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경언니(제맘대로 언니삼아서 죄송해요)의 결혼기념일 페이퍼를 보고 갑자기 제 결혼과정이 기억나버렸습니다.

우리 부부는 5년간의 연애끝에 양가 집안의 반대로 결국 사고쳐서 결혼을 강행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마로에겐 고맙고, 몸져눕게 했던 친정어머니에겐 죄송하고 그러네요.

1. 날짜 소동 : 우리끼리 예식장 잡고 청첩장 찍고 살림살이 마련한다 어쩐다 정신없을 때 비로소 친정의 정식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아울러 인륜지대사인데 아무 날이나 잡을 수 없다는 엄명도 같이 떨어졌죠. 사주에 따라 나온 날짜는 9월 1일. 우리끼리 잡았던 날짜는 8월 중순이었던지라 다시 예식장 알아보고 청첩장 수정하고, 새로 연락 드리는 등 참 분주했습니다. 그나마 날짜가 미루어져서 다행이지, 앞당겨졌다면 예식장을 못 구했을 수도. -.-;;

2. 주례 소동 : 결혼식 날짜가 미루어짐에 따라 주례선생님에도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평소 우리 둘이 존경하던 선생님께서 여름을 넘기며 건강이 악화, 입원하시게 된 겁니다. 게다가 그분의 주선으로 새로 주례를 맡게 된 선생님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시고. 그 와중에 시부모님께서는 당신 교회목사님이 주례를 봐야한다고 강권하시고, 신랑이랑 친정에서는 말도 안 된다고 펄펄 뛰고. 우여곡절끝에 분에 넘치게도 범민련 의장님께서 주례를 맡아주셔서 우리로서야 영광이었지만, 결혼식 당일까지도 목사님을 모시고온 시어머님의 열성에 하마트면 신랑과 시어머니가 싸울 뻔 했다는...

3. 반주 소동 : 신랑과 저의 후배들이 결혼식날 합동으로 축가를 불러주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그 친구들이 반주도 해주는 줄 알고 예식장의 반주자는 필요없다고 계약해버렸습니다. 동시입장을 위해 신랑과 함께 입구에 서서야 비로소 결혼행진곡을 쳐줄 반주자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식장 관계자가 부랴부랴 자기네 반주자를 부르러갔으나 하필 이 사람이 외출을 한 터라 30분은 족히 더 기다려야했고, 저희는 하객중에 반주할 사람이 있는지 수소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결혼식이 계속 지연되는 걸 이상하게 생각한 큰새언니가 상황을 파악하고는 반주자를 자처해주었습니다. 덕택에 15분 지각 결혼식을 무사히 올릴 수 있었지요. (후문-곱게 한복을 입고 반주를 한 신부친구?를 소개해달라는 신랑 친구들의 주문이 쇄도했더랬지요. ㅎㅎㅎ)

4. 부케 소동 : 양가의 도움을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혼을 강행한 터라 결혼식 준비 과정의 최대 목표는 '최소 비용으로 결혼한다'였습니다. 다행히 식대만 내면 예복, 화장, 부케 등을 패키지로 무상제공하는 식장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생화장식이나 생화부케에 대해서만 꽃집에 추가비용을 내면 될뿐. 향 알러지가 있는 저로선 당연히 생화는 전혀 필요없다고 거절했죠. 그러나 아뿔사... 결혼식장에서 말도 없이 서비스로 생화부케를 준비한 것입니다. 그것도 향 진한 장미와 백합으로 화려하게... 덕택에 결혼식 내내 재채기와 현기증을 참느라 주례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했는지 하나도 듣지 못했고, 사진 찍을 때도 '신부님, 부케 좀 바로 잡으세요'라며 잔소리해대는 기사 때문에 옥신각신. 드디어 부케를 던지는 순서가 되자 어찌나 기쁘던지.

5. 클렌징 소동 : 전국을 떠돌며 산(?) 이력 때문에 나름대로 여행(?)에 일가견이 있다고 자신했더랬습니다. 하지만 신혼여행은 처음이다 보니 가방 싸는데 꽤 고심을 했지요. 어쨌든 꽤 알차게 짐을 쌌다고 생각했는데... 숙소에 도착하고서야 결정적인 실수를 깨달았습니다. 제가 화장과 담을 쌓고 살다보니... 클렌징 제품이 단 하나도 없는 겁니다. 신부화장이라는게 수미리에 달하는 겹겹의 색칠이라는 거 당해보신 분은 아실 겁니다. 비누칠로는 절대 안 지워지는 초강력 접착이라는 것도요. 피로연에서 꽤 시간을 끌었고, 렌트카 회사랑 연락이 잘못 되어 자정이 다되서야 숙소에 도착했던 터라 문 연 가게를 찾는 것도 힘들었고, 당연히 화장품 파는 곳은 더더구나 없었습니다. 결국 편의점 한 곳에서 클렌징 폼을 사는걸 성공한 뒤 그걸로 수십차례의 세수를 반복했지만, 아이라이너와 립스틱은 끝까지 얼룩을 남기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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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엉가 2004-04-02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이라 하면 제가 날 밤을 새도 할 말이 많죠..

sunnyside 2004-04-02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두 기억에 많이 남는 결혼식이셨겠어요. 결혼식 많이 다녀봤지만, '이야기할만한' 결혼식은 많지 않던데... 훗날 두고두고 되새길 추억이니.. 것두 행복이시죠. ^^

조선인 2004-04-03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울타리님의 결혼이야기도 들려주세요~

. 2004-04-09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정말 파란만장했네요.
저희는 주례를 맡아주시기로 한 목사님이 늦으셔서
(잠실쪽 교통이 그리 막히는지 모르셨나봐요......).
땜쟁이 주례가 주례를 하는 슬픔을 겪었답니다...어흑...

비누칠로는 절대 안 지워지는 초강력 접착 →
아...정말 매일 이 접착을 하고 다닐수도 없고 내 얼굴 돌리됴~ 입니다...^^



sooninara 2004-04-14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식과 아이 낳는 이야기라면 아줌마들은 밤새울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