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 5 - 다시 대륙으로 나남신서 601
김준엽 지음 / 나남출판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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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의 저자 김준엽선생님은 세월이 흐를수록 그리워지는 인물이다. 요즘같이 공직자들의 청렴과 도덕성이 강조되는 시점에서 선생같은 품성의 소유자는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일본군으로 징집되자 비밀리에 탈출한 후 광복군에 가담해 독립운동의 대열에서 끝내 이탈하지 않았던 굳은 지조는 일제말기 친일로 전향했던 대다수의 민족주의자들과 너무도 큰 대조를 이룬다.

그러한 절개는 선생님의 인생역정 곳곳에서 나타난 바 있다. 유신시기 독재정권에 굴복하지 않고 항거했던 사실, 고려대학교의 총장으로서 정권에 야합하지 않고 학생들의 편에 서서 끝내 강단에서 물러나야만 했던 사실, 높은 신망에 의해 여러차례 국무총리제의를 받았지만 한번도 수락하지 않은 사실 등은 이 시대 고위공직자의 도덕적 의무가 과연 무엇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언젠가 대학총장 재직시절 선생님 앞에서 학생들이 시위를 하는 광경을 티브이로 본 적이 있다. 그것은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로 감격적인 시위였는데, 다름아니라 정권에 의해 강단에서 물러가게 된 선생님의 퇴진을 반대하는 학생들의 높은 함성이었다. 총리의 자질에 있어 도덕성이 일차적인 평가기준으로 간주되는 요즘 세상에서 선생과 같은 인물이 그리워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과연 현대사의 역정 속에서 김준엽선생과 같이 절개곧고 청렴하며 도덕적으로 떳떳한 인물이 또 있을까?

이 책은 장정 시리즈의 마지막 편으로서 고려대학교의 총장직에서 물러나신 후의 근황에 대한 서술에 집중되고 있다. 학자로서의 삶이랄 수 있는데, 선생님은 학자로서도 높은 명성을 떨치셨다. 중국학뿐만 아니라 한국공산주의의 역사를 개척하신 업적은 역저 '한국공산주의운동사'(전 5권)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항일투쟁에 헌신해오신 젊은 시절의 배경으로 인해 한국과 중국의 근현대 역사를 바라보시는 선생님의 감회는 그 무엇보다 새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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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 창비신서 114
와다 하루끼 / 창비 / 199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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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기 만주벌판의 호랑이로 불리었던 항일유격대의 어느 지도자의 목에는 1만원이란 거액의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 그 액수는 만주항일운동의 어느 지도자보다도 높은 금액이었으며, 일본 관헌에서는 그를 잡기 위해 총동원태세를 했을 정도였다. 그가 중국인도 아닌 바로 조선인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에 대해 우리 남한의 역사는 오랫동안 도외시해 왔다. 체제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속에서 북한최고지도자를 항일독립운동의 최대영웅으로 평가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유야 어쨌든 그것은 분명한 사실임에 틀림없으며, 남북의 해빙무드가 무르익고 있는 지금 북한의 역사에 대한 접근과 새로운 조명이 가능하게 되었다.

와다하루끼의 대표적 명저인 이 책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의 등장은 사회과학서적이 봇물 터지듯 밀려듬과 동시 사회주의나 북한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가능해졌음을 시사해주는 지표로서의 의의 또한 지닌 것이었다. 즉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역사를 고의적으로 왜곡하는 편향을 극복하고, 역사를 사실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실증주의적 접근이 가능해졌음을 의미한다. 이 책은 일본의 저명한 북한학자인 와다하루끼의 연구성과로 김일성의 성장과 항일운동 그리고 해방이후 정권수립의 동향까지도 성실히 추적하고 있다.

이로서 남한의 독립운동사에 있어 은막속에 가리워있던 부분이 드러나게 되었다. 항일유격투쟁의 전설적인 20대 지도자 김일성의 활약상은 경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할 것이며, 체게바라 주덕과 같은 유격대의 지도자가 우리나라에서 존재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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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광복회 운동사
장덕순 / 지양사 / 198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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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기의 독립운동단체하면 쉽게 떠오르는 것은 신민회 신간회 애국단 의열단 흥사단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단체들은 민족주의계열의 지도아래 있었거나 직간접적으로 우익계열과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독립운동의 주류로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바로 현재의 중고등학교 국사교육에 있어 사회주의계열의 독립운동부분이 거의 배제되어 있는 이상, 이러한 민족주의 계열단체의 독점현상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일제시기 사회주의진영의 단체에서도 활발한 독립운동이 전개되었을까? 만약 존재했다면 어째서 국사교육의 범주에서 그러한 사실이 제외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한 이슈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의문에 대해 실마리를 풀어주고 있다. 함경북도 지방에서 활발히 활동한 좌익계열의 비밀결사체, 이름조차 생소한 조국광복회의 활약상에 대해 베일을 벗겨내고 있다. 조국광복회는 만주에서 유격투쟁을 전개하던 좌파세력과 연계돼 활동했던 민간비밀 결사로서 보천보전투를 통해 널리 이름을 떨친바 있다. 그 이후 혜산사건으로 말미암아 단체원 약 800여명이 검거되기에 이르면서 조직이 와해되기에 이른다. 단체의 규모나 활약 등 좌익계열의 독립운동 현황에 대해 좋은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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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주은래
소숙양 / 녹두 / 199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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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레닌주의적 혁명을 지향한 지도자들 중에서 주은래만큼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도 드물 것이다. 그것은 혁명의 성공이후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일당 독재를 향해 과거의 혁명적 열정을 방치해버렸던 것과 달리, 주은래는 죽는 순간까지도 그러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은 소수의 인물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혁명의 성공 이후에도, 볼리비아의 열대림속으로 뛰어들어 거기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쿠바의 혁명영웅 체게바라가 주은래와 마찬가지로 대중과 영원히 함께 한 지도자였다.

모택동 주덕과 함께 늘 중국혁명의 중심에 있었던 주은래는 20년대의 혁명운동과 34년부터 시작된 25000리의 대장정 등을 마친 후, 1949년 혁명의 성공과 함께 정계에 화려하게 복귀하지만 문화대혁명의 혼란속에서 정적들의 집중 포화를 받으며 위기에 처하게 된다. 강청을 위시한 4인방은 권력을 잡기 위해 주은래와 등소평을 집중 공략하지만, 늘상 인민을 이익을 위해 일하며 정략적인 음모와는 거리가 멀었던 그의 품성은 천하가 다 알고 있었고 모택동과 인민들 역시 결국엔 그의 손을 들어 주었다. 중국의 개방과 개혁을 모색함과 동시 외교전략의 전기가 된 모택동과 닉슨의 핑퐁외교 역시 그의 위대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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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양장) - 백범 김구 자서전
김구 지음 / 돌베개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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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분단이후 통일을 위해 헌신했던 민족지도자들중 우익계의 인물로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대표적인 인물은 단연 백범 김구이다. 물론 김규식도 있지만 엄밀히 말해 그는 중도계열에 속했던 지도자임에 틀림없다. 그 외의 통일지향적 인물로는 대체로 중도좌익계나 좌익계의 인물들을 거론할 수 있을 정도로 우익계의 역사관은 너무도 척박한 편이었는데, 이것은 반공이데올로기를 신조로 삼은 우익계열의 분단지향적이고 패권지향적인 정치의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우익의 거두로서 김구선생이 역사의 후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은 대체로 이러한 사정에 기인하고 있었다.

백범은 우직하고 신념이 강한 정치가로서 누구보다도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갈구했지만, 해방과 함께 귀국한 이래 그의 정치역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모스크바삼상회의의 결정을 반대하는 등 반탁의 선두에 서서 국제열강과의 협상을 단호히 거부했으며 이런 경력으로 말미암아 좌익계열에서는 극우반동세력으로 인식했고, 미국측에서 역시 호의적인 감정으로 바라보려하지 않았다. 미국이 그에게 씌운 또다른 애칭은 '테러리스트'라는 꼬리표였다. 상해에서의 독립운동시 여러 의거들을 주도한 바 있었고 또 해방 이후에도 우익단체를 규합하는 등 의심을 살만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행적은 통일을 지향하는 현재의 역사관에 있어 다소 부정적인가로 귀결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는 위대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자신의 이러한 행위가 남북통일에 걸림돌이란 사실을 깨달은 이래, 줄곧 통일운동의 선봉에 서서 활동했기 때문이었다. 남한은 물론 북한에서도 김구선생의 이러한 행위를 애국적 결단이라 높이 평가한 바 있다. 극우계열의 지도자임에도 불구하고 좌익계열에게서도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죽는 날까지 통일을 지향한 그의 헌신적인 태도에서 였을 것이다. 이 책은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모든 것을 받쳐 싸웠던 한 민족지도자의 자서전으로서 그의 굳건한 신념이 그대로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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