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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생 - 죽음 이후의 삶의 이야기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지음, 최준식 옮김 / 대화문화아카데미 / 2020년 3월
평점 :
죽음에 대한 견해는 역사와 시대에 딸라 달라지겠지만, 최근의 경향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되는 것 같다. 죽음은 뇌의 작동이 멈추면 정지되는, 일종의 물질의 완전한 소멸이라는 주장과 육체라는 물질은 멈추지만 그 차원을 너머서는 새로운 생으로의 출발이라는 관점. 이 상반된 견해는 자칫 과학과 신학-비과학-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퀴블러 로스는 정신의학을 전공한 '과학자'로서 두 번째 주장을 견지한다는 데 특이점이 있다. 즉, 과학의 지평에서도 죽음은 신학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고 부각함으로써 과학과 신학의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담당한다.
저자는 수많은 사람들의 임종을 관찰하고 근사 체험을 연구하면서 죽음은 고치가 나비처럼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는 통로일뿐, 단순한 소멸로 규정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녀는 죽음은 3단계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죽음은 그저 한 집에서 더 아름다운 집으로 옮겨가는 것이라고 소개하면서, 고치(몸)가 회복불능 상태가 되면 나비(영혼)이 태어나는 1단계를 먼저 거치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고치가 나비로 변하는 1단계에서는 물질적 에너지를 얻게 되고, 2단계에 이르면 정신적 에너지를 받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 때 정신적 에너지를 받으면서 새로운 인식 능력을 갖게 되는데, 주변 사람들의 행동, 상황 등을 정확하게 인식하게 되고, 더불어서 육체 이탈과 더불어 온전한 몸을 갖게 된다는 것. 또한 두 번째 단계에서는 시공간 감각이 사라지면서 생각의 힘만으로도 그리운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있어 그 누구도 고독하게 죽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때는 에테르체라는, 물리적인 몸이 아닌 새로운 몸을 갖게 되어 장애나 불구가 없고 고통이 없는 완전한 조화를 경험하게 된다고 소개한다.
두 번째 단계를 거치면서 죽음은 또 다른 삶으로의 변화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영원한 존재로 변화하기 전 터널이나 다리를 거치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후 터널이나 다리 끝에서 빛에 에워싸이게 되고 장엄하고 조건없는 사랑의 세계로 들어가는데, 이 빛 을 본 후 돌아오지 않으면 고치와 나비의 연결이 단절된다고 본다.
완전한 사랑의 세계, 하나님이든 무엇이라고 부르던 그 출현 앞에서 자신의 삶 전체를 반추하게 되고 온전한 '앎'을 획득하면서, 자신의 지난 삶이 우리의 성숙을 위해 존재했던 편린이었음을 이해하게 되는 3단계를 거치게 된다는 것이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의 연구를 통해서 근사체험에서 나타나는 경험이 스스로 간절히 원하던 소망사고의 투사가 아니냐는 의문에도 단호한 입장을 취한다. 사고 소식을 몰랐는데도 미리 인지했던 경우나, 시각장애인이 급박했던 상황을 세밀하게 묘사한 경우 등을 사례로 들어 반박한다.
그녀가 주창한 죽음학의 백미는 단연, 과학자로서 죽음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죽음의 상황, 종교, 인종, 연령 등을 뛰어넘어, 모든 사람의 죽음은 우리의 성숙, 새롭고 완전한 세계에 적합한 인격으로의 변화를 위한 단계라는 따스한 시선을 고수한다. 그녀에 따르면우리는 모자이크 조각처럼 각자 맡은 사명이 있고, 그 사명안에서 성숙함을 완성하면 사후생을 위하여 떠나는 것. 이해할 수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과학자의 올곧은 연구는 죽음으로부터 출발하는 삶의 닻이 되고, 신앙의 뿌리 깊은 정수를 가리키는 나침반이 된다.
책의 말미에는 이 책의 역자인 최준식 한국죽음학회장의 '한국인의 죽음관'이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철저한 현세 중심의 죽음관에서 비롯되는, 삶에 대한 빈약한 인식을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죽음에서 출발하는 삶의 소중함과 가치, 삶에서 확장되는 죽음의 의미와 의의를 되짚어보는 성찰을 통해 확장된 세계관이 필요한 이 때, 개정판이 더없이 반갑다.
논리적으로 죽음의 경험은 출생의 경험과 같다. 죽음은 다른 존재로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다. 우리는 수천년 동안, 죽음 후의 세상과 관계된 일들을 무조건 믿어야 했다. 그러나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한 이해는 믿고 안 믿는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앎의 문제다. 죽음에 대해 제대로, 그리고 정말로 알기를 원하는가. 나는 말할 준비가되어 있다. 이런 건 알고 싶지 않다고 해도좋다. 어차피 한번은 죽게 마련이고, 그 때는 누구나 알게 될 것이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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