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넌 이런 사람이야'라고 누군가 나에게 단정하는 순간이 있고,
나 역시 '그래, 난 이런 사람이야'라고 어쩔 수 없이 끄덕이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런 동의가 가능한 건 그 사람이 나에 대해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저히 발뺌하는 게 불가능하리만치 '난 이런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최근에 직면한 두 순간.

하나.
한 아파트 한 동에서 3년쯤 같이 살았고,
그 집 큰아들과 우리 딸이 동갑이고, 그 집 작은아들과 우리 아들이 동갑이며,
큰아들과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같은 반에 짝이 되는 등
한 동네에 살면서 켜켜이 인연이 겹치는 그런 이웃이 있다.
아마도 6년째 살고 있는 수원에서 유일하게 '친한 편'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
어느날 우연히 그녀를 길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잠깐 담소를 나누는데
이웃집 00엄마랑 같이 점심 먹기로 했다며 같이 갈까 하시다가
"마로엄마는 낯가림이 심해서 00엄마랑 밥먹기 거북하지?"라고 하시는 거다.
조금 무안했지만 덕분에 예의바른 거절의 말을 궁리하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난 그녀에게 그렇게 티나는가 반문해봤고, 유쾌한 그녀는 호호 웃었다.

둘.
'40대를 맞이하는 나의 자세'에도 불구하고 아직 착수도 못 한 게 있다.
바로 요가!
옆지기와 밤에 하는 산책 또는 걷기를 운동이라고 우기다가
더 이상 이래선 안 되겠다 불끈 결심하여 집 근처 요가원에 드디어 상담하러 갔다.
그런데, 두둥~
원장도, 강사도 몽땅 남자인 거다.
딱 한 명 여자강사가 있지만 나랑 시간대가 맞지 않았고,
난 남자 강사 중 한 명과 상담을 하다가 우물쭈물 양해를 구하고
옆지기에게 이 사태에 대해 의논을 하려고 전화를 했다.
옆지기는 한숨을 폭 쉬며 "너 성격에 거기 정말 다닐 수 있겠어?"라며 물었고,
난 그가 시키는대로 좀 더 생각해보겠다 인사하고 요가원을 나왔다.
사람 사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내가 동성이라는 잇점마저 없는 존재에게
교육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난관이라는 걸 옆지기는 너무 잘 아는 거다.

왜 갑자기 난 이런 사람이야 라고 끄적이냐고?
아직도 요가를 시작 못 했다는 변명이라고나 할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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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1-10-17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요? 남자 강사는 불편해요? 몸이 소중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어요. 회사다닐때 망가진 몸이 몸 쓰는 일 하니 무리가 오더라구요. 주말에 마사지 받는데, 남자 선생님이었어요. 뭐라 쓰기 힘든 몸 구석구석을 'ㅅ' 마사지 받았다는; 나중에 계산하는데, 밝은 곳에서 보기 살짝 민망하더군요 ^^;

여튼, 근육도 풀어줬겠다, 오늘부터 운동도 시작하려구요. 내 몸인데, 그 동안 왜 이렇게 방치했을까 싶더라구요.

조선인 2011-10-17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미용실이나 구두가게를 갈 때 남자종업원이 없는 곳을 골라요. 모르는 남자의 손이 닿는 게 참 거북해요. 좀 바보같죠.

책가방 2011-10-17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낯가림 심한것도, 남자 미용사가 거북한것도.. 저랑 같네요.
작은아이 3학년때, 아이들 데리고 1박 2일로 여행을 떠나기로 한 적이 있었는데...전 못갔어요. 기껏 학교에서 몇번 본 사람들과의 여행이 영~~ 부담스럽더라구요.
이런 제가 싫지만 쉽게 바뀌지는 않네요.
그래도 한번 친해지면 정말 잘하는데...^^

조선인 2011-10-17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신기한 건 알라딘 사람들과는 전혀 낯가림 안 한다는 거. 이미 글로 충분히 만났었다 라고나 할까요. ㅎㅎ

순오기 2011-10-19 16:41   좋아요 0 | URL
내말이요~~ ^^
우리가 군산에서 처음 만났지만 낯가림 같은 거 전혀 못 느껴서 조선인님 이런 면이 있나? 깜놀했어요.ㅋㅋ

조선인 2011-10-20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굳이 앤의 말을 인용하자면 알라딘 사람들에게는 동류의식이 있다고나 할까요? 신기하리만치 거리감을 안 느낍니다. ^^

BRINY 2011-10-24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가를 가고 싶지만, 근처 요가원은 너무나 '명상'을 중시 여겨요. 종교적 색체가 짙은 곳은 싫거든요. 그래서 못가고 있어요.

2011-10-24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랬군요. 몰랐어요. 내가 본 언니의 모습은 또 어떤 모습이었을까 생각하니 재밌어요. ^^

그나저나 저같아도 요가원에 대부분 남자 회원들에 남자강사면 안 다닐 것 같아요. 미용실도 마찬가지. 왠지 모르게 징그러워서 털이 쭈삣쭈삣 솟아오르는 느낌.

조선인 2011-10-24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 여자강사만 있는 요가원을 새로 찾아냈어요. 그런데 샬랄라 공주님을 위한 핑크천국이라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되요. >.<
귄, 어? 너는 이런 날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너희들 모두 그런 날 놀리는 거 재밌어하지 않았나? ㅎㅎ

2011-10-28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내가 기억하는 언니는 상냥한데 화나면 물불 안 가린다 정도? 진지할 때 진지하고 재밌을 때 재밌다 정도? 특히 남학우들 휘어잡을 때 정말 멋졌는데.. 낯 가린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아니면 시간이 일정 기억은 지워버리고 강렬했던 기억만을 남겨놓은건가요? ㅎㅎ

어쨌든, 좀 놀리면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도 참, 이런 말 그렇지만, 너무너무 귀여웠어요. ^^

조선인 2011-10-28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귄, 어엇, 이상한 기억이 남은 듯. 난 물불 안 가린 적 없고, 남자들 휘어잡은 적도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