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나의 몸 엄마와 함께 보는 성교육 그림책 3
정지영, 정혜영 글.그림 / 비룡소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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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를 둔 엄마로서 흉흉한 뉴스를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그럴 때면 애 아빠는 검도며, 태권도며, 합기도며, 적어도 합이 10단 이상을 만들어야겠다고 3살 짜리 붙잡아 발차기 연습을 시킵니다. 거울을 붙잡고 옆차기를 연습하는 딸아이의 모습은 우습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한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 책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딸을 위해 사야겠다 마음먹고 보관함에 넣어둔 건 돌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너무 이른 게 아닌가 싶어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급작스레 구매한 건 얼마전 모 서재에서 본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너무나 흔한 어린이 성폭력 문제에 우리 아이 또한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위기의식에 새삼 마음이 급해진 것이죠.

그러고 보면 학교 다닐 때 어린이 성폭력 통계조사를 하며 끔찍해했던 일을 참 오래 망각하고 살았던 거 같습니다. 여대였기 때문일까요? 정도의 차이가 있었으나 한 과의 1/3이 어린이 성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중 일부는 상습적인 희롱을 당했으며, 강간의 경험을 털어놓은 친구도 1명 있었습니다.

특히 후자의 친구는... 6살 때 자신이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대학에 들어와서야 자각을 했다고 합니다. 여중에서 받은 성교육은 출산비디오를 본 게 다였고, 여고의 성교육 시간은 입시교육에 밀려 혼자 밤늦게 다니지 말라는 등의 안전지침 복사물 1장 받은 게 다였다고 했습니다. 대학에 와서 처음으로 이성을 사귀게 되면서... 이상하게 불유쾌하고 아팠던 기억의 진실을 깨닫고... 그게 원인이 되어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지금은 상담을 받고 있다고 털어놓는 친구를 부둥켜안고 참 많이 울었습니다. 그때는 내 평생을 성폭력과 매춘 문제에 바쳐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껏 내가 한 일이란 성희롱 예방교육 강좌 하나 제작한 게 다이니... 딸에게 부끄러울 뿐입니다.

이 책이 널리 읽힌다 해서 어린이 성폭력이 저절로 예방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딸아이가 자기 몸이 얼마나 소중한 지 알고, 나쁜 어른을 나쁘다라고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른이건 아이건 성폭력의 희생자가 자신을 자학하지 않고, 누구의 잘못인지를 명백히 인식하는 게 성폭력 대처의 첫출발이기 때문입니다.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잘못한 사람이 잘못한 것임을 일러줄 수 있도록 용감하게 맞설 수 있는 엄마와 딸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  무척이나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소중한 나의 몸에 대한 은폐와 부정은 성기에 대한 그릇된 지칭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어린이 성폭력 예방교육 지침서로 기획되어 나왔으면서도, '고추'와 '잠지'라는 표현을 태연히 쓰는 게 속이 상합니다. '보지'와 '자지'를 금기시할수록 성은 어둡고 비틀어진 것이 됩니다. 가능하면 출판사에서 새로 책을 펴낼 때 교정해주었으면 좋겠고, 하다못해 이 책을 사보시는 엄마, 아빠들이 견출지라도 붙여 '보지' '자지'로 수정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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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6-08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 마지막 말씀에 특히 더 동의합니다!

2004-06-20 1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6-20 2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7-06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