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작년 가을,

가슴이 먹먹했다.


 천장에 박힌 야광별 스티커를 세어 보는 일이, 오로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양, 나는 방에 누워만 있었다.

우울해 하는 엄마 곁을 지키는 아이, 내가 세어야 할 별 중의 하나.

아니, 어쩌면 나의 유일한 별, 내 아이를 눈에 넣었다.

 내 눈에서는 별똥별이 희미하게 떨어졌다.
 
아이는 제 손바닥을 내밀어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 죽으면 우리 현우 어떻게 하지?"

 

아이는 아주 담담하게 대답했다.

 

"절 해야지, 두 번."

 

                                                     *

 

이 일이 있고 난 뒤 몇 달 후, 이 책을 읽었다.

 

주인공의 대사에서 나는 엄마의 슬픔을 모른 척 해주고 넘어갔던 내 아이의 모습이 겹쳐졌다.

 

역시, 내 아이는 나를 잘 키워주고 있다.



 (66)
 안개가 짙게 내려앉은 듯한 침침한 방 안에서, 아저씨가 흘리는 눈물을 볼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다.
-         내가 늦잠을 잤구나.
 아저씨가 나직하게 말했다.
 아저씨는 평생 동안 단 하루도 늦잠을 자지 않았고, 나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저씨는 아침 해처럼 어김없이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었다.

 나는 아저씨의 손에서 내 손을 빼내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다.
-         괜찮아요, 아저씨. 누구나 늦잠을 자는걸요.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렇게 말했다.
 더 주무시고 싶으면 계속 주무세요. 저는 가서 커피 끓일게요. 그리고 일어나시면 달걀 프라이랑 코코아도 만들어 드릴게요.
 오브 아저씨는 말리지 않았다. 창피해서 혼자 있고 싶은 것이다.

 

 

뉴베리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신시아 라일런트의 동화는 무조건 다 좋다.

 

특히, 아이의 심세한 심리묘사가 두드러진 다음 작품도 참 따뜻하다.

 



그리고 유아를 위한 다음의 그림책도 정말 훌륭하다.

 

     




 신시아 라일런트는 나 같이 아직도 덜 자란 어른,
자기가 수시로 사춘기에 빠져드는 줄 아는 덜 자란 어른에게

미처 듣지 못 했던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 준다.

 

참, 좋은 작가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치유 2007-06-25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메이아줌마랑 이름짓기 좋아하는 할머니, 조각난 하얀 십자가도 보았네요..요즘엔 좋아하는 그림동화도 못보고 지나가고 있어요..

치유 2007-06-25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담하게 절해야지 두번...가끔 내아이 말이 가슴에 스며들때가 있어요..전 지금도 어릴적 내 아이가 한말이 생각난답니다..
학교데려다 주던 시절 그러니까 저학년이던때.늘 차조심해라 길가다 모르는 아저씨가 부르면 절대 가지 말아라..등등 한말 또하고 또하며 데려다 주는데
아이가
"엄마 나 죽으면 난 천국에도 못 갈거야.."
하더라구요..
"왜??"
그러니까 하는말
" 엄마가 너무 너무 울텐데 가슴 아파서 내가 어떻게 가겠냐구.."

그대부터 아이를 한발짝 떨어져서 지켜보려고 애쓴답니다..

보라소 2007-06-25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님은 동화를 많이 보시나 봐요. 혹시 동화 평론가 혹은 작가가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배꽃 님 아이의 말도 가슴에 와 닿네요. 아이가 나이보다 훌쩍 큰 건 아니었을까요?
 

 


아이와 함께 서울국립과학관에 갔을 때였다.

사이언스 데이라는 국적불명의 기념일이랍시고 여기저기에서 단체로 많은 학생들이 모였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에 치여 가파른 언덕길을 올랐을 때, 나는 과학관이 위치한 정상에서 어처구니 없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교복을 입은 한 남학생이 주차장 가운데서 엎드려 뻗쳐를 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삼십 대 후반 가량의 한 남자가 기다란 막대기로 그 학생의 엉덩이를 찌르고 있는 것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려고 밀려 오는 차가 많아지자 조폭 세계의 왕초마저도 경악할 정도로 능수능란한 쫄개다루는 솜씨로 그 선생은 엎드려 있는 학생을 비어있는 주차 공간으로 잽싸게 옮겨 놓았다.

바닷가 모래 벌판을 기어가는 게처럼 그 학생은 선생의 지시를 따라 네 개가 된 다리로 열심히 움직여 마침내 주차장의 빈 공간에 터를 잡을 수 있었다.

 

사이언스 데이를 맞이하여 각 학교에서는 볼 거리가 많다는 서울국립과학관으로 단체 관람을 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곳에서 재방송처럼 연출된 장면은 나의 암울했던 고교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선생 치고 안 때리는 인간 없었던 그 시절을.

 

엎드려 뻗쳐를 할 곳은커녕 차 댈 공간도 없어진 주차장에서 그 다리가 네 개 달린 불쌍한 게는 다리 두 개를 허공으로 흔들며 과학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 때, 또 다른 저승사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똑바로 해, 이거 수행평가에 들어가.”

 

그 학생이 교복을 입고 교사를 따라 야외학습을 오는 이유는 고작 수행평가에 기죽은 주차장의 게가 되기 위함이었을까.

 

아이의 과학 수업이 끝나고 50분 뒤, 나는 그 선생을 다시 만났다.

그는 학생들을 모두 과학관 안으로 밀어 넣은 다른 교사들과 함께 과학관 앞 광장 계단에 앉아 노가리를 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막대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이제는 아무도 그를 따르지 않는다.

 

 

위의 광경을 보고는 존 게토의 <<바보 만들기>>가 떠올랐다.

  *************************

(38-39)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끊임없이 평가와 판별을 받습니다.

/

시험과 성적, 통지표의 가르침이란 아이들이 자기 자신이나 부모를 믿기보다는 자격증을 가진 권위자들의 평가에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도 남이 가르쳐 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40)

사회를 확고한 중앙통제 아래 잡아 놓으려면 아이들을 빈틈없이 감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제복을 입혀 악대 속에 묶어 놓지 않으면 떠돌이 피리쟁이를 따라가 버릴 것입니다.

 

(81-82)

 새로운 목소리, 새로운 생각을 들어달라고 요구해야만 합니다. 제 생각과 여러분의 생각들을 텔레비전과 신문으로 쏟아지는 권위 있는 목소리에는 이제 우리 모두 신물이 났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만인이 참가하는 십 년에 걸친 대토론회입니다. 전문가의 의견이 아닙니다. 교육의 전문가들은 옳은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들이 내놓는 해결책이란 비용은 많이 들고 자기네들에게만 유리한 것이며 예외 없이 중앙집중의 강화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를 우리는 보아 왔습니다.

 이제 돌아갈 때가 왔습니다. 민주주의로, 개인의 세계로, 가정으로.

**************************

하나 더,

학생들을 두드려 패는 선생의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한 김종광의 단편 <분필 교향곡>(단편집 <<경찰서여, 안녕>>에 수록)도 생각났다.

 
**************************

 반장은 다섯 대까지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러나 여섯번째의 매에는 온몸을 뒤틀었다. 일곱번째 매에는 쓰러졌다. 일어나지 못 해! 반장은 겨우 일어섰다. 교사는 다시 한 대를 때였다. 반장은 윽, 신음을 토해냈다. 교사는 두 대를 더 때렸다. 열번째 매에 반장은 다시 엎어졌다. 들어가. 반장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그러나 빠른 속도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다시 책상 위로 올라갔고 무릎을 꿇었으며 눈을 감고 두 팔을 높이 치켜올렸다. 하지만 곧 팔은 기울어졌다.

*

 

 올라가. 학생들은 다시 책상 위로 올라가서 무릎을 꿇었다. 교사는 지시봉을 들고 1분단 쪽으로 갔다. 교사는 1분단 맨 앞줄 왼편의 종필부터 시작해서 4분단 맨 끝줄 춘삼까지, 정확히 56명 전부의 허벅다리 세 대씩 내리쳤다.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맞기 전에는 잔뜩 겁에 질린 안색으로 조마조마했으며, 맞는 순간에는 비어져 나오는 비명을 삼켰고, 맞은 뒤에는 허벅다리를 열이 나도록 손으로 문질렀다. 교탁 앞으로 되돌아온 교사는 지시봉을 던졌다. 지시봉이 둔탁음을 내며 교탁을 네 바퀴 뒹군 뒤 교단으로 떨어졌다.

 

********************

막대기를 든 선생, 이름표를 단 학생.

평가하는 선생, 성적표를 구기는 학생.

때리는 선생, 맞는 학생.

이러한 인간 관계를 부정하며,

나는,

인간이 인간을 가르친다는 것보다

인간이 인간에게서 배운다는 사실을 새기고 싶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는 나를 외톨이로 만들어.”

 

이 말은 내게 충격적이었다.

나는 비교적 아이와 대화를 많이 하는 엄마라고 생각했는데, 아이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엄마는 집에 오면 나랑 안 놀아 주잖아.”

아이는 내가 집에 들어오면 자기만 봐야 한다고 했다.

엄마가 자기 이외의 것에 몰두하는 게 싫다고 했다.

 

외동아이를 외톨이로 만들려는 엄마가 있을까?

하지만 본의 아니게 나는 그렇게 하고 있었다.

 

나의 취미를 아이와 공유하려는 작업이 쉽사리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나는 아이만을 위한 프로그램-학원 기타 등등-에 매이기 싫다.

내가 즐길 수 있는 것을 아이와 함께 즐기고 싶다.

억지로 하는 일은 누가 꼭 해야 한다고 충동질 쳐서 하는 일은 엄마에게도 아이에게도 좋지 않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내게 뭐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종종 내가 좋아하는 글을 아이에게 소리 내어 읽어준다.

수준과 내용을 따져가며 읽어 주지는 않는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면 소리 내어 읽어 준다.

 

엄마 때문에 외톨이가 되었다고 투덜거리는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레고 쌓기도 아니고 조립식 만들기도 아니고 축구도 아니었다.

나는 평소처럼 소리 내어 글을 읽었다.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 황인숙

 

이 다음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윤기 잘잘 흐르는 까망 얼룩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사뿐사뿐 뛸 때면 커다란 까치 같고

공처럼 둥굴릴 줄도 아는

작은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나는 툇마루에서 졸지 않으리라.

사기그릇의 우유도 핥지 않으리라.

가시덤불 속을 누벼누벼

너른 벌판으로 나가리라.

거기서 들쥐와 뛰어놀리라.

배가 고프면 살금살금

참세떼를 덮치리라.

그들은 놀라 후다닥 달아나겠지.

아하하하

폴짝폴짝 뒤따르리라.

꼬마 참새는 잡지 않으리라.

할딱거리는 고놈을 앞발로 툭 건드려

놀래주기만 하리라.

그리고 곧장 내달아

제일 큰 참새를 잡으리라.

 

이윽고 해는 기울어

바람은 스산해지겠지.

들쥐도 참새도 가버리고

어두운 벌판에 홀로 남겠지.

나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어둠을 핥으며 낟가리를 찾으리라.

그 속은 아늑하고 짚단 냄새 훈훈하겠지.

훌쩍 뛰어올라 깊이 웅크리리라.

내 잠자리는 달빛을 받아

은은히 빛나겠지.

혹은 거센 바람과 함께 찬 비가

빈 벌판을 쏘다닐지도 모르지.

그래도 난 털끝 하나 적시지 않을걸.

나는 꿈을 꾸리라.

놓친 참새를 쫓아

밟은 들판을 내닫는 꿈을.

 

 

이 시를 듣던 아이는 조금씩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뿐사뿐, 폴짝폴짝, 살금살금과 같은 의태어가 나왔을 때뿐만 아니라, 핥다, 앞발로 툭 건드려, 쏘다니가, 쫓다, 내딛다,의 동사도 몸으로 적절하게 표현했다.

 

움직임에 관한 표현이 많은 글을 읽어 주고 몸으로 표현하게 하는 방법-나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은 아이의 외로움 해소에 약간은 도움이 된 듯했다.

 

요즘, 아이의 몸에 흥이 돋는다.

늦은 봄, 트는 싹처럼 아이의 몸에서는 흥이 절로 나와 움직인다.

 

노래가 나올 때, 걸어갈 때, 그리고 엄마가 읽는 글을 들을 때.

 

 

어쨌든 나는,

아이를 외롭게 만들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아이만을 위한 일에 매달려 나 자신을 외롭게 만들고 싶지도 않다.

 

난 역시 너무 이기적인 엄마인가 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치유 2007-06-18 0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요..충분히 멋진 엄마인걸요..*^^*

보라소 2007-06-18 0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머, 제 첫 손님인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댓글을 읽고 이렇게 감동을 받기는 처음인 것 같아요^^ 앞으로 종종 만나뵐 수 있겠죠?
 



 
꽃이 날아다니다가



떨어져요

  

작년 6살 때, 아이가 지은 시다.

유치원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주제를 달리 해서 관련 내용으로 수업을 진행하는데, 작년 3월의 주제는 '봄'이었다.

아이와 봄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려는데,

마침 벚꽃잎이 눈꽃처럼 날렸다.

"저기 봐, 꽃이 꼭 눈 같다."라고 했더니,
아이는 위와 같은 말을 했다.

말이 아주 예뻐서 한동안 써 놓고 붙여 놓았다.

얼마 후,
아는 시인을 만나 현우의 시를 읊어주며
내 아이가 작가로 대성하지는 않을까, 하는 나의 조잡한 우려를

즉, 철없는 엄마의 호들갑을 숨김없이 보여주었다.

"하이쿠 같네."


문득, 나는 

한 편의 하이쿠를 떠올려 보았다.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이 매미 허물은

 - 바쇼
 

일본의 짧은 시 하이쿠.

몇 해 전 바쇼의 하이쿠를 몇 편 듣고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내 아이의 하이쿠 실력을 가늠해 보기 위해 이 책을 구입했다.  




꽃잎 하나가 떨어지네

어, 다시 올라가네

나비였네!

- 모리다케
 

첫 페이지를 열어 보니 내 아이가 쓴 시와 너무 비슷한 시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 잠시 진정한 뒤, 나를 위한 하이쿠를 한 편 썼다.

 

한 줄도 너무 길다

이 엄마의 호들갑

- 초짜 엄마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7-06-18 1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작년 가을이었다.

 

식탁 위에 올려 놓은 책 한 권을 아이가 집어들며 물었다.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그 옆에는 무슨 말이야?"

 

"시집, 시는 동시할 때 시, 집은 묶어 놓 거 말하는 거야."
 

"엄마, 기형도 여자야?"


"아니, 남자야."


"근데, 왜 시집이라고 써? 시집은 여자가 가는 건데."

 

한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아이에게  '詩集'을

 


목록을 더듬거리다가 여느 때처럼, 84쪽을 펼쳐 보았다.

 



위험한 가계, 1969

 

(생략)

콩나물에 물은 주셨어요? 콩나물보다 너희들이나 빨리 자라야지. 엎드려서 공부하다가 코를 풀면 언제나 검댕이가 묻어나왔다. 심지를 좀 잘라 내. 타버린 심지는 그을음만 나니까. 작은 누이가 중얼거렸다. 아버지 좀 보세요. 어떤 약도 듣지 않았잖아요. 아프시기 전에도 아무것도 해논 일이 없구. 어머니가 누이의 뺨을 쳤다. 약값을 줄일 순 없다. 누이가 깎던 감자가 툭 떨어졌다. 실패하시고 나서 아버지는 3년 동안 낚시질만 하셨어요. 그래도 아버지는 너희들을 건졌어.

(하략)

 


*

 
어떤 시보다도 나는 기형도의 [위험한 가계, 1969]가 좋다.

아이가 커가는 것을 보며,

내가 나이를 먹는 것을 눈치챌 때 왠지 불안해지면

이 시를 읽는다.

 

내가 늙어 생을 돌아보며,

'난 지금까지 뭘 하고 살았지?'라고 자학할 때,

아이가 이렇게 나를 위로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엄마는 나를 건졌잖아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