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세계문학 42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혁준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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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좋아하며 갈망하는 것 중에서 자유만큼 매력적인 개념이 또 있을까. 어떤 지배도 없고 복종도 없는, 그러므로 나의 나됨이 온전이 실현되는 그 시공간을 위해서 내달렸는데 돌아보니 자꾸만 제 자리에 서 있고 출구는 없으며 다가갈 수록 온전히 멀어지는 그 벽 앞에 끝없이 절망할 수 밖에 없다면.

 

권력은 너무 세밀해서 파악할 수가 없고 지배는 밀착되어 도무지 분리해 낼 수 없는 좌표, 관료주의가 지배하는 공권력이 삶으로 침습한다는 것의 의미, 한 눈에 포착되지 않으니 보여줄 수 없고 손아귀에 잡히지 않으니 실체를 설명할 수 없는 그 살갗을 영민하게 뜯어내고 속살을 파고드는 투지는 카프카가 아니었으면 도무지 시작조차 못했을 것 같다.

 

카프카는 법학 전공자답게 법의 지배가 구체화되어 현실로 투영되는 관료주의의 특성과 폐해를, 이야기를 빌어 날카롭게 제시한다.

 

주인공 K는 백작의 토지 측량 기사로 명을 받아 성을 향해 출발하지만 뜻하지 않은 난관에 봉착한다. 여관에 들렀다가 자신이 성이 고용하여 토지 측량 기사로 임명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성에서 확인되는 자신의 임명 사실은 오히려 또렷하지 않다. 여관에 모인 농부들, 주인, 마을 사람들로부터 배척된 K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길을 나서고, 여정 도중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클람의 애인이었다는 프리다와 사랑에 빠진다.

 

또 자신의 원래 조수들 대신 예레미아스와 아르투르가 조수로 고용된다. K는 자신의 임용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면장을 찾아가지만, 산더미 같은 서류 속에서 목적을 성취하기란 난망하다는 점만 확인하게 된다. 다만, 면장은 K가 프리다와 조수들을 거느리고 살 수 있도록 학교의 직원 자리를 추천한다.

 

교사들의 명령을 순순히 따르지 못한 K는 조수들까지 해고하면서 학교 밖으로 나오고 자신에게 클람의 명령을 전달해준 바르나바스 가족과 함께 머물게 된다. K는 바르나바스 가족 역시 성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마을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있는 상황을 알게 된다.

 

K는 클람의 비서가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면서 다시 프리다를 만나고, 수많은 서류가 배달되는 방에 갇힌 성의 관리의 비서들도 만나게 된다.

 

소설의 줄거리는 꽤 단순하다. 카프카의 사망으로 소설은 중간에 맥락없이 끝맺지만, 완성했다 하더라도 큰 줄거리가 별로 달라 질리 만무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한마디로 K라는 인물이 성의 임용을 받아 성을 향해 나아가지만, 그 여정에서 임용 사실을 인정받지 못하므로, 자신의 임용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투쟁하는 일종의 여행기다. 줄거리의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소설 내내 묵직한 여운이 남는 이유는 성의 인증이 없는 한, 실체로 존재하는 데도 불구하고 K가 전혀 존재하는 인간으로써 받아들여지 못하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까닭일테다.

 

더 두려운 것은 성의 권력에 의지하여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려는 K가 자신도 모르게 조수에게 명령하고 자신의 의지를 투사하는 권력자로 변해가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묘사되어 있다는 것.

 

성이라는 권력, 그 권력의 인증을 갈구하면서, 때로는 대항도 마다하지 않으며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려는 K와 어떻게든 성의 호혜를 벗어나지 않으려 몸부림치며 성의 그늘 밖으로 누군가 몰려나도 관심 없는 마을 사람들, 프리다에게 호감을 느끼고 K를 고소하는 조수, 수없이 날아드는 서류에 압도당한 관리의 비서들, 서류 뭉치에 둘러 쌓여 진실을 제대로 끄집어내지 못하는 면장.

 

현대 사회의 관료주의가 잉태하는 인간 군상들은 권력과 지배의 이면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관료주의의 속살처럼 끈적이게 들러붙는 문장들, 시간과 공간이 비약되어 단순한 이야기가 되었다가 질펀한 연결고리가 되는 서사들. 소설은 주제의식만큼 형식면에서도 독특하다.

그건 아직 분명하지 않아요. 먼저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물어봐야 하거든요. 이를테면 성 밑의 이곳 마을에서 일하게 된다몀 여기서 묵는 편이 현명하겠지요. 게다가 저 위 성 안의 생활이 내 성미에 안 맞을까봐 염려되니까요. 나는 언제나 자유롭고 싶어요.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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