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이었다.
식탁 위에 올려 놓은 책 한 권을 아이가 집어들며 물었다.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그 옆에는 무슨 말이야?"
"시집, 시는 동시할 때 시, 집은 묶어 놓 거 말하는 거야."
"엄마, 기형도 여자야?"
"아니, 남자야."
"근데, 왜 시집이라고 써? 시집은 여자가 가는 건데."
한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아이에게 '詩集'을
목록을 더듬거리다가 여느 때처럼, 84쪽을 펼쳐 보았다.

위험한 가계, 1969
(생략)
콩나물에 물은 주셨어요? 콩나물보다 너희들이나 빨리 자라야지. 엎드려서 공부하다가 코를 풀면 언제나 검댕이가 묻어나왔다. 심지를 좀 잘라 내. 타버린 심지는 그을음만 나니까. 작은 누이가 중얼거렸다. 아버지 좀 보세요. 어떤 약도 듣지 않았잖아요. 아프시기 전에도 아무것도 해논 일이 없구. 어머니가 누이의 뺨을 쳤다. 약값을 줄일 순 없다. 누이가 깎던 감자가 툭 떨어졌다. 실패하시고 나서 아버지는 3년 동안 낚시질만 하셨어요. 그래도 아버지는 너희들을 건졌어.
(하략)
*
어떤 시보다도 나는 기형도의 [위험한 가계, 1969]가 좋다.
아이가 커가는 것을 보며,
내가 나이를 먹는 것을 눈치챌 때 왠지 불안해지면
이 시를 읽는다.
내가 늙어 생을 돌아보며,
'난 지금까지 뭘 하고 살았지?'라고 자학할 때,
아이가 이렇게 나를 위로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엄마는 나를 건졌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