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는 십 년도 지난 일이 되어버렸지만, 대학시절 나는 공지영의 책을 몰래 읽었었다. 언젠가 한 번 과방에서 공지영의 "고등어"를 읽고 있는데, 내가 따르던 선배가 "그 따위 통속적인 후일담 소설을 읽을 시간이 어딨냐?"며 질책을 퍼부었던 탓이다. 90년대 초반... 80년대를 광풍처럼 휩쓸던 민주화 운동의 열기는 가라앉았지만, 그 시절의 뜨겁던 열정을 잊지 못하는 복학생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어거지로 사회과학 서적을 읽히고 학습을 시키려 했던 시절이었다.

그 때, 나는 통속적이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의 사랑과 이별, 불행과 고통, 화해와 용서가 담겨있는 공지영의 소설을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다. 학교를 오고가는 지하철 안에서, 내 방 안에서 틀어박혀 그녀의 책을 읽었을 뿐, 사람들에게 "이 책 한 번 읽어 봐."라거나 "요즘 이 책 읽고 있는데, 무척 재밌어." 따위의 말은 꺼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수도원 기행> 이후 몇 년 만에 읽은 그녀의 소설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억지로 붙잡고 권하고 싶을 만큼 성숙하고, 아름다워져 있었다. 신파와 통속이 적절하게 어우러져있는 그녀의 문체는 여전했지만, 그 속에 인간의 삶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담는 능력은 십여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라있는 듯 하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에게 "삶은 무엇이냐?" "죽음은 무엇이냐?" "인간의 존엄이란 어디에 근원하는 것이냐?"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형을 앞둔 죄수와 여러 번 자살을 기도했던 여자와의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소통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아이러니한 제목 안에 위치시키고, 읽는 이의 불편한 감정을 끊임없이 유발하며 앞의 질문들에 스스로 답을 찾도록 다그치는 것이다.

답은.. 나는 그 답은 찾지 못했다.

그러나 책의 끝부분에서 "신비롭게도 사람이 삶을 배우는 데 일생이 걸린다. 더더욱 신비롭게도 사람이 죽음을 배우는 데 또 일생이 걸린다. -세네카-"라는 문구를 읽어내려가면서, 해답을 찾지 못했다 해도 삶은 그 자체로 황홀한 사건이고, 설령 죽을 날짜를 받아놓고 사는 시한부 삶이라 해도(어차피 시한부 아닌 삶은 없지만) 삶의 의미와 무게는 조금도 덜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순하게 보면 사랑 이야기이고,  사형제 폐지라는 작가의 주장이 너무 티나게 담겨있어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그 안에 담긴 삶과 죽음에 대한 실존적인 질문은 여느 철학책 못지 않다. 이전보다 그녀를 더 좋아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을... 이 책을 통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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