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강의
랜디 포시.제프리 재슬로 지음, 심은우 옮김 / 살림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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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언제 죽을지 안다는 것이 과연 행운일까 아니면 불행일까? 머리로는 알면서도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불행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죽음을 이해한 사람에게는 행운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긴 세월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삶을 정리할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죽는 날을 알게 되어 괴롭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삶이 마무리할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자신의 죽음도 문제지만, 아버지를 잃어버릴 세 명의 아이들 걱정이다. 남들과 달리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할 수 없는 아이들이 불쌍하고, 세상에 남을 이들에게 아버지 역할을 누가 해 줄 것인지, 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걱정을 강의로써 해결하려고 했다. 자신이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개인적으로 녹음을 하거나 집에서 비디오를 통해 녹화하는 것도 좋지만, 다른 사람들이 듣고 있는, 그리고 그들도 인정하는 말을 공개석상에서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죽음을 직면한 사람이 썼다고 보기에는 내용이 발랄하고 재미있다. 사람들은 이 책을 읽다보면 ‘이 사람이 정말 곧 죽을 사람 맞아?“ 하고 의심할 정도다. 저자의 삶을 되돌아보며 자랑스럽고 추억에 남은 내용들을 골라 평소 강의하듯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고통 속에서 헤매다가 죽었다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세상을 살아오면서 배운 지혜들을 평소 생각한대로 가식없이 이야기한다. 절대적인 진리라기보다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부모에게 배웠고 자신이 옳다고 믿은 삶의 방식을 아이들이 저자의 앞에서 강의를 듣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역시 죽음을 앞에 둔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의 글 중간 중간에서 죽음을 직면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고통의 단면을 보게 된다. 세상을 더 오래 살지 못하고 죽어야한다는 것에 대한 괴로움,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곳에 놔둔 채 자기 혼자 떠나야한다는 것에 대한 슬픔이다. 그는 평소 자신의 죽음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말하지만 가끔 그것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그 때는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운다고 고백한다. 특히 혼자 샤워할 때 그런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는 그 동안 죽음에 대한 책을 여러 권 봤는데 그런 류의 책을 읽을 때마다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내용이 몇 개 있다. 첫째는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지마라. 그런 걱정은 그 때가서 해서 늦지 않기에 지금 이 순간을 즐겁게 맞이하라. 둘째,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라. 남을 속이거나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하지 말고 항상 솔직하게 말하고 대하라. 셋째. 자신 앞에 놓인, 자신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항상 감사하라. 그것은 삶이 주는 축복이고 나름대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불평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거기서 무엇인가를 얻으려 하라. 넷째. 뭔가 문제가 있거나 장애물이 있으면 고민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풀어라. 안된다고 가만히 앉아 걱정하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것이 해결가능성이 높다.

이 책에도 이와 같은 내용들이 어김없이 나온다. 물론 자신이 살아온 삶을 아이들에게 전하겠다는 마음으로 한 말이니까 심오한 문장이나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결론은 앞서 저자와 같은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 한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마도 이게 삶의 본질인가 보다.

내가 만일 저자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죽음과 함께 살아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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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어 - 하버드대 행복학 강의
탈 벤 샤하르 지음, 노혜숙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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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무척 친숙한 단어이면서 동시에 낮선 단어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사나요?’라고 질문했을 때 ‘나는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라고 한 번에 대답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언젠가 수업시간에 학생(대학원생들)들에게 “선생님은 무엇을 위해 사시나요?”라고 질문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그 분들이 답변한 말은 “먹고 살기 위해” “자식 공부시키기 위해” “남보다 더 살려고” “돈 많이 벌려고” “편안하게 살려고”이고 조금 심한 경우에는 “죽지 못해 산다”는 분도 있었다. 물론 간혹 가다 “세상에 무언가 남기고 싶다” 거나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기 위해”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당시 내가 원했던 답은 ‘행복하기 위해서’란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답을 끌어낼 때까지 최소한 3번에서 5번 정도는 질문했던 것 같다. 질문했던 방식은 이런 식이었다.

질문1 “선생님은 왜 무엇을 위해 사시나요?”

답변1 “자식 공부시키려고”

질문2 “왜 자식 공부에 그토록 관심을 가지시나요?”

답변2 “자식은 나보다 낫게 살아야 하니까.”

질문3 “선생님보다 낫게 산다는 게 뭔가요?”

답변3 “남들 앞에서 큰 소리치고 사는 거지.”

질문4 “그렇게 살면 뭐가 좋은가요?”

답변4 “그럼 세상을 편하게 살잖아.”

질문5 “편하게 살면 뭐가 좋은 가요?”

답변5 “한번 태어난 세상인데 남부럽지 않게 ‘행복’하게 살아야지.”

답변을 봐도 알겠지만 우리는 분명히 행복한 삶을 원한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카페인음료를 물처럼 마시며 밤새 일하는 것도,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 내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도 참는 것도 모두 행복한 삶을 위해서다.

그러나 막상 ‘왜 사는냐’ 고 물어보면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단번에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너무나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산 넘어의 꿈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다른 사람 이야기는 제쳐두고 내 이야기를 해 보자.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누군가 나에게 행복감을 평가하라면 아마도 5점 만점에 3.7~3.8정도에 체크할 것 같다. 특별히 불행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행복한 것도 아닌, 하루하루 생활 속에서 불행보다는 행복하다는 느낌을 좀 더 갖는 상태다.

‘행복’을 생각할 때면 가끔 느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정말 내 마음이 평화롭고 행복하다고 해도 이런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기가 거북하다는 것이다. 남에게는 물론이고 내 자신에게도 그렇다. 아마도 지금 행복하면 다음에는 불행이 찾아오고, 복잡한 세상에서 나 혼자 행복하다는 것이 남의 어려움을 외면한 이기주의자이고, 또 어떤 때는 내가 행복하면 누군가 불행한 사람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고, 어떤 때는 더 큰 두려움을 야기 시킬 수도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이 책의 저자는 사람들이 가진 것 중에서 바꾸기 어려운 의식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세상의 모든 것은 제한되어 있어 모든 사람이 다 가질 수는 없다는 선입감이라고 한다. 돈, 권력, 땅, 식량, 에너지 등등이다(엄밀히 따지면 지구상의 모든 자원은 모든 인류가 충분히 쓰고도 남을 양지만). 그러다보니 누군가 하나를 가지면 또 다른 누군가는 못 갖기 마련이고, 이런 상황이 행복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행복’이란 인간의 내적인 문제이기에 누가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내가 행복하다고 해서 남의 불행해 지는 것도 아니다. 남의 것을 빼앗을 수도 없고(물론 순간의 만족을 위해 남의 행복을 짓밟는 사람도 있기 하지만), 몇 그루 안 되는 행복나무에서 남보다 내가 먼저 따가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내가 행복해야 남에게도 행복을 줄 수 있지 않겠는가. 행복은 내면의 것이기에 내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키우고, 가꾸고, 확대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행복한 사람이 많지 않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젊은이들은 우울증 환자로 변하고 있고, 길거리에는 무엇인가를 찾아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만이 즐비하다. 하나같이, 나를 포함해서, 오늘의 고통이 내일의 행복을 보장한다고 믿으며 살고 있다. 

저자는 ‘행복한 사람’을 설명하기 위해 ‘현재의 즐거움’과 ‘미래의 즐거움’이라는 두 개의 축을 기준으로 네 가지 타입의 인간 모습을 설명한다. 저자는 이를 ‘햄버거 이론’이라 하면서, 사람 유형을 쾌락주의자, 성취주의자, 허무주의자, 행복주의자로 나눈다.

[쾌락주의자]는 현재의 이익을 위해 미래의 손실을 선택하는 사람으로, 순간적으로 입에는 달지만 몸에 안 좋은 햄버거를 먹는 사람을 말하고, [성취주의자]는 미래의 이익을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즉 건강에는 좋지만 당장은 맛이 없는 햄버거를 먹는 사람이며, [허무주의자]는 맛도 없고 건강에도 안 좋은 햄버거를 먹는 사람으로,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한 채 지금 이 순간도 즐기지 못하면서 미래에 대한 목적의식도 없는 사람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행복주의자]는 현재와 미래의 이익을 모두 보장해 주는 맛도 있고, 건강에도 좋은 햄버거를 먹는 사람이다.

물론 저자는 사람들이 위의 네 가지 유형으로 정확히 구분된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누구나 네 가지 성향을 다 갖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두드러진 성격이 있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든 만약 행복을 원한다면 그는 “‘지금 행복할 것인가? 아니면 미래에 행복할 것인가?’라고 묻지 말고, ‘어떻게 하면 지금과 미래 모두 행복해 질 수 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행복한 사람]이란 현재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활동이 곧 자신을 성공적인 미래로 안내한다는 믿음을 갖고 생활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현재와 미래의 즐거움을 동시에 얻을 수 있을까? 저자는 언뜻 들기에는 불가능해 보일지 몰라도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고 한다. 예를 들면 배움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는 즐거움에서 현재의 이익을 얻고 그러한 아이디어를 경력을 위해 활용하면서 미래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특히 [몰입]과 관련된 책을 보면 이런 예가 무수히 많다.

그러나 저자는 행복을 “즐거움과 의미의 포괄적인 경험”이라고 정의하면서 단순히 즐거움만 추구하는 것을 경계한다. 이는 행복의 중요한 요소인 삶에 대한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현재의 이익인 즐거움과 미래의 이익인 의미를 담고 있는 무엇인가를  행할 때 진정한 행복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지금 내 앞에 놓인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또 그것을 통해 얻는 것을 미래에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다. 

저자는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무언가를 찾는 방법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첫 번째는 다음과 같이 자신에게 물어본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이 중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이 중에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또 한 번 질문한다. 이 중에서 ’내가 정말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라고. 그리고 이와 같은 네 번의 질문을 통해 얻어진 결론을 갖고 삶의 목적과 목표를 만들고 이에 대한 계획을 짠다.

물론 저자도 인간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런 상황일지라도 자신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일을 조금씩 늘려갈 수 있지는 않느냐고 반문한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버리고 ‘내가 정말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조금씩이라도 하면서 과정 자체를 즐기라는 말이다.

두 번째는 ‘무엇이 나에게 의미를 주는가?’ ‘무엇이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가?’ 그리고 ‘나에게 어떤 장점이 있는가?’라는 세 가지 질문을 통해 나온 답들 간의 공통점을 찾는다.

예를 들어 나에게 ‘의미 있는 활동’은 글쓰기, 문제해결, 아들과 노는 것이고,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독서하고 글 쓰고 여행하는 것이며, ‘내 장점이자 재능’은 자료를 수집하고, 계획을 세우고, 항상 뭔가를 최상으로 만들고자 하는 열정이라면 이들 세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을 찾으면 된다.

자료수집하고 계획세우기가 장점인 사람이 글 쓰고 문제 해결하는 것과 아이들과 놀이에서 참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게다가 독서하고 글 쓰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무슨 일을 하면 현재의 즐거움과 미래의 이익을 얻으면서 목적지를 향한 하루하루의 삶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바로 행복의 열쇠를 찾아내는 것이다.

심리학자 나다니엘 블랜든 행복과 즐거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인간에게 즐거움은 사치가 아니라 절실한 심리적 욕구다.” 따라서 우리는 당연히 즐거움을 추구해야 하며, 또 추구할 권리를 갖고 있다.

나는 어떤 일이든지 그것이 나에게 ‘현재의 즐거움과 미래 삶에 대한 의미’를 줄 수 있다면  그 일을 연료로 삼아 기꺼이 남은 삶을 불태울 것이다. 스티브 도나휴가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에서 말한 것처럼 산등성이를 정복하는 등반대의 삶이 아닌, 행복이라는 북극성을 향해 가는 순례자(목표지보다 가는 과정을 음미하는 사람)처럼 오늘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의미를 찾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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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40년을 준비하는 40대 인생경영 - 마흔세 살 김부장의 새로운 직업 찾기
김병숙 지음 / 미래의창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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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서 40대 중반의 남성은 두 가지의 모습을 가진다. 하나는 기업에서 꼭 필요한 인재(?)라고 평가받아 기업경영의 중추로써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모습이다. 부하직원과 최고 경영자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하고 실전에서 싸우는 현장사령관이다.

또 하나는 크게 튀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게 실수한 것도 없는 직장인들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제 2의 삶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니다. 두 개의 모습 중 어떤 것이 더 좋은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는 후자를 위기상황이라고 보는 듯하다.

예전 같으면 나이 60을 인생 황혼기로 보고 40중반이면 서서히 일에서 손을 떼고 삶을 정리할 나이였지만, 요즘 40대는 젊은이와 거의 진배없다. 밤새워 일할 때도, 술자리에 앉아 버티는 시간도, 하다못해 회사에서 체육대회를 해도 2030대의 사원들에게 거의 밀리지 않는다. 거짓말 같으면 농구 같은 거친 운동 말고 족구나 탁구 같이 조금 소프트한 경기를 봐라. 요즘같이 할량한 군대말고 빽  게 군대 생활한 40대들이 더 팔팔 난다. 나이만 더 먹었을 뿐이고, 머리색만 조금 희끗할 뿐이지 마음만은 아직도 청춘이다.

그러나 세상은 이들을 젊음이라 인정하지 않는다. 이제 대학을 나와 뭔가 해보겠다는 열정에 불타는 젊은이들과 비교하여 활동력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봉급만 가져가는 방해물처럼 생각한다. 어쨌든 책 서평을 쓰면서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40대는 무척 우울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 <40대 인생경영>은 내용이 무척 알차다. 40대가 앞으로 자신의 길을 어떤 방법으로 개척해야 하는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점을 따져보고, 어디에 가서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매우 꼼꼼하게 정리해 놨다.

40대에 대한 저자의 애정은 책 내용만 봐도 대충 알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크게 4부로 나누어 1부에서는 나이 40이면 자신이, 그리고 주변에서 40대를 어떻게 바라보며, 평가하는지 상세히 써 놨다. 이 책을 읽다보면 40대라면 누구든지 자신의 어려움이 혼자만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2부는 40대가 해야 할 일, 그리고 조심할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리해 놨다. 특정 인물을 묘사한 것 같지만 그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40대 표준형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3부는 나이를 넘어선 자기계발방향을 크게 네다섯 가지로 나눠 이야기한다. 개인브랜드, 자신에게 적합한 직업 찾기, 변화를 위한 준비작업(가족들에게 알리고 함께 하는 것을 포함해서), 그리고 커리어 맵 만들기까지 상세히 이야기해 준다.

마지막 4부는 40대가 기억해야 할 조언들이다. 2030과는 다른 40대만의 모습을 만들라는 메시지다.

다만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조금 시기적으로 늦은 감이 있는 것 같다. 예전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40대를 대상으로 한 책들이 무척 많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당시 40대를 대상으로 히트 친 저자들이 지금 국내 자기계발분야를 이끌고 있다. 공병호, 한근태, 구본형, 권영설, 전경일 등이다. 물론 이들 중 몇 몇은 40대들에게 직장을 박차고 나와 독립하라고 외치면서 자신은 다시 직장 생활하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제 자기계발과 변화의 핵심연령층은 40대가 아닌 30대로 이동한 것 같다. 40대는 이미 자신의 처지를 몸소 체험하며 루비콘강을 건넜다. 물론 아직도 일정 수가 남아 구조조정을 기다리고 있기는 하나, 이들은 이 책에 나와 있는, 뭐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언뜻 느끼기에 교과서 같은 정설적인 내용엔 별 관심 없을 것 같다. 세상이 변해 이제는 어떤 규칙적인 행동보다는 각자가 알아서 각개 전투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책에 들어있는 내용들을 대상으로 조금 바꿔 30대용으로 다시 만들면 훨씬 값진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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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을 감수하라 - 최상의 선택을 위한 모험의 기술
벤 카슨 지음, 정미나 옮김 / 해피니언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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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버는 감성>의 저자인 시마 노부히코에 따르면 20세기 중반의 남성들은 대량 생산을 추구하는 기업에 입사해서 국민에게 싸고, 품질 좋은 가전제품이나 자동차를 제공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되는 잔업에도 굴하지 않고 땀과 눈물과 근성으로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당시의 아내들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가사노동과 자녀교육을 비롯해 부모님을 봉양하는데 시간을 쏟았으며 물질적으로 더욱 풍족한 삶을 위해 저축에 힘썼다. 이 시기의 여행은 휴실을 위한 여행이든 연회나 골프요행이든지 간에 남성 중심이었기 때문에 벳푸 등의 인근에 있는 연회 형 대형호텔, 대규모의 관광 온천호텔이 유행했고, 매출액이 큰 대기업이나 많은 수익을 남기는 우수기업이 인기기업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남성에 여성, 노년이 가세하여 시장을 이끌어가기 시작하더니 과거 땀과 눈물, 근면, 저축, 대기업 일변도, 입신출세 등을 추구하던 가치관은 ‘치유’ ‘은유자적’ ‘느긋함‘ ’편안함‘ ’여유‘ 등 웰빙을 추구하는 것으로 변화했고, 직업이나 라이프스타일도 안정보다는 흥분되고 즐거우며 창조적인 삶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시마 노부히코는 이와 같은 일본의 변화와 함께 삶의 키워드도 변했는데, 현 일본사회의 키워드는 ‘안전, 안심’ ‘청결’ ‘건강’ ‘살기 편한 커뮤니티’ ‘간호, 의료’ ‘교육’ ‘자연환경’ ‘문화, 전통, 역사’ ‘엔터테인먼트’ ‘즐거운 식사‘ ’친구, 가족‘이라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안전‘과 ’즐거움‘ ’커뮤니티‘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고령화를 치닫고 있는 우리나라도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는 어디를 봐도 ‘안전’이란 개념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하다못해 음식점, 그것도 패스트푸드점에서 음식의 칼로리를 공개하기 시작했고, 원산지 표시가 안 된 식품은 팔수도 없는 세상이 되었다. 개인의 재산과 외부 침입으로 보호하는 산업은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성장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위험을 무릎 쓰라’고 외치면 과연 사람들이 관심 있게 쳐다봐 줄까? 그러나 나도 당신도 인정하는 한 가지 사실은 남보다 나아지려면,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떨치려면 위험을 감수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책 <위험을 감수하라>는 바로 사회통념과는 달리 자신 앞에 놓인 위험을 감수함으로써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신경외과 의사의 이야기이다. 그는 존스홉킨스 대학병원에서 신경외과, 성형외과, 종양학과, 소아과 교수이자 소아신경외과 과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그의 위험에 대한 태도는 세계최초 샴쌍둥이 분리수술 성공이라는 명성을 얻은 사람이다. 현재 의사라는 직업 외에도 켈로그, 코스트코, 아메리칸즈 프라미스 등의 대기업 이사이며, 예일대학고 이사회의 명예의원이다.

이 책 표지에 이런 말이 있다. “우리는 휴가를 떠나면서 여행자 보험에 들고 새 차를 사면서 안전검사를 한다. 돈을 더 지불하면서까지 가전제품의 보증기간을 연장하기도 한다. 우리의 안전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삶의 위험들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킴으로써 잠재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보석 같은 기회를 놓쳐버리게 만든다.”

어쩌면 우리의 현 상황을 비꼬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얼마 전부터 건강을 위해 별도의 보험가입을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고, 동일한 기능의 노트북이 타사제품보다 무료 40~50만원이나 비싼데도 불구하고 삼성노트북을 고민하니 말이다. 전자제품을 아는 사람들은 이런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바라본다. 그까짓 A/S 때문에 본 제품 값의 50%나 더 줄 필요가 있냐고 하면서 말이다.

왜 그럴까? 내가 태어난 1950년대 말, 한창 공부하던 1970년대, 사회생활을 시작한 1980년대에 비해 더 풍요롭게, 편하고, 안전한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세상에 대한 불안감은 나날이 커져간다.

이런 상황에 대해 가빈 드 베커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수년 전에 비해 두려워 할 것들이 더 많아졌다. 위성 시대에 사는 오늘날의 우리는 자신의 재난만을 겪지 않고 모든 이들의 재난을 겪고 있다. 그러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 

결국 아는 게 병이고, 모르는 게 약이란 말이다. 예전에는 이보다 더한 일도 별 것 아닌 것같이 지냈건만 이제는 세계 구석진 곳에서 발병한 조금한 질병하나도 마치 전 세계로 확산될 것 같이 보이게 되었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보편적인 오해의 늪에 빠져서 드물고 의례적인 위험에 대해서는 실제보다 과대평가하여 지나친 걱정을 하는가 하면 발생확률이 더 높으며 뭔가 실제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수많은 일상적 위험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와 인터뷰 한 방송국 기자가 저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과학실에서 살아있는 동물들을 만지고 보면서 의사의 꿈을 키웠다고 했다. 방송국은 그의 말을 듣고 학교를 찾아갔으나 과학실에 있던 동물들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담당교사는 살아있는 동물들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위험이 있기 때문에 없앴다고 대답했다.

나는 저자의 표정을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당시 저자의 심정이 위에 말한 말 같았으리라.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 유감스러운 결정을 내린 학교 당국은 계속해서 학생들이 과학실에서 살아있는 동물을 관찰하고 키우도록 할 경우, 예상되는 최악의 상황은 무엇인가>라는 단 하나의 위험분석 질문만을 염두에 두었을 터였다. 물론 그 답은 학생이 다쳐서 가족들이 학교를 고소하게 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학생들이 과학실에서 살아 있는 동물들을 관찰하고 키우도록 할 경우, 예상되는 최선의 상황은 무엇일까?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이다. 그랬다면 과학 수업이 더 흥미로워져 학생들이 생물학에 관심을 갖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저자는 예전에 플로리다의 잇따른 살인사건을 이야기한다. 매스컴에서 22건의 살인사건을 며칠 동안 다루었는데 그 바람에 매년 관광오던 4,000만 명의 관광객들이 대부분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4,000만 명 중의 22명, 밖에 나오지 않고 집에 가만히 있는 사람이 살해될 숫자보다 작은 수라고 한다. 재미있지 않은가? 이야기하자면 이런 식의 통계자료는 무수히 많지만, 수익성 때문에 기사를 선정하는 언론사의 태도도 한 번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쨌든 이 책의 저자인 벤 카슨은 세계에서 남들이 하기 꺼리는 어려운 수술을 성공적으로 해 냄으로써 명성을 얻었다. 그는 항상 남들이 거부하는, 실패확률이 무척 높은 수술을 하면서 4가지 사항을 고민했다고 한다. 즉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한 저자 나름대로의 판단기준이다.

이것을 하면 최선의 상황은 뭐가 될까?

이것을 하면 최악의 상황은 뭐가 될까?

이것을 하지 않으면 최선의 상황은 뭐가 될까?

이것을 하지 않으면 최악의 상황은 뭐가 될까?

언뜻 보기에는 무척 단순한 질문인 것 같지만 이 질문에만 정확하게 답변할 수 있어도 무척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판단의 결과가 항상 바란 대로 나타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바란 결과가 아니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혼자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이와 비슷한 질문에 답을 찾으면서 결론은 내린 것 같고, 그 후 내가 원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해도 그리 후회하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당시 결론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이었기 때문이다.

한 예가 바로 몇 년 전 회사를 퇴사할 때까지의 고민이었고, 당시 내 자신에게 물어봤던 질문이 벤 카슨이 사용하는 질문이었다. 물론 똑 같지는 않지만. 그리고 지금 퇴사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직장인 시절보다 직업의 안정성이나 경제적인 문제가 안 좋다 해도 내가 내린 결정이 당시 상황에서는 최선의 결정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위험이란 하나의 기회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친구, 조지 루카스 같은 사람과 이야기해보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누군가 어떤 분야에서 얼마나 성공할지는 그 분야에서 제기되는 위험들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다. 잠시 역사에 크나큰 영향력을 미쳤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보라. 그들의 행동이 어떠했고, 그들의 특징적인 성격이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라. 아마도 그들은 특별하게 만든 것은 애체로 위험과 연관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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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 - 사장이라면 죽어도 잃지 말아야 할 첫 마음
홍의숙 지음 / 다산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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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무엇을 하든지 간에 항상 원대한 꿈을 갖고 시작한다. 그리고 그 꿈에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행복한 삶을 살겠다는 마음이 들어있다.

그러나 막상 일, 사업을 시작하면 그 마음은 서서히 변한다. 좀 더 빨리, 낫게, 많이,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인해 욕심이 생기고, 처음 가졌던 아름다운 꿈은 서서히 무너진다. 문제는 그런 상황을 본인 자신은 잘 모른다는 것이다. 세상이 어려우니, 또 뭔가 남다른 것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자신을 변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제가 발생하면 어쩔 수 없이 이유를 찾는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하고 말이다. 그리고 문제의 핵심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초심을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경영자들에게 ‘초심’을 한번 되돌아 볼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내가 이 사업을 왜 하기로 했는지, 사업 초기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지금 내가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깨닫게 만든다. ‘초심’이라는 저술 컨셉트의 힘이다.

이 책의 주인공 역시 외부에서 투자가 들어오고 사업이 확장될 때는 별 문제없이 사업을 이끌었다. 그러나 중국 공장에 문제가 생기고, 자신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던 사람들이 회사를 떠나기 시작하자 그 때 비로소 무엇이 문제인지 자신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바로 ‘초심’을 잃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람을 믿기 좋아해 한 사람에게 일을 맡겼던 중국 공장문제. 결국 그는 사기를 당했고 공장건물은 물론이고, 그 안에 있는 기계까지 모두 빼앗기게 될 상황에 이르렀다. 그리고 자신과 사업을 함께 시작한 임원과 핵심간부가 회사를 떠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행동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처음 그들과 함께 할 때의 서로에 대한 예의와 존중감을 상실한 자신의 모습이다.

그러나 주인공에게도 자신의 능력을 평가해 보고 싶다는 강한 의욕이 넘치던 시절이 있었다. 남들이 기피하던 지역을 맡아 그곳에서 광고영업을 하겠다고 뛰쳐나가던 시절, 새로 산지 한 달밖에 안된 구두가 몇 년을 신은 것처럼 뒷 굽이 달아버렸던 당시의 열정. 그는 이런 모습을 기억하며 사업과 자신의 마음을 수습한다. 초심으로 돌아가 사업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이다.

이 책에 나온 내용 중 직원들이 자신의 사장에게 한 말은 경영자라면 한번 되새겨볼만하다. 직원들은 사장의 생각과는 달리 경영진의 행동을 색안경을 끼고 본다. 바로 직원들과 함께 회사를 키워나가겠다고 하면서도 행동은 그들 중심이 아닌 자기중심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사장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사장님은 우릴 못 믿는 것 같다.’ ‘언제나 확인할 걸 두 번 세 번 확인한다.’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겠다. 그저 소문만 무성하다.’ ‘사장님도 답답한지 이러하라, 저러하라고 직설적으로 지시만 한다.’ ‘언제나 고객이 먼저라고 강조하지만 너무 그러니까 소외감을 느낀다.’ ‘비전이 뭔지 모르겠다. 그냥 매출 목표 달성하면 다 해결될 것처럼 두루뭉술하게 얘기하니까 우리도 매출만 보고 달려갈 수밖에 없다.’ 등이다.

자기 자식도 제 맘 같지 않은 세상에서 남들의 생각은 알고자 하기 않은 채 자기 좋을 때로만 하는 사장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 내용이다.

그러나 이때도 중요한 것은 바로 ‘초심’이다. 어떤 생각이든지간에, 물론 약간의 기술은 필요하겠지만, 그것이 진심이라는 것을 직원들이 안다면 그들은 사장의 뜻을 기꺼이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경영의 가장 기본적인 사항을 이야기체로 누구나 알기 쉽게 전달했다. 다만 책을 보면서 자주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것은 책 자체가 독자에게 경영에 대한 진실을 전달하기보다 저자의 개인의 사업을 홍보하겠다는 의도가 자주 눈에 띄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 입장에서는 책 한권 쓰기 위해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에 인세 하나 만을 위해 책을 쓸 수 없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독자와 국내 경영자를 위해 책을 썼다면 자신의 홍보보다는 좀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책을 써 줬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독자가 자기 돈 내고 남의 홍보 책을 살 이유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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