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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 독자에서 에세이스트로
배지영 지음 / 사계절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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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배지영, 사계절(2022)

 

(90)

 글쓰기는 퀵서비스처럼 결과물을 현관 앞까지 배달해주지 않았다. 악천후를 각오하고 혼자서 설어가는 사람에게만 저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고 암시해주었다. 변덕까지 심한 글쓰기는 볕이 따갑다며 나무 그들이 되어주다가도 땅거미 내려앉은 황량한 벌판에 그냥 세워두고 가버렸다. 사람들은 눈물을 쏟으면서 쓰고 고쳤다. 고통은 끝까지 파고들면,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지키는 힘이 생겼다. 타인에게 휘둘리는 일이 줄어들었다. 현실은 바뀌지 않아도 글 쓰는 자기 자신은 달라졌다. 글쓰기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이유가 사라졌으므로 날마다 쓰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글쓰기에 의심이 많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이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무슨 좋은 세상을 보자고 이렇게 힘들게 쓰고 있는 건지,

하루 루틴에는 소설 필사, 시 한 편 읽기, 독서, 그리고 글쓰기가 있다. 장르 불문하고 쓴다. 쓰면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으면 신경질을 낸다. 이렇게 매일 쓰는데도 자주 막히다니, 난 왜 이렇게 더딜까. 신경질이 자책과 자학으로 이어지곤 한다.

 

나의 의심으로 시작된 신경질과 자학에 배지영 작가가 답해주었다.

 “글쓰기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이유가 사라졌으므로 날마다 쓰는 사람이 되었다.”

 나도 그랬다. 지금 글쓰기가 막혀도 멈출 수가 없는 건 내가 글쓰기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매일 글쓰기로 스스로가 변화된 것이다.

 

 내가 브런치 글쓰기를 지속한 데에는 배지영 작가의 영향이 컸다고 고백한다. 다른 글에서도 밝혔지만 배지영 작가님은 내 브런치 구독자 1호였다. 당시 그분은 <우리, 독립 청춘>이란 작품으로 브런치 대상을 받아 주목받는 작가로 발돋움했고(어쩌면 그 이전에도 알려졌고) 그 이후 매년 출판계약서를 작성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나는 그녀와 이전부터 알던 사이도 아니었고, 우리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지만 나는 글쓰기나 출판에 대해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다소 뻔뻔하게) 그녀를 찾았고 그녀는 아주 친절하게 내 고민에 귀기울여주었다. 브런치 글쓰기를 비롯해 다양한 글쓰기, 출판에 대한 과정은 내가 그녀를 벤치마킹했기에 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134)

 사람들이 건넨 말은 상대방의 귀에 닿았다가 흩어지지 않고 가슴 속에 뿌리내리기도 한다. 힘들 때는 그 말에 기대어 일어서는 사람도 있다. 글쓰기를 택한 사람들은 밑줄 긋고 별표 친 문장처럼 마음에 새겨놓은 말을 끄집어냈다. 듣기는 기차의 선로처럼 글쓰기와 마주 보고 있었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탐구하는 글도 자주 단체 메시지방에 올라왔다.

 

 배지영 작가는 글쓰기 모임을 통해 사람들이 서로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개인의 경험을 공유하며 그것이 글쓰기로 이어지는 작업을 이끌었다. 글쓰기는 혼자만의 고독한 작업이기도 하지만 독자가 있다는 점에서 그리 외롭지만은 않다.

 내가 첫 에세이집을 냈을 때 일면식도 없는 분들이 서평을 써서 공유했을 때 그 감정을 느꼈다. 당시에는 대만에서 홀로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언제 그칠지 모르는 장맛비를 멍하게 보며 글을 썼지만 그것이 출판이 되어 세상에 나왔을 때에는 독자라는 귀한 동반자가 생겼고, 또 이들이 정성어린 시선으로 내 글을 읽어줬으니 나는 헛발질하듯 글쓰기를 한 것만은 아니었구나, 글쓰기가 외로운 일만은 아니었구나라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은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강요하지 않는다. 내가 쓰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날의 장면을 소환해준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도 쓰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넌지시 알려준다. 쓰는 사람은 출판 경험이 있거나 유명 작가를 일컫지도 않는다. 그저 말 그대로 쓰는 사람을 말한다.

 

 장담하건대 우리는 어떤 이유에서든 글을 쓰게 되며, 어떤 순간에는 글을 쓰는 자신을 보게 된다. 오늘 나는 무엇을 했고, 누구와 함께 했고, 그들과 무엇을 했으며 그것으로 나는 또 무슨 생각을 했는지 되짚어본다면 우리는 어느 새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그런 순간이 온다면, 아니 그런 순간은 정말 오니까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을 곁에 두고 보시라고 알려주고 싶다. 누구나 아는 말이지만, 나만 아는 비밀을 말해 주듯이.

 

 우리는 오늘도 쓰는 사람으로 하루를 보낸다. 배지영 작가도, 나도, 여러분도.

 

 *본 글은 개인 블로그 브런치에도 올렸습니다.


https://brunch.co.kr/@youngmicholaf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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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을 위한 참 쉬운 한글 배우기 - Easy Learning Hangeul for Beginners: Simple and Easy Self-Study Book for Mastering Hangeul
한혜민.박세희 지음, 조영미 감수 / 왓어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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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종종 나를 한글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한글도 가르치니까. 하지만 나는 한글만 가르치는 한글 선생님이 아니며, 학생들은 한글만 배우는 학생들이 아니다.

 

나는 대학에서 대학생 혹은 대학원생인 성인 학습자들을 가르친다. 초급, 중급, 고급 단계를 모두 가르치는데, 초급 중에서 일명 가나다반이라 부르는 왕초보, 그러니까 한글 자모부터 배워야 하는 학습자들도 맡는다. 사람들은 이들을 한글 가나다, 를 배우는 유아들을 동일시하는데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첫째, 이들의 자모 학습 순서는 다르고

 둘째, 이들은 유아가 아닌 성인이다.

이 두 가지 문제를 깊이 있게 짚어봐야 한다.

 

육아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어린 아이의 한글 학습을 함께 한 분이라면 아이들의 한글은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로 모음은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 순으로 가르칠 것이다. 심지어 모음을 가르칠 때에는 음가가 없는 을 빼고 ㅗ ㅛ ㅜ ㅠ 이런 목 잘린 모양의 글자를 가르치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잘만 배운다. 1) 아이들이라 의심 없이 알려주는 대로 잘 배우는 습성이 있고, 2) 모국어 화자라 매일 글자와 매치되는 단어와 발화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인 외국인 학습자라고 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 ‘ㅂ  ㅏ라고 써서 붙여 쓰라고 하면, ‘의 간격은 어느 정도 띄어야 하느냐고 묻고,

를 쓸 때, ‘보다 짧은 를 써서 작대기를 길게 내려주면 또 ?”냐고 묻는다.

를 쓸 때 몇 번을 연습해도 ㄹㅗ라고 쓰고서는 에서 자모 위치가 왜 달라지느냐고 묻고,

교사도 사람인지라 사사사사사, 를 다섯 번 쓰고, 다섯 번 읽을 때 모든 글자와 모든 발음이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학생들은 그걸 귀신 같이 찾아내고는(혹은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고는) “왜 첫 번째 사와 네 번째 사가 글자가 다르냐고 물었다. 칠판을 보니, 쓰다가 분필이 부러져서 네 번째 의 작대기가 조금 짧았다. 나는 다시 분필을 들고 작대기를 길게 이어줬다.

 

학생들이 이렇게 글자 하나 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자기 모국어와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내가 모 대학 교환학생 반을 맡고 있는데 이들은 한국어 학습이 아예 전무한 학생들이며, 영어 강의로 진행을 해야 하는 수업이다. 20명 중 말레이시아 1, 홍콩 1, 브라질 1, 나머지는 유럽 출신자들이다. 한국어 자모의 구조가 낯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스무 살이 훌쩍 넘은 성인 학습자들이며, 교환학생이니 자국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왔으며, 영어로 의사소통에 무리가 없는, 교육을 받은 이들이다. 교육 받은 성인이 외국어를 배울 때의 특징은, 1) 외국어를 언어학적으로 분석하고 싶어하고, 2) 목표 언어와 모국어와의 차이를 분명히 인지하고자 하는 욕망이 크다는 점이다. 자모 학습이라면 그냥 읽고 따라하고 쓰면 되는데, 이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궁금한 게 너무 많은 어른들이다. 따라서 이들을 가르치는 이들은 한국어를 외국인의 입장에서 낯설게볼 줄 알고 자신의 모국어를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성인 학습자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을 맡는 이들은 모두 훈련된 전문가들이다.

훈련이 되었다는 말은 적어도 석사 이상의 학위자나 국립국어원에서 발급한 한국어교원 2급 이상을 보유했으며, 전문 기관에서 교수 경험이 있다는 말이다.

얼마 전, 모 방송의 진행자인 유명 MC가 프랑스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의 일상을 보고 이런 말을 했다.

 “저거, 초등학생들 가르치는 거랑 똑같네.”

 나는 그 MC의 발언은 상대의 직업에 대한 무지에서 온 무례한 발언이라고 생각했다.

 모국어 화자가 듣기에 조나단 씨, 무슨 음식을 좋아해요?”라는 질문은 너무 쉽거나 너무 부자연스러워서 나라도 저런 말을 가르치겠다.”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고, 나 또한 그런 말을 종종 들어왔다. 그러니 한글을 가르친다고 하면 대한민국의 많은 이들이 연령 불문하고 외국인을 가르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손을 번쩍 들지 모른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그들이 배워야 할 한국어의 기본을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한국어 교육 전문가들은 오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연구해 왔다.

 최근 그 결실을 가까이에서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외국인을 위한 쉬운 한글 배우기

한국어교육학으로 학위를 받고 홍콩 소재 대학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친 전문가 한혜민, 박세희 교수가 한글 학습 책을 출판했다. 대학에서 학부생, 대학원생을 가르치는 교수자가 한글 학습 교재를 내는 일은 흔하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해외에서 오랜 시간 한국어를 가르치며 한글 자모 학습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 체감한 전문가들이다.

 

이 전문가들이 한글 학습 교재를 낸다고 했을 때 더없이 반가웠다. 나 또한 현장에서 이러한 교재의 필요성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특히 몇 번을 가르쳐도 를 ㅂ   , 라고 쓴 학생들을 볼 때 더더욱

 

나는 이들이 집필한 교재를 감수하게 됐다. 감수라는 타이틀 없이도 이러한 교재라면 기꺼이 찬찬히 보고 의견을 줄 수 있었다. 그만큼 현장에서 필요한 교재라고 강조하고 싶다.

 

언어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외국인들에게 한글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이 책을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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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벼랑 끝에 서지 않도록 - 김치찌개 파는 신부가 건네는 따끈한 위로
이문수 지음 / 웨일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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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벼랑 끝에 서지 않도록> 서평

 

최근 서평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실감하며 나 또한 누군가의 책을 읽고 성실히무엇보다도 작가가 읽고 기뻐할 서평을 쓰고 싶어졌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좋아할 만한 책을 선택해야 했다.

 

누구도 벼랑 끝에 서지 않기를

나는 이 책의 제목을 부정확하게 표기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검색 사이트에서였다. 친절한 포털 사이트는 나의 오류를 정확히 짚어주었다.

누구도 벼랑 끝에 서지 않기를

나는 왜 이 책의 제목을 이렇게 기억했을까. 그것은 바로 나의 심적 상태가 그러했을 것이다.

누구도 벼랑 끝에 서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 나는 그저 마음 속으로 바라기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은 그와 달랐다.

누구도 벼랑 끝에 서지 않도록

이 제목은 내 마음 속에서 멋대로 만들어낸 제목과 한끗차이로 다른 듯하지만 내포된 의미는 확연히 달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연결어미 ‘-도록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으니

누구도 벼랑 끝에 서지 않도록 (우리는) 행동한다.

이 말을 뜻을 되뇌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도록의 의미가 이토록 강한 행동성을 내포하는지 제대로 학생들에게 설명하지 못했을 거란 자책도 들었다.

 

이문수 가브리엘 신부님은 이 책의 저자이다. 그는 정릉역 근처에서 밥집을 운영하는 사장님(?)이기도 하다. 조영미 베로니카 성도는 이 사실을 성당이 아닌 유퀴즈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되었다. 스무 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을 하며 나 또한 청년들의 문제에 깊이 관심을 갖고 있는 터라 신부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게 되었다. 토크쇼 형식의 프로그램을 통해 신부님이 사회에 나와 힘겹게 삶을 일구는 청년들에 대한 애정을 볼 수 있었다.

 

토크쇼에서 미처 다 다루지 못했던 식당 <청년문간> 이야기, 그리고 청년들의 이야기를 책에서 볼 수 있었다. 특히 청년들과 함께 한 스페인 순례길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다. 청년들을 위한 일을 했지만 그 과정에서는 의도와는 다른 일이 생긴다. 사람의 마음 때문이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신부님께서 인간의 성격 유형을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패러디해 돕는 놈, 걱정하는 놈, 비웃는 놈으로 구분한 부분이었다. 청년문간을 준비하면서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요리교실에 등록해 수업을 들은 에피소드에서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나왔고, 도움을 주지도 않을 거면서 괜히 청년문간에 드나들며 자기가 얼마나 잘난 인간인지를 얘기하며 괜히 상대를 걱정해주는 듯, 하면서 비웃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내 경험이 떠올라 욱, 하는 감정이 들끓었다.

 

 내가 대만에 간다고 했을 때, 대만에 있는 아는 친구를 소개해 준 고마운 분이 있었다. “선생님, 중국어 못하는데 어떻게 해요?”라고 걱정하며 내 중국어 일일교사를 자청한 학생도 있었다(물론 나는 그 학생의 배려를 정중히 거절했다). 대만에 도착해서는 내 생활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대만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태풍이 오는 날 내가 굶어죽을 줄 알고 걱정해주면서 집에 먹을 건 있느냐고 연락을 주기도 했다. 반면에, “선생님은 중국어도 잘못하는데 여기 계속 살아서 뭘 할 수 있겠어요?”라며 비웃는 동료도 있었다. 내가 성과라도 내면, 조언을 해준답시고이 나라에서는 뭘 하려는 사람을 싫어한다고요라고도 했다. 소위 맨땅에 헤딩하듯고군분투하는 이들 앞에는 이렇게 조롱하는 이들이 있다. 신부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시니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나만 속이 좁아터져 상대의 비웃음을 마음에 담아둔 게 아니었구나, 애쓰는 이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이들에게 속 시원히 한 마디 해줄 필요는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로써 나를 도와준 이들의 존재가 한없이 더 고맙게 다가왔다.

 

신부님은 글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듯이 썼다. 시종일관 그랬습니다라는 구어체 형식으로 서술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신부님에게 존중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 그 기분은 뭐랄까, 성직자로부터 은혜를 받은 느낌이 될 수도 있었으나 그보다 대화를 나누는 상대에게 대접을 받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책을 읽으며 신부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는데 그것은 그분이 청년을 위한 밥집을 차려줘서도 있었지만 나를 독자로서, 청년문간에 관심을 갖는 이로서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마음이 더 컸다고 하면 전달이 될까.

 

웨일북 서평단 모집에 신청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나도 언젠가 출판사에서 서평단을 모집해 주는 작가가 되어야지, 라는 생각을

나도 소중한 한 끼를 기다리는 누군가를 위해 보탬이 되어야지, 라는 생각보다 먼저 했다.

나는 크려면 아직 멀었다.

 

<사족>

유퀴즈 방송 이후 우리 가족은 <청년문간>에서 식사를 했다. 정말 푸짐하고 맛깔스러운 음식이었다. 아이는 내게 우리가 이렇게 많이 먹어도 되느냐고 재차 물었다. 나는 당당히 말했다.

신부님이 괜찮다고 하셨어.”

3인 식사비 9,000원에 추가로 기부금을 냈다. 기부금은 모바일로 간단히 할 수 있었다.

아이가 얼마 후 시급이 아닌 월급을 받는 일을 잠시나마 하게 됐다.

첫 월급으로 엄마에게 금일봉을 주었다. 나는 그것을 아이 이름으로 청년문간에 기부했다.

내가 이 사실을 알리는 이유는,

태생적으로 겸손이 부족해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기 어려웠고,

이 글을 보는 분들도 <청년문간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가브리엘 신부님, 저 잘했죠?”라고 씨익, 웃으며 묻고 싶어진다.

역시 겸손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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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종의 조건 - 관심을 무기로 시장을 장악한 사람들의 법칙
임홍택 지음 / 웨일북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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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매력을 자본으로 환원하고, 시대의 승자가 될 수 있다."

이 책의 표지 문구이다. 

'관종'을 다소 부정적으로 인식했던 적이 있었다.

내가 나를 알리고 나만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일, 또한 이를 통해 '진정성'을 가진 전문가로 거듭나는 일이 관종이라면, 우리는 관종이 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 같다. 시대의 요구를 읽고 이해하기에 적합한 책이었다. 내가 밑줄 그은 부분은 아래와 같다.


(119)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꺼지지 않는 가시성’은 큰 틀의 카테고리의 1인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시장에서 나만의 차별성을 보이는 이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가령 전체 여행 카타고리의 No.1 유튜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산속 사찰을 소개하거나, 인적이 드문 섬을 여행하는 유튜버가 더 효율적인 선택이 될 것이라는 의미다. 그 과정에서 단순히 남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바칠 수 있는 영역을 찾고 이에 대한 실력과 화제성을 동시에 갖추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141)
<어떻게 능력을 보여줄 것인가>의 저자 잭 내셔는 정해진 관습과 불일치(nonconformity)하는 모습을 보일 때 오히려 능력이 높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파격이 오히려 품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불일치의 기술이 통하는 것은 어느 정도 본경 받은 위치에 있는 이들뿐이라고 덧붙였다.
(196)
<어떻게 능력을 보여줄 것인가>의 저자 잭 내셔는 정해진 관습과 불일치(nonconformity)하는 모습을 보일 때 오히려 능력이 높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파격이 오히려 품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불일치의 기술이 통하는 것은 어느 정도 본경 받은 위치에 있는 이들뿐이라고 덧붙였다.



사전에는 없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바로 그 단어
‘관심받고 싶어 하는 사람’을 뜻하는 ‘관종’은 ‘관심 關心’이라는 단어와 ‘종자 種子’라는 단어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관심종자 關心 種子’의 준말이다.
2012년도부터 10대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한 이 단어는 주로 ‘관심받고 싶은 욕심 때문에 과도한 언행을 보이는’ 연예인이나 SNS상의 유명인을 비하하는 용어로 사용됐다.
인터넷 신조어인 탓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공식 등재되어 있지는 않지만, SNS와 인터넷 그리고 방송 등에 자주 등장해 이미 많은 사람이 이 단어가 뜻하는 바를 익히 알고 있다. 외부 기관에 의뢰해 총 500명(10대에서 50대까지 각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0명 중 약 95명이 관종의 뜻을 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P19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꺼지지 않는 가시성’은 큰 틀의 카테고리의 1인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시장에서 나만의 차별성을 보이는 이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가령 전체 여행 카타고리의 No.1 유튜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산속 사찰을 소개하거나, 인적이 드문 섬을 여행하는 유튜버가 더 효율적인 선택이 될 것이라는 의미다. 그 과정에서 단순히 남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바칠 수 있는 영역을 찾고 이에 대한 실력과 화제성을 동시에 갖추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P119

이와 같은 이유로, 나는 관종의 조건 중 하나로 세상에 염가로 풀리는 진정성이라는 마법의 단어 대신 진실성이라는 단순한 단어를 활용하고자 한다. 여기서 말하는 진실성은 도덕적인 개념이 아닌 실용적인 개념에 가깝다. ‘진실한 척’을 의미하는 진실성이 아니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언급하는 진실성은 바로 열심히 일한다는 말이 아닌 실제로 보여주는 실적, 나의 진정성을 믿어달라는 주장 대신 나를 자연스럽게 믿게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을 예시로 사용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진실성을 말하는 자에 대한 가치 판단은 필요 없을 것이다. 진짜는 진짜일 뿐이니까.
- P141

<어떻게 능력을 보여줄 것인가>의 저자 잭 내셔는 정해진 관습과 불일치(nonconformity)하는 모습을 보일 때 오히려 능력이 높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파격이 오히려 품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불일치의 기술이 통하는 것은 어느 정도 본경 받은 위치에 있는 이들뿐이라고 덧붙였다.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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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치핀 -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
세스 고딘 지음, 윤영삼 옮김 / 라이스메이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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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조영미의 브런치에 올린 글입니다.

 

https://brunch.co.kr/@youngmicholaf5/74

사람은 누구나 적어도 한 번은 천재였던 적이 있다. 누구나 한 번은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올 수 있는 날개를 찾고 발명하고 창조했다.

예술은, 적어도 내가 정의한 예술은, 자신의 인간성을 활용하여 다른 사람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의도적인 행동이다.

-      세스 고딘의 린치핀 中

내가 천재였던 적은 없었다. 나에게 천재성은 앞으로도 오지 않을 거라 해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나는 적어도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올 수 있는 날개가 있으니.

그 날개는 나를 멀리멀리 좋은 데로 데려가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 날개는 나를 더 멀리 가지 않고 내 자리를 지키게 해 주었다.

그 날개는 바로 글쓰기였다.

한 때 글쓰기를 거창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글쓰기에는 뭔가 특별함이 있어야 하고,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야 하고,

그런데

글쓰기는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 않았다.

그래서 포기했다.

너무 지루했다. 한참 뒤, 내가 쓴 글들을 보았다. 이상하고 웃기는 글을 보면서 내가 진짜 이상하고 웃긴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웃겼다. 내 글이, 글을 쓰는 내가, 진짜 웃겼다.

그래서 또 다시 썼다.

이상한 사람이었고 지금도 이상한 사람인데 그래도 뭔가를 쓰려고 애썼던 내가 애틋하고 기특하고 그랬다. 무엇보다도 에너지가 느껴졌다.

글쓰기는 그저,

나를 나로 살게 해 주었다.

나를 나로 사는 데에도 힘이 쓰인다. 가만히 있는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나를 나로 살게 하려면, 나를 인간답게 만들어야 하는데,

인간답다는 건 어제보다 조금 나은 오늘을 보내려고 애쓰는 일이다.

그래서 글쓰기를 했다.

평범함이란, 좋은 물건이 되려고 했으나 실패한 것을 가리킬 뿐이다. – 46

가만히 있으면 평범해진다. 그것은 인간답지 못하다. 그래서 나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는 예술은 미완성 작품일 뿐이고 온전한 예술이 되지는 못한다. – 148

일기가 아닌 보이는 글쓰기로 이 공간을 오가는 님들과 소통을 하게 되었다. 이 길을 오가는 님들 모두 예술을 추구하는 이들이라고 믿는다. 그분들에게 배우는 게 참 많다. 덕분에 나도 예술의 일부분을 엿보게 되었다.

보랏빛 소가 가치 있는 제품에 대한 은유였다면, ‘린치핀은 가치 있는 사람에 대한 은유다. 누구나 찾아서 곁에 두고 싶어하는 꼭 필요한 사람이다.  – 22

삼십 대에 막 들어섰을 때였다. 노력만 하면, 내가 뭔가가 될 줄 알 때였다. 내가 정한 뭔가는 내 자리에서 짱 먹는 일이었다. 사회생활은 발끝으로 축구공 오래 차기 같은 것도 아니라서 다리가 길다고, 연습을 많이 했다고 해서 짱을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때 내가 읽은 책은 보랏빛 소가 온다였다. 그 신선함은 이루 말할 데가 없었다. 새로운 일을 꾸준히 찾아가는 힘을 보라소로부터 받았다. 지금 그 힘을 린치핀으로 다져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잠시 넷플릭스를 꺼두고 오랜만에 종이책을 넘겨보며, 조심스럽게 날개를 펼쳐본다. 그래, 오늘도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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