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짐
정상명 지음 / 이루 / 2009년 5월
장바구니담기


채소 쌈에 얹어 먹으려고 앞마당 텃밭에 풀을 뜯으러 나갔는데 사방이 어둑어둑 했습니다.
제가 찾는 풀은 쇠비름인데 이 풀이 몸에 좋다네요.
쇠비름은 예쁘게 생긴 풀입니다.
흙에 납작 엎드려 동그란 잎사귀를 활짝 펼친 모습은 사랑스럽기 그지없지요.
한낮의 열기가 남은 흙은 저녁이 되었으나 아직 뜨겁고 매우 조용했습니다.
저는 밭고랑에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아, 그런데 쇠비름은 벌써 잠자리에 들었네요.
이파리를 살포시 닫고 고개를 갸우뚱한 채로 잠이 들었네요.
그 모습이 어찌나 여리고 애잔한지요.
감히 먹겠다고 욕심 사나운 손을 들이댈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잘 자라~'하고는 일어섰습니다.
앞산에서는 둥근달이 막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2008)-16쪽

저는 지금 큰딸의 기억을 등에 업고 , 어느새 훌적 커서 친구가 된 작은딸의 손을 잡고 남은 생을 걸어갑니다. 큰 딸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가 진 짐들 중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꽃짐입니다. 어느 누구라도 그래야 하겠지요. 고단하고 무겁기만 했던 한평생의 어떤 짐도 마침내는 꽃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2004)-37쪽

세상은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바쁘게 돌아가고 있고, 사람들은 어디에서 뭘 하는지도 모르면서 큰 흐름에 둥둥 밀려 떠내려가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이 세상 어느 한 구석에서 민들레는 하늘을 향해 꽃을 피워 올리고, 들판에서 일하다 말고 그 꽃대를 꺾어서 피리를 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49쪽

이런 저런 생각들은 아주 조금만 하게 하시고
드디어는 그 생각조차 모두 버려
오로지 사랑 하나만 남은
그런 무서운 사람이고 싶습니다.(1993)-101쪽

이 길로 들어서면 갑자기 마음이 고즈넉해지면서 맑게 씻기는 느낌을 받습니다. 나무 잎사귀들이 조용한 길바닥에 햇살과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얼룩얼룩 푸른 그림을 그려놓는 도서관 언덕길을 올라가다가 잠시 고개를 들면, 푸른 언덕 위로 흰 구름이 동동 떠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도서관 진입로는 최소한 이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116쪽

이 시대는 우리가 침착해질 기회를 잃게 했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내가 가는 이 길이 과연 옳은 길인가, 이것이 진정 내가 바라던 삶인가, 생각할 틈을 없애버렸습니다. 독서는 우리를 침착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오랜 독서 생활을 하신 분의 얼굴에서는 조용하고 단단한 힘이 배어나오는 걸 느낍니다.(2008)-11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