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1983, 미송 양은 여덟 살이었다. 미송 양의 아빠는 농산물공판장에서 일했다. 집과 공판장 사이에는 무척 넓은 시장과 무척 큰 공원이 있었다. 점심때마다 미송 양은 아빠에게 도시락을 갖다 주기 위해 머나먼 길을 걸어갔다. 이 일이 미송 양은 참 좋았다. 동네 밖을 벗어날 수 있는, 그리하여 낯선 사람들을 셀 수 없이 많이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이다.

 

미송 양의 가족은 마당이 넓은 집에 혹처럼 붙어 있는 단칸방에 세 들어 살았다. 주인집은 방이 세 칸이나 되었는데, 주인아줌마와 영신이 언니 단 둘만 살았다. 주인아저씨는 선원이라서 늘 바다에 나가 있다고 했다. 미송 양은 그를 본 적이 없었지만 왠지 덩치가 크고 얼굴이 시커멓고 턱과 목에 수염이 잔뜩 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야만 집채만큼 커다란 물고기를 잡으러 다니는 일에 어울릴 것 같아서였다. 먼 바다를 가르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아빠의 도시락을 들고 살가운 봄바람을 맞으면서 시장을 가로질러, 또 공원을 에둘러 공판장에 가는 것과 비슷할까.

 

언니, 아빠 따라 바다에 나가본 적 있어?”

언니는 한 번도 없다고 말했고, 미송 양은 실망했다. 바다라는 곳은 공판장과는 전혀 다른 곳인 모양이었다.

에이, 언니 따라 멀리, 멀리 나가보고 싶었는데.”

이 말에 영신이 언니는 피식 웃었다.

그럼 교회에 가볼래? 거기도 무척 멀거든.”

정말? 얼마나 먼데?”

버스 타고 한참 가서 또 한참 걸어야 되지.”

우아!”

미송 양은 어서 빨리 일요일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

 

일요일 아침, 미송 양은 엄마의 도움을 받아 머리를 예쁘게 묶어 올리고, 어깨 끈이 달린 주름치마를 입었다. 레이스가 달린 하얀 양말에 하나밖에 없는 구두도 신었다. 영신이 언니와 함께 289종점까지 가는 내내 미송 양은 달떠 있었다. 버스가 달리기 시작하자 낯선 건물들이 빠른 속도로 미송 양의 눈을 훑고 지나갔다. 울긋불긋한 간판들의 행렬도 끝이 없었고, 거리를 오가는 낯선 사람들의 무리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을 미송 양은 커다란 눈 안에 집어넣겠다는 듯, 작은 머릿속에 아로새기겠다는 듯 게걸스럽게 뜯어보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미송 양은 차들이 앞뒤로 쌩쌩 달리는 아스팔트길 위에 섰다. 길을 잃을까봐 두려워 저도 모르게 영신이 언니의 손을 꼭 잡게 됐다. 모든 것이 너무 크고 너무 넓고 또 너무 많았다.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마당은 미송 양의 집 마당의 서너 배는 족히 돼 보였다. 건물도 무척 높았다. 고개를 뒤로 젖히자 벌어진 입이 좀처럼 다물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영신이 언니는 미송 양을 교회 안, 2층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초등반 예배실 앞에서 미송 양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네가 더 빨리 끝날 거야. 어디 가지 말고 등나무 밑에 얌전히 앉아 있어. 알겠지?”

미송 양은 영신이 언니를 올려다보며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신이 언니는 3층으로 올라갔다.

 

목사님이라 불리는 할아버지의 말은 길고도 길었다. 설교와 기도와 찬송가 사이로 아이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섞여 나왔다. 할아버지는 그때마다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꾸지람을 했다. 아이들은 웃음을 참아야 하는 상황이 웃겨 더 많이 웃어댔다. 미송 양은 이 모든 것이 낯설었고 또 그랬기에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함께 떠들고 웃을 친구가 없는 미송 양은 심심하다 못해 외로워졌다. 미송 양에게 필요한 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하느님 아버지가 아니라, 3층에 있는 것이 확실한 영신이 언니였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미송 양은 부리나케 밖으로 뛰어나갔다.

 

등나무 아래, 벤치 주변은 낯선 사람들로 북적댔다. 당연히, 영신이 언니는 보이지 않았다. 미송 양은 언니와 한 약속을 생각했다. 하지만 언니를 기다리는 시간은 한없이 길기만 했다. 마음이 초조해지자 집에 가고 싶어졌고, 그 바람이 커지자 오줌이 마려웠다. 미송 양은 교회 안으로 들어가 화장실을 찾아 헤맸다. 1층 복도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처럼 어둡고 길었다. 간신히 화장실을 찾아낸 뒤에는 줄이 길어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미송 양은 3층으로 올라갔다. 중등반 예배실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보자, 말꼬리처럼 묶어 올린 머리채가 통째로 위로 쭈뼛 서는 것만 같았다. 미송 양은 자기 옆에 서 있던 한 아줌마에게 물었다.

저어기요, 중학생 언니들 벌써 끝났어요?”

방금 끝났는데, ?”

미송 양은 황급히 고맙다는 말을 하고선 다시 등나무 벤치로 달려갔다.

 

등나무 주변의 풍경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영신이 언니는 이번에도 없었던 것이다. 언니가 자기를 버렸든, 길이 어긋났든 어쨌거나 이제는 혼자 힘으로 집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7년을 간신히 넘긴 미송 양의 인생에서 가장 절박한 순간이었다.

 

*

 

홀로 걷는 낯선 길은 어딘가 서늘했다. 해가 기울면서 바람이 쌀쌀해지고 세상의 색깔이 약간 흐릿해진 까닭인지도 몰랐다. 미송 양은 앞만 보고 걸었다. 오직 ‘289’라는 숫자만이 미송 양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교차로가 나오면 사람들이 많이 가는 쪽으로 걸어갔다. 가도 가도 길은 낯설기만 했고, 또 동시에, 가도 가도 제자리인 것 같았다. 바다 위를 헤매는 선원 아저씨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조그만 미송 양의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들이 들끓었다. 여동생과 실잣기 놀이를 할 때처럼 그 생각들을 순서대로 붙잡아 예쁜 모양으로 엮어보려고 했지만, 이 역시 실잣기 놀이처럼 도무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때 미송 양의 눈앞에는 초록색 버스들로 뒤덮인 새카만 아스팔트가 기적처럼 나타났다. 하지만 미송 양이 감당해야 할 인생은 실로 길고 험난한 것이었다. 아스팔트길은 찾았지만 버스 정류장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오른쪽 왼쪽 모두 사람들이 너무 많아, 어디로 방향을 틀어야 할지 난감했다. 뱃속에선 꼬르륵 소리가 나고 발바닥과 종아리가 사정없이 아려왔다. 미송 양은 계속 눈을 두리번거리다가, 마침 달려오는 버스를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미송 양이 몇 걸음을 떼놓기가 무섭게 버스는 이내 저만치 멀리 가버렸다. 미송 양은 온 몸에 힘이 쫙 빠졌다. 절로 숙여진 고개를 다시 들었을 때 미송 양의 맞은편에서 어떤 아저씨가 걸어오고 있었다. 덩치가 무척 크고 얼굴이 시커멓고 턱은 물론 목덜미까지 시커먼 수염으로 뒤덮여 있는 것이, 꼭 상상 속의 선원 아저씨 같았다.

 

미송 양은 그에게로 달려가 다짜고짜 물었다.

아저씨, 289버스 타려면 어디로 가야 돼요?”

“289? 아니, 어린애가 여기서 혼자 뭐 하고 있어?”

영신이 언니 아빠가 선원이라서 늘 바다에 나가 있는데요, 나도 멀리 나가보고 싶어서 영신이 언니 손잡고 교회에 왔는데요, 우리 집은 289종점이구요

다 좋은데, 그 영신이 언니는 어디 있어?”

 

오랜 고독과 불안에서 해방된 미송 양은 울먹이며 사정을 얘기했다. 그는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미송 양의 손을 잡았다. 엄마와 아빠가 늘 조심하라고 했던 모르는 사람과 함께 걷는 낯선 길은 뜻밖에도 어딘가 따사롭고 포근한 구석이 있었다. 버스 정류장은 한참을 걸어간 뒤에야 나왔다. 버스가 도착하자 아저씨는 미송 양을 안아 올려 버스에 태워주었고 버스 운전수에게 동전 하나를 건넸다.

애가 길을 잃은 모양인데, 종점까지 좀 태워다 주세요.”

그러곤 미송 양을 쳐다보았다.

종점까지만 가면 혼자서 찾아갈 수 있겠지?”

!”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미송 양은 완전히 곯아떨어졌다. 잠에서 깼을 때 버스는 이미 종점에 다다른 상태였다. 미송 양은 숨을 헐떡이며 집으로 달려갔다. 남동생을 등에 업은 엄마가 여동생과 함께 대문 밖을 초조하게 오가고 있었다. 영신이 언니는 그 옆에 힘없이 서 있었는데,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지금 막 경찰서에 연락하려고 했는데, 우리 딸 기특하기도 하지! 그 먼 길을 혼자 어떻게 찾아왔을까!”

 

미송 양은 굶주린 배를 채운 뒤에야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제야 중대한 사실이 상기되었다.

아저씨한테 고맙다는 말도 못했네. 어떡하지, 엄마?”

미송 양은 속이 상해, 양미간을 찌푸리고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엄마는 옆에서 미송 양의 치마를 개고 있었는데, 호주머니에서 오십 원짜리 동전 두 개가 절묘한 화음을 내며 앞을 다투어 떨어졌다.

! 차비도 있었구나! 그 아저씨 만나면 꼭 고마웠다고 말하고 오십 원, 아니 백 원 다 줘야지!”

 

하지만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그런 행운은 일어나지 않았다.

 

20105/ <서울대동창회보> 20106월 제 387

 

 

-- 가장 아름다운 추억 중 하나.

고전적인 형식의 성장소설-가족소설의 초고를 잡아놓은 터에, 정확히 그 초고를 버려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터에 콩트 청탁이 들어왔고, 그 버리기로 결심한 초고에서 에피소드 하나를 건져냈다. 분량을 맞추기 위해 말들을 많이 버려야 했다. 그 당시에는 좀 아까웠지만 지금 보니 지금의 크기가 딱 제격인 것 같다. '미송'이란 이름은 2010년 2월에 태어난 조카의 이름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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