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일 프로젝트도 끝냈고 직장생활도 끝냈다.
그리고 지난 수요일 빈궁마마 대열에 합류했다.
전날 저녁 7시에 입원했고 여유병실이 없어 할 수 없이 6인실에 입원했다. 이때부터는 물만 먹어야 했고 자정부터는 물도 금식. 9시 경 왁싱을 하고 관장을 했고 마취제인지 항생제인지의 부작용 검사를 했다. 목마를까봐 10시에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수술 당일 아침에 다시 관장을 하고 환자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최소한의 물로 상복약 중 고혈압 약과 매일 먹는 알레르기약 5종 중 2종만 먹었다. 이제 링겔을 꽂아야 하는데 간호사가 3번 연속 실패하니 몹시 미안해한다. 작은애 제왕절개할 때는 10번도 넘게 실패하다 결국 발에 했다며 알려줬더니 입술을 지긋이 깨문다. 잠시 망설이더니 다른 간호사에게 부탁을 했다. 다행히 새 간호사는 2번만에 성공했다.
흡입제를 챙겨 수술실에 내려갔다. 마취선생과 인사하고 수술대에 눕는데 간호사들이 뭔가 분주하다. 최소한의 재료만 셋팅되어 있어 재료 보충을 하고 시작해야 한다고 자기들끼리 말하는데 이를 못 들었는지 마취선생은 9시에 딱 맞춰 마취를 시작했다.
의식이 돌아온 건 오후 4시? 5시? 수술은 잘 끝났다고 이제 정신 차리셔야 한다고 간호사가 귀에 대고 소리를 친다. 난 ˝토끼가... 아이들이...˝ 웅얼웅얼하다 정신을 차리고 더 이상 아무 말도 안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도 간호사는 내 말을 기어이 알아들었나 보다. 여기 병원이에요. 토끼도 없고 아이들은 병실 안에도 없고 복도에도 없어요 딱 잘라 단호하게 말하신다. 아닌데.. 방금 전까지 들판에 산토끼가 놀고 있었는데... 집토끼마냥 겁도 없이 사람들 옆에 어슬렁거렸는데... 아이들이 산중호걸을 부르며 토끼들을 쫓아다니니까 그제서야 겁먹고 뛰어가버렸는데... 억울했지만 말해봤자 수면내시경할 때처럼 간호사들의 웃음거리밖에 안 되는 걸 알기에 침묵을 지키기로 했고 이건 잘한 일이라 지금도 생각한다.
남편 말로는 수술이 끝날 무렵 내가 너무 아파해서 추가마취를 했고 그래서 회복실에서 2시간을 기다려도 의식이 안 돌아온 채로 병실에 올라왔단다. 나중에 집도의에게 물어봤더니 수술전 준비가 늦어져 9시가 아니라 10시가 다 되서야 수술이 시작됐단다. 음. 마취선생에게 말이나 해볼 것을.
복강경 수술은 절제 없이 배에 구멍을 뚫은 뒤 수술하는 거라는 건 알았는데 수술을 용이하게 진행하기 위해 배에 가스를 넣는다는 건 이번에 처음으로 알았다. 수술이 끝나고 뺄 수 있는 가스는 최대한 뺐다는데도 부풀어오른 배는 걸을 때마다 출렁이고 간호사는 집도의를 확인한 뒤 화장실갈 때 말고는 움직이지 말고 누워만 있으라고 한다.
저녁 9시부터 물을 마실 수 있었고 다음날 아침은 죽, 점심부터는 바로 밥이다. 누워만 있는데다가 배에 가스가 차 입맛이 영 없지만 약을 먹기 위해 몇 숟가락이라도 억지로 먹었다.
어느 순간 깨달은 2가지. 1) 1인실이 날 때마다 간호사들이 은밀히 임산부에게 다가와 병실을 옮겨준다. 2) 다른 집도의에게 똑같은 수술받은 환자들은 바지런히 복도를 걷는 운동을 한다. 1)은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결국 수술 이틀 후 퇴원할 때까지 6인실을 썼다. 2)는 내가 대조군일까 싶다. 운동을 하는 경우와 누워 있는 경우에 따른 회복속도의 차이? 통증의 차이? 궁금하다.
퇴원할 때까지 어깨 통증이나 기타 후유증은 없지만 38도의 미열이 안 떨어져 나만 3일치 대신 5일치의 약을 받았다. 집도의는 집에선 누워 있지만 말고 부지런히 운동하라고 해서 꾸준히 산책을 시도하는 중이다.
다음주 수요일에는 실밥을 뽑으러 가야 하고 그날 저녁에 예약해둔 공연도 있으니 부지런히 트림하고 방귀를 뀌어야겠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순오기 2019-06-23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쿠...오랜 직장생활을 끝내고 수술을 하셨군요. 어여 회복하시고 일상으로 복귀하여 빈궁마마의 소식을 자주 접할 수 있기를...

조선인 2019-06-23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열심히 운동해 가스를 빼야하는데 미열이 안 떨어져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그래도 마음은 홀가분합니다.

비연 2019-06-24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장생활도 수술도 잘 끝내신 거군요~ 다행입니다. 그리고 애쓰셨습니다.

조선인 2019-06-24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애썼다는 말이 확 다가옵니다.

얼룩말 2019-06-24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