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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거인
프랑수아 플라스 글 그림, 윤정임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를 낳고 책을 읽는 게 어려워졌다. 예전엔 그저 시간날 때 쉽게 읽을 수 있는 게 책이었는데, 육아휴직을 하고 집에서 딸아이를 보면서부터는 정말로 시간이 없다. 아이가 눈을 뜨고 있을 땐 아이와 눈 맞추며 놀아야 하고, 아이가 눈을 감고 자고 있을 땐 밀린 집안일을 해야 한다. 더구나 천 기저귀를 쓰고 있는 탓에 기저귀를 빨고 널고 개는 일에 하루의 상당 부분을 보내게 된다. 그래서 요즘 내 독서 시간은 딸아이가 자는 동안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보면서...가 전부가 되어 버렸다.
어쨌든 며칠 동안 화장실에서 일을 보면서 읽은 책이 바로 <마지막 거인>이다. '아치볼드 레오폴드 루트모어'라는 긴 이름을 가진 지리학자가 거인의 마을을 발견한 뒤 공명심에서 그들의 존재를 만천하에 공개했다가 거인들이 멸족을 당한다는... 어찌 보면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가진 책이다.
한 쪽에는 글이, 또 한 쪽에는 그림이 번갈아 나오기 때문에 사실 분량이 많지 않고, 이야기 자체만으로 놓고 볼 때는 사실 좀 허술하기도 하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책이어서인지는 모르지만 주인공이 거인의 마을을 찾아가는 과정도 그렇고, 말이 통하지 않는 거인들과 우정을 나누는 과정 역시 촘촘하지 못하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시작했던 일이 최악의 상황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사실 자연은 손대지 않고 가만히 놓아두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는지 모른다. '환경 친화적'이라는 명칭을 두르고 행해지는 많은 사업이 실은 환경을 파괴하는 일임을 알면서도 경제 논리에 밀려 모르는 척 외면하고 있는 지도... 그런 의미에서 책 말미에 최재천 교수가 반딧불이의 서식지를 발견했으면서도 침묵을 지켰던 일은 학자적 양심을 저버린 일이 아니라 진정한 양심을 지킨 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3~4학년 이상이라면 부담없이 책을 읽을 수 있을 듯... 깊은 의미를 이해하려면 중학교 1, 2학년 정도는 되어야 할 테니, 그 이하 연령의 어린아이라면 부모가 함께 책을 읽고 느낌과 교훈을 서로 이야기해도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