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기회 - 이명랑 단편집 반올림 36
이명랑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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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쩌다 보니 좀 진지한 책들을 연달아 읽어댔다. 가볍게 머리 전환을 하고 싶어 소설을 고르는 중이었고, 이것저것 찾아보기도 귀찮아 도서관 서가에 꼭힌 책들을 손가락으로 차례대로 훓어가며 '어느 것을 고를까요 알아맞춰 보세요 척척박사님 딩동댕동' 이 짓거리를 해가며 고르는데, 연신 두꺼운 책들만 잡혔다. 몇 차례의 실패 끝에 이만하면 얄팍한데다 단편소설 모음집이라 골랐지만... 나의 목적은 아낌없이 배반당했고, 더 어지러워진 머리를 정리하기 위해 오랜만에 리뷰를 끄적인다.

<신호>를 읽을 때만 해도 경쟁에 내몰리는 아이들 이야기가 비현실적인 배경에서 다루어지는 것 같아 그럭저럭이었다. 지역간 학력 격차와 왕따 문제를 다룬 <전설> 속 두 아이는 늘 그렇듯 자살로 위장된 타살이었다.

<너의 B>를 보고 나니 안 그래도 꼴보기 싫던 샤넬 샹스 광고가 더욱 싫어졌다. 샤넬 최초로 10대 모델을 썼던 것으로 유명세를 탔던 이 제품의 가격은 35ml짜리조차 10만원이 넘는 가격이고, 4가지 종류를 대표하는 4명의 모델에서 아시아인은 배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뷰를 보면 사회초년생도 아니고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에게도 권장되는 향수란다. 부모들의 또 다른 등골 브레이커인 것이다.

<준비물>도 우울하긴 마찬가지다. 학원의 이름은 '호프'라지만 그 어디에서도 희망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게 한 편, 한 편,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다 못해 마지막 편을 읽을  때는 덩달아 침몰하는 기분이었다. <이제 막 내 옆으로 온 아이에게>는 세월호 이야기였고, 하필 지금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대통령이 거부하냐 마냐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참이다. 

세상엔 어두운 소식이 가득하고, 미래의 희망이라는 아이들을 다룬 청소년 소설도 회색빛이다. 교복 속에 갇힌 암담함을 어찌나 잘 살렸는지 이제 막 힘겨운 학창시절을 통과한 어린 작가라 생각했는데, 나랑 1살 차이. 그녀 역시 나처럼 학부모의 삶을 살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어머니같은 측은지심과 기성세대로서의 부끄러움이 면면히 스며들어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청소년 소설이라는 딱지 떼고 부모들이 먼저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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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4-01-15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네요. 청소년 소설은 사실 부모가 먼저 읽거나, 혹은 같이 읽고 대화하면 좋겠죠.
저도 조금 더 부지런했던 시절에는 큰 아이와 함께 청소년 소설을 읽고 대화를 나누곤 했는데,
어느새 그런 것들 다 잊고 살고 있네요.

더 늦기 전에 아이들과 책 읽고 대화 나누는 시간을 다시 살려봐야겠어요.
조선인님 글 덕분에 잊고 있던 걸 깨우쳤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