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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 혁명 - 제4섹터, 사회적 기업가의 아름다운 반란
유병선 지음 / 부키 / 2007년 12월
평점 :
2006년. 서울 봉천동에 사는 준환(가명)은 처음으로 과외를 받았다. 그 동안 아버지가 택시운전으로 꾸려가는 가정형편 때문에 학원을 다니고 싶어도 다닐 수가 없었는데, 어느 날 서울대에 다니는 형이 찾아와 공짜로 과외를 해 준 것이다. 덕분에 준환이는 두어 달 만에 학교성적이 50등이나 올랐고 선생님한테 칭찬도 받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일주일에 두 번씩 수학도 가르쳐주고 피자도 사주던 형이 오지 않았다. 소득 격차로 인한 교육 양극화 해소를 위해 교육인적자원부, 관악구청, 서울대가 함께 서울대생에게 과외비를 주며 중학생 1000명을 가르치던 ‘방과 후 달동네 과외활동’이 예산부족으로 시행 1년 만에 중단됐기 때문이다. 과외비를 안 주니 준환이 같은 아이들에게 과외를 해 주던 학생들이 과외수업활동을 그만둔 것이다.
미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1992년. 미국 보스턴의 도심 빈민가 초등학교에 무손이라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부모를 따라 아이티에서 갓 이민 온 무손은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교실 한 구석을 지킬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들은 가난한 무손같은 학생들을 스칼라(학자, 장학생의 의미)라고 부르며 간식도 사주고 모르는 것을 몇 번을 물어도 상냥하게 공부를 봐 줬다. 읽기와 수학풀이는 당연하고,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동기와 희망을 불어넣어주었다. 그 때부터 무손은 달라졌다. 학교성적도 올랐고, 더 이상 교실 구석에 처박힌 아이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믿음이 생겼다.
그 후 무손은 열심히 공부하여 전액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에 진학했고, 현재 의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 무손은 학교를 졸업한 후 조국 아이티로 돌아가 그 동안 대학생 언니, 오빠들에게 받은 도움을 자기 고향의 아이들을 통해 갚겠다고 한다. 1992년 보스턴의 한 빈민가에서 무손과 같은 19명의 아이들을 모아 놓고 시작한 ‘빈민촌 과외’는 현재 볼티모어, 뉴욕, 워싱톤 DC 등으로 확대되어 1만여 명의 아이들에게 꿈을 키워주고 있다.
서울과 보스톤에서 시작한 빈민촌 과외. 서울의 ‘달동네 과외’는 1년 만에 중단되었지만, 보스톤의 ‘빈민촌 과외’는 15년 동안 1만여 명의 아이들을 돌봐 주었고, 지금 이 순간도 계속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두 이야기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찌 보면 개인이 시작한 보스톤의 과외보다 정부기관과 국내 최고 대학이 힘을 합쳐 시작한 우리의 달동네 과외가 더욱 잘 되었어야 할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차이가 생기는 이유를 ‘사회적 혁신가’가 이끄는 ‘사회적 기업’의 존재유무에서 찾고 있다. 너무 단편적인 결론인가?
얼 마틴 팰런. 그는 도심의 빈민가 초등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삶의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BELL(Building Educated Leaders for Life)을 설립한 사람으로, 흑인인 팰런 역시 어린 시절을 고생하며 자랐다. 그는 하버드 로스쿨에 다니면서 우연히 보스톤 빈민가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그 때 글을 읽지 못하는 가난한 아이들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당시 그는 다른 아이들보다 읽기와 산수능력이 몇 년이나 뒤진 아이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지 깨달았다.
그는 가난하면 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고, 현 사회가 실력이 없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학력경쟁사회라면, 그저 현실을 비판하거나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해주기보다 직접적으로 아이들의 학력을 높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행복이 성적순은 아니지만, 성적이 낮으면 희망도 작아지는 현실을 직시하고, 피할 수 없으면 맞서서 즐기자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멘토링 방식에 방과 후 과외를 더한 새로운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평범한 법대생이 빈민촌 교육봉사자에서 교육 불평등을 해결하는 사회적 혁신가(사회적 기업가)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글을 읽으면서 BELL의 운영방식을 야학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BELL의 교육시스템은 왠만한 사설학원 이상 수준이기 때문이다. 팰런은 스탠포드대학에서 개발한 실력테스트를 도입해 아이들의 수학과 읽기능력을 자체 평가하고, BELL수업 참가 후 학생들의 성적도 무척 까다롭게 따지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유료교사만도 700명이 넘는다. 일반학원과 다른 점은 학생들에게 돈을 받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물론 팰론이 학생들의 실력을 높이고자 애쓰는 데는 아이들의 성적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본 사업 이외의 목적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BELL을 지원하는 각종 재단이나 기업으로부터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다. 그들은 지원조건으로 활동성과를 중시하기에, 공부방을 열기 위해 필요한 돈을 얻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분명한 활동결과를 보여줘야 한다. 일반기업체와 다른 점이 있다면 활동결과가 수익이 아니라는 점뿐이다. 뭔가 했다는 것으로 만족하는 자원봉사나 정부의 지원활동과는 확연히 다른 ‘사회적 기업’의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BELL과 같은 기업, 즉 정부와 민간기업, 그리고 시민사회가 실패한 사회적 빈틈에서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는 기업형태를 ‘사회적 기업’이라 칭하고 이를 ‘제4섹터’라고 한다. 제3섹터(시민사회)가 제1섹터(공적관료체제)와 시민사회의 새로운 관계에서 시작되었다면 제4섹터는 영리와 비영리로 확연하게 갈라섰던 제2섹터(기업)와 제3섹터(시민사회)의 관계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1973년, 미국 사회학자 아미타이 에치오니가 기존의 공적관료제(제1섹터), 민간기업(제2섹터)과 더불어 시민사회(비영리단체)를 제3섹터로 규정한 이후 30년 남짓하여 나온 새로운 용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임원이었던 존 우드가 회사를 뛰쳐나와 만든 도서관인 ‘룸투리드’,
몇 백 달러짜리 보청기를 몇 십 달러에, 게다가 돈 없는 빈민층에게는 거저 주고 있는 인도의 ‘오로랩’,
가난한 사람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기계를 저가로 만들어 공급하는 마틴 피셔의 ‘머니메이커’,
돈 없는 사람에게도 돈을 대출해 주는 무하마드 유누스의 ‘그라민은행’,
정년퇴직자의 경험과 연륜을 활용하여 사업화를 돕고 노년의 새로운 삶을 지원하는 마크 프리드먼과 존 가드너의 ‘시빅 벤처스’,
회사의 이익금을 주주들에게 배당하지 않고, 대학생 직업교육이나 빈곤층 주택사업 등에 사용하는 ‘알트루세어 증권’ 등이 바로 제4섹터, 세계적으로 ‘사회적 기업’이라고 인정받은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첫째, 제도나 시민모임의 담론, 거액의 자선행위만으로는 성취하기 어려운 구체적인 사회문제를 찾아내 실제 피부에 와 닿는 사회적 유익을 늘림으로써 새로운 구조와 균형을 만들어내고자 한다는 점.
둘째, “정부나 기업, 기존의 시민단체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혁신성을 통해 같은 사회적 서비스라고 해도 정부보다 더욱 효율적이고, 민간기업보다 공익적이며, 시민단체보다 유연하게 서비스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
셋째, 이런 기업을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가는 기업가적인 자유로운 발상과 투철한 사회적 소명을 가지고 사회의 빈틈이 무엇인지,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현장에서 고민하고, 직접 그 곳에 뛰어들어 해결방법을 찾는다는 점이다.
즉 기존의 정부와 기업, 시민단체들이 해결하지 못한 사회적인 문제를 현 시장경제를 인정한다는 전제 하에 기업가 스스로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나이스’한 방법을 찾아내 시장에서 이를 직접 해결하는 것이다. 그저 고기를 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고 알아서 하라는 것도 아닌, 고기잡이 사업을 혁명적으로 바꿔 사회의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책상 앞에 앉아 정부나 기업의 문제점만 들쳐 내는 것, 무조건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만 높이는 것, 정부의 지원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이들 분야가 아니다.
‘사회적 기업’의 조건에 대해 ‘사회적 기업가’라는 단어를 만든 빌 드레이튼 아쇼카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사회적 기업가가 아니라, 사회적 기업가가 운영하는 조직이 바로 사회적 기업이다.” 그리고 빈민국에 도서관을 짓는 ‘룸투리드’의 존 우드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한다.
그리고 저자 역시 ‘사회적 기업’에 대해 드레이튼과 유사한 말을 하고 있다.
“건강한 제4섹터(사회적 기업과 같은)를 형성하기 위해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할 기본중의 기본은 사회적 기업가의 혁신성과 자발성이 사회적 기업의 알파이자 오메가라는 점이다. 따라서 사회적 기업의 육성은 사회적 기업가가 사회적 혁신의 열정과 창의성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옳은 수순이다.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기에 앞서 사회적 벤처가 자유롭게 생겨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진정한 사회적 기업이란, 영리냐 비영리냐의 수준을 떠나, 현존하는 사회문제를 얼마나 혁신적이고 열정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찾아내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업가의 존재여부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도 사회적 기업의 가치와 필요성을 인정하여 2007년 정부차원에서 ‘사회적 기업 육성법’과 사회적 기업 인증기준을 만들었다. 정부는 ‘사회적 기업’을 인증하고, 인증한 기업에 한해 인건비와 기타 경영컨설팅 등을 지원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불씨를 키워보겠다는 좋은 취지다.
그러나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는 정부가 항상 기억해 줬으면 하는 것은 사회적 기업에 대한 인증과 지원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기업을 이끄는 ‘사회적 기업가’에 대한 관심과 이들의 육성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사회적 기업’ 분야의 선진 국가들처럼 대학에서부터 ‘사회적 기업가’를 양성하는 시스템이 필요한 듯하다. 기존질서에 물들지 않았기에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그들에게 사회문제 분석능력(사회학)과 복지사회(사회복지학)에 대한 시각, 그리고 창업, 경영(경영학, 창업학 등)지식을 인지시킴으로써 사회문제해결을 위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개발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