겁지 않으면 그 일은 지루하다. 이를 위해서는 일할 환경이 무척 중요하다. 동일한 일이라도 주변 여건과 환경에 따라, 함께 일하는 사람과 일을 이끄는 리더에 따라 받아들이는 감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네 번째, 휴식으로 충전하라. 사람은 기계와 달라 24시간 지속적으로 일할 수 없다. 또 그렇게 일하면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없다. 집중을 위해서는 일정시간 일과 함께 휴식이 필요하다. 따라서 집중을 원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맞는 휴식방법을 찾아야 한다.

다섯 번째, 회의를 집중하는 시간으로 바꿔라. 사람들은 가끔 회의시간을 낭비하는 시간으로 생각한다. 이유는 회의 자체가 지겹고, 회의시간에 걸 맞는 성과를 얻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회의 자체를 문제를 이해하고, 이에 집중하기 위한 시간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여섯 번째, 도전을 환영하라. 집중하기 위해서는 몰입과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즉 자신의 지적인 호기심을 유발시키고 도전할만한 과제가 필요하다. 따라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지루한 일이라 생각되면, 일 자체를 자신이 도전할만한 과제로 바꿔야 한다.

일곱 번째, 회의 대신 허들을 사용하라. 허들은 소그룹 단위로 이루어지는 짧고 활기 있는 대화를 말한다. 이와 같은 허들은 업무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명확성과 집중력 향상을 위해 쓸 수 있는 매우 유용한 도구다. 집중을 원한다면 아침, 또는 일 시작 전에 허들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여덟 번째, 멀티태스킹을 멈추고 ‘청킹’을 시작하라. 멀티태스킹은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방식으로, 일을 전환할 때마다 준비시간이 별도로 필요하고,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도 못한다. 따라서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기 보다 특정업무를 특정시간에 나눠 몰입하는 청킹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일주일에 해야 할 일을 몇 가지 나눠놓고, 이를 특정시간으로 구분하여 그 시간에는 그 일만 하는 것이다

아홉 번째, 한 가지 위대한 일을 하라. 사람들이 하루를 보내고 해 놓은 게 없다고 느낀다면, 이는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뭔가 중요한 일을 하지 않은 채 앞에 놓인 일을 처리하는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들 때 필요한 것은 최소한 한 개 정도 중요한 일을 하도록 스스로를 훈련하는 것이다.

열 번째, 버려라. 사람에게는 관성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다보니 일하면서도 성과가 오르지 않는 것, 하기 싫은 것,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그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과감해 질 필요가 있다. 즉 지금 하는 일을 덮고 자신이 집중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요즘 내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집중이다. 내 앞에 놓인 일을 바라보며 이것저것을 해치우다보면 다람쥐 채바퀴 도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고, 일에 대한 성과도 좋지 않은 경우가 자주 있다. 이 책을 통해 집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내 자신을 재정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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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무엇이든 믿고 싶어할까?
마르틴 우르반 지음, 김현정 옮김 / 도솔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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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무엇이든 믿고 싶어 할까? 아주 기본적인 대답은 인간 스스로의 안정을 찾기 위해서가 아닐까. 자신의 머리로, 가진 지식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현상들을 어떻게든 이해해야 하니까 말이다.

저자는 인간은 우연을 믿지 않으려 한다고 말한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고, 어떤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우연이란 것 자체가 불안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정한 일, 남들이 볼 때는 우연처럼 보일지라도 당사자 자신은 그것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즉 자신에게 뭔가가 말을 건네는 것처럼 믿는다는 것이다. 아니 믿고 싶은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평소 알고 있는 모든 것은 필연이 아니며 인간의 정신적인 변화와 세상의 움직임에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것이라고 한다. 세계를 이끌고 있는 기성종교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비슷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고, 그 안에서 표현하는 신의 모습도 대부분 엇비슷하다고 한데, 이는 종교가 어떤 절대적인 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으로 탄생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종교의 모습을 그린 사람은 과거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신의 모습에서 자신의 종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이 가진 믿고 싶어 하는 가장 큰 이유를 인간 본연의 지적인 한계에서 찾는다. 즉 인간은 동물 중에서 가장 열악한 신체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해석능력이 필요했다고 한다. 즉 나무 뒤에서 번쩍이는 불빛을 보며 그것이 자신을 공격할 맹수의 눈이라는 것을 미리 알아야 하며, 동물의 달리는 속도를 보고 자신이 그것을 쫓아갈 수 있는 지를 사전에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이와 같은 인간생존본능이 우리가 갖은 해석능력을 극대화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재미있는 말을 한다. 이와 같은 것들은 대부분 인간에게 내재된 능력이라는 것이다. 아기가 태어나 자신이 직접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부모가 가까이 오고 멀리 떠난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알듯이 말이다. 왜 내재되었을까? 그것은 저자도 모르는 것 같다.

신비주의.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를 신비주의로 해석하는 듯했다. 자신이 알 수 없는 뭔가가 자신과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의미다. 결국 평소 우리가 생각하듯이 특정인만이 신비주의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다 모두 어느 정도 신비주의적인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연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인간입장에서 자신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해석해야 할 때는 오직 이 방법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운이 좋은 사람과 운이 나쁜 사람의 차이도 객관적인 사실 문제가 아니라. 자신 앞에 놓인 현실을 당사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린 것 아니겠는가.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가 예로 든 것이 ‘일일경구’다. 특히 성경구절을 많이 사용하는 이 경구는 아무런 의미 없는 특정의 내용을 사람에게 보여줄 때 그 힘을 발휘한다. 아마 일일사주처럼 사람들은 그 문장을 자신에게 맞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석한 내용에 따라 하루를 보낸다. 어떻게 보면 허망한 일인 것 같지만 불확실한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처럼 간단한 삶의 지침도 없으리라 본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부적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지만 당사자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 사람들은 변하고 있다. 자연현상을 이해하고 인간 스스로를 알아감에 따라 과거처럼 무조건적인 복종의 시대는 지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평안을 위해 스스로 종교를 만들기도 하고, 스스로 자신만의 종교를 찾아가기도 한다. 기성종교 몇 개가 세상을 이끌던 시대는 지난 것이다.

세상의 믿음은 어떻게 변할까? 저자는 종교도 유행이 있기에 세상변화에 맞춰 달라질 것이라고 한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에 따라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엔 영혼이란 말보다 영성이란 말이 더욱 많이 사용되고, 종교와 유사한 모습을 지닌 여러 가지 활동들이 구지 종교란 이름 없이 하나의 운동이나 모임처럼 우리 주위에 나타난다. 따지고 보면 요가도 명상도 모두 종교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단지 불멸의 신이 없고, 인간의 영생을 부르짖지만 않을 뿐이다.

정현경씨가 한 말이 인상적이다. 그녀 역시 기독교를 새롭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의 작은 일부일 뿐이다. 자연 위에 군림하지 않습니다.... 나는 모든 선한 자를 구원하고 모든 악한 자를 벌하는 전지전능한 마초, 그리고 투사인 하느님을 더 이상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삶이 참혹하게 무너질 때 우리를 위해 눈물을 흘려주는 자비로운 하느님은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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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 혁명 - 제4섹터, 사회적 기업가의 아름다운 반란
유병선 지음 / 부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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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서울 봉천동에 사는 준환(가명)은 처음으로 과외를 받았다. 그 동안 아버지가 택시운전으로 꾸려가는 가정형편 때문에 학원을 다니고 싶어도 다닐 수가 없었는데, 어느 날 서울대에 다니는 형이 찾아와 공짜로 과외를 해 준 것이다. 덕분에 준환이는 두어 달 만에 학교성적이 50등이나 올랐고 선생님한테 칭찬도 받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일주일에 두 번씩 수학도 가르쳐주고 피자도 사주던 형이 오지 않았다. 소득 격차로 인한 교육 양극화 해소를 위해 교육인적자원부, 관악구청, 서울대가 함께 서울대생에게 과외비를 주며 중학생 1000명을 가르치던 ‘방과 후 달동네 과외활동’이 예산부족으로 시행 1년 만에 중단됐기 때문이다. 과외비를 안 주니 준환이 같은 아이들에게 과외를 해 주던 학생들이 과외수업활동을 그만둔 것이다.

미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1992년. 미국 보스턴의 도심 빈민가 초등학교에 무손이라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부모를 따라 아이티에서 갓 이민 온 무손은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교실 한 구석을 지킬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들은 가난한 무손같은 학생들을 스칼라(학자, 장학생의 의미)라고 부르며 간식도 사주고 모르는 것을 몇 번을 물어도 상냥하게 공부를 봐 줬다. 읽기와 수학풀이는 당연하고,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동기와 희망을 불어넣어주었다. 그 때부터 무손은 달라졌다. 학교성적도 올랐고, 더 이상 교실 구석에 처박힌 아이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믿음이 생겼다.

그 후 무손은 열심히 공부하여 전액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에 진학했고, 현재 의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 무손은 학교를 졸업한 후 조국 아이티로 돌아가 그 동안 대학생 언니, 오빠들에게 받은 도움을 자기 고향의 아이들을 통해 갚겠다고 한다. 1992년 보스턴의 한 빈민가에서 무손과 같은 19명의 아이들을 모아 놓고 시작한 ‘빈민촌 과외’는 현재 볼티모어, 뉴욕, 워싱톤 DC 등으로 확대되어 1만여 명의 아이들에게 꿈을 키워주고 있다.

서울과 보스톤에서 시작한 빈민촌 과외. 서울의 ‘달동네 과외’는 1년 만에 중단되었지만, 보스톤의 ‘빈민촌 과외’는 15년 동안 1만여 명의 아이들을 돌봐 주었고, 지금 이 순간도 계속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두 이야기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찌 보면 개인이 시작한 보스톤의 과외보다 정부기관과 국내 최고 대학이 힘을 합쳐 시작한 우리의 달동네 과외가 더욱 잘 되었어야 할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차이가 생기는 이유를 ‘사회적 혁신가’가 이끄는 ‘사회적 기업’의 존재유무에서 찾고 있다. 너무 단편적인 결론인가?

얼 마틴 팰런. 그는 도심의 빈민가 초등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삶의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BELL(Building Educated Leaders for Life)을 설립한 사람으로, 흑인인 팰런 역시 어린 시절을 고생하며 자랐다. 그는 하버드 로스쿨에 다니면서 우연히 보스톤 빈민가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그 때 글을 읽지 못하는 가난한 아이들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당시 그는 다른 아이들보다 읽기와 산수능력이 몇 년이나 뒤진 아이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지 깨달았다.

그는 가난하면 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고, 현 사회가 실력이 없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학력경쟁사회라면, 그저 현실을 비판하거나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해주기보다 직접적으로 아이들의 학력을 높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행복이 성적순은 아니지만, 성적이 낮으면 희망도 작아지는 현실을 직시하고, 피할 수 없으면 맞서서 즐기자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멘토링 방식에 방과 후 과외를 더한 새로운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평범한 법대생이 빈민촌 교육봉사자에서 교육 불평등을 해결하는 사회적 혁신가(사회적 기업가)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글을 읽으면서 BELL의 운영방식을 야학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BELL의 교육시스템은 왠만한 사설학원 이상 수준이기 때문이다. 팰런은 스탠포드대학에서 개발한 실력테스트를 도입해 아이들의 수학과 읽기능력을 자체 평가하고, BELL수업 참가 후 학생들의 성적도 무척 까다롭게 따지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유료교사만도 700명이 넘는다. 일반학원과 다른 점은 학생들에게 돈을 받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물론 팰론이 학생들의 실력을 높이고자 애쓰는 데는 아이들의 성적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본 사업 이외의 목적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BELL을 지원하는 각종 재단이나 기업으로부터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다. 그들은 지원조건으로 활동성과를 중시하기에, 공부방을 열기 위해 필요한 돈을 얻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분명한 활동결과를 보여줘야 한다. 일반기업체와 다른 점이 있다면 활동결과가 수익이 아니라는 점뿐이다. 뭔가 했다는 것으로 만족하는 자원봉사나 정부의 지원활동과는 확연히 다른 ‘사회적 기업’의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BELL과 같은 기업, 즉 정부와 민간기업, 그리고 시민사회가 실패한 사회적 빈틈에서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는 기업형태를 ‘사회적 기업’이라 칭하고 이를 ‘제4섹터’라고 한다. 제3섹터(시민사회)가 제1섹터(공적관료체제)와 시민사회의 새로운 관계에서 시작되었다면 제4섹터는 영리와 비영리로 확연하게 갈라섰던 제2섹터(기업)와 제3섹터(시민사회)의 관계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1973년, 미국 사회학자 아미타이 에치오니가 기존의 공적관료제(제1섹터), 민간기업(제2섹터)과 더불어 시민사회(비영리단체)를 제3섹터로 규정한 이후 30년 남짓하여 나온 새로운 용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임원이었던 존 우드가 회사를 뛰쳐나와 만든 도서관인 ‘룸투리드’,

몇 백 달러짜리 보청기를 몇 십 달러에, 게다가 돈 없는 빈민층에게는 거저 주고 있는 인도의 ‘오로랩’,

가난한 사람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기계를 저가로 만들어 공급하는 마틴 피셔의 ‘머니메이커’,

돈 없는 사람에게도 돈을 대출해 주는 무하마드 유누스의 ‘그라민은행’,

정년퇴직자의 경험과 연륜을 활용하여 사업화를 돕고 노년의 새로운 삶을 지원하는 마크 프리드먼과 존 가드너의 ‘시빅 벤처스’,

회사의 이익금을 주주들에게 배당하지 않고, 대학생 직업교육이나 빈곤층 주택사업 등에 사용하는 ‘알트루세어 증권’ 등이 바로 제4섹터, 세계적으로 ‘사회적 기업’이라고 인정받은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첫째, 제도나 시민모임의 담론, 거액의 자선행위만으로는 성취하기 어려운 구체적인 사회문제를 찾아내 실제 피부에 와 닿는 사회적 유익을 늘림으로써 새로운 구조와 균형을 만들어내고자 한다는 점.

둘째, “정부나 기업, 기존의 시민단체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혁신성을 통해 같은 사회적 서비스라고 해도 정부보다 더욱 효율적이고, 민간기업보다 공익적이며, 시민단체보다 유연하게 서비스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

셋째, 이런 기업을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가는 기업가적인 자유로운 발상과 투철한 사회적 소명을 가지고 사회의 빈틈이 무엇인지,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현장에서 고민하고, 직접 그 곳에 뛰어들어 해결방법을 찾는다는 점이다.

즉 기존의 정부와 기업, 시민단체들이 해결하지 못한 사회적인 문제를 현 시장경제를 인정한다는 전제 하에 기업가 스스로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나이스’한 방법을 찾아내 시장에서 이를 직접 해결하는 것이다. 그저 고기를 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고 알아서 하라는 것도 아닌,  고기잡이 사업을 혁명적으로 바꿔 사회의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책상 앞에 앉아 정부나 기업의 문제점만 들쳐 내는 것, 무조건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만 높이는 것, 정부의 지원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이들 분야가 아니다.

‘사회적 기업’의 조건에 대해 ‘사회적 기업가’라는 단어를 만든 빌 드레이튼 아쇼카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사회적 기업가가 아니라, 사회적 기업가가 운영하는 조직이 바로 사회적 기업이다.” 그리고 빈민국에 도서관을 짓는 ‘룸투리드’의 존 우드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한다.

그리고 저자 역시 ‘사회적 기업’에 대해 드레이튼과 유사한 말을 하고 있다.

“건강한 제4섹터(사회적 기업과 같은)를 형성하기 위해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할 기본중의 기본은 사회적 기업가의 혁신성과 자발성이 사회적 기업의 알파이자 오메가라는 점이다. 따라서 사회적 기업의 육성은 사회적 기업가가 사회적 혁신의 열정과 창의성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옳은 수순이다.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기에 앞서 사회적 벤처가 자유롭게 생겨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진정한 사회적 기업이란, 영리냐 비영리냐의 수준을 떠나, 현존하는 사회문제를 얼마나 혁신적이고 열정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찾아내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업가의 존재여부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도 사회적 기업의 가치와 필요성을 인정하여 2007년 정부차원에서 ‘사회적 기업 육성법’과 사회적 기업 인증기준을 만들었다. 정부는 ‘사회적 기업’을 인증하고, 인증한 기업에 한해 인건비와 기타 경영컨설팅 등을 지원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불씨를 키워보겠다는 좋은 취지다.

그러나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는 정부가 항상 기억해 줬으면 하는 것은 사회적 기업에 대한 인증과 지원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기업을 이끄는 ‘사회적 기업가’에 대한 관심과 이들의 육성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사회적 기업’ 분야의 선진 국가들처럼 대학에서부터 ‘사회적 기업가’를 양성하는 시스템이 필요한 듯하다. 기존질서에 물들지 않았기에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그들에게 사회문제 분석능력(사회학)과 복지사회(사회복지학)에 대한 시각, 그리고 창업, 경영(경영학, 창업학 등)지식을 인지시킴으로써 사회문제해결을 위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개발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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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리지 리딩 - 100배의 이익을 창출하는 다독의 기술
혼다 나오유키 지음, 김선민 옮김 / 미들하우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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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직장인, 비즈니스맨, 학자 등 모두 다 좀 더 많은 것을 알아, 이를 효과적으로 써 먹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를 위해 수많은 자료들 뒤적이고, 책을 보고, 정리를 한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된 고민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지?’ ‘어떻게 하면 남보다 더 빠르게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지?’에 대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책을 정리하는 방법, 정보를 습득하는 방법, 하다못해 책을 빨리 보는(?) 방법인 속독에 대한 책까지 계속 출간되고, 독자에게 읽힌다. 아마 이런 종류의 책은 날이 갈수록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고, 그런 가운데에서 결국은 정보중독자 세상이 올 것 같다. 내가 너보다 더 많은 것을 빨리 보기 시합이다. 그리 좋은 세상은 아니지만 어쩌겠는가. 나 혼자 바꿀 수 있는 세상도 아닌 것을.

하지만 뭐든지 하고자 할 때는 내가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즉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많이 보느냐가 하니라, 내가 왜 빨리 많이 봐야 하는가의 목적이다. 마치 드릴을 사는 사람은 드릴 그 자체를 사는 것이 아니라, 구멍을 뚫기 위해 사는 것처럼 말이다. (드릴 파는 사람은 드릴이 아닌 구멍을 파는 사람이다.) 

어쨌든 이 책은 세 가지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하다.

첫째, 책을 빨리, 남들보다 많이 읽어야 하는데, (저자는 월 400권을 읽는다고 한다.) 그것은 속독이 아닌 레버리지 리딩법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책 전체를 빠른 속도로 읽는 것이 아니라, 책 내용 중에서 중요한 것만 골라 읽는 것을 말하며, 이를 위해서는 우선 내가 왜 책을 보는지, 그 책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분명히 알고 봐야한다고 한다. 그래야만 책 내용 중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빨리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 내용 전체를 보지 않고, 필요한 것만 골라 봐야하는지의 이유를 파레토의 80/20법칙에서 찾고 있다. 즉 전체 내용 중 정말 필요한 내용은 20%밖에 안 되기 때문에 허접한(?) 내용까지 볼 필요가 없고, 알맹이가 있는 20%만 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대부분의 책, 특히 경제, 경영 관련 책은 몇 마디의 핵심 내용을 정리한 후, 나머지 내용들은 모두 이를 증명하기 위한 근거자료이기 때문이다.

둘째, 책을 험하게 다뤄야 한다. 저자는 책을 무척 험하게 다룬다고 한다. 특히 그는 아침에 일어나 목욕을 하면서 책을 보기 때문에 책이 젖기도 하고 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개의치 않는다. 중요한 것은 책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정보이고, 그 정보를 머리 속에 다 정리하면 된다는 것이다. 장식품으로 쓰지 않을 바에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그가 책을 읽을 때 꼭 해야 한다는 것은 중요한 내용은 반드시 표시를 해라 다. 그것이 연필이든 볼펜이든 색깔있는 싸인펜이든 상관없이 나중에 다시 찾아보기 쉽게 표시를 하라. 그리고 다시 그 부분을 접어두라고 한다. 그러면 그 부분이 눈에 띄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메모를 하라고 한다. 책을 깨끗이 하겠다는 생각만 버리면 책의 여분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연습장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책을 보다 뭔가 생각이 났을 때는 그것을 구지 다른 곳에 쓸려고 하지 말고 그냥 책 여분에 정리하라고 한다. 그래야만 나중에 그 책을 다시 봤을 때 과거 자신이 생각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그 생각에 새로운 생각을 덧붙이기 편하다는 것이다.

셋째, 책을 읽고 나서 꼭 정리하라. 책을 보다보면 나중에 써 먹을 문구, 기억해야 할 말, 실천에 옮길 필요가 있는 내용들이 있다. 그 내용은 나중에 다시 보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반드시 정리해서 암기하거나 실천하도록 하라는 말이다. 저자는 책을 다시 본다는 말 자체가 생각은 쉬울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한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책들을 계속 봐야 하는 상황에서, 계속 앞으로 나가야 하는 직장인, 비즈니스맨 입장에서 신간을 보기도 바쁜 상황에서 예전에 봤던 책을 다시 볼 시간이 있겠느냐는 말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볼 때 중요한 내용은 반드시 정리해 놓고 그 책을 잊어버리라는 말이다.

독서는 무척 중요하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하여 검색 키워드 하나만으로 많은 정보를 손쉽게 찾을 수 있다손 치더라도 깊은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책을 봐야 하고, 게다가 책 한권에는 저자의 오랜 경험이 녹아있기 때문에 돈 만원으로 한 인간의 몇 년 더 나아가 몇 십 년의 삶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본인 생각으로, 책을 편하게 볼 수 있는 환경과 마음가짐인 것 같다. 더 빨리, 더 많이 보겠다는 생각 자체가 독서를 일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아무리 독서가 투자라고 해도 편한 마음으로 여유롭게 투자하는 것과 반드시 본전 뽑겠다고 이를 악물고 투자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와 닿을 것 같다. 나라면 좀 더 여유롭게 투자할 것 같다. 내가 이를 악물고 매달린다고 해서 본질적으로 손해 볼 것이 이익으로 변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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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젊음에게 - 우리가 가져야 할 일과 인생에 대한 마음가짐
구본형 지음 / 청림출판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딸이 첫 직장에 출근하는 모습을 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떨까? 나는 아직 아이가 직장 다닐 만큼 크지 않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 이해가 되는 것은 얼마 전 아이가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느낀 감정 때문이다.

며칠 전, 금년에 대학을 들어간 우리 아이가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후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일할 것라고 하면서 무척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새벽 4시까지.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복잡해 졌다. 경험삼아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좋지만 새벽 4시까지 일한다는 것이 과연 잘했다고 칭찬해야 할 일인지....잘못하면 다음 날 하루를 완전히 망가뜨릴 수도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아이 스스로가 선택할 일을 무조건 반대할 수만은 없지 않겠는가.

일주일에 단지 며칠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부모 입장에서는 이리 신경이 쓰이는데 자식이 직장생활을 시작할 경우에는 어떤 마음이 들까? 부모 자신의 직장경험에 달리지 않았을까 싶다. 자기 스스로가 활기찬 직장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무척 자랑스럽게 느끼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측은하게 느끼지 않을까. ‘저 놈도 이제 고생 시작이구나.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지 뭐.’ 하면서 말이다.

이 책 [세월이 젊음에게]는 딸이 직장에 첫 출근하는 것을 본 아버지가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한 책이다. 저자 말대로 딸을 앉혀놓고 말하면 잔소리이지만 이렇게 책으로 써 주면 그건 소중한 선물이 될 테니 말이다. (이 책을 보고 나도 내 아들에게 대학생활에 대한 책을 하나 써 주고 싶다는 강한 의욕이 생겼다) 저자는 20년 동안을 직장인으로 살아 온, 직장생활의 단 맛, 쓴 맛을 다 본 사람으로 어떤 직장인이 환영받는 직장인인지 충분히 알고 있는 사람이다. 게다가 직장생활 자체를 무척 활기차게 보낸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책 내용도 직장인에 대해 쓴 다른 책들과는 달리 무척 밝고 힘이 있다. 고통과 아픔보다는 희망과 기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조직 내 비리나 압력 같은 것보다는 건설적인 모습의 직장생활을 그리고 있다. 일반 직장인들이 봤을 때 기존의 책들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사실 그 동안 직장인 대상의 처세술 책을 보면서 거부감을 느낀 것은 대부분의 저자들이 직장을 마치 지옥처럼, 상대방을 잡아먹지 않으면 자신이 먹히는 곳처럼 묘사했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줘서 책을 팔겠다는 그런 느낌을 강하게 주는 책들이었다. 어떤 출판사에서 나에게 직장인의 모습을 좀 더 활기차게 그린 책을 써 줄 수 없겠냐는 주문이 들어올 정도였으니 그 동안 출판사들도 조금 너무하긴 했던 것 같다. (아마도 출판사가 나에게 그런 책을 써 달라고 주문했던 이유는 나 역시 20여 년 동안 직원 3명이 점심때는 직접 밥을 해 먹는 조그마한 자영업 회사에서 남들이 재벌기업이라고 하는 대기업까지 다양한 회사에서 근무해 봤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에는 더 급히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 사양했지만.)

책 내용 중에 가장 좋은 부분은 역시 앞부분으로, 일을 빛내는 기술과 원칙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약점을 강점으로 만드는 한 흑인의 예는 무척 마음에 와 닿았다. 남들이 볼 때, 아니 웬만한 사람이라면 기업에 원서를 내지도 못할 것 같은 사람이 자신의 약점을 기업이 원하는 직원 상에 맞춰 풀어가는 모습은 읽으면서도 ‘나는 왜 이렇게 못했지’하는 아쉬움이 생길 정도였다.

또 일에 끌려 다니지 말고, 일과 나 사이의 어울림을 찾아라 부분은 단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수준을 넘어 일을 풀어가는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 이에 맞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 좋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부분으로, 뭐든지 하라, 잘하는 것을 하라,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류의 책에서는 보기 힘든 조언이었다.

그들은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는 것인데, 실제 현실사회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상황이라 그런 것을 찾기도 어렵지만, 어떻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 있겠는가. 도리어 저자 말처럼 어떤 일이든지 간에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방식으로 일을 풀어나가라는 말이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사람, 또 직장생활을 좀 더 힘차게 보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기존 책처럼 직장을 두려움의 존재로 설명하지 않고도 직장생활의 의미와 바람직한 직장인의 모습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잘 표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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