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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교육의 파시즘 - 노예도덕을 넘어서 ㅣ 프런티어21 1
김상봉 지음 / 길(도서출판)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나는 현재 수도권의 한 공립 중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다른 교과와는 달리 "가치"를 이야기 한다는 점에서, 나는 내가 가르치는 교과가 여러 과목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믿으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하다"는 것은 물론 시험과 입시에서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한 인간을 정말 인간다운 인간으로 만드는 데 가정교육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공교육의 도덕교육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도덕 교과가 학생들의 도덕성을 향상시키는 데 정말로 일조를 하고 있느냐고 정색을 하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있게 "그렇다."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마음으로부터 공감하지 못하는 교과 내용을 학생들에게 진실인 것처럼 포장해서 가르치는 데서 오는 정체성의 혼돈 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교과서가 사실이 아닌 내용을 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보다 나은 가치를 말함에 있어 자신에 대한 건강한 배려와 관심에서 논의를 출발하지 않고 타인에 대한 희생과 봉사로 논의를 시작하고 종결짓는 교과서의 엄숙주의가 불편했다.
이 책은 이런 고민을 한 번쯤 해본 적이 있는 도덕 교사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타당하고 합리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이 책은 이데올로기 교육으로서의 도덕 교육을 비판하며 "도덕 교육이 덕목과 가치의 일방적 주입이 아니라 덕목과 가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과정이 되고 이를 통해 가치를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정립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과정이 될 때에만 국가가 실시하는 도덕 교육은 이데올로기 교육으로 전락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108p)"라고 조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덕 교육의 목적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참다운 의미의 "자유"를 인식하고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도덕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결국 도덕 교육은 자유롭게 사유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이끌어주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도덕 교육은 철학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도덕 교육이 학생들이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인식하도록 촉구하는 역할을 맡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부모님의 눈, 선생님의 눈, 친구들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그들이 원하는 삶을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착각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도덕 교과와 도덕 교사의 역할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에 대해 건강한 관심을 갖게 되면 "남" 역시 나와 같은 욕구와 욕망을 지닌 사람임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인식이 바탕이 된다면 강요에 의한 희생과 봉사, 인내가 아니라도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의 마음을 지니게 될 수 있으리란 믿음도 갖게 되었다.
책장을 덮고 나니 희망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지금의 교육 현실 속에서 학생들을 "자유와 예속의 기로에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그 사이에서 자기의 실존을 걸고 결단하는 연습을 하게 하는 것(257p)"이 과연 가능할까 싶은 두려움과, 반대로 어쩌면 무너지는 우리 사회의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데 나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미약하나마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읽고 나서 "너무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이군."이라고 생각하든,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하겠군."이라고 생각하든... 어느 쪽이든 간에 이 책은 이 땅에서 도덕과 윤리 교과를 가르치는 모든 교사들이 꼭 읽어보아야 하는 필독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