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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저스티스는 정의를 갈망하는 사람들이며 정의를 새롭게 지으려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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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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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 몇 안 남은 참 스승이 마지막으로 들려주는 강의, 경청할 준비는 됐나요? 사람 냄새가 그리운 분, 서로 사람 대접하며 살아갈 방도가 궁금한 분, 어서들 오세요. 필기구는 필요 없습니다. 울림이 큰 강의는 마음에 새기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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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가 - 현혹시키는 세상, 착각하는 대중
엘든 테일러 지음, 이문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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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존 로크'가 독일 철학자였을까요? 영국 출신이 아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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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2012-03-30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 로크는 철학자가 맞습니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3121
여기 한번 들어가 보세여.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실즈 지음, 김명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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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데이비드가 프롤로그에서 “내 몸과 아버지의 몸과 모든 사람의 몸에 깃든 아름다움과 비애”(15쪽)라고 밝혔듯이 나이 들면서 자연스레 내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다. 축구를 꽤나 좋아해서 어릴 적부터 즐겨 했지만 서른 고개를 넘고서는 축구화를 싣지 않았다. 혼자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몸이 뜀박질을 견뎌내지 못하는 까닭이다. 여유가 생겨도 숨쉬기 운동(?)과 걷기 정도만 할 뿐 특별히 운동을 하지 않는다. 건널목 녹색 신호등이 깜박이면 잽싸게 달려 건너지도 않는다. 다음 신호에 건너면 된다, 느긋하게 사는 게 좋은 거야라며 게으른 몸을 다독인다. 세월에 장사가 없다는 말처럼 우리 몸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노화를 맞이한다. 건강한 삶을 바라면서도 나쁜 생활습관은 고치지 않은 채 몸보신에만 열을 올린다. 대부분 몸에 좋다는 먹거리를 찾아 챙겨 먹으면서 말이다. 해마다 여름철 복날엔 한 끼 정도는 삼계탕이라도 먹어야 하지 않던가.

 

이 책은 실즈家네 남자들의 몸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97세 아버지 밀턴과 51세 아들 데이비드, 그들이 삶과 죽음을 어떻게 대하는지 엿볼 수 있다. 죽음을 받아들이라는 아들과 삶을 받아들이라는 아버지. 다른 듯 닮은 아버지와 아들이 보여주는 일상을 들여다보며 우리네 아버지와 아들 모습을 떠올려 본다. 서로 으르렁대며 살갑지 못하고 나이 들수록 소 닭 보듯 데면데면 지내는 아버지와 아들. 한국전쟁(우리 아버지는 늘 ‘6.25 전쟁’이라고 하시지만)을 체험하셨고 칭찬에 인색하며 말이 많으면 잃는 게 많다며 밥상에서조차 침묵으로 일관했던 아버지. 대화를 시도하려 해도 쉽지 않다. 늘 세대 차이를 확인하고 끝날 뿐. 자신의 단점마저 고스란히 닮아 가는 아들 모습이 보기 싫었기에 질책이 더 많았으리라. 요즘은 프레디(Friedy), 즉 친구 같은 아버지가 유행이라지만 우리 아버지 세대가 생각하는 가장 바람직한 아버지의 본은 엄부(嚴父)였다. 당신의 아버지께 어깨 너머로 배운 아버지의 모습이 대물림된 것이다. IMF 경제위기 이후 고개 숙인 아버지들. 노년을 준비할 시간마저 없었으며 가족을 위해 헌신하느라 정작 자신의 행복은 저당 잡힌 아버지들. 가족과 얘기를 나누려 해도 공통 관심사가 거의 없어 몇 분이 지나면 침묵만이 흐른다.

 

실즈 집안을 들여다 보자. 아들 데이비드에게 대머리를 물려주었다며 사과하는 아버지 밀턴, 외할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유전자 탓도 있으니 미안해 말라는 아들(168쪽).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상상하며 부자(父子)가 보여주는 애증의 5차 방정식을 풀 수 있을까 생각하며 살짝 미소를 지어본다. "10대 소년들은 성적 충동이 지루한 일상을 결딴내고 변형시킬 수 있다고 믿고 싶어한다. 내 아버지가 놀라운 점은 그런 변형에 대한 믿음을 80대 넘어서도 한참 뒤까지 간직했다는 사실이다."(99~100쪽) 이렇게 저자는 자기 아버지처럼 왕성하게 몸을 움직이는 삶을 부러워한다. 어릴 적 농구선수를 꿈꾸었던 저자는 농구를 할 때 동물적 기쁨을 맛보았으나 중년에 이르러서는 드물게 느낀다. 이것이 인생이라며 스스로 위로하면서. 그나마 저자가 아버지에게 배웠으며 가장 사랑하는 언어로 소설과 에세이를 쓰면서 생활하니 행복하지 않을까. 스포츠를 매개로 부자(父子) 사이에 농담과 이야기가 오가는 화목한 가족. 이렇듯 이 책에는 실즈家네 남자 이야기가 풍성하다.

 

이 책은 유년기와 아동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와 죽음으로 나누어 남성과 여성이 나이 들면서 나타나는 몸의 변화를 언급한다. 과학지식과 통계자료를 인용하면서. 각 시기와 관련하여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들의 목소리도 끌어들인다. 이처럼 인간이 나이 들어가며 겪는 일상이 과학지식과 뒤섞인다. 삶과 노화, 죽음에 관한 흔적을 모아 만든 교향곡처럼 들린다. 해체적 글쓰기 또는 혼성적 글쓰기가 보여주는 파노라마라고 할까. "기존의 지혜를 의심해보라는 것, 스스로 본 시각을 고집하라는 것, 언어를 운동장처럼 생각하라는 것, 운동장을 천국처럼 생각하라는 것.…(중략)…내가 내 몸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사랑하라고, 다른 누구의 거죽이 아니라 내 거죽에 담겨 있는 사실을 사랑하라고 알려주었다."(321쪽). 이와 같이 아버지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아들이 부르는 사부곡(思父曲)이기도 하다.

 

저자는 책 말미에 새로이 꿈을 꾼다. 아버지와 사막을 달리는 꿈. 여전히 아버지가 자신보다 앞서 달려 이기는 꿈. 그러나 "언제나 아버지가 이긴다. 하지만 결국에는 아버지도 진다. 우리 모두 언젠가 진다(327쪽)"며 사는 동안 우리 몸에 나타나는 노화를 거부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말한다. 죽음마저 편안하게 받아들이라고. 그러면서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삶을 맘껏 누리며 살라고. 죽음과 노화를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고. 우리는 언젠가 죽기 때문에. 태어나는 순서는 있어도 죽는 순서는 없기에.

 

♬ 덧붙임

이 책에 보낸 국내외 요란스런(?) 찬사와 달리 내용이 좀 가볍다. 책장을 덮고 나니 짙은 여운마저 없다. 죽는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우리네를 일깨운 정도에 그친다. 미국에서는 이런 책이 주목을 끌고 있구나 싶었다. 한국인의 죽음론을 깊이 있게 써 내려간『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김열규, 궁리)에 비하면 가볍다. 그래도 이 책이 지닌 장점을 애써 찾아보며 읽었다. 독자에 따라 감상이 다르겠지만 문화 차이를 실감한 책이다. 

번역과 편집에 관해 몇 가지 말을 덧붙인다. 우선 번역이 한국어 어법에 어울리지 않은 표현이 많이 보인다. 특히, ‘장본인’(79쪽)은 부정의 의미를 지닌 말이기에 문맥상 어울리지 않는다. ‘주인공’으로 고쳐야한다. 부사 ‘너무’는 부정의 의미를 지니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38쪽에 ‘너무’는 ‘정말’로 바꿔야 한다. ‘이빨’(31, 55, 89, 180, 209쪽 등)은 ‘이’나 ‘치아’로, ‘나병’(183쪽)은 ‘한센병’으로, ‘두터워진다’(207쪽)는 ‘두꺼워진다’로, ‘약제’(272쪽)는 ‘약재’로, ‘피로회복제’(281쪽)는 ‘피로해소제’나 ‘자양강장제’로 고치는 게 낫다. 또 ‘한결 부담스러워진다’(209쪽)는 부사어와 서술어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이외에도 사동표현이 불필요하게 많으며 관형격 조사 ‘-의’를 생략해야 할 부분도 많다. 앞으로는 우리말 어법에 어울리는 번역을 만났으면 한다. 주시경 선생이 말씀 하셨듯이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르기 때문이다. 30권에 이르는 번역서를 낸 번역자가 점점 우리말 감각을 잃어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편집과 관련해 몇 가지 제안을 드린다. 책 중간 중간에 녹색 지면을 할애하여 유명인의 말을 재차 부각한다. 이 지면 전후로 본문이 끊기는 경우가 많다. 본문이 일정 정도 마무리된 후 끼워 넣었다면 좋았으리라. 표지 역시 해지거나 닳는 경우가 많은 재질로 만들어 아쉬웠다. 책 표지도 아름답게 꾸미는 것도 좋지만 독자가 오래 소장하도록 배려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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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책읽기, 다독술이 답이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창조적 책읽기, 다독술이 답이다
마쓰오카 세이고 지음, 김경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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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자기 소개서를 작성하면서 취미로 독서를 적는다. 좀 삐딱하게 해석하면 심심할 때 이것저것 다 해보다가 할 게 없으면 책이나 읽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알게 모르게 자리한 우리 통념에 저자는 독서가 밥을 먹듯 옷을 입듯 일상의 일부라고 말한다. 독서에 부담감을 갖지 말고 출근하면서 옷을 골라 입듯이 끼니때마다 뭘 먹을까 고민하듯이 일상에서 책을 즐기라고 한다.

이 책은 일본에서도 독서광으로 잘 알려진 마쓰오카 세이고의 독서론을 대담 형식으로 꾸민 책이다. 일본판 원서와 달리 번역자와 나눈 대담도 수록되어 있다. 세이고는 ‘맥락적 편집 독서’를 강조한다. 편집 공학의 측면에서 독서 방법을 탐색한다. 상품을 사고파는 시장처럼 의미를 주고받는 ‘의미의 시장’에서 독서의 본질을 밝히고 있다. 책장 곳곳에 독서를 정의한 말들은 어릴 때 소풍 갖다가 찾는 보물찾기와 같은 재미를 느끼게 한다. 

독서는 자신의 취향이나 개성을 찾아가는 길이라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책을 읽는 이유는 우리가 세상을 모르기에 알려고 하기 때문이란다. 그러기에 책 읽기는 ‘무지에서 미지’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설명에 이르러서는 무릎을 딱 치고 말았다. 무지에서 유지로가 아니라 무지에서 미지로 떠나는 여행! 읽으면 읽을수록 책을 찾게 되니 말이다. 독서는 참 중독성이 강하다. 독서력을 유지하려면 다양한 분야를 꾸준히 접하면서 독서의 리듬을 유지하라는 말은 수행하는 수도승마저 연상케 한다. ‘책을 읽다가 싫증이 생기면? 계속해서 책을 읽어라!’(『김영민의 공부론』, 165쪽)는 것이다. 

책을 ‘지식의 덩어리’로만 여기며 교양 문화를 경시하는 세태를 비판하는 세이고의 목소리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최근 우리 대학가에도 인문학을 통폐합하거나 인문학을 천시하는 경향이 있다. 지식 정보화 시대를 맞아 자기계발에만 힘써 몸값을 올리는데 혈안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네 삶은 문화(文化)를 향기롭게 누리지 못하고 문화(文禍)로 만들어 버리는 꼴이 된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 가치를 높이는 데는, 사람의 무늬를 탐구하는 인문학이 당장 쓸모 없이 보일 것이다. 점점 괴물처럼 변모하는 자본주의는 탐욕을 부추겨 인간마저 상품으로 만들어 값을 매긴다. 인간은 이기적이면서도 이타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한쪽으로 치우쳐 있을 때 균형을 잡으려 애쓰기도 한다. 수많은 결과 겹으로 이루어진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세상은 허무와 냉소가 가득할지 모른다. 독서는 사람 냄새를 찾는 길이며 더불어 사는 지혜를 익히는 ‘오래된 미래’다. 

책의 운명과 인류의 운명은 한 배를 타고 있는지 모른다. 독서마저 양극화를 맞은 디지로그의 시대, 메마른 감성에 단비 같은 독서가 일상에 뿌리 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책을 선물하고 책을 함께 읽는 문화에 주목한다. 책을 권하고 함께 나누는 사회를 의미한다. 부부, 가족, 친구, 연인, 동료 사이에서 책을 함께 즐기는 문화가 꽃 피기를 바라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아직 척박하기만 하지 않은가. 지식이 지혜로 이어지지 않아서일까? 아직 답을 모르겠다. 어쩌면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부부가 결혼해서 산문집과 시집을 서로 골라 나누어 읽고, 자식에게 유산으로 물려준다면 가능할지도.

누구나 어린 시절에는 자연스레 책을 놀잇감처럼 접한다. 궁금해서 읽고 재미있어서 또 읽으며 호기심은 끝 간 데 없이 실타래를 풀어낸다. 하지만 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성적만이 살 길이라는 듯 성적을 잘 받으려고 벼락치기 시험공부에만 힘쓴다. 고3 때는 자신의 성적에 따라 미래의 남편이나 아내가 결정된다고 공갈이나 협박 같은 얘기도 듣는다. 우정과 연애는 사치라며 어른이 되면 맘껏 할 수 있으니 시험공부나 하란다. 그러나 마르틴 발저의 말대로 사람은 읽은 대로 만들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독서하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우리 사회는 분명 병든 게 틀림없다. 아무리 자기 잘난 맛에 산다지만 남 잘난 것마저 깎아내리기 바쁘다면 문화(文禍)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결국 ‘체독(體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배운 대로만 살아도 세상은 좋아질 테니까. 몸으로 익히지 못한 앎은 신기루와 같기에. “책에 읽히지 말라”던 법정 스님의 목소리가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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