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과 열광 - 황우석 사태 7년의 기록
한재각.강양구.김병수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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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광의 전염

희대의 황우석 사태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지도 벌써 1년이 되어온다. 당시 전 국민이 감동과 환희, 그리고 실망과 환멸을 순차적으로 느꼈으리라 본다. 당시 나도 배아 복제나 그 밖의 과학적 배경지식에는 완전한 문외한이었지만 황우석 교수가 ‘세계최초’로 배아복제 줄기세포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대단히 기뻐하고 자랑스러워 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과학자이신 아버지께서는 황우석 교수 신드롬에 대하여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계셨고 나는 아버지께 오히려 다른 한국 과학자가 잘 되면 아버지도 한국 과학자로서 기뻐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따져 물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회적으로 황우석 교수에 대한 한마디의 비판조차 허용되지 않을 정도로 퍼져있던 황우석 교수에 대한 ‘열광’이 우리 집 안에까지 퍼져 있지 않았나 싶다.


의혹과 좌절...모두 기억 속으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노성일 원장과 황우석 교수의 치고받기식 기자회견과 Science지에 게재된 논문이 조작된 것일 수도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었다. 마치 청룡열차를 타고 제일 높은 곳까지 갔다가 한번에 추락한 느낌이랄까...그런데 더욱 놀라웠던 것은 Science지에 실린 논문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황우석 교수가 인정하고 난 이후에 황우석 교수가 했던 기자회견의 내용과 조작사실이 밝혀지고 난 이후 상당수의 사람들이 황우석 교수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식의 목소리를 냈다는 점이었다. 당시 나는 도저히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러한 현상에 대하여 꽉 막힌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었다.


학자로서의 자격조차 인정받을 수 없을 정도로 근본적인 잘못을 저지르고도 일말의 반성 없이 전국민을 상대로 능숙한 언론플레이를 하는 황우석 교수의 기자회견 모습을 보면서 인간 황우석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해 본다면 학문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황우석 사태가 우리 사회의 어떤 한 단면의 병폐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 사태로부터 무엇인가 우리 사회가 배워서 한 단계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1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사실 황우석 사태는 내 기억에서 빠르게 잊혀져 갔다. 예전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동이 있었지 라는 정도의 기억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황우석 사태에 관한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추적, 분석한 이 책을 읽고 정말 잊을 수 없는 그 사건에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그리고 그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에 관하여 다시 깨닫게 되었다.


황우석 사태의 구조적 원인 - 박정희 패러다임과 과학기술동맹..

이 책은 1999년부터 황우석 교수의 행적을 추적한다. 그리고 그가 어떻게 비주류 학자에서 우리 사회의 힘있는 주류들과 인적 네트워크를 맺으며 과학기술계의 거대권력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상세하게 추적한다. 저자들이 ‘과학기술동맹’이라고 일컫는, 황우석 사태에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는 정치, 사회, 의학, 언론, 과학 등 각 분야의 주류 실세들이 황우석 교수와 어떤 것을 매개로(give and take의 대상...ex: 논문에서의 공동저자, 국민적 영웅 과학자와의 친분과시 등) 인적 관계를 맺고, 그 대가로 황우석 교수가 자신의 연구관련 분야에서 특권적 권력을 획득해 나가는 과정이 저자들의 치열한 노력으로 상세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그 과정에서 끝나지 않는다. 왜 이런 초유의 사태가 있었으며 이것을 통해서 우리 사회는 어떤 것을 배울 것인가라는 의문에도 나름의 답을 제시한다.


우리 모두가 황우석 교수가 중심이 된 사기극에 그토록 ‘열광’했던 원인 중 주요한 것으로 저자들은 결과주의, 애국주의, 민족주의 등으로 이루어진 박정희 패러다임을 들고 있다.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세계최초’라는 수식어 앞에 황우석 교수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용납될 수 없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난자매매 사실이 수면위로 떠오르고 난자를 제공한 여성 중 연구실내 여성연구원이 포함되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뒤에도 그에 대한 비판은 금기시되었다. 솔직히 그 당시 나도 무언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워낙 큰 국가적 이익이 걸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사소한 문제는 소위 ‘대승적 차원’에서 넘어가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건대 그러한 나의 심리를 형성한 데에는 저자들이 지적한 소위 박정희 패러다임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비록 ‘과학기술동맹’에 의하여 황우석 사건이 전국민을 상대로 한 사건으로까지 확대되고 ‘열광’의 강도가 광신의 수준까지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 황우석 사태는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고 우리 사회에 뿌리깊이 박혀 있는 집단적 의식구조의 투영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학기술동맹’이 상징적으로 나타내듯이 법과 절차가 아닌 인맥에 의한 밀실야합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사를 결정하는 민주주의의 후진성이 결정적 기여를 했음 또한 당연하다.

 

‘열광’에서 ‘침묵’으로...

황우석 교수의 사기극이 밝혀진 지금 이를 ‘열광’으로 만든 힘있는 이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는 침묵하고 있는 이들의 과거 낯뜨거운 ‘삽질’이 낱낱이 까발려져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적나라한 삽질은 씁쓸한 구경거리가 된다. 한번의 행동으로 한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황우석 교수 사건 전체와 관련하여 한 발언이나 행동을 통해 사회적 공인을 판단할 수 있는 부분적인 자료는 얻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과학기술시대의 각성한 시민들이 많아지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황우석 교수의 가장 큰 공헌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한 것처럼 황우석 교수 사건이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성숙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끝으로 ‘열광’에 휩쓸리지 않고 7년간이나 치열하게 이 사건을 추적, 분석하여 ‘침묵’하는 자들에게 경종을 울린 저자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p.s.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며칠전 과학기술동맹의 주요 일원이었던 이병천 교수가 스너피의 여자친구격인 암캐 세 마리를 복제하는데 성공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그리고 황우석 교수 또한 조용히(?) 연구를 재개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걱정스러운 것은 그런 언론 보도가 황우석 사태 이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는 것이다. 황우석 사태는 아직도 진행형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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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9 00: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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