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의 맛

 

 

 

 

1

 

어제 저녁 강남에 갔다

 

사람이 참 많았다 그러나

모든 얼굴은 유일무이하다 모든 몸도 유일무이하다

그 많은 사람을 확실히 나눌 단 하나의 기준은 성별

우리는 모두 남자 아니면 여자 그러나

우리는 모두 마스크 낀 채 지하철 안팎에서 죽을 운명이다

 

 

2

 

어제 밤 강남을 나왔다

 

참 많은 사람은 모두 서 있거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나 

딱 한 명이 지하철 계단에 철푸덕, 퍼질러 앉아 있다

수그러뜨린  얼굴에서는 척박한 주름이 질질 새고 

웅크린 몸뚱어리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잔영 같고

상체 옆으로 모아 세운 무르팍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기세

땅바닥에 붙은 정수리는 가을 낙엽보다 메마른 반백이다

돗자리에는 조잡한 보석 팔찌, 못생긴 마스크스트랩

늙은 다람쥐 앞발처럼 간신히 움켜쥔 닭발 손가락 안에는

빵도 떡도 아닌, 김밥 따위는 더더욱 아닌

바싹 마른 누룽지

누룽지

 

혓바닥을 찌르지나 않을까 싶다마는

침을 살살 발라가며 잘도 씹고 잘도 먹는다

지하철 바닥과 마주한 엉덩이가 얼얼하겠다

 

사람이고 여자이고 늙었고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다, 살아 있으면 된 것이다

진작에 죽었을 수도 있는 운명이다, 우리 모두는

 

 

 

*

 

지하철 탄지 반년? 10개월만이다. 휘황찬란한 강남의 밤거리를 지나 지하철(3호선 교대역) 안, 너무 놀란 풍경. 할머니의 모습 자체, 내려다본 정수리, 무엇보다도, 두 손에 들린 누룽지. 세상에, 마른 누룽지를 그냥! 줌 강연(?)의 재미보다 이 충격이 더 소중하다고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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