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줄도 꾸준히 톱 삼아 쓰면 나무를 베고, 물방울도 오래도록 떨어지면 돌을 뚫는 법! 도를 배우는 사람은 모른지기 힘써 노력해야 한다. 물이 모이면 절로 시내를 이루고 오이가 익으면 꼭지가 자연히 떨어지는 법! 도를 깨달으려는 사람은 모든 것을 천기(天機)에 내맡겨야 한다. <채근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갑자기 논어를 사서 읽다가 '이거 어렵네..'라고 중얼거린건. 모 출판사에서 나온 논어를 읽고 있는데 시리즈로 내놓는지 책 맨 마지막 장에 시리즈 광고를 해놓았다. 그 중에 한권이 <채근담> 이었다. 오래 전 기억을 더듬어 그렇게 읽기 시작했다. 채근담을.


몇일전에 회사에서 본 시험은 정말 결과가 안 좋았다. 나는 아직도 어른이 아니라 감정이 잘 추스리지 못하는 관계로 이런 결과를 예상은 했으나 받아 들이기가 힘들었다. 굳이 평정을 가장하지도 않았다. 분명 회사에서 난 꼴불견 이었을 것이다. 분명히.


이런 상태에서 <채근담>을 읽기 시작한거다. 사실 채근담은 '동양의 탈무드'라는 표현에 걸맞게 읽어보면 사실 별거 없다. 이런 말 나도 할 수 있다 정도의 말들이 빼곡히 들어있을 뿐이라고나 할까. 덕분에 읽는데 - 국역본이다 - 큰 어려움은 없다. 정말 술술 앉은 자리에서 훅 읽을 수 있는 채이다. 그런데 아마 내 마음에 갈피를 못 잡는 그런 상태였기 때문일거다. 이 책은 나에게 세상에 그리고 사람에 쉽게 흔들리지 말라 말하는데, 이 책을 읽는 나는 책을 읽으면서 더욱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있는거다. 이 책은 이런 의도가 아닐텐데...

그러다 저 구절을 읽었다. 저 구절의 원문에 해당하는 부분에 수적석천(水適石穿), 떨어지는 물방을이 돌을 뚫는다라는 말이다. 사실 이 구절은 내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좌우명으로 삼아야 한다면 이거 정도면 딱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말이다. 난 뭐든 느리다. 배우는 것도 느리고, 이해하는 것도 느리다. 그래서 항상 그 느림을 매꾸기 위해서 끈덕질만큼 채우기 위해서 버둥거리며 살고 있다. 그 버둥거림마저도 느린 나에게 저 말은 끊임없이 날 경각시키는 말이다. 그런데 저 말을 기대하지도 않은 이 책의 구석에서 우연히 조우한 것이다. 음, 정말 조우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책이 있고, 그런 구절이 있게 마련이다. 나를 위해 쓰여진 것 같고, 난 덤덤하게 읽으려고 하는데 그 덤덤함을 위해 읽고 있는 책이 사정없이 내 마음을 훑어내려가고 있는 그런 기분 말이다. 오늘도 내 회사에서 내 마음은 갈피를 잡기 못했고, 난 오늘도 그 안에서 조금이라고 나아지기 위해 버둥거리고 있다. 변한건 없다. 하지만 이런 말로 위안을 삼아본다. 지금 이 버둥거림이 언젠가는 돌을 뚫는 물방울이 될거라고.

적절한 때에 필요한 딱 적절한 만큼의 위안이자 채찍질이다.
지금 내게 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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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0-09-16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회사 셤 결과가 안좋았나 보군요...그래두 파이팅~ 하시길~

채금담이나 노자 등 동양의 고전은 암생각 없이 읽으면 휘리릭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대학 1학년 때 도덕경과 대학 그리고 논어를 읽고 뭐야, 별거 없잖아~ 라고 했었는데..나이가 들면서 한귀절 한귀절의 깊이가 한이 없더군요~ 동양의 고전은 그래서 삶의 지혜라고 하나 봅니다..채근담도 역시 그렇죠~~^^

하루 2010-09-22 20:25   좋아요 0 | URL
아 정말 안 좋았어요. 음 다음에 더 노력하죠 뭐 :)

모든 책이 그렇지만 고전은 나이가 들어서 읽는게 정말 다른 것 같아요. 예전에는 사실 고전은 제대로 읽어본적이 없지만, 나이가 드니까 좀 다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