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일곱 살인 아이는, 작년부터 돈을 셈하기 시작했다.

셈이 빠르다기보다는, 돈에 너무 일찍 눈을 뜬 건 아닐까, 걱정하는 마음이 들었다.

할머니가 주로 키우는 아이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아이는 할머니 친구들을 비롯한 동네 어른들을 만날 때마다 한두 푼씩 돈 받는 재미를 쏠쏠 키워가고 있었다. 게다가 문방구에서 파는 고가의 장난감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아이는, 돈에 대한 관심이 지나쳐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심지어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나 돈벼락 맞고 싶어."

그 말은 내게 너무 충격적이었다.

 

 

돈에 일찍 눈을 뜬 아이를 위해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다.

1. 어른들이 준 돈 천 원 이상은 무조건 통장에 저금한다. - 그렇게 통장에 저금한 돈은 나중에 대학 등록금으로 쓴다.

2. 빨래 널기, 빨래 개기, 등의 집안일을 할 때에는 300원, 세차를 도울 시 500원을 받는다.

3. 딱지를 비롯한 장난감을 살 때엔 집안일을 해서 모은 돈을 쓴다.

4. 피아노 같이 비싼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부지런히 돈을 모아야 한다. 그래서 피아노 저금통을 만들어 틈틈이 돈을 그 안에 넣는다.

5. 고가의 장난감은 생일날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그리고 산타 할아버지에게 부탁한다.

6. 동전이 많아지면 조금씩 "월드비전 빵 저금통"에 돈을 넣는다.

 

갈수록 규칙이 늘어나는데, 규칙이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고,

일단, 아이에게

"누가 준 돈은 가짜 돈이고, 자기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은 진짜 돈이야. 그러니까 누가 준 돈은 금방 없어지고,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은 오래오래 남아 있는 거야."

아이에게 이 말을 세뇌시키고 있던 차에, 이 책을 발견했다.

 

 

돈이 열리는 나무에 게걸스럽게 붙어 피폐해지는 인간 군상, 돈이 열리는 나무를 버드나무처럼 그냥 보살펴 주기만 하는 정원의 주인. 가짜 돈을  향해 욕심을 품었을 때 구질구질해지는 어른들의 모습이 이 책에 나와 있다.

아직 일곱 살의 아이가 그 내용을 깊이 이해하기에는 어렵지만,

엄마와의 이야기가 있으면 충분히 깊이를 더해 갈 책이라고 믿는다.

무엇보다도 아래와 같은 좋은 책을 쓴 사라 스튜어트의 글이라 믿음이 간다.

 

 

    

 

"장난감을 사도 사도 계속 사고 싶어."
"그래, 엄마도 책을 사도 사도 계속 사고 싶어."

"정말? 엄마도 나랑 똑같아?"

자신의 욕심을 죽이려고만 한다면 얼마나 힘들까?

내 안의 욕심을 바로 보는 연습이, 아이도 나도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와 다시 한 번 <<도서관>>을 읽었다.

책을 사도 사도 끝을 보지 못했던 주인공이 마침내 도서관을 만들어 사람들과 책을 나눴다는 그 이야기를.

욕심을 키웠다 잠재웠다 하면,

어느새 우리의 욕심은 누군가와 나눠갖는 마음으로 별할지도 모른다.

세상은 그렇게 요술 같이 움직인다는 것을,

나는 아직도 믿고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7-06-18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라소 2007-06-19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향기로운 님께도 좋은 책이 되었으면 합니다. 돈, 진짜 중요한데^^
 

 

 

엄마는 나를 외톨이로 만들어.”

 

이 말은 내게 충격적이었다.

나는 비교적 아이와 대화를 많이 하는 엄마라고 생각했는데, 아이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엄마는 집에 오면 나랑 안 놀아 주잖아.”

아이는 내가 집에 들어오면 자기만 봐야 한다고 했다.

엄마가 자기 이외의 것에 몰두하는 게 싫다고 했다.

 

외동아이를 외톨이로 만들려는 엄마가 있을까?

하지만 본의 아니게 나는 그렇게 하고 있었다.

 

나의 취미를 아이와 공유하려는 작업이 쉽사리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나는 아이만을 위한 프로그램-학원 기타 등등-에 매이기 싫다.

내가 즐길 수 있는 것을 아이와 함께 즐기고 싶다.

억지로 하는 일은 누가 꼭 해야 한다고 충동질 쳐서 하는 일은 엄마에게도 아이에게도 좋지 않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내게 뭐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종종 내가 좋아하는 글을 아이에게 소리 내어 읽어준다.

수준과 내용을 따져가며 읽어 주지는 않는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면 소리 내어 읽어 준다.

 

엄마 때문에 외톨이가 되었다고 투덜거리는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레고 쌓기도 아니고 조립식 만들기도 아니고 축구도 아니었다.

나는 평소처럼 소리 내어 글을 읽었다.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 황인숙

 

이 다음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윤기 잘잘 흐르는 까망 얼룩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사뿐사뿐 뛸 때면 커다란 까치 같고

공처럼 둥굴릴 줄도 아는

작은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나는 툇마루에서 졸지 않으리라.

사기그릇의 우유도 핥지 않으리라.

가시덤불 속을 누벼누벼

너른 벌판으로 나가리라.

거기서 들쥐와 뛰어놀리라.

배가 고프면 살금살금

참세떼를 덮치리라.

그들은 놀라 후다닥 달아나겠지.

아하하하

폴짝폴짝 뒤따르리라.

꼬마 참새는 잡지 않으리라.

할딱거리는 고놈을 앞발로 툭 건드려

놀래주기만 하리라.

그리고 곧장 내달아

제일 큰 참새를 잡으리라.

 

이윽고 해는 기울어

바람은 스산해지겠지.

들쥐도 참새도 가버리고

어두운 벌판에 홀로 남겠지.

나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어둠을 핥으며 낟가리를 찾으리라.

그 속은 아늑하고 짚단 냄새 훈훈하겠지.

훌쩍 뛰어올라 깊이 웅크리리라.

내 잠자리는 달빛을 받아

은은히 빛나겠지.

혹은 거센 바람과 함께 찬 비가

빈 벌판을 쏘다닐지도 모르지.

그래도 난 털끝 하나 적시지 않을걸.

나는 꿈을 꾸리라.

놓친 참새를 쫓아

밟은 들판을 내닫는 꿈을.

 

 

이 시를 듣던 아이는 조금씩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뿐사뿐, 폴짝폴짝, 살금살금과 같은 의태어가 나왔을 때뿐만 아니라, 핥다, 앞발로 툭 건드려, 쏘다니가, 쫓다, 내딛다,의 동사도 몸으로 적절하게 표현했다.

 

움직임에 관한 표현이 많은 글을 읽어 주고 몸으로 표현하게 하는 방법-나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은 아이의 외로움 해소에 약간은 도움이 된 듯했다.

 

요즘, 아이의 몸에 흥이 돋는다.

늦은 봄, 트는 싹처럼 아이의 몸에서는 흥이 절로 나와 움직인다.

 

노래가 나올 때, 걸어갈 때, 그리고 엄마가 읽는 글을 들을 때.

 

 

어쨌든 나는,

아이를 외롭게 만들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아이만을 위한 일에 매달려 나 자신을 외롭게 만들고 싶지도 않다.

 

난 역시 너무 이기적인 엄마인가 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치유 2007-06-18 0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요..충분히 멋진 엄마인걸요..*^^*

보라소 2007-06-18 0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머, 제 첫 손님인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댓글을 읽고 이렇게 감동을 받기는 처음인 것 같아요^^ 앞으로 종종 만나뵐 수 있겠죠?
 



 
꽃이 날아다니다가



떨어져요

  

작년 6살 때, 아이가 지은 시다.

유치원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주제를 달리 해서 관련 내용으로 수업을 진행하는데, 작년 3월의 주제는 '봄'이었다.

아이와 봄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려는데,

마침 벚꽃잎이 눈꽃처럼 날렸다.

"저기 봐, 꽃이 꼭 눈 같다."라고 했더니,
아이는 위와 같은 말을 했다.

말이 아주 예뻐서 한동안 써 놓고 붙여 놓았다.

얼마 후,
아는 시인을 만나 현우의 시를 읊어주며
내 아이가 작가로 대성하지는 않을까, 하는 나의 조잡한 우려를

즉, 철없는 엄마의 호들갑을 숨김없이 보여주었다.

"하이쿠 같네."


문득, 나는 

한 편의 하이쿠를 떠올려 보았다.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이 매미 허물은

 - 바쇼
 

일본의 짧은 시 하이쿠.

몇 해 전 바쇼의 하이쿠를 몇 편 듣고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내 아이의 하이쿠 실력을 가늠해 보기 위해 이 책을 구입했다.  




꽃잎 하나가 떨어지네

어, 다시 올라가네

나비였네!

- 모리다케
 

첫 페이지를 열어 보니 내 아이가 쓴 시와 너무 비슷한 시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 잠시 진정한 뒤, 나를 위한 하이쿠를 한 편 썼다.

 

한 줄도 너무 길다

이 엄마의 호들갑

- 초짜 엄마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7-06-18 1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작년 가을이었다.

 

식탁 위에 올려 놓은 책 한 권을 아이가 집어들며 물었다.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그 옆에는 무슨 말이야?"

 

"시집, 시는 동시할 때 시, 집은 묶어 놓 거 말하는 거야."
 

"엄마, 기형도 여자야?"


"아니, 남자야."


"근데, 왜 시집이라고 써? 시집은 여자가 가는 건데."

 

한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아이에게  '詩集'을

 


목록을 더듬거리다가 여느 때처럼, 84쪽을 펼쳐 보았다.

 



위험한 가계, 1969

 

(생략)

콩나물에 물은 주셨어요? 콩나물보다 너희들이나 빨리 자라야지. 엎드려서 공부하다가 코를 풀면 언제나 검댕이가 묻어나왔다. 심지를 좀 잘라 내. 타버린 심지는 그을음만 나니까. 작은 누이가 중얼거렸다. 아버지 좀 보세요. 어떤 약도 듣지 않았잖아요. 아프시기 전에도 아무것도 해논 일이 없구. 어머니가 누이의 뺨을 쳤다. 약값을 줄일 순 없다. 누이가 깎던 감자가 툭 떨어졌다. 실패하시고 나서 아버지는 3년 동안 낚시질만 하셨어요. 그래도 아버지는 너희들을 건졌어.

(하략)

 


*

 
어떤 시보다도 나는 기형도의 [위험한 가계, 1969]가 좋다.

아이가 커가는 것을 보며,

내가 나이를 먹는 것을 눈치챌 때 왠지 불안해지면

이 시를 읽는다.

 

내가 늙어 생을 돌아보며,

'난 지금까지 뭘 하고 살았지?'라고 자학할 때,

아이가 이렇게 나를 위로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엄마는 나를 건졌잖아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는 사람을 향해 손가락을 내밀며, “라고 부르는 습관이 있었다.

이 사람, 이 분, 이 아이 모두 라고 불렀던 것이다.

버스 옆 자리에 앉은 할머니를 가리키며,

엄마, 불편해. 얘 좀 옆으로 가라고 해.”라는 이야기를 하며 나를 난감하게 만들었던 때도 있었다.

 

김연수 소설집, <<나는 유령 작가입니다.>>를 읽고 있을 때였다. 

... 엄마, 얘 알아?”

 

없는 자리에서 이 새끼, 저 새끼도 마다하지 않는 마당에, 작가를 가리키며 라고 부르는 것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아이의 말을 굳이 걸고 넘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 알아.”

얘도 엄마 알아?”

 한 때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보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 더 많기를 바라기도 했다.

 내가 아직도 그것을 꿈꿀 만큼 철부지가 아닌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대답할 수 있었다.

 

 얘는 나 몰라.”

 

 아이는 작가의 사진을 한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엄마는 얘를 아는데, 얘는 엄마를 모른다. 우리는 무슨 관계라고 생각했을까? 현우는 한 마디로 결론을 내 주었다.

 

 엄마, 얘랑 놀지 마.”

 

 

 나도 작가 김연수랑 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것은 아마 김연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소설은 읽고 싶었다. <<나는 유령 작가입니다.>>는 좀 나에게는 난해했지만, 그의 전작 <<내가 아이였을 때>>는 참 좋았다. 그 창작집의 내용 중의 일부를 파일로 정리해 두고 가끔씩 열어 보곤 한다.

 

<연수>

내가 아이였을 때 중, 뉴욕제과점

이윽고 국밥이 나왔고 나는 내낸 고개를 숙이고 국밥을 먹었다. 국밥은 따뜻했다. 나는 셈을 치른 뒤, 새시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역전 거리의 불빛들이 둥글게 아롱져 보였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그렇게 많은 불빛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조금만 있으면 된다. 어차피 인생이란 그런 게 아니겠는가.

 

 잠시 후, 아이 A4지 한 장에 이런 글을 써 주었다.

 

 나는 레고 작가입니다.

-         조영미 소설집

 

아이가 써 준 제목 하나만으로도 나는 내 책을 갖게 된 것만큼이나 가슴이 떨렸다.

어쩌면 아이는 자기 손으로 엄마의 책을 한 권 출판해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생각나는 대로 썼을 수도……

 

나는 은근히 전자이기를 기대했으나, 아마 가능성은 후자가 클 것 같다.

 

 

어쨌든,

아이들은 패러디에 능하다.

아이들은 레고도 잘한다.

아이들은 엄마의 마음을 알아 준다.

 

애써 떠올려 본다.

내가 아이였을 때, 나도 그랬을까?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이 모든 이야기가 2006년 어느 봄날의 일이라는 것밖에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