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으로 사족을 달자면, 이 글은 ‘10’의 나이와 학번의 차이에도 불구하고(딱히 등단 년도가 같아서도 아니고) 스승이나 선배가 아니라 문우 비스름한 존재로 여겨온 한 소설가에 대해 또 다른 한 소설가가 쓴 글이다. 언젠가는 비슷한 지점에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덧 저만치 앞서 가고 있는 이상한 오기와 끈기로 무장한(혹은 해제한?) 그의 뒤태를 보며 시새움을 느끼는 건 인지상정, 심지어 문학에 대한 예의이다.

 

90년대를 포함하여 그를 만난 건 다섯 번도 안 되지 싶은데, 가장 최근의 만남은 2010년에서 2011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의 어느 날, 모 전철역에서였다. 정말이지 우연이었다. 그 우연에, 정영문은 정영문의 소설(그때 <작위>를 연재 중이었다) 속에서 막, 또 마지못해 기어 나온 것 같은 표정과 몰골을 한 채 허공으로 퍼지는 맛깔스러운 담배 연기 같은, 한층 더 길쭉해지고 느슨해진 것 같은 몸뚱어리를 곤혹스러워하며 엉거주춤, 어영부영 전화번호를 물었다. 아니, 말을 한 건 아니고 실어증환자처럼 입술을 달싹거리며 그런 뜻을 전하는 어슴푸레하고 희끄무레한 손짓과 몸짓을 보였다. 만남이랄 수도 없는 짧은 스침이었지만, 오랜만에 본 그의 모습이 너무도 여전하여 신명이 났던 기억이 있다. 그가 너무 고통스럽지 않은 병”(<작위>, 95)을 계속 앓길, 그리하여 우리 문학에 건강한 전범과 더불어 불온한 전위가 두루 넘쳐나길 바란다.

 

4. 다시, 소수적인 문학

 

서슬 퍼런 비평(비평은 일정 부분 그래야 한다)과 근엄한 학문(이 역시 황혼녘에야 날갯짓을 하는 미네르바의 올빼미의 속성이다)의 눈으로 보면, 각종 엄친아와 비교하면 현재 우리의 문학은 모조리 다 시원찮을 수 있다. 그리고 슬프게도, 실상이 그럴 수도 있다. 그럼에도 소설가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과거바깥에서 전범을 찾고 ()처럼이라고 말하는 것은 좀 불쌍한 일, 심지어 좀 촌스러운 일 같다.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카프카처럼’, ‘이상처럼은 작가 개인의 인생을 놓고 봐도 하룻강아지 시절에나 낯붉힘 없이 할 수 있는 얘기이다. ‘-처럼이란 말에 이미 내포되어 있듯 완전한 닮음(같음)은 불가능하다. 그럴 수 없는 것은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 됨이 마땅하다. 물론 당대의 평가가 훗날 뒤집어진다는 식의 복수(復讎)’의 문학사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학사는 오히려 당대의 베스트셀러(적어도 순위권)가 미래의 스테디셀러가 됨을 보여준다. 카프카가 예외적인 경우지, 현재의 무명이 미래의 불멸을 담보하지는 절대 않는다. 작가로서 자신의 그릇이 큰 대접은커녕 간장종지밖에 안 된다면 그것도 운명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타협할 때 그 간장종지나마 잘 채울 수 있다. 요컨대 작가의 삶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존감이거니와 이는 일국의 문학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우리의 문학사도 제법 묵직해져서 전범-다수전위-소수의 계보를 따로 작성해볼 수도 있겠다. 한데 이광수나 염상섭, 이상이나 김동인을 놓고서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대가가 아니라고 투덜대는 건 역시나 좀 촌스럽고, 덧붙여 배은망덕한 패륜이다. 그런 아비-어미 밑에서 태어난 것도 운명이다. 우리는 그것이 오직 우리의 문학이란 이유만으로도 소중히 여길 의무가 있다. 그것이 문학사와 마주한 우리의 최소한의 덕목, 이다. 마찬가지로 현재 쏟아지는 문학에 대해서도 너그러울 필요가 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한국문학이야말로 한국어를 사용하는 민족이 우리밖에 없다는 단순한 이유로 진정 소수적인 문학, 너무나 고독한문학이다. 그리고 작가는 어떤 의미에서 모두가 제각기 소수적인 문학의 주체이다. 굳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을 마다할 필요는 없겠지만 소수의 다수 독자를 갖는 것보다 다수의 소수 독자를 갖는 것이 작가로서는 더 큰 행복일 수 있다. 최근에 우리 문학의 번역과 수출 관련 얘기가 많아졌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문학 바깥의 얘기이다. 문학 안에서의 논의는 훨씬 더 간단할 법하다. 어쨌거나 심판은 문학사의 몫이다. 무조건 열심히 쓰고 열심히 읽을 일이다. 그것이 장르 불문, 글쟁이의 실존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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