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결국 <쌍화점>은 세 명의 사랑이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한가지 궁금한 점, 홍림의 진심은 무엇일까. 그는 정말 단 한번도 그를 연모한 적이 없을까.
그에게 남은 마지막 감정은 그에게 칼을 겨눈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까.

단 인간이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어찌 생각해보면  이 사람도 사랑할 수 있고,
저 사람도 사랑할 수 있는게 아닌가..한 사람의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지만
이 사람의 이런 면을, 저 사람의 저런 면을
사랑할 수도 있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영화를 보는 내내 곰곰히 생각났다. 동시에 다른 두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면 어찌해야할까.
결국 난 홍림이 그와 그녀 모두를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바이섹슈얼이었구나... OTL)

# 2. 왕의 노래와 왕비의 노래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흥얼거리게 될 듯 하다.
근데, 주진모는 직접 본인이 노래를 부른 것인지 그것이 정말 참으로 아주 궁금하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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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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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에세이는 항상 읽는 즐거움을 톡톡 던져준다. 하루키의 글은 소설보다는 에세이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편안하게 읽으면서도 간간히 '아 그런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적당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가 글에서 언급하는 목을 타고 내려가는 차가운 맥주처럼, 그의 글은 청량감이 드는 여름에 마시는 시원만 맥주 같다. 그의 글은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에세이를 써내려 가기 때문에 - 때로는 이게 소재인가 싶을 정도로-  읽고 있으면 즐겁지만 한번쯤은 정리된 글도 읽어보고 싶기는 하다. 
 
 이런 소망에 부합하듯이 이번에는 하루키가 내놓은 자신의 인생에 하나의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달리기와 연결된 글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레이먼트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말하는 것들>을 차용한 제목이라고 본인이 스스로 밝혔다. 그야말로 어쩐지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부분이랄까)

 하루키의 소설을 20대가 공감할 수 있는 글이라고 하는 사람이 내 주변에는 많다. 그의 글이 가볍기 때문인지 혹은 하루키 특유의 다소 허무주의적인 감성이 20대와 맞기 때문인지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가지 생각하는건 그의 소설은 다른 세대들이 공감할 수 없을지라도 에세이만큼의 나이와 상관없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점이다. 이런 글은 그 특유의 어투가 상당히 큰 몫을 차지한다. 사실 그가 이야기하는 내용이나 소재가 반이라면 나머지 반은 하루키 특유의 문체이다. 어떤 에세이를 읽어도 일관성있게 느껴지는 읽고 있으면 '흠, 하루키로군'이라고 생각되는 그의 문체말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이 점이 십분 발휘된 에세이 모음집이다. 그의 특유의 가겹지만 날아갈 정도는 아닌, 그 특유의 어투로 글이 가볍게 진행되어 읽는데 부담이 없다. 하지만 그의 글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이라만 생각하는건 곤란하다. 오히려 난 하루키의 글에서 곰곰히 곱씹을 수 있는 구절은 에세이에 더 많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처럼

   
  그 중에 한 사람은 형 (그 사람도 마라토너) 으로부터 배운 문구를 마라톤을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머리속에서 되뇐다고 했다. Pain is inevitable, Suffereing is optional 이라는게 그의 만트라였다. 정확한 뉘앙스는 번역하기 어렵지만 극히 간단하게 번역하면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라는 의미가 된다. 가령 달리면서 '아아, 힘들다! 이젠 안되겠다'라고 생각했다고 치면, '힘들다'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젠 안되겠다'인지 어떤지는 어디까지나 본인이 결정하기 나름인 것이다. 이 말은 마라톤이라는 경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간결하게 요약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pp.8-9) 

 강한 인내심으로 거리를 쌓아가고 있는 시기인 까닭에, 지금 당장은 시간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시간을 들여 거리를 뛰어간다. 빨리 달리고 싶다고 느껴지면 나름대로 스피드도 올리지만, 설령속도를 올린다 해도 그 달리는 시간을 짧게 해서 몸이 기분 좋은 상태 그대로 내일까지 유지되도록 힘쓴다. 장편소설을 쓰고 있을 때와 똑같은 요령이다. 더 쓸 만하다고 생각 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 -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pp.18-19)
 
   


1982년 처음 아테네에서 마라톤까지 마라톤 42.195Km(사실 진짜 42.195km는 아니었다고 말하지만)을 완주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최근에는 마라톤에서 철인3종경기로 약간의 외도(?)를 했다는 이야기까지 그의 달리기와 관련된 이야기는 읽고 있노라면 한없이 즐거워진다. 그의 인생에 -적어도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달리기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일목요연하게 들을 수 있으니 좋고, 사실 무엇보다 너무나 오랜만에 출간된 하루키의 에세이라는 점이 또 좋다.
 

 하지만 정말 좋은 점은 달리기와 관련된 그의 이야기들을 일고 있으면 '결국에는 살아가는 이야기로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쉽게 하지 않는 마라톤을 - 정확하게는 달리기를- 그가 하는 이유에 대해서 듣고 있으면 그렇군 이라며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되니 말이다.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 달리기를 한다기 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살고 싶어서 지금을 위해서 달리고 있을 뿐이라는, 그리고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는 그의 이야기가 살아가는 하나의 원칙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즐거운 이유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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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1-28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다시..

하루 2009-01-28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부끄럽습니다. :)

김현진 2009-01-29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의 고갱이만을 쏙쏙 뽑아내서 리뷰를 쓰셨네요
이미 읽었지만 다시 읽고픈 책이네요.

하루 2009-01-30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갱이만 :)
언제고 하루키 에세이는 한번씩 다시 읽고싶어지는걸요. :)
 

   
 

그 중에 한 사람은 형 (그 사람도 마라토너) 으로부터 배운 문구를 마라톤을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머리속에서 되뇐다고 했다. Pain is inevitable, Suffereing is optional 이라는게 그의 만트라였다. 정확한 뉘앙스는 번역하기 어렵지만 극히 간단하게 번역하면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라는 의미가 된다. 가령 달리면서 '아아, 힘들다! 이젠 안되겠다'라고 생각했다고 치면, '힘들다'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젠 안되겠다'인지 어떤지는 어디까지나 본인이 결정하기 나름인 것이다. 이 말은 마라톤이라는 경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간결하게 요약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pp.8-9) 

강한 인내심으로 거리를 쌓아가고 있는 시기인 까닭에, 지금 당장은 시간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시간을 들여 거리를 뛰어간다. 빨리 달리고 싶다고 느껴지면 나름대로 스피드도 올리지만, 설령속도를 올린다 해도 그 달리는 시간을 짧게 해서 몸이 기분 좋은 상태 그대로 내일까지 유지되도록 힘쓴다. 장편소설을 쓰고 있을 때와 똑같은 요령이다. 더 쓸 만하다고 생각 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 -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pp.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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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씩 책의 출처를 모르는 상태에서 책이 올 때가 있다.
가끔씩 (작년초만 해도 꽤 자주였는데) 서평단으로 책이 오거나,
아니면 이벤트에 당첨이 됐었는데 망각의 저편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거나
한 적이 많아서 그런가보다. 얼마전에 책이 새로 도착했는데 <철학의 끌림>
알라딘 서평단에서 보내온 책 같기는 한데 아직 이 책에 대해서는 공지가 없어서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책에는 분명히 비매품 이렇게 찍혀있다)

당신은 어디에서 오신분인가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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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식 녹색뉴딜, 케인즈가 살아와도 힘들다"


[우석훈 칼럼] '사회적 경제'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


기사입력 2009-01-12 오전 10:32:25

 

사람들은 경제라는 말을 하면서도, 가끔 이게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는 점을 깜빡깜빡 까먹는다. 경제 상황표만 하루 종일 보고 있으면 경제를 이해할 수 있나? 그렇지 않다. 싫든, 좋든, 이게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복잡한 흐름 속에서 조금씩이라도 방향성을 잡을 수 있다. 그리고 1년 전, 2년 전, 이렇게 지난 일에 생겼던 일들을 가끔 복기해보는 습관을 가지시기 바란다.

지금 한국 경제의 상황 전개가 답답하다면, 1년 전 즈음의 일들을 환기해보시기 바란다. 막 대통령에 당선되고 물가가 올라가기 시작하니까, MB 품목이라는 걸 정해서 특정 소비재들의 가격을 통제한다고 한참 난리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그런다고 물가를 잡을 수 있지는 않다. 그게 그렇게 간단하면 피노체트 정권 등 중남미에서 '하이퍼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를 정도로 1000%는 쉽게 넘어가는 살인적 물가상승이 90년대에 있었겠는가? 독재자도 물가는 못 잡는다. 전두환은 잡았다. 그가 어지간해서는 경제 실무진의 경제운용에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일부 있다.

아파트 가격이 왜 내려가느냐고 죽어라고 아파트값 부채질하는 지금, 한국의 물가는 다른 나라와 달리 전혀 내려가지 않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는 지금, 한국은 유독 물가가 높다. 당연한 일이다. 물가 정책이라는 것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지금 정부가 쓰고 있는 토목공사와 기업 위주의 정책은 일견 합리적인 것 같지만, 실제 대다수 소비자들의 지출 여력 즉 '실질구매력'에 대한 대책이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재래시장에서마저 돈줄이 말라붙은 시점이다. 아무리 기업 정책을 쓴다고 해도, 제대로 시장이 작동할 리가 만무하다. 그런데 여기 사용해야 할 돈을, 자신을 지지했던 지방토호들과 중앙의 땅부자들이 대운하 공약을 기대하며 샀던 땅값 올려주기 정책을 쓰는 지금, 경제가 살아날 리가 있나?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는 지금 죽어가는 중이다. 지금 방식으로는 신선이 경제운용을 한다고 해도 어렵고, 정약용이 살아온다고 해도 뭘 하기가 어렵고, 케인즈도 안 먹힐 것이다. 상황은 그렇다.

게다가 산업정책은? 좀 미안한 얘기하자면, 지금 제조업을 포함한 산업에서의 정부의 조정 정책이라는 것은 짧게 보면 1년째, 길게 보면 한미 FTA 추진한다고 정부가 각 기업들에게 FTA 반대하지 말라고 말하던 3년째 '실종' 중이다.

지금도 최소한 제조업에서는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몇 가지 조치들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청와대 벙커에 들어앉은 경제 수장들이 그 안에서 뭘 하는지는 모르겠다. 실제 데이터를 제대로 검토하고, 분야별 상황을 점검한 흔적이 전혀 안 보인다. 왜 이런지를 설명할 수 있는 방식이 몇 가지 있기는 하지만, 좀 행정적으로 치사한 얘기라서 그만 두기로 하자.

그들이 청와대 벙커 안에 있든, 아니면 플라자 호텔 스위트룸에 있든, 지금의 경제팀은 위에서부터 밑에까지, '완전 고장' 상태라는 것이 나의 이해이다. 김영삼 정권부터 오랫동안 산업계와 관료들의 측근 거리에서 강만수 차관이 있던 IMF 경제위기 순간의 경제팀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위는 이상했을지 몰라도, 밑은 이상하지 않아서, 방향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위기 극복을 위한 몇 가지 종합진단들을 내렸었고, 최소한 '소통'이라는 것은 있었다. 지금은 움직이는 것도 없고, 소통도 없고, 지혜는 더더군다나 없어 보인다. 최소한 경제라는 눈에서, 지금 정부는 정부도 아니다.

물론 그렇다면 내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좋다고 생각했는가? 그건 아니다. 김대중 정부에도 잔소리 엄청나게 많이 했고,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아예 대놓고 비판을 해서, 당시 청와대 사람들이 나를 아주 불편하게 생각했었다고 전해 들었다. 최소한 경제라는 눈으로 볼 때, 정치적 지향과는 상관없이 경제적 성과와 생태적 성과, 이 두 가지의 눈으로만 사태를 판단한다. 돈은 돈대로 들이고, 국민은 국민대로 골탕 먹고, 국토생태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가는 길, 그게 지금 이명박 경제팀이 선택하는 것들이라는 것이 나의 이해다.

한 마디로, 나는 이 정부의 경제정책은 지난 주 이후로 완전히 포기했다. 아마 임기 내에, 국민경제라는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고, 임기가 끝났을 때에, 한국의 많은 사회지표와 경제지표는 중남미 국가들과 비슷해져 있을 것 같다. 이렇게 판단하면서, 정말로 나도 가슴 쓰렸지만, 지금 하는 일이 그렇게 밖에는 해석하기 어려운 것들만 골라서 한다.

그러나 쇼는 계속되어야 하는 법, 산 사람은 살아야겠기에 이 와중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고민해볼 수밖에 없다. 워낙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정책도 황당했기에 상대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정책이 괜찮아 보이기는 했지만, 형편 무인지경인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10년 전,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한국이 성과로 거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건 김대중 대통령이 분명히 잘 했다.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개념이 당시 한국에 도입이 되었는데, 이 장치가 미국식 양극화로부터 한동안 한국 경제의 약한 고리들을 지켜준 것이 사실이다. 만약 그런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장치 자체가 아예 없었다면, 지난 10년간 한국인의 경제적 삶은 지금보다 훨씬 고달팠을 것이다. 이 사회적 안전망의 한국 경제에 대한 긍정적 기여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훨씬 더 종합적이고도 입체적인 판단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

지금부터 수 년 동안, 아마 특별한 정치적 전환의 계기가 없다면, 우리의 정부 경제팀은 계속해서 '뻘타'를 날리고 있을 거고, 한국 경제는 계속해서 바닥으로 내려갈 것이다. 거시 경제는 원래 정부가 하는 정책을 수단을 주 조절변수로 민간부문과 소비부문을 보완적으로 움직이는데, 강만수 경제팀을 놓고 상상해볼 수 있는 것이 사실상 거의 없다. 어쩌면 좋을 것인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하라고 그랬나? 10년 전에 IMF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장치를 도입했다고 하면, 이번에는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라는 개념을 드디어 한국이 이해하고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게 나의 작은 소망이다. 정부는 사실상 건설업계와 토호들을 위한 일 외에는 거의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고, 나머지는 백화점식 레토릭 외에는 없다. 레토릭에는 실체가 없을 것이 너무 뻔하지 않은가?

시민이라고 해도 좋고, 국민이라고 해도 좋고, 사회적 주체라고 해도 좋다. 하여간 우리들이, 이번 금번 위기에서 결국 '사회적 경제'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만들어내서 실업도 극복하고, 유통에도 참여하고, 지방경제도 살리는, 그런 방법 외에는 위기 극복의 방법이 없어 보인다. 물론 이러한 사회적 기업에 대해서 김대중도 뭔가 하고, 노무현도 뭔가 했던 것이 사실이고, 현 정부에서도 뭔가 있기는 하다. 명목상 있기는 한데, '찔끔' 한다. 토목공사에는 명목상으로만 50조 원씩 척척 집어넣으면서 말이다.

물론 한국에 적합한 사회적 경제에 대해 나라고 딱히 정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야말로 무정형의 것에 가깝고, 아직은 이론화되지 않은 영역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이 '귀에 공구리 친' 정부와 경제가 이러니 저러니 하면서 입씨름하는 것도 귀찮고, 이게 다 허깨비 놀음이고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프레시안 독자와 귀한 시간을 놓고, 그런 하나마나한 소리나 하고 싶지는 않다.

다음 주부터는 가급적이면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얘기들은 줄이거나 최소한으로 하고, 우리가 맞게 될 위기, 그리고 그를 극복할 미래의 모습을 위해서 사회적 경제에 대해서 보다 많은 시간을 얘기할까 한다. 약간은 뜬금없어 보일 위험이 있지만, 우리가 살아갈 길은 그 길 외에는 없지 않나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강만수 장관 붙잡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미네르바처럼 감옥이나 가게 되고, 현실은 아무 것도 안 바뀌지 않는가? 감옥가는 게 두려워서가 아니라, 정말로 나나 프레시안 독자 여러분들의 시간 낭비일 것이라는 게 너무 뻔해서 그렇다.
 

/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 강사

 

출처 : 프레시안 우석훈 칼럼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112090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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