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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자유를 위한 정치 - MB를 넘어, 김대중과 노무현을 넘어
손호철 지음 / 해피스토리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정나라 어느 고을에 존경받는 지식인이 살았다. ‘북곽 선생’이 바로 그다. 그런데 그가 그 고장에서 열녀로 추앙받지만 실은 자신의 다섯 아들이 아버지가 다른 과부 ‘동리자’와 비밀리에 사랑을 나누다가 동리자의 다섯 아들에게 들통 나는 바람에 도망친다. 도망치던 북곽 선생은 호랑이를 만난다. 밖에선 선비다운 모습을 보이지만 안에서는 부도덕한 행실을 남몰래 일삼던 북곽 선생을 호랑이는 호되게 꾸짖는다. 호랑이에게 목숨을 구걸하던 북곽 선생은 호랑이가 소리없이 떠난 줄도 모르고 머리를 조아리다가 지나가던 농부에게 발견된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든지 또 다시 거짓을 말하며 자신의 위신을 세우기에 급급하다.
조선 후기 북학파 지식인 연암 박지원이 쓴「호질」이야기다. 연암은 겉과 속이 다른 지식인의 두 얼굴을 꼬집으려고 호랑이를 등장시켰을 것이다.『열하일기』에 수록된 글이니 청나라 연행 중에 들을 이야기를 기록했을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북곽 선생과 같은 지식인이 우리 시대에도 있다는 사실이다. 조선 시대 지식인의 본보기는 선비였다. 선비는 말대로 행동하고 행동대로 말하려고 했다. 그런 선비정신이 사라지는 현실을 연암은 꾸짖고 싶었을 것이다. 지식이 부조리한 권력을 차지하거나 행하는 도구로 전락해 버린 시대는 불행하다. 지식인은 사회 모순과 부조리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늘진 곳에 햇빛이 들도록 실천하는 사람이지 않겠나 싶다.
선거철이 되면 으레 ‘폴리페서’, 즉 학자 특히 대학교수가 정치에 참여하는 문제로 논쟁이 재연된다. 대학교수가 후학을 지도하는 데 전념하지 않고 해바라기처럼 정치권력에 기생하는 모습이 좋지 않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말로는 정의를 외치지만 행동으로는 불의를 자행하는 모습이 요즘 지식인에게 자주 보인다. 목청껏 사회를 비판하던 지식인들은 다 어디에 있는가? 정녕 지식인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시대가 돼 버린 것인가.
위기다. 정말 심각한 위기다. 대한민국에서 정치가 실종됐다. 아니 과잉됐다. 저자는 지금 우리 시대를 위기로 진단하고 ‘신자유주의적 공안국가’로 현 정부를 규정한다. 역주행하는 대한민국을 바로잡으려면 우선 민주화 운동 진영이 뼈아픈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며 힘주어 말한다.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신자유주의를 그대로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며 앞으로 진보정치가 나아갈 바를 제시한다. 87년 민주화의 봄을 피를 토하며 외쳤지만 다시 겨울이 찾아온 대한민국에서 어떤 정치가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저자는 자신의 간절한 염원을 제정구 의원에 목소리에 실어 이렇게 말한다.
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사회과학 공부가 아니라 더 높은 상상력과 더 깊은 성실성”이며 ‘물질의 눈’, ‘물리적 힘의 눈’, ‘따로 살기, 끼리끼리 살기의 눈’에서 ‘사람의 눈’, ‘생명의 눈’, ‘함께 살기의 눈’, ‘가난의 눈’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다. 정곡을 찌른 것이다. (375쪽, 강조 : 인용자)
정치 혐오를 넘어 정치 환멸에 이른 지금. 우리는 너나없이 위로부터의 정치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정치를 꿈꾼다. 그런데 그간 정치인들에게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국민에게 부여된 권리이며 양도할 수 없는 신성한 의무인 선거권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또 선거철만 되면 국민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다가 국회의원만 되면 목에 힘을 주며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정치인들도 늘어났다. 무엇을 위한 정치보다 누구를 위한 정치를 생각해야 한다.
경인년, 호랑이 해를 맞이하니 북곽 선생을 꾸짖던 호랑이가 더욱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