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비 살해사건 1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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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이 500년의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중에 하나가 언쟁기관의 독립성과 역사 기술의 철저한 보장과 독립이었다. 그런 조선시대에도 사초를 정략적으로 이용한 예들이 있다. 조선에서 사초를 열어 본 사례가 연산군이었다. 연산군은 사초를 통해 정적들과 자신의 어머니의 사사에 관련된 사항을 사초를 통해 확인하고 관련자들을 모조리 사형에 처한다. 이후 훈구세력은 거기서 더 나아가 사림의 정적들을 제거하는데 절대 독립성을 보장해야 할 사관들의 사초의 비평들을

이용한다. 연산군의 선례에 의해 명종대에 다시 한번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사초가 또 다시 불법적으로 이용된다. 

 사관의 독립성이 훼손되면서 정권을 견제할 언간이 살아지고, 민생은 극도로 피폐해지게 된다. 그리고 훈구 집권세력은 부폐의 극단을 달리고, 연산의 경우에는 극단의 폭압 정치로 공신들의 권력이 약화되고 극도의 왕권이 강화되지만, 폐위후에는 신하들의 의해 택군이 되는 극단의 상황이 펼치지게 된다. 연산의 선례를 만듬으로서 이후에는 집권세력들이 정적을 없애기 위한 도구로 사초를 이용하게 되는 역사이 퇴보를 가져오게 된다.

 그런데 지금의 NLL 대화록이 정략에 의해 선거에 이용되고 나서 그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사초를 정략에 이용하기 위해 무단으로 열람되고 이용되었다는 것이 그 논란의 핵심이 아니고,즉, 철저한 독립성과 신분보장인데, 그것은 뒷전이고 대화록이 있냐 없냐, 대화록의 내용이 맞냐 안 맞냐 등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필요한 내용들로 논라인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 기록물법의 거의 무력화 된 상태고, 이후부터는 필요하면 얼마든지 정략적인 필요에 의해 역사의 기록들이 이용될 것이다.그렇기때문에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국가 정책 결정이나, 의사 결정에 관한 내용들은 기록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이전 노무현 정권은 자신의 정치적 의사결정이 나중에 크게 문제가 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정책의 지속성, 그리고 이후 정권의 정치적 판단의 일관성이나 의사판단의 준거를 마련해주기위해 기록물의 중요도나 필요에 의해 기록물 관리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 국가 기록물법을 설치를 한 것이다. 그리고 이전 정권의 몇배에 달하는 국정 전반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정권이 그 기록을 정략적으로 선거에 이용하고, 그 선례를 숨기기 위해 다른 논란들을 만들고 부풀려서 노무현 정권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논란은 분명 다른 사초 논란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조선은 왕권과 신권이 적절히 균형을 이룸으로서 500년 왕조를 만들어냈다. 그 가장 큰 배경은 간쟁이 자유루웠고, 사관의 독립성이 보장되었기 때문도 하나의 이유이다. 그런데 현대 대한민국의 역사인식이 조선시대보다 못하다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연산군이 제일 무서워한 것이 역사라고 했다고 한다. 지금의 위정자들이 되새겨봤으면 좋겠다. 집권세력들이 역사가 무서운줄을 모르는 것 같다.

일제 식민의 역사가 얼마나 후대의 정치와 삶, 사회를 규정하는지도 그들은 무시하고 싶은것 같다.

역사는 진실을 영원히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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