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앞 가운데 계신, 양복입으신 분이 선생님이라는 거 찾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옆에 앉은 여학생들과 그다지 키 차이를 못 느끼시겠다고요? 하지만... 그 분은 정말 크신 분이랍니다.

신석철 선생님은 중3때 담임선생님이셨습니다. 반배정 후 하필 학생처 선생님께 걸렸다고 수군대고 있을 때 드르륵 문 열고 들어오신 선생님은 악명(?)에 비해 키도 작고 잠자리안경이 익살스럽게 느껴지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칠판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집주소와 전화번호를 쓰셨고, 약도까지 그리셨습니다. 어리둥절해하는 저희들에게 그 모든 걸 베낄것을 요구하셨고, 저희들이 받아적는 동안 선생님은 말문을 여셨습니다.

"너희들은 지금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를 살고 있다. 니네들 나름대로 불만도 많고 고민도 많고 부모님께 반항하고 싶을 때도 있을 거다. 그러다보면 가출하고 싶을 때도 있겠지. 그럼 우리집으로 가출해라. 비밀보장해줄 거고, 무상으로 숙식제공해주겠다."

실제로 그 해 가을 부모님의 이혼문제로 고민하던 남학생이 선생님 집으로 가출을 해 겨울까지 살았더랬습니다. 그해 봄 사모님이 둘째를 낳으셨고, 유일한 피붙이던 할머니께서 병으로 돌아가신 친구가 여름부터 선생님과 함께 살았으니, 방2개의 조그만 서민아파트에 선생님, 사모님, 두 아들, 학생 둘, 여섯 식구가 바글바글 살았던 거지요. 지금와 생각하면 선생님도 선생님이지만, 사모님도 참 대단하신 분이다 싶습니다.

첫 대면 못지않게 선생님과 관련해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체벌 문제입니다. 학생처만 10년도 넘게 하셨다는 관록대로 엄격하고 무자비한 체벌로 유명하신 분이었죠. 게다가 연대책임을 중요시하여 누가 말썽이라도 일으키면 부원 전부가 맞거나 부장이 대표로 맞아야했습니다. 하여 졸업한 다음에 두고보자고 이갈던 친구들도 무척 많았습니다.

그런데 참 웃긴 건 그 '문제학생'들도 아이러브스쿨 반창회를 하니 거의 다 참석을 했다는 겁니다. 그 친구중 하나의 말이 걸작이었습니다. 자기를 죽도록 팰만큼 관심과 애정을 가져줬던 건 선생님밖에 없었기에 맞은 정이 그리웠다고. 아무래도 메조키스트가 된 거 같으니 앞으로도 내가 잘 사는지 못 사는지 선생님이 책임지고 오래오래 지켜봐줘야한다고...

무엇보다 저를 가장 울린 선생님의 사랑은 제 결혼식 때였습니다. 부모님의 반대속에 결혼을 강행하느라 우여곡절이 많았던 터라, 중3때 반 친구들이 우르르 와준게 정말 고마왔습니다. 더욱이 선생님까지 와주셔서 황공했지요. 그런데 신부대기실에서 만나뵌 선생님은 조금 까칠하였고 친구들은 앞다투어 선생님 안색을 걱정했습니다. 요새 일이 좀 많을 뿐이라며 선생님은 둘러대셨고, 전 정말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다음에야 친구로부터 들은 사연은... 집에서 둘째인 선생님께서 지난 3년간 중풍으로 몸져누워 치매까지 오신 당신 아버님을 모시고 살았으며, 제 결혼식 며칠전 상태가 악화되어 입원하셨고, 결국 제 결혼식 다음날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그 기간동안 선생님은 학교에 휴가를 내고 병석을 내내 지키셨고, 제자 결혼식에 참가하는 동안만 잠시 자리를 비우셨던 거라고 하더군요. 황망히 전화통을 붙잡고 우는 저에게 선생님은 새신부가 그러면 안된다며 타박하셨고, 웃어주셨습니다.

신석철선생님은 그렇게 제 인생의 스승이 되어주셨고, 앞으로도 제 사는 양을 바라봐주실 거라 믿습니다. 그분의 크신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 제자들은 마음놓고 방황도 해보고, 좌충우돌 인생의 갈래길을 모험해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선생님과 술잔을 기울이는 나이가 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응석을 부립니다. 함께 늙어가는 사이가 아니라, 영원한 제자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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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장미 2004-05-06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정아..너의 인생에서 정말 좋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는 건 너한테 정말 크나큰 행운이
아닐까 싶다..내 기억속의 선생님들의 모습.....그냥 그저그렇다..ㅎㅎ
너와 선생님 친구들과의 관계 영원히 빛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