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회계일을 하고 있다. 회계사나 그런건 아니고 조금 특별한 회계일을 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사실 이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내 일을 뭐라고 제대로 설명해본 적이 없다.

난 대학에서 회계학을 제대로 배우지 않아서 회사에 들어와서 하나씩 배웠다. 다행히 회사는 당시 신입들에게 교육을 시켜주었고, 1달 정도의 교육 후에 일을 시작했다. (그 당시에 그 한달 교육이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모른다.) 물론 한 달을 배웠다고 회계를 알 수 있는건 아니었고 정식 회계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 회계의 조금 다른 버전을 공부하려니 암담했던 것도 사실이다.. 더군다나 세무관련 전공을 하던 친구도 있었고, 경영학을 전공한 친구도 있었는데, 난 영문학과 경제학을 전공해서 회계의 회자도 모르고 일을 시작했다.

사실 처음에는 아는게 거의 없어서 매일매일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하루하루 일을 처리하면서 배우는 그런 나날들이었다.(뭐 지금도 비슷할려나) 뭐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오늘 하루 처리한걸 공부하고, 시간이 날때마다 짬짬히 교육 시간에 들었던 내용을 하나씩 다시 더듬었던 그런 시간이었다. 일을 겪는만큼 늘어간다고 해야하려나. 사고를 치고 혹은 다른 사람이 친 사고를 수습하고 문제가 생긴부분을 공부하고 시스템을 공부하고, 하나씩 하나씩 쌓여가는게 느껴지는 그런 생활이다.

회사는 반년에 한 번씩 사원을 대상으로 시험을 본다. 회계시험인데, 작년부터는 관련된 법도 시험 범위에 더해졌다. 학교를 졸업하면 적어도 자의로 보는 시험은 있을 지언정 타의로 보는 시험은 없을 줄 알았는데 그건 오산이었다. 하지만 시험이라고 해서 딱히 일을 하는 시간에 공부를 할 수는 없으니, 일이 끝난 이후에 짬을 내서 하루에 한 파트정도 정리를 해 나가는 그런 나날들이다. 그리고보니 처음 시험을 보던 시절에는 시험보기 1주일 정도는 사원들이 무더기로 12시 정도까지 남아서 공부를 하고 가곤 했었다. 뭐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 같지만.

아무튼 시험이라는게 사회에 나와서 준비를 하니 조금은 더 학생시절보다 애증의 대상이 된 듯 하다. 사실은 애증이라는 단어도 뭔가 2% 쯤은 부족해서 내가 느끼는 이 기분을 정확히 잡아주지 못한다. 정말 보는게 싫기는 한데, 시험을 위해 알고 있는걸 하나씩 정리하면서 내가 뭘 알고 있는지 뭘 모르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구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건 정말 내게는 대단한 변화이다. 학생 시절에도 시험을 줄기자체 봤지만, 시험을 보고는 결과를 알고 넘어가는게 끝이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토익시험 각종 시험등등 대부분의 시험은 결과를 위한 그런 시험이었다. 그래서 준비를 하고 결과를 알고 끝이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밥벌이를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시험공부를 하면서 내가 아는것과 모르는걸 정확히 구분하게 된거다. 이건 생각해보면 생존(?)을 위한 냉철함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는데, 모르는 부분을 빨리 파악해서 정리를 해야 이 부분 떄문에 일을 하면서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걸 깨닫게 된 것이다. 요컨데 그런 상황은 절대 만들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이라고 해야할까. 다른 일반 사무회사들은 어떤지 난 잘 모르겠지만,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개인의 업력이 회사의 시스템을 넘어설 정도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굳이 회사는 사원을 대상으로 시험을 보고 있는 것이고. (사실 회사도 좋을 이유가 없겠구나 싶다) 아무튼 이번 시험은 9월 초에 있어서 한 부분씩 짬을 내서 정리를 시작하고 있는데, 정리를 할 수록 내가 모르고 있는 부분이 절실히 다가오고 있다.

참 회사생활을 하면서 보는 사내 시험이란 이런 복잡미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아,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본 적은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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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8-29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존을 위한 직장인의 시험...참, 이거 거시기합니다..
이렇게 모르고있었는데도 그동안 대충 대충 굴러갔구나~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옵니다--;

하루 2010-08-29 20:50   좋아요 0 | URL
아 맞아요. 정말 이렇게 모르고 있는데도 정말 용케도 지금까지 굴러왔네. 라는 그 생각,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