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리 편지 창비아동문고 229
배유안 지음, 홍선주 그림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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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냐? 누이도 쉽게 익히더냐?"
"예,저하고 마당에서 글자 놀이도 합니다. 그런데 누이는 할아버지가 부자이고 양반인데도 근심이 있는 게 이상하다고 했습니다."
"허허, 너와 네 누이가 내 근심을 많이 덜어 주었느니라."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할아버지는 말없이 빙그레 웃었다. 천천히 웃음을 거두며 멀리 들판을 바라보았다.
장운은 고개를 갸웃했다. 옆에서 보는 할아버지 얼굴이 점점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할아버지 입에서 또 가느다란 한숨이 새어 나왔다.-35쪽

장운이 아예 바닥에 앉아 통곡을 해 대자 영감은 어쩔줄 모르고 거푸 헛기침을 했다. 그러다가 멈출 기미가 안 보이자 서둘러 자리를 떴다. 장운은 주저앉아서 그 동안 참았던 설움을 다 토해 내듯 오래 울었다. 막힌 속이 뚫린듯 후련했다.
장운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산은 하루가 다르게 가을빛으로 물들어 갔다. 장운은 산에 올라 나뭇단을 꾸리고 나서 정자로 올라갔다. 흙바닥에도 정자 위에도 할아버지의 흔적은 없었다.
'이제 정말 안 오시려나..'
할아버지가 남긴 편지를 품에서 꺼내 다시 읽었다. 슬픈 마음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장운은 먼지 쌓인 마루에 손가락으로 이런 저런 글자를 쓰면서 누이와 할아버지를 생각했다.-59쪽

장운은 토끼 눈 할아버지가 준 종이를 펴고 먹을 갈았다. 종이와 먹을 보니 새삼 토끼눈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할아버지, 누이가 편지를 보내왔어요. 할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글자로 편지를 써 보내왔다고요.'
장운은 왼손으로 종이를 누르고 오른손으로 붓을 들어 글을 썼다. 아버지가 바싹 다가와서 장운의 손놀림을 보았다.-77쪽

"낮에 점밭 아저씨가 다녀갔다."
"점밭 아저씨가요?"
"그래, 정 어려운 형편인가 와 봤다고, 참 고마운 사람이다."
그러고 보니 점심 먹고 나서 일터에 점밭 아저씨가 내내 안 보였던 것 같았다.
'우리집엘 왔었구나.'
"좋은 기회라고 하더라. 갔다 오면 여기서도 석수로 인정해 주고. 네가 손이 매워서 한 재목 할 것 같다면서 웬만하면 한양엘 데려가고 싶다더구나. 내가 그 말을 듣고 어찌나 고맙고 마음이 뿌듯하던지.."
아버지는 거의 눈물이 글썽한 얼굴이었다.
"점밭 아저씨가 정말 그렇게 말했어요?"
장운은 내심 기뻤다 .일터에서는 한번도 칭찬 같은 걸 안 하던 어른이었다.
"그래 나도 들었다. 이 자식이 맹탕은 아니었나 봐."
오복이 장운이 귀를 잡고 쑥 잡아당겼다. 난이가 소리내어 웃었다.-149쪽

토끼눈 할아버지였다. 장운은 정신이 아뜩했다. 붉은 바탕에 금빛 수가 화려한 옷을 입고 서 있는 분은 분명 또끼 눈 할아버지였다.장운은 온몸이 굳어 버리는 것 같았다. 그러다 퍼뜩 정신이 들어 머리를 조아렸다.-198쪽

여름내내 보아온 거지만 정을 내려놓고 몇 걸음 물러서서 보는 연꽃 확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돌같지 않은 , 연하디 연한 꽃잎이었다. 장운은 가슴이 뛰었다..코ƒP이 찡했다.갑출이 옆으로 와서 장운의 어깨를 토닥였다.
"장똘아 , 인마. 완성했구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이제막 핀것 같네..물길까지 터서.흠없이 다듬었구나."-207쪽

물이 들어와 펑퍼짐한 연꽃 속에서 찰랑였다. 마치온 세상을 연꽃이 감싸고 있는 듯했다. 살짝 아래로 처진 꽃잎 하나가 물길을 터 주었다.
맑은 물이 연꽃에 감싸였다가 다시 흘러내렸다.-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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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9 0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유 2006-09-29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오후에 받아서 저녁먹고 읽었어요..금새 읽어져 버려서 아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