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뜸 헤엄이 -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15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15
레오 리오니 지음, 이명희 옮김 / 마루벌 / 199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내게 최악의 영화 중 하나가 "마지막 보이스카웃"이었다.
악당을 물리치는 것도 좋고, 인명을 구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악당이 말 그대로 산산조각나는 잔인한 장면에 비명을 지르자마자 룰루랄라 춤추는 주인공이라니.
언제 피바다가 있었냐는 듯 주인공의 춤을 보며 기립박수를 치고 환호를 지르는 관객들이라니.
그 역겨움에 나는 결국 저녁먹은 게 체해버렸고, 변기를 붙잡고 토악질을 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으뜸 헤엄이가 마지막 보이스카웃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어느 날, 무섭고 날쌘 다랑어 한 마리가 물결을 헤치고 쏜살같이 헤엄쳐 왔습니다. 배가 몹시 고픈 다랑어는 빨간 물고기 떼를 한입에 꿀꺽 삼켜 버렸어요. 으뜸헤엄이만 겨우 도망을 쳤습니다.

으뜸 헤엄이는 바닷속으로 깊이 헤엄쳐 들어갔습니다. 무섭고 외롭고 몹시 슬펐습니다.

하지만 바닷속은 신기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구경하며 헤엄쳐 다녔더니 으뜸헤엄이는 다시 행복해졌습니다.

먹이사슬이 운명이니 다랑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으뜸 헤엄이는 가족들과 친척들과 친구들과 이웃들이 몽땅 죽었는데, 혼자 덜렁 남았는데, 신기한 구경거리를 만나자마자 다시 행복해졌다고? 으뜸 헤엄이가 슬펐던 건 그저 무섭고 외로웠기 때문? 심심했기 때문?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건 아무 문제가 아니라고? 어떻게 이렇게 무심할 수 있지?

난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책을 집어던지고 싶었다. 으뜸 헤엄이가 눈이 되겠다고 한 것도 잘난 척으로만 여겨졌다. 원본을 읽고 싶다. 정말 레오 리오니는 '다시 행복해졌습니다'라고 했을까? '슬픔을 조금 잊을 수 있었습니다'가 아니라? 아, 싫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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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5-06-26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리웃 영화에서 항상 정말 싫은게 그거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도 주인공만 살아남으면 '아 정말 다행이다'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