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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2 : 심장에 남는 사람 명의 2
EBS 명의 제작팀 엮음 / 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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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인간, 무병장수를 꿈꾸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살려는 꿈, 즉 ‘무병장수’의 꿈은 인간이 꿈꾸던, 오래된 꿈이었다. 정작 일상에서 제 몸 하나 돌보지 않은 채 생활한다. 그러다가 건강을 잃고선 지나온 삶의 습관을 되돌아보며 후회한다. 낡은 습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깨우치고도 일상으로 돌아와서는 몸이 보내는 경고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우리는 잃어봐서 알고 앓아봐서 얻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인간은 생로병사의 고통 속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을지 모른다. 고통이 있기에 기쁨도 알 수 있다는 역설(逆說)이 늘 무겁게 어깨를 짓누른다.   

 

 

_ 명의는 무엇으로 사는가

『명의2』는 EBS 메디컬 다큐멘터리에서 조명한 130여명 의사들 중에서 엄선한 명의 17인이 펼치는 의료 현장 모습과 그들의 애환을 다룬다. 인체 각 장기가 하는 기능, 장기별 질병과 그에 따른 치료술 등을 본문에서 간략하게 설명하거나 각주로 처리한다. 각 장이 끝나면 사진 자료와 함께 소개하여 의학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 친절한 길잡이 정보도 가득하다.

병원 수술방까지 넘나들면서 집필진은 명의들이 펼치는 의술을 눈으로 보듯 전해준다. 마치 눈으로 현장을 목격하듯 읽어내려 가면서 17인의 명의들에게서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먼저 의사 자신과 그 가족보다는 오로지 아픈 사람들에게 쏟는 그들의 ‘애정과 열정’을 들 수 있다. 또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걷고 때론 비난마저 감수하며 묵묵히 환자들에게 새로운 삶을 찾아주려는 ‘노력과 집념’도 빠트릴 수 없다. 마지막으로 명의라는 칭찬에 쑥스러워하는 ‘겸손’을 엿볼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들은 모두 의술을 넘어 인술을 펴는 사람들인 것이다.

명의들이 보여준 인술뿐만 아니라 생명의 경이감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우리가 평소 생각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만큼 우리 신체는 면역체계가 잘 보호하고 있다’(352쪽)는 점이나 ‘아기들은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비밀은 바로 그 힘’(385쪽)이라는 말 속에서 살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말 그대로 생명, 그 생명이 보여주는 경이로운 모습에 숙연해진다.  

 

 

_ 건강한 삶을 사는 길

현대의학은 몸에 나타나는 질병은 마음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한다. 만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스트레스가 바로 그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겪고 산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하지만 지나친 스트레스는 질병을 일으키는 결정적 원인이 되기도 한다. 명의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건강하게 사는 방법은 적절한 운동과 균형있는 식생활, 올바른 생활 습관이다. 

아이이든 어른이든 책상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며 몸을 혹사하는 현대인들. 이미 잘못된 생활 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 줄도 모른다. 또 혀만을 즐겁게 하는 음식들이 달콤하게 유혹을 즐긴다. 그러다가 점점 건강을 잃어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렇기에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도 가볍게 신나게 즐길 수 있는 ‘생활 체육’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그 저변을 확대할 필요가 있겠다. 

“1년에 한 번만이라도 산부인과에 가서 검진을 받아야 합니다. 잊어버리기 쉬우니까 생일이 들어 있는 달에 꼭 가세요”(160쪽)라고 강조하는 남주현 교수의 말처럼 산부인과에 대해 여성들이 지닌 잘못된 편견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것은 아닐지 생각해봐야 한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산부인과에 다니는 모습을 곱지 않게 쳐다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을 하루빨리 고쳐야한다. 결혼한 남성들만이라도 아내에게 산부인과 진료예약을 생일선물로 하는 것은 어떨까. 시간이 허락된다면 아내와 산부인과에 함께 가는 것도 좋겠다. 혹시 아내가 남자 의사를 꺼려한다면 여자 의사가 진료하는 산부인과를 선택하는 센스도 필요하리라.   

 

 

_ 생명을 살리는 노력엔 경계가 없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아쉬운 점이 남는다. 양의만을 언급한 점이다. 한의사들 역시 의료현장에서 건강한 삶을 누리도록 온몸으로 헌신할 터인데 왜 다루지 않았나 싶다. 아직도 우리 의료계에는 양의와 한의간에 보이지 않는 알력이 있다. 중국의 경우, 양의와 한의가 협진하여 진료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 치료효과도 높다고 한다. 우리도 양의와 한의가 협력하여 치료하는 사례가 없진 않지만 아직 양의와 한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강이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무병장수의 꿈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보인다는 점에서 두 의학 모두, 나름대로 가치가 있으며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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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자유를위한정치>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빵과 자유를 위한 정치 - MB를 넘어, 김대중과 노무현을 넘어
손호철 지음 / 해피스토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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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나라 어느 고을에 존경받는 지식인이 살았다. ‘북곽 선생’이 바로 그다. 그런데 그가 그 고장에서 열녀로 추앙받지만 실은 자신의 다섯 아들이 아버지가 다른 과부 ‘동리자’와 비밀리에 사랑을 나누다가 동리자의 다섯 아들에게 들통 나는 바람에 도망친다. 도망치던 북곽 선생은 호랑이를 만난다. 밖에선 선비다운 모습을 보이지만 안에서는 부도덕한 행실을 남몰래 일삼던 북곽 선생을 호랑이는 호되게 꾸짖는다. 호랑이에게 목숨을 구걸하던 북곽 선생은 호랑이가 소리없이 떠난 줄도 모르고 머리를 조아리다가 지나가던 농부에게 발견된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든지 또 다시 거짓을 말하며 자신의 위신을 세우기에 급급하다. 

조선 후기 북학파 지식인 연암 박지원이 쓴「호질」이야기다. 연암은 겉과 속이 다른 지식인의 두 얼굴을 꼬집으려고 호랑이를 등장시켰을 것이다.『열하일기』에 수록된 글이니 청나라 연행 중에 들을 이야기를 기록했을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북곽 선생과 같은 지식인이 우리 시대에도 있다는 사실이다. 조선 시대 지식인의 본보기는 선비였다. 선비는 말대로 행동하고 행동대로 말하려고 했다. 그런 선비정신이 사라지는 현실을 연암은 꾸짖고 싶었을 것이다. 지식이 부조리한 권력을 차지하거나 행하는 도구로 전락해 버린 시대는 불행하다. 지식인은 사회 모순과 부조리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늘진 곳에 햇빛이 들도록 실천하는 사람이지 않겠나 싶다. 

선거철이 되면 으레 ‘폴리페서’, 즉 학자 특히 대학교수가 정치에 참여하는 문제로 논쟁이 재연된다. 대학교수가 후학을 지도하는 데 전념하지 않고 해바라기처럼 정치권력에 기생하는 모습이 좋지 않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말로는 정의를 외치지만 행동으로는 불의를 자행하는 모습이 요즘 지식인에게 자주 보인다. 목청껏 사회를 비판하던 지식인들은 다 어디에 있는가? 정녕 지식인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시대가 돼 버린 것인가. 

위기다. 정말 심각한 위기다. 대한민국에서 정치가 실종됐다. 아니 과잉됐다. 저자는 지금 우리 시대를 위기로 진단하고 ‘신자유주의적 공안국가’로 현 정부를 규정한다. 역주행하는 대한민국을 바로잡으려면 우선 민주화 운동 진영이 뼈아픈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며 힘주어 말한다.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신자유주의를 그대로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며 앞으로 진보정치가 나아갈 바를 제시한다. 87년 민주화의 봄을 피를 토하며 외쳤지만 다시 겨울이 찾아온 대한민국에서 어떤 정치가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저자는 자신의 간절한 염원을 제정구 의원에 목소리에 실어 이렇게 말한다.

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사회과학 공부가 아니라 더 높은 상상력과 더 깊은 성실성”이며 ‘물질의 눈’, ‘물리적 힘의 눈’, ‘따로 살기, 끼리끼리 살기의 눈’에서 ‘사람의 눈’, ‘생명의 눈’, ‘함께 살기의 눈’, ‘가난의 눈’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다. 정곡을 찌른 것이다. (375쪽, 강조 : 인용자)

정치 혐오를 넘어 정치 환멸에 이른 지금. 우리는 너나없이 위로부터의 정치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정치를 꿈꾼다. 그런데 그간 정치인들에게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국민에게 부여된 권리이며 양도할 수 없는 신성한 의무인 선거권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또 선거철만 되면 국민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다가 국회의원만 되면 목에 힘을 주며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정치인들도 늘어났다. 무엇을 위한 정치보다 누구를 위한 정치를 생각해야 한다. 

경인년, 호랑이 해를 맞이하니 북곽 선생을 꾸짖던 호랑이가 더욱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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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공간>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역사의 공간 - 소수성, 타자성, 외부성의 사건적 사유
이진경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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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칼은 선할까 악할까? 강도가 든 칼은 남의 목숨을 위협하니 악할 테고, 요리사가 잡은 칼은 생명을 살릴 테니 선할 것이다. 그렇다면 요리사가 칼로 갑자기 손님을 협박하면 악한 칼이겠다. 강도가 집으로 돌아가 제 아이들에게 요리를 해주면 선한 칼이 될 터이다. 이렇듯 선악 판단은 두부모 자르듯 선명하게 구분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사물이나 현상은 상황을 벗어나거나 맥락을 떠나면 의미는 새롭게 만들어진다. 무엇과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같은 대상도 의미가 달라지게 마련인 것이다.

- 둘.

이진경은 코뮨주의자다. 맑스주의의 한계를 절감한 그는 들뢰즈의 사유를 만나면서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힘을 찾았다. 공동성, 즉 ‘동질적인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것이 만나 함께하는 능력’(557쪽)에 바탕을 둔 새로운 공동체 ‘코뮨’에 주목한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연구공간 수유+너머’ 공동체를 ‘코뮨’의 실현으로 여기고 그의 친구들과 지금도 실험중이다. 

- 셋.

제 1부에서는 서구 근대적 역사관념과 역사의 주체, 진보의 개념을 되짚고서 동일성의 폭력을 고발하며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우선 서구 근대적 역사관념에 드리워진 폭력을 주목한다. 맑스주의나 실증주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들여다보면서 둘 다 역사의 단일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단일하고 보편적인 역사 안에 모든 이질적인 것들을 포섭하는 ‘동질화’와 선형적 발전 단계에 따라 등급을 매겨 평가하는 ‘선형적 위계화’를 통해 근대 역사를 단일하고 목적론적인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관념을 비판하며 보편사에 갇힌 복수의 시간과 리듬을 되살리려는 시도로 소수적 역사에 주목한다. 

다음으로 역사의 주체로서 소수자를 살핀다. 근대적 역사관념을 바탕으로 한 역사 속에서 억압 받는 피해자로 규정된 소수자를, 다수자의 억압에 저항하고 투쟁하는 긍정적 · 적극적 의미를 부여하며 되살려낸다. “소수적인 역사란 소수자들이 역사 속에서 올바른 가치를 인정받고 제대로 된 지위를 할당받게 만드는 양심적 역사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역사화될 수 없는 사건을 역사로부터 돌발하게 하고 이로써 역사 안에서 다른 돌발의 지점들이 만들어지도록 촉발하는 역사”(103쪽)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진보의 이념, 즉 적분적 진보와 미분적 진보로 나누어 살펴본다. 진정한 진보는 지배적인 기준과 척도에서 끊임없이 벗어나며 새로움을 만드는 진보, 이미 있었던 기준과 척도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기준과 척도를 비판하면서, 행동하고 사유하는 진보라는 것이다.

- 넷.

제 2부에서는 서구적 근대를 우리가 어떻게 내면화했는지를 탐구한다. 1부에서 역사관념과 진보의 이념에 대한 고찰은 자연스레 우리의 근대로 시선을 돌린다. 조선 후기 <세시기>를 검토하며 제의에 담긴 소수적 움직임에 주목한다. 그런 후 20세기 초 <독립신문>과 <대한매일신보>를 들여다보면 서구 근대적 시·공간의 관념뿐만 아니라 서구 근대적 역사관념까지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고찰한다. 1907~1908년에 서구 근대적 시·공간의식 및 역사관념을 바탕을 한 용어들이 유독 증가하는 현상에 대한 원인을 찾는 일은 ‘입증할 방법이 없다’(281쪽 각주 4)고 하면서 담론적 변화 양상에만 주목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얼핏 ‘민족의식과 결부되어’(281쪽) 있다고 언급한 점을 미루어 볼 때, 일본 제국주의의 손아귀에 포획되어 가는 대한제국의 현실을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일제라는 다수자에 저항하고 투쟁했던 소수자의 역동적 움직임, 특히 정미의병의 모습은 ‘역사적 포획’에서 벗어나려는 ‘반역사적 돌발’이라고 할 수 있진 않을까. 1907년 전후 바람 앞에 촛불 신세가 되어가는 대한제국의 현실에서 나타난 소수자의 움직임에 눈을 감는 것은 아닐지. 어찌보면 정미의병도 일제라는 다수자에 포획된 소수자로 볼 수도 있으리라. 

- 다섯.

3부에서는 우리 근현대사를 살피면서 담론 분석을 행한다. 먼저 ‘동아신질서론’에 대응하는 조선 지식인의 모습을 고찰하면서 식민지 인민이 과연 말할 수 있는 자격을 지닐 수 있는가를 논의한다. 이어서 가족계획 담론을 검토하면서 근대국가가 실행하는 생명정치학의 기술을 분석한 후 비가족적인 공동성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종류의 가족 공동체가 생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코뮨주의를 말한다.

다음으로 참여정부 시절 한미 FTA와 MB정부의 실용주의를 비판한 뒤 촛불시위에서 ‘흐름으로서의 대중’이 보여준 가볍고 즐거운 혁명을, 1부에서 언급한 역사 주체로서 소수자의 본보기로 언급한다.

- 다시 하나, 그러나 다른 하나

저자의 논의는 니체, 푸코, 들뢰즈 등이 서구 근대를 의심의 눈초리로 매섭게 파헤친 ‘동일성의 폭력’에 대한 고발을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저자는 보편적 역사의 그늘에 가려진 소수자가 당당하게 역사의 주체가 되길 믿으며 공동성에 뿌리를 둔 공동체, ‘코뮨’을 꿈꾼다. 그러나 예찬에 가까운 목소리로 그가 말하는 소수자가 과연 그의 믿음만큼 순수하게 건강한지는 의문이다. 일상에서 소수자가 보여주는 던적스러운 모습들에는 눈감아 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을 만큼 맹목에 가까운 듯한 낙관적 믿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칼은 선하지 악하지 않다. 그 칼을 사용하는 우리 인간들이 어떤 마음으로 사용하는지 중요하지 않을까. 또한 자본이 지닌, 강력한 포획력에 우리들이 쉽게 벗어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렇듯 개념과 이론은 성긴 그물과 같아서 복잡다단한 현실을 담아내기엔 늘 역부족이다. 결국 문제는 실천인 것이다. 사람살이에서 실천은 참 어렵고 힘들다. 그렇다고 심각한 회의에 빠질 필요는 없다. 희망이란 던적스런 세상을 오지게 맛보는, 맵짠 인생에게 주어지는 선물일지 모른다. 차별이 아니라 차이를 존중하며 더불어 사는 지혜를 쉼없이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이미 다가와 있지 않을까 싶다.  

끝으로 '우충좌돌'하면서 '기우뚱한 균형'을 강조하는 김진석이 최근 출간한 책『더러운 철학』에서 제기한 저자에 대한 비판은 귀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이진경을 비롯한 노마디즘 옹호자들은 개념적 구분에만 매달리면서 ‘노마디즘’이 들뢰즈/가타리의 숙성한 사상이고 나쁜 자본과 전혀 상관이 없으며 따라서 노마디즘이 침략적 성격을 띠는 것도 자신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마음 편하게 말한다. 그는 노마드뿐만 아니라 ‘매끈한 공간’과 ‘외부성’이 그 자체로 순수하고 초월적인 혁명적 개념인 것처럼 말하지만, 들뢰즈/가타리는 여기서도 그것을 개념적으로 구별하는 일에만 머물지는 않았다. (『더러운 철학』, 276쪽)
 
   
   
 

더욱이 이진경은 ‘노마디즘’을 거의 부드러운 문화상품으로 만든 후에 결론으로 ‘코뮨주의’를 주장하는데, 이것도 전쟁기계를 간과하거나 은폐한다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 더욱이 폭력의 수많은 흐름에서 전적으로 벗어난 우정과 사랑의 공동체를 목적으로 삼을 때, 자칭 노마드들은 알게 모르게 그쪽으로 줄을 서는 듯하다. 우애에 근거한 공동체는 훌륭한 가치지만, 그걸 노마드의 선험적 목적으로 상정할 필요는 없다.‘전쟁기계’에게 전쟁이 목적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노마디즘은 침략주의라고 공격한 생태주의자 천규석이 내세운 것도 모든 국가로부터(심지어 복지국가도) 완전히 벗어난 공동체주의다. 노마디즘은 어떤 오류도 없다고 말하는 이진경도 비슷한 코뮨주의를 칭송한다.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다. 이들은 노마드의 한쪽 면만 극단적으로 과장했기 때문이다. (『더러운 철학』, 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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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ek 2010-02-23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에게 맹목적으로 기대고 있는 저에게 일침을 해주시는 글 같습니다. 잘 배웠습니다. ^.^;

野理 2010-03-02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와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면서 독서를 하려고 노력중입니다. 늘 어렵네요. 좋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를 일깨우는 글쓰기>를 읽고 리뷰해주세요.
나를 일깨우는 글쓰기
로제마리 마이어 델 올리보 지음, 박여명 옮김 / 시아출판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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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갑자기 사는 게 시뜻하다. ‘왜 사냐건, 웃지요’라지만 웃을 일도 없다. 지루한 일상이 반복될 뿐이다. 머릿속엔 어느새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며 연신 자신을 꾸짖는다. 그래 봐도 뾰족한 수가 없다. 답답하기만 하다. 메모지가 보인다. 펜을 들어 몇 자 끼적인다. 이내 글자 위에 까맣게 환칠을 하고 메모지를 북북 찢는다. 산산 조각난 종이를 공처럼 뭉쳐 휴지통에 휙 던져 넣는다. 한숨을 길게 내쉰다. 

 

1.

삶이 끝 간 데 없이 허무할 때 당신은 무얼 하시나요?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있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밀려올 때 당신은 어떻게 하시나요? 별 의미 없이 종이 위에 몇 자 긁적이진 않나요? 글을 써 보는 건 어때요? 힘들다구요? 자, 그럼 이렇게 해 보세요.
 

스텝 원, 짜~~잔. 우선 백지공포증을 극복하라!
누구나 글 잘 쓰는 사람을 마냥 부러워하죠. 그런데 정작 자신은 그런 글재주가 없어 쓸 수 없다고만 합니다. 허나 타고난 천재는 없고 길러진 천재는 있는 법. 누구나 연습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답니다. 학창시절 글을 썼다가 선생님께 빨간 글씨로 도배된 자신의 글을 받아 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빨~간펜! 무지 공포스럽죠. 그 후론 스스로 자신의 글을 검열하진 않았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이제부턴 그냥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무작정 써 보는 겁니다. 

그래도 어렵다구요. 그럼 스텝 투, 짜~잔. 자신만의 글쓰기 환경 조성하라!
당장 문구점으로 뛰어가 노트와 펜을 사는 겁니다. 그것도 자신이 제일 맘에 드는 걸루다. 마치 애인에게 선물하듯 자신에게 선물하는 겁니다. 집으로 돌아와 방문에다 ‘홀로움을 즐기는 중’라고 붙여 두세요. 홀로 책상에 앉아 좀 전에 산 노트와 펜으로 그냥 자신에게 말을 걸듯 써 내려가는 겁니다. 조용한 분위가가 낯설다면 음악을 살짝 틀어두는 것도 좋아요.
 

글쓰기 참 쉽죠~잉! 

2.

낙서하듯 써 내려간 글을 소중히 보관하였다가 최소한 하루가 지난 후에 꺼내어 읽어보세요. 자신과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서 점차 억압된 감정의 찌꺼기들이 사라지며 새롭게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인간은 의미가 없는 일에 쉽사리 싫증을 냅니다. 의미를 좇는 존재라고나 할까요. 

이젠 제대로 글을 써 보고 싶겠죠? 그렇다면 색다른 글쓰기를 시도해 보세요. 제가 이 책 2부에서 언급한 자동기술법, 클러스터, 마인드맵, 시, 콜라주, 두 단락 기술, 다이얼로그와 같은 기법을 적용해 보세요. 대신 진솔하게 써야 하는 거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렇게 꾸준히 쓰다보면 상처 난 마음이 치유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글은 힘이 셉니다. 여러분이 상상했던 것보다 치유의 힘이 놀라우리만치 강하죠. 당신이 살고 있는 한국, 어느 시인은 살아온 만큼만 쓰라고 했다죠. 삶이 녹아있는 글을 쓰면 내면이 치유되고 남도 공감합니다. 삶이 배어 있는 글을 써 보도록 하세요.

3.

당신이 읽은 제 책, 152쪽을 펴 보세요. 거기에 예식에 대한 정의가 있지요. 습관처럼 반복하는 행동이 아니라 자신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여 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행동을 예식이라고 합니다. 여태껏 당신이 제 말대로 글 쓰는 연습을 했다면 이젠 글쓰기를 예식으로 여기고 일상에서 틈틈이 글을 쓰도록 노력해 보세요. 그러다보면 재미 없는 일상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나날로 바뀔 거예요. 때론 집 근처를 산책하세요. 펜과 작은 노트를 들고서. 칸트도 니체도 산책을 즐겼답니다. 그들이 세상에 내놓은 책들도 산책하면서 구상했던 겁니다. 걸으며 사유하기를 즐겨 보세요. 이젠 헤어질 시간이군요. 부디 올해는 재미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길 빌게요. 글쓰기와 함께.

 

- 스위스에서 저자가

 

# 위 글은 필자가 저자의 처지에서 독자에게 띄우는 편지 형식으로 쓴 가상 편지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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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합창단>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불만합창단 - 세상을 바꾸는 불만쟁이들의 유쾌한 반란
김이혜연, 곽현지 지음 / 시대의창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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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제가 된 민주주의를 아시오, 참 큰일 났소. 

자유를 위해서 / 비상하여본 일이 있는 / 사람이면 알지 / 노고지리가 / 무엇을 보고 / 노래하는가를 / 어째서 자유에는 /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 혁명은 / 왜 고독한 것인가를 // 혁명은 /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_ <푸른 하늘을> 중에서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난 그 해, 시인 김수영은 자유와 혁명에 대해 이렇게 노래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사는 피로 얼룩진 역사라 해도 과언은 아닐터. 민주주의를 열망하던 한국민들은 독재에 항거하면서 분연히 떨쳐 일어났다. 목청껏 ‘독재 타도’를 외치는 거리는 투쟁의 거리였다. 하지만 또다시 군사독재로 이어졌고 80년대 거리는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친 시민들이 흘린 피로 붉게 물들어갔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말이 세간에 암암리에 퍼져나갔다. 여전히 시인 김수영의 목소리는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이후 문민정권이 들어선 후 말라죽어 가던 민주주의란 나무를 다시 가꾸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에 제도로서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는 데 무던히 노력해왔다. 아무리 역사가 그랬다고 해도 왜 혁명은 붉은 색이어야만 하는가를 마음 한구석에 조용히 묻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대의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대한민국. 사회가 점차 복잡해지면서 다양한 목소리를 담기엔 부족하다.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대의 민주주의는 국민들에게 정치에 대한 환멸과 무관심을 부추겼다. 이런 악순환은 민주주의가 하나밖에 없는 줄 알았던 우리네 잘못이기도 하다.   

 

 

-. 펀(Fun)한 시민운동, 불만합창단 

대의 민주주의가 지닌 한계, 즉 시민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않기 때문에 시민들은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과격하게가 아니라 재미나게 말이다. 이런 배경에서 불만합창단이 탄생한다. 불만을 불온하다고 여겨온 우리네 통념에 과감히 거침없는 하이킥을 날린 역사적 사건인 것이다. 불만합창단은 ‘일상 속의 불만을 나름의 방식으로 사회적인 자원이나 예술적인 자원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방법론’(63쪽)을 모색한 결과물이다. 통념을 뒤집는 ‘삐딱이 정신’, 상식에 거침없이 태클을 거는 ‘딴지 정신’이 시민운동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이 책은 희망제작소 소셜 디자이너들이 고군분투하며 불만합창 페스티벌을 이끈 체험기다. 유럽 시민사회를 견학하고 불만합창단 창안자 '텔레르보와 올리버 부부'를 만나는 과정에서 겪은 일을 담았다. 독자는 불만합창 축제의 굴곡진 여정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간간이 저자들은 마치 다큐멘터리의 해설자처럼 자신의 소감을 진솔하게 털어놓는 모습은 읽는 재미를 더했다. 간혹 부적절한 표현이 거슬리긴 했다. 런던행 비행기에서 만난 개구쟁이 아이들에게 굳이 ‘앵글로색슨족’(67쪽)이라며 종족까지 언급할 필요가 있었을까. 또 불만합창의 거리공연을 얘기하면서 참혹한 전쟁을 떠올리는 ‘게릴라’(114쪽)를 성찰 없이 써야만 했을까. 불만에 대한 통념을 뒤집고 기존 불만 표출방식이 지닌 폭력성을 반성하면서 시작된 불만합창단을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이 책이 지닌 구성상 특징은 각 부가 끝날 때마다 “소셜 디자이너의 시선”이란 꼭지를 배치해 둔 데 있다. 소셜 디자이너의 개념과 역할 및 활동 등 불만합창단 운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되는 배경지식을 친절히 설명한다. 부록에는 불만 합창단 운동 창시자 올리버가 한국을 방문하여 언론사와 나눈 대담을 실었다. 그리고 세계 곳곳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불만합창단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글을 싣는 순서에 사소한 흠이 보인다. 4부 중간에 들어간 “멋대로 불만합창단의 시선”은 4부 내용을 끝마친 후에 실었어야 전체 구성과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 새해엔 운동 좀 해 보자구요.

민주주의는 박제된 제도가 아니다. 성숙한 시민이 끊임없이 성찰하고 논의하면서 언제든 변모할 수 있는 제도다. 흐르는 물이 고이면 썩듯이 냉소와 냉담 어린 시선이 박제된 민주주의를 만든다. 피비린내 나는 혁명보다는 웃음꽃이 활짝 핀 소소한 일상의 혁신. 반목과 질시가 아니라 신뢰와 배려가 밑거름이 되는 시민운동. 우리 모두 '소셜 디자이너'가 되어 일상을 돌본다면 희망은 그리 멀리 있지만은 않다. 아직도 우리에겐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낮은 민주주의, 일상과 하나 되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175쪽) 그런 의미에서 새해엔 운동 좀 해 봐야겠다. 헬스클럽 정기회원권도 좋겠지만 더 많은 시민들이 웃음 넘치는 행복을 만끽하도록 시민운동에 적극 참여해 보는 일도 의미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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