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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중학생 34명 지음, 한국글쓰기연구회 엮음, 장현실 그림 / 보리 / 2001년 12월
평점 :
이 책은 주로 강원도와 인천, 경기도 안성 지역에 사는 중학교 학생들이 자신의 가족과 학교 생활, 일상 생활에 대해서 적은 수필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근무해 왔던 신도시 아파트촌에 위치한 학교 학생들 이야기가 아니고, 지금보다 길게는 15년, 짧게는 5~6년 전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라 마음 속 깊은 공감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내가 가르치는 또래 아이들의 마음과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던 것 같다.
이 책 안에는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인해 가정의 살림살이를 책임져야 하는 고단함, 부모님의 불화나 폭력에 대한 경험,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폭력을 수수방관하는 선생님에 대한 원망, 그 학교폭력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항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자괴감, 주변의 이웃과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 등이 오롯이 담겨 있다. 앞 부분엔 조금 어둡고 가슴아픈 내용이 많이 나오는 반면, 뒤로 갈수록 아이들의 밝은 일상과 예쁜 마음이 드러나 있어 읽는 내 마음도 덩달아 가벼워졌다.
읽으면서 요즘 아이들이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자극적인 환타지 소설과 만화에 길들여져 있는 아이들이 이 책의 글을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 같다. 그러나 "나"의 삶이나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삶 만으로는 나의 경험과 생각을 살찌울 수 없다.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또래들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타인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기를 수 있도록 우리 반 책꽂이에 꽂아두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했던 또 하나의 생각... 그것은 "낳았다고 다 부모가 아니고, 가르친다고 다 선생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부모가 잘못 선 빚 보증 때문에 사채업자에게 폭행 당하는 아이, 집 나간 엄마 대신에 집안살림을 도맡아 하면서도 아버지에게 꾸지람만 듣는 아이, 술과 폭력에 찌들어 자식에게 오히려 버림받는 아버지, 촌지 밝히는 선생님 때문에 가슴에 멍드는 아이, 교실 안에서 행해지는 유무형의 폭력을 수수방관하는 선생님...이런 이야기가 담긴 글을 읽으면서 나는 한없이 부끄럽고 죄스럽고 화나고 참담했다. 한두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부모 노릇, 선생 노릇이 녹녹치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한다. 정말... 부모는, 교사는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나는 그 노릇, 잘 하고 있는가... 새삼 마음이 숙연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