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실은 내가 읽은 <고등어>는 이 책이 아니라 웅진출판에서 나온 초판 30쇄 판이다. 내가 산 날짜는 1995년 4월 10일, 책을 구입한 장소는 학교 구내서점이었다.

책을 펼쳐드니 공지영이 이 책을 처음 썼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다. 아마도 작가는 30대에 접어들어 자신의 20대를 떠올리며 이 책을 적어내려갔겠지. 나 역시 30대에 접어들어 나의 20대를 떠올리며 이 책을 다시 읽는다.

읽다보니 최근에 읽었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과 <고등어> 사이에 형식상 비슷한 부분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소설의 각 장이 유고일기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윤수의 유고일기(블루노트라는 이름이 붙은~)로 시작하고 있다면, <고등어>는 노은림의 유고일기로 소설의 각 장을 시작하고 있다. 이렇게 각 장에 붙어있는 주인공들의 유고일기는 작가가 하고싶은 말을 대신 해주는 역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벌어질 내용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역할을 하고있다.

20대에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참 눈물을 많이도 쏟아냈었다. 운동권에 대한 후일담 소설이라는 당시의 비판과 상관없이 나는 이 책에 담겨있는 사람들의 어긋난 사랑, 주어진 운명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하면서도 끝내 버리지 못하고 되찾고자 하는 꿈에 더욱 마음이 쏠렸기 때문이었다.

다시금 읽은 책은 물론 그 때만큼 감동적이거나 눈물겹게 슬프지는 않다. 가끔 매우 성숙한 어른인 척 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우습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주저없이 별 다섯 개를 준 것은 나는 공지영의 진심(사람과 사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믿기 때문이다.

그녀가 자신이 386 세대임을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상기시키며 다른 사람들보다 올바른 삶을 살았다고 자위하고 있다는 어느 리뷰의 비판은 일리있다.

하지만, 열광적인 민주투사가 보수정당의 공천으로 국회의원이 되고, 이른바 기득권층이 된 운동권들이 자신의 운동경험을 이미지를 위해 팔아먹는 구역질나는 세태에 비하면 자신의 과거를 잊지 않고, 그 경험을 인간 생명에 대한 사랑(<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보여준 사형제 폐지와 같은...)으로 확대시키는 그녀의 변신은 오히려 아름답고 올바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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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로 읽는 남성성 He - 동연총서 209
로버트 A. 존슨 지음, 고혜경 옮김 / 동연출판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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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세상은 행복과 환희로만 채워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을 씁쓸한 일이다. 청년이 지니고 있던 천진한 아름다움과 신념과 낙관주의가 함께 허물어져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유감스럽지만 이 과정은 꼭 필요하다. 만일 우리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지 않았다면 '하늘의 예루살렘'은 없을지 모른다.-18쪽

남성의 창조적 재능은 남성 내면의 성장과 창조를 위한 여성적 능력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남성의 천재성이란 남성 내면에 존재하는 여성성의 생산능력을 말하고, 이 창의적인 능력에 형태와 구조를 주어 외부세계에 드러내는 것이 그의 남성성의 문제이다.-58쪽

행복(happiness)이란 단어는 '그냥 일어나다(to happen)'라는 동사에서 유래했다. 이는 행복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내면에서 피어나는 것임을 암시한다. ((중략)) 곧 점심 먹을 생각에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그 어느 것에도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다.-64~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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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교육의 파시즘 - 노예도덕을 넘어서 프런티어21 1
김상봉 지음 / 길(도서출판)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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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현재 수도권의 한 공립 중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다른 교과와는 달리  "가치"를 이야기 한다는 점에서, 나는 내가 가르치는 교과가  여러 과목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믿으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하다"는 것은 물론 시험과 입시에서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한 인간을 정말 인간다운 인간으로 만드는 데 가정교육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공교육의 도덕교육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도덕 교과가 학생들의 도덕성을 향상시키는 데 정말로  일조를 하고 있느냐고 정색을 하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있게 "그렇다."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마음으로부터 공감하지 못하는 교과 내용을 학생들에게 진실인 것처럼 포장해서 가르치는 데서 오는 정체성의 혼돈 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교과서가 사실이 아닌 내용을 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보다 나은 가치를 말함에 있어 자신에 대한 건강한 배려와 관심에서 논의를 출발하지 않고 타인에 대한 희생과 봉사로 논의를 시작하고 종결짓는 교과서의 엄숙주의가 불편했다.

이 책은 이런 고민을 한 번쯤 해본 적이 있는 도덕 교사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타당하고 합리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이 책은 이데올로기 교육으로서의 도덕 교육을 비판하며  "도덕 교육이 덕목과 가치의 일방적 주입이 아니라 덕목과 가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과정이 되고 이를 통해 가치를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정립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과정이 될 때에만 국가가 실시하는 도덕 교육은 이데올로기 교육으로 전락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108p)"라고 조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덕 교육의 목적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참다운 의미의 "자유"를 인식하고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도덕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결국 도덕 교육은 자유롭게 사유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이끌어주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도덕 교육은 철학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도덕 교육이 학생들이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인식하도록 촉구하는 역할을 맡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부모님의 눈, 선생님의 눈, 친구들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그들이 원하는 삶을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착각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도덕 교과와 도덕 교사의 역할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에 대해 건강한 관심을 갖게 되면 "남" 역시 나와 같은 욕구와 욕망을 지닌 사람임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인식이 바탕이 된다면 강요에 의한 희생과 봉사, 인내가 아니라도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의 마음을 지니게 될 수 있으리란 믿음도 갖게 되었다.

책장을 덮고 나니 희망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지금의 교육 현실 속에서 학생들을 "자유와 예속의 기로에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그 사이에서 자기의 실존을 걸고 결단하는 연습을 하게 하는 것(257p)"이 과연 가능할까 싶은 두려움과, 반대로 어쩌면 무너지는 우리 사회의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데 나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미약하나마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읽고 나서 "너무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이군."이라고 생각하든,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하겠군."이라고 생각하든... 어느 쪽이든 간에 이 책은 이 땅에서 도덕과 윤리 교과를 가르치는 모든 교사들이 꼭 읽어보아야 하는 필독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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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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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을 행한다는 것은 적어도 선한 게 뭔지 감은 잡고 있는 거야. 깊은 내면에서 그들은 자기들이 보여지는 것만큼 훌륭하지 못하다는 걸 알아. 의식하든 안 하든 말이야. ((중략)) 고모가 정말 싫어하는 사람은 위악을 떠는 사람들이야. 그들은 남에게 악한 짓을 하면서 실은 자기네들이 실은 어느 정도는 선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위악을 떠는 그 순간에도 남들이 실은 자기들의 속마음이 착하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래. 그 사람들은 실은 위선자들보다 더 교만하고 더 가엾어.-158쪽

죽고 싶다는 말은,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거고,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은 다시 거꾸로 뒤집으면 잘 살고 싶다는 거고..... 그러니까 우리는 죽고 싶다는 말 대신 잘 살고 싶다고 말해야 돼.-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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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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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십 년도 지난 일이 되어버렸지만, 대학시절 나는 공지영의 책을 몰래 읽었었다. 언젠가 한 번 과방에서 공지영의 "고등어"를 읽고 있는데, 내가 따르던 선배가 "그 따위 통속적인 후일담 소설을 읽을 시간이 어딨냐?"며 질책을 퍼부었던 탓이다. 90년대 초반... 80년대를 광풍처럼 휩쓸던 민주화 운동의 열기는 가라앉았지만, 그 시절의 뜨겁던 열정을 잊지 못하는 복학생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어거지로 사회과학 서적을 읽히고 학습을 시키려 했던 시절이었다.

그 때, 나는 통속적이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의 사랑과 이별, 불행과 고통, 화해와 용서가 담겨있는 공지영의 소설을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다. 학교를 오고가는 지하철 안에서, 내 방 안에서 틀어박혀 그녀의 책을 읽었을 뿐, 사람들에게 "이 책 한 번 읽어 봐."라거나 "요즘 이 책 읽고 있는데, 무척 재밌어." 따위의 말은 꺼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수도원 기행> 이후 몇 년 만에 읽은 그녀의 소설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억지로 붙잡고 권하고 싶을 만큼 성숙하고, 아름다워져 있었다. 신파와 통속이 적절하게 어우러져있는 그녀의 문체는 여전했지만, 그 속에 인간의 삶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담는 능력은 십여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라있는 듯 하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에게 "삶은 무엇이냐?" "죽음은 무엇이냐?" "인간의 존엄이란 어디에 근원하는 것이냐?"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형을 앞둔 죄수와 여러 번 자살을 기도했던 여자와의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소통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아이러니한 제목 안에 위치시키고, 읽는 이의 불편한 감정을 끊임없이 유발하며 앞의 질문들에 스스로 답을 찾도록 다그치는 것이다.

답은.. 나는 그 답은 찾지 못했다.

그러나 책의 끝부분에서 "신비롭게도 사람이 삶을 배우는 데 일생이 걸린다. 더더욱 신비롭게도 사람이 죽음을 배우는 데 또 일생이 걸린다. -세네카-"라는 문구를 읽어내려가면서, 해답을 찾지 못했다 해도 삶은 그 자체로 황홀한 사건이고, 설령 죽을 날짜를 받아놓고 사는 시한부 삶이라 해도(어차피 시한부 아닌 삶은 없지만) 삶의 의미와 무게는 조금도 덜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순하게 보면 사랑 이야기이고,  사형제 폐지라는 작가의 주장이 너무 티나게 담겨있어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그 안에 담긴 삶과 죽음에 대한 실존적인 질문은 여느 철학책 못지 않다. 이전보다 그녀를 더 좋아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을... 이 책을 통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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