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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으로 산다는 것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 때, 나는 "서른"이란 나이를 동경했었다. 하나하나 가능성의 문은 닫히지만, 그만큼 인생에 대한 확신과 믿음, 성취를 동시에 느끼고 이룰 수 있는 나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듯 하던 어린 나에게 서른이란 나이는 자신의 인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어른을 상징하는 확고한 기준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막상 서른을 넘긴 나이가 되고 보니, 반드시 나이에 의해 어른과 아이가 구분되는 것은 아니고, 어른이라고 해서 늘 자신의 인생에 확신을 갖고 살지는 못하며,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삶에 대한 성숙한 시선을 모두 갖출 수는 없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되었다. 또한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자신의 인생을 아무 제약없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사실 어른이란 아이 때 받은 절망과 두려움, 불안 등의 갖가지 상처와 흉터를 가슴에 품은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 모른다. 과거없는 현재는 없고, 아무 상처없는 어린시절 또한 있을 수 없는 법. 결국 어른은 어릴 때 받은 많은 상처를 보듬어 안고 살아가는 인간인 셈이다. 아무리 훌륭하게 상처를 치유했다 해도 흉터는 남는 법이고, 채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평생을 끌어안고 가야하는 게 결국은 어른의 삶 아니겠는가?
저자는 정신분석 전문의 답게, 어른으로 살고싶다면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라고 가르친다.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러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땐 그럴 수밖에 없없어. 그건 내 잘못이 아니야."라며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어야 하고, 슬픔과 아픔을 굳이 감추려고 애쓰기 보다는 소리내어 우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결국 죽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인생이지만, 죽는 그 순간까지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의 말은 100%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로는 내용에 공감하지만, 마음으로는 그러지 못했다. 마치 책 제목처럼 "어른"인 저자가 아직 아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독자에게 "어른으로 사는 법"을 가르치듯 써내려간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지나치게 많은 주제도 조금은 불만이었다. 수필처럼 짧은 이야기로 수박 겉핥기처럼 사람 심리를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굵직한 몇 가지 주제로 좀더 길게, 밀도있게 내용을 전개했더라면 훨씬 마음을 움직이는 책이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되, 너무 무겁거나 진지하게 접근하기보다는 가볍고 쉽게 접근하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충분히 의미가 있을 수 있는 책이다. 사실 모든 책은 인간의 삶을 보다 성숙하게 만들어주는 스승의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