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집을 찾아서 한젬마의 한반도 미술 창고 뒤지기 2
한젬마 지음 / 샘터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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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읽어 주는 여자’ 한젬마가 손수 발품을 팔며 우리 땅 이곳 저곳으로 옮기는 발길을 읽어 가면 이 땅에서 불꽃같은 예술혼을 불태웠던 이 땅의 화가들을 만나게 된다. 서양화를 전공한 한젬마. 그녀가 오히려 더 우리다운 그림을 그린 화가를 찾아 나선 기록이기에 다소 의아해 할 수도 있다. 정작 자신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하는 우리들은 거울에 비친 모습만 바라보기 마련이다. 서양화를 전공했기에 오히려 우리 미술을 더 들여다 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 미술사가 ‘학문’으로 치부되는 반면 서양 미술사는 ‘교양’으로 인식되는’ 우리 현실에서 우리 화가들은 대중들과 호흡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교양이 아닌 학문이기에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라면 범접할 수 없었다. 아니 이보다 서양 미술보다 우리 미술을 천시하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과 주체 의식을 다져 가는 토대를 마련한다는 의미에서 한젬마는 한반도를 뒤지며 화가의 생이 묻어난 집을 찾아 나섰다.

 

    집. 나고 자란 곳. 관계를 배우기 시작하며 성장하는 곳. 우린 집을 떠날 때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맘이 편안해 진다. 화가들 역시 그들을 길러낸 고향집, 그들이 자란 집, 그들이 성장했던 집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펼칠 그림을 구상했으리라.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작음의 미학을 몸소 실천하고 이 세상을 떠나 영원한 휴식에 이르러서까지 작은 탑비 속에 묻힌 장욱진 화가의 집. 그림 속 집들도 역시 소박하게 살고자 한 장욱진 화가의 생각이 은은하게 배어 있다.

    화가 박생광을 찾아 나선 저자의 발걸음이 진주에 머물렀을 때 우리 핏 속에 면면히 흐르는 민족 의식이 묻어난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저자가 ‘얼룩 채색법’이라 말하는 박생광 화백의 그림에서 강렬하면서도 열정이 넘치는 그림 속에 맵짠 한국인의 정서를 새삼 다시 느낄 수 있다. 맺힌 한을 풀어 주는 무당처럼 박생광 화백은 얼룩덜룩한 붓자국으로 설움과 한을 풀어낸다.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그림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덜어 주고자 했던, 빨간 양말과 흰 고무신의 화가 운보 김기창. 시대의 질곡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버리지 않고 인간에 대한 탐구를 그림에 담았던 화가 이응노. 수선스런 세상살이에서 단순함을 건져 올린, 저자의 오만함을 고개 숙이게 했던, 한국적 유화를 그렸던 화가 박수근 등 충청도, 경상도, 강원도가 낳고 길렀던 화가들의 삶을 되밟아 나가면서 나직한 목소리로 교양으로서 우리 미술을 느끼고 즐길 수 있도록 해 준다.

  ‘인간의 실존과 작품이 결코 유리될 수 없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 땅에 터 잡고 살아갔던 화가들의 생이 오롯이 그림 곳곳에 묻어나고 있었다.

 

  돈의 논리로 예술가가 나고 자란 집이 잊혀지고 사라지는 현실에서 쉼없이 한국인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고 보듬어 주려했던 이 땅의 화가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의 예(禮)라도 표해야 하지 않을까. 화가를 환쟁이라고 천시하는 편견이 아직 남아 있는 이 땅. 그렇지만 피카소나 로댕 등 서양 예술가가 위대하다고 남들이 말하니 자신도 그저 앵무새처럼 되뇌이는 이 땅. 우리의 정서가 흠뻑 적셔있는 우리 화가에게는 무관심한 이 땅. 밖만 바라보지 말고 안을 바라봐야 할 때다. 한국 미술이 학문이 아닌 교양이 되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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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 옥루몽 1 - 대한민국 대표 고전소설
남영로 지음, 김풍기 옮김 / 그린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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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이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인생의 덧없음을 얘기하는 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세상사를 다 겪어 내고도 더 분간할 수 없는 안개 속에 싸여 알 듯 말 듯한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 세상이 동물 세계보다 더 낫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살아온 만큼씩 겪어온 만큼씩 사람마다 제각기 자신만의 인생관을 형성하기 마련이다.

  <옥루몽>은 천상계에서 지상계로 유배온 문창성군의 현신인 양창곡과 그의 다섯 부인들이 펼쳐내는 파란만장한 인생살이가 흘러 넘친다. <심청전>이나 <춘향전>처럼 고전소설에는 특정한 삶을 대표하는 전형적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옥루몽> 역시 지고지순한 사랑을 대표하는 성격을 지닌 인물들이 등장하여 사건을 이끌어 나간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이 남성들에 비해 자유롭지 못한 점을 감안할 때 강남홍과 같은 인물은 여성이지만 상당히 자유분방하며 호기로운 모습까지 지니고 있으며 자신의 배필로 정한 양창곡의 삶을 이끌어 주는 스승의 면모까지 지니고 있는 점은 고전소설에 등장하는 일반적 여성상과는 거리가 있다.


  <구운몽>처럼 꿈 속을 노니는 몽유 과정이 등장하는 소설 부류에서는 흔히 인간의 삶에서 부귀영화는 덧없고 허무한 것이라고 넌지시 일깨워 준다. 이와 달리 <옥루몽>은 인생의 부귀영화가 헛되고 덧없음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간 현실에서 누구나 꿈꾸는 부귀영화를 맘껏 누릴 수만 있다면 누려 보라고 조언해 주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단지 자신이 누리는 부귀영화가 제 분수에 맞는 적당한 것인지에 대해 진지한 성찰만은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살짝 귀뜸해 주기는 한다.


  조선 시대 소설들이 대체로 중국을 시간적·공간적 배경으로 설정되어 있듯이 이 소설에서도 <삼국지>에 버금갈 정도로 장대하고 웅장한 무대에서 인물들이 펼치는 삶에 모습은 한 편의 대하 드라마를 보는 재미와 다르지 않다. 서양의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우리들에게 우리의 정신세계에 오랫동안 침잠해 있던 유교·불교·도교 사상이 낡고 쓸모없으며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무의식 중에 우리가 쓰고 있는 일상 표현들 속에서 아직도 그러한 정신세계가 남아 있음을 되새기게 한다.


  시기와 질투가 판치는 사랑살이, 음모와 알력으로 수놓은 권모술수의 정치살이. 삶이 사람을 지치고 힘들게 만들 때는 바로 인간이 서로를 헐뜯고 생채기 내며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넘쳐 날 때이다. 살림살이가 각박해질수록 시들해지는 인정이 못내 그리운 요즘, 우리 선조들 역시 우리네와 같은 고민으로 살고 있음을 엿볼 수 있으며 위안을 주기도 한다.

 

  아무리 인생이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며 무슨 생각과 무슨 실천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 꿈이 아닌 깨달음에 이르는 수도의 길임을 알 수도 있다. 삶은 살아지는 삶이 아니라 살아가는 삶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다시 천상으로 돌아갈 때까지 인물의 질곡어린 삶을 펼쳐내는 ‘적강소설’로서 <옥루몽>에서 유배된 양창곡이 다시 천상으로 돌아갈 때 어떤 깨달음을 얻고 돌아갈 것인까? 궁금하신 독자들은 다음 권을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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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행복이 커지는 가족의 심리학 토니 험프리스 박사의 심리학 시리즈 1
토니 험프리스 지음, 윤영삼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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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관계 속에서 태어나 성장하며 늙어가고 죽음을 맞는다. 삶은 관계 맺기의 연속이라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코를 막고 숨을 참을 수 있을 만큼 참아본 뒤 숨통을 틔어주면 공기, 그 보이지 않는 물질이 얼마나 값진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이처럼 우리 옆에 무척 가까이 있기에 그 가치를 느끼지도 못하는 가족. 행복하고 건강하며 화목한 가족 관계이길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겉보기에 행복해 보이는 가족도 문제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몹시 충격일 때가 종종 있다.

 

저자는 지난 100년간 사회학과 심리학 등의 학문 성과와 30년간의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문제 있는 가족에게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인간이 지닌 선한 본성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다. 선한 존재로서 인간이 건강한 인간 관계를 만드는 지혜와 기술을 익힐 기회와 도움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살아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자신이 익히고 실천한 해법을 진솔하게 알려준다.

 

우리는 흔히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란 사람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오히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양 부모 가정에서 더 많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부모 모두가 가정에 아버지와 어머니 역할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온전하게 성숙한 어른으로서 어머니나 아버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때만이 행복하고 건강한 가족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남성성과 여성성의 조화를 이룬 인간이어야 성숙한 인간이다.

 

남성성과 여성성이 균형을 잃어버린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가족 관계가 뒤틀리고 왜곡되어 있는 현실은 서양은 물론이요 우리 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성숙한 인간으로 자랄 수 있게 토양을 만들어 주어 가족 구성원 모두 성장하고 발전해야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는 일그러진 가족관계가 대를 거듭하며 반복된다.

 

대물림 되는 가족의 불화. 그 순환의 고리를 과감하게 끊어내고 건강하고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미고 가꿀 수 있으려면 자기 자신의 문제부터 자각하고 고쳐 나가야 한다. 튼실한 자아 인식을 바탕으로 어깨 너머로 배울 수 밖에 없었던 양육 기술도 재점검해야 한다. 늘 부모는 아마추어일 수 밖에 없다. 가족의 갈등을 지혜롭게 다루지 못해 불화로 고통 받든 가족은 부모의 무지에서 비롯된다. 그러기에 더더욱 배우고 익혀야 한다. 더 이상 불행과 불화의 굴레에서 허우적거릴 수는 없다.

 

누구나 조건 없이 가족을 사랑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러나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조건에 바탕을 둔 사랑이 가족 관계를 허물고 있음을 스스로 깨쳐야 한다. 조건 없는 사랑을 밑거름으로 부부 관계나 형제 관계, 부모와 자식의 관계 모두 ‘공감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가족 구성원 모두 노력해야 한다. 서로 책임감 있게 행동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장성한 자식들이 가족을 떠나 새 보금자리를 꾸민 후에도 정서적 의존성이 남아 있지 않도록 정서적 안정감이 충만한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 말로는 쉬워 보여도 막상 실천에 옮기려면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꾸준하게 쉼 없이 실천할 때만이 행복을 만끽할 자격이 있음을 명심하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사랑은 단수명사가 아니라 복수동사다. 가족 구성원들이 갈등을 현명하게 풀어내면서 서로 믿고 아끼는 생활을 이룰 수 있다면 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오늘부터라도 이 책에서 제시한 “건강한 자아인식을 뒷받침하기 위한 가족 선언문”을 종이에 옮겨 적어 책상 앞이나 사무실 앞에 붙여 두자. 날마다 낮은 목소리로 읽으면서 자신을 되돌아 보는 데 게을러서는 안되겠다고 다짐해 보자. 아는 만큼만 행하는 만큼만 행복은 당신 곁에 찾아와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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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코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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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가 고장난 현대 한국사회

 

                       - 아전인수(我田引水)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

    저자 강준만은 회색이다. 회색은 흑과 백의 경계다. 흑백의 이분법이 난무하는,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쏠려 기우뚱거리는 세상에서 회색은 기회주의로 낙인 찍힌다. 회색은 검지도 희지도 않은 경계에 서서 사물의 양면을 동시에 바라보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쉽게 판정 내리려는 사람들은 회색을 손가락질하며 회색이 가리키는 달은 보려 하지 않는다.

    회색의 눈은 사물과 현상이 빚어내는 빛과 그늘을 함께 바라보는 눈이다. 눈으로 바라볼 때만 사물의 거리를 적확하게 측정할 있다. 그래서 흑백으로만 바라보는 외눈은 슬프다. ‘거리두기 실패할 있기에 외눈은 다른 외눈을 만나야만 온전히 바라볼 있는 외눈박이 물고기다.

    저자는 거침없는 실명 비판과 발빠른 현실 비판으로 정평이 있다. 그가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인을 회색의 눈으로 조망하며 한줄 한줄 풀어낸 한국인 코드는 그리 낯설지는 않다. 그는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 지닌 이중성, 한국인의 얼굴을 부끄러워 하거나 자랑스러워 하지도 않는다. 그저 한국인의 명암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뿐이다. 그가 힘주어 말하는한국적 사회과학대중적 한국문화론 바로 회색의 눈으로 바라보며 추구하는 세계다. 그동안 한국 학계는 서구 이론을 직수입하여 억지로 우리 현실에 적용하여 제대로된 한국 사회 분석에 실패하였다. 한국문화를 살피려면 모름지기 학술연구를 통해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잘못된 학술성 편견은 대중을 위한 한국문화론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그는이론적 뼈대학술성 몰두하는 질적 연구보다는 대중적 한국 · 한국인 탐구를 선택했다.

    한국인,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자신있게 답변할 사람은 많지 않다. 때론 내가 아는 나보다 남이 아는 내가 오히려 정확할 때도 있다. 그렇더라도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을 한발짝 물러서 들여다 보려는 노력이 없다면 균형을 잃고 휘청거릴 수도 있는 노릇이다. 이처럼 한발 물러서서, 거리를 두고서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하려는 노력이 책에 오롯이 담겨있다.

     세대 남짓한 일제 식민 지배와 동족간 비극의 상흔으로 남은 6·25 전쟁, 그리고 독재와 압축 근대화. 지난 20세기는 숨막힐 듯한 시련과 고난으로 고를 여유마저 빼앗긴 한국인들을 생존의 벼랑 끝으로 몰고간 역사였다. 이런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한국인은 가족 단위로 목숨을 연명할 처세술을 발휘해야만 했다. 주체 못할 속력으로 달려온 한국 현대사는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볼 겨를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이상골로 가는생활, ‘곪아 터질 때까지내버려 두는 삶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서성찰과 반성 계기를 마련하고자 저자는 힘겹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한국 · 한국인에 대한 편견과 무관심을 이상 방치할 없었기에 대중과 대화를 시도했다.

    자신에겐 없이 관대하면서도 타인에게 잔인하리만큼 엄격한 한국인의 이중잣대. 잣대는 나와 남의 경계에서만 나타나지 않고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사이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지난 세기 동안 수차례 다가온 역경 속에서 한국 사회의 특권층은 무책임한 행태로 실망을 안겨주었다. 한국 서민층에겐 오로지 줄대기와 눈치만이 생존을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권한과 권리는 책임과 의무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한국의 기득권층은 탐욕스럽고 뻔뻔하게 권한과 권리를 누릴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그러다 보니 엄중한 책임 규명도 없이 사회 갈등을 쉽게 덮어버렸다마치 세월이 약이라는 망각을 관용이라 착각하며 잊히길 바랄 뿐이었다.

    자동차 운전을 하다 보면 가끔 브레이크가 얼마나 소중한 장치인지 잊을 때가 있다. 굽은 길에 들어서기 전에는 속력을 늦춰야 부드럽고 안정감 있게 길을 달릴 있다. 혹시라도 브레이크가 고장 났다면 굽은 길에서 한참을 벗어나 생명의 갈림길에 다다를지도 모른다. 공적 영역에서 냉소적이고 불신이 가득하며 소극적인데 비해 사적 영역에서는 정열적이고 신뢰감이 충만하며 적극성을 띠는 한국인. 단기적으로 때는 극단을 치닫는 보이나 장기적으로 보면 중용을 지키려는 한국인. 정치적으로는 진보성을 지니지만 경제적으로는 안정성을 추구하는 한국인. 역동적이면서 조급한 한국인잠시나마 숨을 고를 시간도 없이,  자신의 뒤를 돌아보지 못한 , 앞만 보며 내달린 한국인은 불나방과 같다.

    지나친 희망도 때이른 푸념도 생각조차 못할 상황에 처한 한국인. 희망을 심어줄 정치마저 혐오의 나락으로 떨어진 지금, 우리가 그린 자화상에 웃음소리가 한아름 퍼져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자가 강조하는혈구지도(絜矩之道)’ 정신을 다시금 되새겨본다. 실증과 솔직과 성실의 자세로, 자신보다 남에게 관대하고 남보다 자신에게 엄격한 성찰의 자세로행복을 즐기는 한국인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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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반역인가 - 우리 번역 문화에 대한 체험적 보고서
박상익 지음 / 푸른역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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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리에게 번역은 무엇인가?

 

1.  혼자 크는 나무는 없다 - 번역의 가치와 중요성

 

이 책은 문화교류 측면에서 우리의 번역 문제를 검토한다. 저자 박상익은 학자로서, 번역자로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번역이 지닌 가치와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번역은 세계의 다양한 문화와 전통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고 "국민의 교양과 정신 수준을 향상시키고 지식과 정보의 민주화를 이루어, 창의적 민족문화와 성숙한 시민 정신을 함양하는 데도 중요한 기여"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인류 역사를 되짚으면서 각 문명권에서 타문화를 수용하려는 기초 작업으로서 번역을 어떻게 해 왔는가를 고찰한다.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을 비롯하여 이슬람 문명권에서 유럽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다른 문화를 받아들여 자신의 문화를 살지게 하는데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를 살펴본다.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말이 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다. 과일도 환경에 따라 그 열매 맺는 양상이 달라지듯 문화도 다른 문화권에 정착하면서 모습이 변하기 마련이다. 문화가 소통하려면 언어의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 이 차이를 극복하여 매개해 주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 바로 번역자다. 문화교류의 매개자로서 번역자의 위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혼자 크는 나무가 없듯이 문화도 상호 교류하면서 성장한다. 우리의 전통음식인 김치도 문화교류의 산물이다. 지금의 백김치가 우리 고유의 모습이었으나 고추가 우리나라에 전래되면서 김치의 모습도 바꾸어 놓았다. 문화교류에서 중요한 점은 외래문화를 수용하는 태도이다. 김치의 경우처럼 외래 문화를 우리 문화에 녹여내어 한 단계 승화시킬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하다. 맹목적·무비판적으로 외래 문화를 수용해서는 안된다. '삭힘의 미학'이 그 어느 곳에서보다 중요한 가치가 되어야 할 곳이 번역이다.

 

2. 우리 번역 현실의 진단과 처방 - 번역 비평의 활성화·공론화

 

번역은 타문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시작해야 한다. 번역은 번역자의 고된 작업을 거쳐 이루어진다. 번역자가 감동하지 않는 책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면 그 번역서를 읽는 독자들도 감동할 수 없다. 인류 역사는 문명 간의 조화로운 교류로 성장해 왔다. 번역자는 조화로운 교류를 이끌어 내는 문화 외교관인 셈이다.

 

우리 번역의 문제점으로 오역, 졸역, 중역, 표절 번역, 하청 번역 등을 저자는 지적하였다. 이 지적은 꽤 오래전에도 제기되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탓인지 아직 완전하게 고쳐지지 않고 있다. 번역일은 몹시 고된 작업임에 분명하다. 다른 언어권 번역이나 기존 번역을 참고할 수는 있다. 그러나 번역자 스스로가 자신의 관점 없이 무비판적으로 베끼거나 옮긴다면 그 피해는 오히려 독자가 입게된다. 올곧은 번역 자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저자는 번역 비평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번역자에게 넌지시 일러주는 태도가 낫다고 말한다. 오역 시비가 불거질 때마다 공개 비판은 번역자나 번역 비판자에게 상처만 주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번역 비평은 지금보다 활발하게 공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영미문학연구회는 기존에 출간된 영미 문학작품 번역서를 꼼꼼하게 비교 평가하여 추천본까지 제시하였다. 이로써 독자들은 좋은 번역서를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번역의 비판과 비평은 지금보다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 사회는 비난과 비판을 혼동하면서 비판답지 않는 비판들이 넘쳐난다. 비판 없이 성장하는 문화는 없다. 비난에 머물러 상처만 주기보다는 비판과 비평이 건전하고 건강하게 이루어져야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번역자 역시 적절하고 타당한 비판은 겸허히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해야만 한다. 번역자에 그치지 않고 번역가의 경지에 이를 수 있으려면 말이다.

 

가끔 번역자의 독선과 독단으로 번역자와 편집자의 만남이 서로 얼굴을 붉히는 상황이 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어느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번역자는 시장에서 팔리는 상품으로서 책을 잘 모를 수 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고 있어도 그 내용을 담아 내는 그룻이 형편없다면 독자의 시선을 끌지 못한다. 번역자와 편집자 각자가 서로 도우면서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을 공유해야 한다. 사물은 물론 사람과 만남을 통해 성장하는 게 사람의 삶이 아니던가.

 

저자가 우리 번역 문화를 고찰하며 지적하지 않은 문제로 저작권 중개회사가 부리는 횡포가 있다. 이러한 횡포로 출판사가 곤혹을 겪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저작권 중개회사가 저작권 계약을 바라는 출판사들 사이에서 경쟁을 부추겨 저작권료를 턱없이 높이는 행태는 불공정한 거래다. 저작권 중개가 공정하고 적정한 수준에서 이루어지도록 출판계가 자정 활동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3. 우리 문화 토양을 살지게 하는 번역을 꿈꾸며

 

우리 학계는 오랫동안 외국 학문에 기생하여 우리 현실에 맞는 이론을 만드는 데 소홀했다. 우리 삶과 현실이 중심이 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이론과 학문 성과를 받아들이는 데 급급했다. 지식인의 지적 유희로서 학문이 아니라 우리 현실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앎과 삶이 소통하는 지식이기 위해서라도 번역은 가치 있는 일이다.

 

저자는 오래 전 도올 김용옥이 제기한 연구번역의 인정과 활성화를 다시 강조한다. 우리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직업훈련원 역할에 그치는 현실에서 연구번역은 의미 있는 일이다. 논문은 학문의 꽃이다. 이미 우리 학계는 무분별하게 서구 학문을 추종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만의 향기를 지닌 꽃을 피우기엔 몹시 척박한 토양을 만들어 놓았다. 연구번역은 서구 이론을 우리 현실에 적용하는데 발생하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일이다. 그러기에 연구번역은 더욱 권장돼야 하지만 학계에선 아직 그 실행을 뒷받침할 만한 제도 보완도 하지 못하고 있다. 서구 학문에 드난살이·더부살이에 그친다면 기생 학문으로 전락하는 일이다. 우리 현실에 적용가능하도록 서구 학문을 창조적으로 활용한다면 공생으로 더 나아가 상생으로서 학문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우리 선조들이 남긴 학문 성과를 한글로 옮기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우리 학문을 외국에 알릴 수 있는 작업도 이루어져야 한다. 학자들은 한국 내에만 머물지 말고 외국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우리의 학문 성과도 알려야 한다. 영어와 일본어 서적에 국한한 번역에서 벗어나 다양한 언어권 외국어 서적들이 번역을 통해 서로 드나들 수 있도록 외국어 교육 면에서도 다변화를 이루어야 한다. 대산문화재단의 번역 지원 사업처럼 기업 차원에서도 번역을 통해 문화교류를 증진하도록 번역자들을 힘써 후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편식(偏食)은 몸을 해치지만 편식(偏識)은 마음을 병들게 한다. 우리의 편견과 잘못된 선입견을 바로잡으려면 다양한 가치와 차이를 존중하고 아껴야 한다. 민주주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발휘될 때 행복한 열매를 맺는다. 행복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 자신의 편견과 잘못된 선입견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독서는 성숙한 시민을 기르는데 필수적이다. 독서의 생활화가 정착될 때 민주주의도 튼튼한 뿌리를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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