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사랑 주식회사 느림보 동화 9
손정혜 지음, 심미아 그림 / 느림보 / 200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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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었다.
죄다 그렇듯이 나와 짝도 책상에 금을 그어놓고
몸이 넘어가면 한대 툭 때리고, 물건이 넘어가면 뺏어버리는 짓을 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날인가 쉬는 시간에 금을 넘었다는 이유로 짝의 등을 좀 심하게 내리쳤다.
얼마나 세게 내리쳤는지 반 아이들 대부분이 뭔 소리인가 둘러볼 정도였고,
짝은 주변에 앉은 남자아이들에게 여자에게 맞고 사는 남자라며 마구 놀림까지 받았다.
부아가 치민 짝은 복수의 기회를 벼르고 벼르다 수업시간 도중 내 공책이 금을 넘어갔다며 확 잡아당겼고
나는 안 뺏기려고 바둥대다가 결국 종이가 찢어지고 실밥이 죄다 풀려 공책이 엉망이 되었다.
둘이 싸우는 꼴을 보다 못한 담임선생님은 나란히 복도에 세우는 벌을 내렸는데
우린 벌받는 동안에도 서로 째려보고 훌겨보고 노려보고 하여간 생쑈~를 하고 있자니,
지나가던 교감선생님께서 '짜식들, 연애하냐?' 이러는 거다.

우린 둘 다 교감선생님께 화가 나서 얼굴이 씨벌개졌고, 그 여파는 다시 싸움으로 이어졌던 기억이...
아, 맞어, 그런 일이 있었어...
난 마로에게 책을 읽어주다 꼭 백일몽처럼 그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맞어 맞어, 그러고 보니, 그 짝이랑 인연이 참 질겼지.
4학년 때 반이 달라졌다고 좋아했고 그러다 내가 전학을 했는데,
하필 내가 전학한 학교로 그 녀석이 또 전학을 올게 뭐람.
5학년 때 또 같은 반이 되고, 짝이 되는 바람에 우리 둘 다 어이없어했지.
심지어 중학교도 같아서 중1때 짝이 된 적도 있었어. 그때도 앙숙이었고.
중3때 비록 다른 반이었지만 그 친구가 방학 동안 점빼는 수술을 받았다고 따라다니며 놀렸던 기억도 나네.
그러고보면 난 남자아이들에게 무지하게 짖꿎고 못된 아이였어. ㅎㅎㅎ

사랑이와 영웅이가 치고받고 싸운 뒤, 선생님이 시키자 할 수 없이 화해악수를 하면서
'손바닥이 닿지 않게 조심하면서 대충 악수'를 하는 대목을 읽다 말고 그렇게 난 추억여행에 빠졌다.
나도 초등학교 3학년 때 결국 짝과 그런 악수를 했었기 때문이다.
나로선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인데, 작가는 그 상황과 감정을 어찌 다 기억하고 있었는지
그 대목을 생생하게 살려 책을 썼고, 난 왠지 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분명 이 작가는 초등학교 밖에 못 나온 게야. 그러니 그 시절의 추억을 지금껏 곱씹은 게지.'
(작가의 약력을 살펴보고)
'음, 대학까지 나왔군. 그럼 이 여자 머리가 무지하게 좋은가보군. 기억력 짱이야, 음, 항복해야겠다.'
결국 난 잠깐의 질시를 포기하고 작가가 쏟아붓는 유년의 추억 공세에 깨끗이 항복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사랑의 친구 윤다정 회장 때문에 떠오른 여자친구도 있다.
초등학교 내내 단짝이었던 그녀와의 인연은 대학까지 이어졌었는데,
공부도 잘 하고 이쁘고 착하고 피아노도 잘 치고 맨날 반장만 도맡아 하는 그녀를 참 자랑스러워했다.
게다가 그녀의 집은 정말 완벽하기까지 했다!!!
다정하고 잘생기고 너그러운 아빠, 상냥하고 친절하고 요리도 잘 하는 엄마,
숙제도 도와주고 자기 용돈으로 동생에게 팬시제품을 선물하는 2살 위 언니, 귀엽고 착한 남동생 등
그녀의 집은 너무 너무 완벽해서 내 동경의 대상이었다.
툭하면 부부싸움이 나는 우리집이랑 하늘과 땅 차이였고, 짖꿎은 오빠들과도 달랐다.
솔직히 고백하면 난 내심 그녀를 질투했다.
그녀가 우리집 딸이고 내가 그녀를 대신했다면, 나도 그녀처럼 잘날 수 있었을텐데 라고 비꼬아 생각했다.
하지만 아빠의 가출, 이혼한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생활, 엄마의 재혼 등을
어른스럽게 받아들이는 다정이를 보니, 그녀의 처지가 달랐어도 다정이와 같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다정한 사랑 주식회사는 선생님 맺어주기 작전 실패 후 장기휴가에 들어갔지만,
4학년이 되면 휴가가 끝난다고 하니, 얼른 한 해가 지나 다시 문을 열었으면 좋겠다.
다정이와 사랑이라면, 분명 내가 잊고 있었던 4학년 어느 때의 노오란 추억을 끄집어내줄꺼라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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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5-12-06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주 비슷한 추억이 있습니다. 저는 조선인님 글로 인해 추억이 되살아났네요^^ 책 내용보돠 조선인님의 뒷이야기가 더 궁금한 것은 왜일까요?

조선인 2005-12-07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의 추억도 털어놔주세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