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라고는 하지만, 올해처럼 6월에 비가 쏟아지는건 처음이다. 6월에 태풍이 지나가질 않아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지를 않나 화려한 계절이다. 아침에는 바지단을 추겨 올리고 구두로 빗속을 찰박거리며 출근을 한다. 정장 바지라 역시 습기를 머금으니 몸에 휘감기는데, 이게 영 불편하다. 역시 이런 비오는 날에 회사에 출근하는 여인들이 치마를 입고 다니는 이유는 조금 알 것 같다. 주말이라면, 7부 바지를 입고 빨간 내 슬리퍼를 신고 투명 우산 - 이건 내 로망 - 을 쓰고 비 속을 자박자박 걸어다닐텐데. 현실은 아쉽지만 정장바지에 구두를 신고 출근하는 모습이다. 아 슬퍼.

 

오후에 출근하는 날 아침, 괜히 일찍 일어났다 싶지만 비가 너무 내려서 어쩔 수 없다. 그냥 있었어도 시끄러워 잠이 오지 않았을테니까 일단 일어나서 꾸벅꾸벅 거리고 있다. 그런데 이게 왠일 너무 비가 많이 내린다. 옥상에 어머니가 고추 모종 3개를 심어 놓으셨는데 슬슬 걱정이 된다. '비가 너무 오는데, 무사하려나. 지지대를 제대로 세워주지 않은거 같은데 괜찮으려나' 결국 우산을 들고 아이폰을 들고 다른 우산을 한개 더 손에 들고 옥상을 올라간다.

세상에, 옥상은 나무와 가로등이 잠겨있는 한강고수부지. 발등까지 물이 차오른 곳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 지지대를 약하게 세워준 탓인지 모종 한개는 - 사실 이제는 모종도 아니지만 - 옆으로 조금 쓰러져 있다. 부랴부랴 기울어진 줄기를 세워주고 지지대를 다시 받쳐주고, 끈으로 잘 고정해주기는 했는데 영 그 모습이 부실하다. 옆 집 고추와 방울토마토는 제대로 잘도 서있는데 우리집 고추만 힘이 없어 보이는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보면 운동경기에서도 지는 쪽을 응원하는게 조금은 습관인데, 이를태면 '이봐 힘내라구, 역전할 수 있어.' 랄까 , 괜히 작고 비바람에 약간 고추를 보니 마음에 스산하다. 결국 들고 올라간 투명우산 - 나도 아직 써보지 못한 우산인데! - 을 쓰워주기로 결정했다.

우산을 씌워주기 위해 옥상에 있던 빨래 건조대를 끌어다가 위치를 잡고 그 위에 우산을 올려놓는다. 날아가면 안되니까 우산과 건조대를 갈 연결해서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게 해놨다. 이런! 해놓고 보니 제법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우산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일단은 그냥 비바람을 맞는 것 보다는 나은거 같으니까. 일단 이렇게 거센 비를 피하고, 날이 개면 지지대를 세로 착실하게 해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옆집 고추와 비교해도 든든하도록 고정대를 세워줘야지. 출근하는 길 우산을 씌워준 고추를 생각하며 괜히 흐뭇했다. 이거 자기 만족인건가. 에이, 어떤 단어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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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7-01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사진이 안보여요. 빨간엑스 ㅠㅠ 사진 너무 보고 싶은데. 고추에 우산 씌워주신 바로 그 사진일거 아녜요!!
저 이 페이퍼가 좋아서, 정확히는 이 페이퍼를 적어낸 이 날의 하루님이 참 곱게 느껴져서 커피 한잔 사 드리고 싶어지지 뭐에요.

하루 2011-07-01 12:47   좋아요 0 | URL
아 다시 올렸어요 이런이런 왜 이런건지 모르겠어요.
약간 후일담을 전하면 퇴근하고 집에 가보니 고추는 잘 살아있는데
우산이 정말 바람에 안 날라간게 용할 정도로 엉망이 되어 있더라구요.
휘어진 우산대로 고추 지지대를 만들어주기로 했다는.
+우산에게 미안해요.

다락방 2011-07-01 12:48   좋아요 0 | URL
오옷. 저 근데 두번째 사진이 고추를 감싸는 첫번째 사진보다 더 좋아요.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