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werpoll > 나라별 만화들의 특징? -0-?
1. 유럽의 만화
15세기 인쇄기의 발명과 함께 유럽은 신문 및 잡지에 수록된 대중 만화의 역사를 일궜으며, 프랑스를 중심으로 예술 만화의 발전을 선도해 왔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서점에서는 고급스러운 장정으로 꾸며진 만화들이 가장 눈에 뜨이는 자리에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유럽만화의 일반적 특징은 철학과 역사가 있다는 것이다.프랑스에서는 20세기초 만화를 이미 '제9의 예술'로 정의할 정도로 만화의 예술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프랑스의 단행본 만화는 '앨범'이라 불리운다.91년에는 국가에서 앙굴렘시에 국립 만화이미지센터를 설립하고 프랑스 유수의 만화학교와 만화박물관을 포함하여 유럽 만화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 미국의 만화
미국의 만화는 크게 카툰과 일러스트레이션을 결합한 다양한 만화체와 수퍼 히어로(Super Hero)를 캐릭터로 한 SF작품과 애니메이션 등이 주종을 이룬다.미국만화는 출판만화에서 애니메이션(만화영화)으로 연계되는 상업만화로 대중화를 이루었다.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등도 모두 출판만화로부터 시작되었다.이외에 레넌 루리와 같은 만화가의 시사 만화는 전세계의 정치,사회,문화의 방향을 결정지을 만큼 그 영향력이 크다.애니메이션에 있어서는 1928년 세계 최초의 유성 만화영화 증기선 월리를 만든 월트 디즈니가 있다. 이후 최첨단기술로 꿈과 환상이 가득한 인어공주, 라이온 킹, 알라딘, 포카혼타스, 노틀담의 꼽추, 토이 스토리]등 수많은 만화영화를 전세계적으로 흥행시켰으며, 캐릭터 산업 등을 통하여 막대한 수입을 올렸다.
3. 일본의 만화
일본 대중 만화는 애도시대 이후 판화 형태로 발전돼 왔으며, 20세기에는 미국의 '모방 문화'로 출발해 오늘날의 독특한 '이야기 만화'형태를 완성해 왔다.만화의 천국으로 불리는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힘은 대단하다.국가적 산업으로 장려할 만큼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국민 독서율의 절반 이상이 만화책으로 분석될 정도로 남녀노소 관계없이 만화를 좋아한다. 종류 또한 다양한 작품 경향을 보인다.출판만화의 대표격인 드래곤볼, 슬램덩크 처럼 몇 십권에 이르는 방대한 스토리의 연재물, 즉 '극화'라는 만화양식이 새로 생길 정도이다.그리고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그 고유의 정서와 그림체 '저패니메이션(Japanimation)' 으로 따로 불릴 만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물론 그 뒤에는 데즈카 오사무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있었다.미야자키의 작품으로는 우리에게도 낮익은 작품인 TV만화 미래소년 코난에서 부터 이웃의 토토로, 마녀 우편배달부, 붉은 돼지 등이 있다.
4. 한국 만화 연대기
1883~1910년대 ▒ 만화의 등장 ▒
우리 근대만화의 시작은 20세기를 전후한 개화기 신문, 잡지의 발행에서 비롯됐다. 이 시기의 우리 만화는 각종 인쇄매체의 삽화 또는 신문만화의 형식으로 처음 등장했다. 개화기 당시의 인쇄매체를 통해 우리 만화의 태동을 알리는 중요한 '텃밭' 역할을 했다.초창기 우리 만화는 글을 말풍선 속에 가두는 요즘의 만화와는 달리 사람(캐릭터) 주위에 대화 내용이나 상황설명을 부연하는 형태를 취했다. 마치 동양화의 한쪽 귀퉁이를 장식한 싯구와 같은 양식이었다. 이러한 그림칸 구성은 1920년대 신문만화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1910~1920 년대 ▒ 신문 만화의 출발 ▒
3.1 독립 운동으로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깨달은 일본제국주의는 1920년부터 소위'문화정치'를 표방, 형식적이나마 민간 언론의 설립을 허가했다. 이때 만들어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은 비록 제한된 틀 안에서나마 기사와 시사만화를 통해 민족계몽에 앞장섰다. 이를 통해 우리만화는 비로소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되는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1920년 김동성이 '그림이야기'라는 4칸 만화를 발표했다.
1930 ~ 1945 ▒ 암울의 시대 ▒
일본의 중국대륙 침략으로 한반도는 그들의 전쟁 전초기지가 되고 말았다.이에 따라 전시 총동원령이 내려져 우리 언론 매체는 대부분 강제 폐간되고 만화문화도 긴 암흑의 터널로 빠졌다.1930년대 중반까지 명맥만은 유지했던 한국만화의 역사가 간악한 일제의 언론 말살 정책에 내몰려 신음했으며, 이런 암울함은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그 날까지 지속되었다.해방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비로소 민족 문화와 우리글과 말을 되찾았다.우리 만화도 기나긴 암울의 터널을 벗어나 르네상스를 맞았다.대한일보 발행이후 처음으로 정치, 사회 문제를 아무런 제약없이 만화로 표현할 수 있는 '창작의 자유'를 찾게 되었다.
1946 ~ 1950년대 ▒ 만화 전성기 서막 ▒
195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는 만화책을 비롯해 만화 전문잡지등의 출판붐이 일어났다.한국 전쟁의 와중에서도 우리 만화책은 피난지 부산과 대구에서 꾸준히 발행되는 등 활기를 띄었다. 이 시기의 만화내용은 고전이나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이 주류를 이루었고, 일본만화의 불법복제 및 표절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기도 했다.한국전쟁 이후 우리만화는 잡지매체를 중심으로 대중만화 시대의 발판을 마련해 나갔다.
성인, 오락, 어린이(학생)잡지는 물론 1956년에 발행된 「만화세계」같은 만화전문잡지가 생겨나면서 대중의 만화 수요는 나날이 확대되었다.1955년을 전후로 만화전문 출판사인 광문당이 설립되면서 우리 만화출판계는 일대 혁신을 맞았다. 이때 발행됐던 만화책들은 대부분 서점 판매용으로 만들어 졌으나 58년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만화방의 영향으로 서점 판매용 만화책은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1960년대 ▒ 어린이 만화 전성시대 ▒
1960년대 부터 만화책 대여방은 우리 만화유통의 중심 역할을 해 나갔다.만화방은 날마다 엄청난 수량의 만화책을 공급해야 하는 관계로 소재 빈곤에 시달린 일부 만화 작가의 일본 만화 베끼기 등 '해적 출판' 행위와 '공장 만화'출현의 빌미가 됐다.합동 출판사를 비롯한 대형 만화출판사는 국내 만화출판을 독과점하면서 작가의 창작 행위를 일일이 통제하고 유통망을 유린하는 등 폐해가 극심하였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와 함께 만화원고의 사전검열이 시작됐고, 1967년 불량 어린이 만화에 대한 단속지시로 사전심의와 윤리강령, 실천요강 등의 독소조항을 속속 만화창작계에 적용, 우리 만화작가들의 정신세계를 옥죄어 나갔다. 이처럼 열악한 창작 환경속에서도 우리 만화는 질과 양적인 면에서 골고루 발전하였다.1960년대의 우리 만화는 '얼어붙은 땅에서 장미꽃을 피워낸 기적'을 만들었고 이런 분위기를 70년대 이후 대중 만화시대를 활짝 열게 한 기폭제 노릇을 하였다.
1970년대 ▒ 성인 만화시대 개막 ▒
1970년대는 우리만화가 기존의 어린이 독자는 물론 성인을 새로운 독자층으로 끌어 들이는 장르 다변화에 성공한 시기이다. 1972년 1월 1일 일간 스포츠에 연재를 시작한 고우영의 '임꺽정'은 우리 만화계 창작판도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고우영의 스포츠 신문 만화는 해학과 기지로 성인들을 만화공간으로 끌어들이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박수동의 '고인돌'등의 만화는 단행본으로 발행, 인세를 지급받는 서점용 책으로 정착되었다.70년대 만화계의 특징 중 하나는 어린이 청소년잡지에 만화가 대거 연재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소년 중앙, 새소년, 어깨동무 등 어린이 잡지와 여학생, 여고시대, 학원, 진학 등 청소년 잡지에 만화는 빼놓을 수 없는 메뉴로 등장했다. 이들 잡지는 또 만화작가 지망생들이 데뷔할 수 있는 발판으로서의 기능도 훌륭하게 수행해 냈다.
1980년대 ▒ 순정만화의 부흥 ▒
1970년대 말 박정희 군사 독재 정권의 몰락과 함께 우리 대중문화 영역 전반에도 창작 자유의 열망이 고조되었다. 그러나 잇달아 등장한 군사 정권에 의해 신문 시사만화의 일반 대중 문화의 사전 검열은 과거와 다름없이 지속 되었다. 1983년 우리 만화사에 커다란 전기가 될 만한 작품이 발표되었다. 이현세의 '외인구단'은 청소년들로 붐비던 만화방에 성인독자를 끌어들였다. 이후 허영만, 이재학, 고행석 등이 등장, 대중만화 판도는 이들 '힘있는 남성작가군'이 이끌었다. 또한 70년대 말 일본만화 '캔디'붐에 힘입어 순정만화계는 황미나, 김진 등의 국내 여류작가들에 의해 독자적인 장르 굳히기가 시도 되었다. 여기에 남성중견작가 이진주, 차성진, 김동화 등이 가세하였다.80년대 초반 군사 정권에 의해 초토화 되다시피한 신문 시사만화계는 후반에 들어 광범위한 사회 각층의 민주화 욕구와 맞물려 민중 운동 차원의 현실참여만화가 속속 등장하였다.
1990년대 ▒ '만화시대 활짝 열리다' ▒
1990년대의 한국 만화는 다양한 계층의 독자층을 흡수하는 명실상부한 '만화시대'를 구가했다.90년대에 두드러졌던 만화관련 이슈는 각종 공모전, 국제 행사의 잇단 개최였다.1991년 서울 만화전을 시작으로 서울 국제 만화페스티벌(SICAF), 신한 새싹 만화 대상, 운평 만화 공모전 등 우리 만화의 위상을 드높이고 우수 신인 작가를 발국하기 위한 노력이 대대적으로 전개되었다.1996년에는 정부가 '만화산업 육성 발전 방안' 등의 적극적인 지원책을 발표하였다. 또 다른 특징은 공주 국립 전문대를 위시한 전국의 10여개 대학에서 만화, 애니메이션 관련학과를 개설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만화가 한국사회의 '문화학문 영역'으로 정착됐음을 의미하는 일대 쾌거였다.
21세기 ▒ 우리 만화의 현재와 미래 ▒
21세기 우리 만화는 독자층의 세분화와 그에 걸맞는 특화된 장르만화가 지속적으로 개발되어, 한국 대중 문화계를 선도할 것으로 여겨진다.출판 만화를 극간으로 한 게임, 영화 등 인근 대중 문화영역에서도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대중 문화산업의 '중심축'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현재 우리 만화계는 사이버 공간에 만화문화를 접목시키는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1999년 말 부터 만화를 컨텐츠(Contents)로 한 인터넷 서비스 포탈 사이트가 늘어나는 등 만화 산업 대국이라 일컬어지는 미국과 일본을 앞지르고 있다.디지털 만화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클럽와우(Club Wow)」, 「코믹스 투데이(Comics Today)」, 「N4」, 「아이코믹스(Icomics)」, 「코믹 플러스(Comicplus)」등의 사이트에서 사이버 만화 유통을 실험하고 있다. 한국 만화의 미래, 새로운 '만화 수요층'을 창출하는 적극적인 자세와 만화인들의 올곧은 창작혼, 그것이 결합될 때라야만 밝은 미래을 기대할 수 있다.
스크롤의 압박이였지만-_-; 그래도 이런 지식도 좋지♡ㅋㅋㅋㅋ 아무튼 좋은 지식!
글쓴이는 어디서 퍼온것 같지만....... 읽기 쉽게 써주었으면 좋았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