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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ㅣ 미네르바의 올빼미 4
잉에 아이허 숄 지음, 유미영 옮김, 정종훈 그림 / 푸른나무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이 책을 읽은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큰외삼촌 댁에 부모님과 함께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미국으로 유학갈 준비를 하던 사촌언니가 "네가 책을 좋아한다지? 이 책 한번 꼭 읽어 봐. 정말 좋은 책이야."하며 건네준 책이 바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었다.
세로조판에 한자가 군데군데 섞여있어 어린 나이에 읽기 불편하긴 했지만, 많지 않은 분량과 책을 펼처들자 마자 나오는 앳된 대학생들의 사진에 매혹되어 집에 오자마자 순식간에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에서 가장 감동스러운 것은 주인공들이 피해국가에서 저항했던 젊은이들이 아니라, 나치스의 심장부이자 가해국인 독일의 젊은이들이라는 점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침략과 차별의 부당함을 역설하기는 오히려 쉽다. 그러나 가해집단에 속해 자기가 속한 집단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정의를 위해 목숨을 던지는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더구나 대다수의 사람이 두려움에 침묵하고 있거나, 암묵적으로 폭력성에 동조하고 있는 상황에선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했던 또 다른 생각... 그것은 용기는 결코 나이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가며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두리뭉실한 생각을 갖게 되고, 그것이 성숙이라며 같잖은 자기만족에 취해있다가 이 책을 읽으니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실은 우리 사회 안에도 저항해야 할 부당함이 곳곳에 숨어있지 않은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묵인되고, 귀찮아서 참고있는 많은 차별과 부조리 속에 나 역시 젖어있지 않았나 스스로 반성해 보았다.
우리 반 학급 뒤편에 "선생님의 추천도서"라는 제목으로 책 표지를 복사해 붙여놓고, 책의 내용과 나의 소감을 짤막하게 써서 붙여 놓았다.
한 녀석이 눈을 빛내며 나에게 묻는다. "선생님, 저 책 어디 있어요?" 학급문고로 비치해 놓았다니까 "오늘 읽어봐야지." 하며 다시금 눈을 빛낸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도 저렇게 빛나는 눈을 가졌었던가...! 거울을 들여다보며 그녀석의 눈매를 생각해 내고, 내 눈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쉬어본다.
20년 만에 다시금 펼쳐든 이 책이 나의 마음 어딘가를 아프고... 서글프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