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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새판짜기 - 박정희 우상과 신자유주의 미신을 넘어서
곽정수 엮음 / 미들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7, 80년대 한국경제의 눈부신 발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한 말이 ‘한강의 기적’이었다. 일제식민치하와 6. 25전쟁을 겪고난 후 물적, 인적 자원이 고갈된 상태에서 이루어낸 발전이라는 점에서, 독일이 전후 이룩한 경제발전을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하는데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당시로서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경제발전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90년대에 들어서면서 IMF 외환위기를 겪은 한국경제는 급속도로 위축된다. 대량실업, 물가불안, 부동산시장의 왜곡 등 한국경제는 지금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군부독재시절을 거쳐 민주정부라고 하는 김영삼, 김대중, 현재의 노무현 정부까지 15년 동안을 거치면서 IT 거품, 카드 대란, 부동산 시장의 몰락, 중산층의 붕괴로 요약되는 경제불안은 정서적으로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위기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되었다. 즉 그 어느때보다 국민적 통합이 절실한 때가 바로 지금이다. 이는 최근에 대통령 선거로 여야가 교체되면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시점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더욱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와 같은 시점에서 김상조, 유종일, 홍종학 교수(이하 “김상조 교수 등”이라 한다)가 한국경제에 대해 좌담회 형식으로 논의한 내용을 한겨레신문 기자 곽정수가 책으로 엮은 것으로, 과거 박정희 정부의 국가주도 계획경제나 요소투입형 경제로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며, 한국경제의 새판짜기를 주장하고 있다. 시장만능주의에서 시장합리주의로, 재벌중심에서 중소기업중심으로, 선(先)성장에서 동반 성장으로, 요소투입형 경제에서 사람중심 지식경제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 참석자들이 한국경제에 대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하는 내용들이다.
위와 같은 주장은 근본적으로 시장주의와 국가주의의 어느 한 쪽으로 기울지 않으면서, 시장을 강조하되 시장의 실패를 보완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경쟁을 환영하되 공정한 경쟁의 규칙을 중식하고, 개방을 지향하되 준비된 개방을 하자는 것으로 합리적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개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김상조 교수 등은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장하준 교수의 이론에 대한 반박을 하고 있다(정확하게는 대안연대에 대한 반박이다. 이 글에서 인용하는 쾌도난마 한국경제에 소개되는 글도 장하준 교수와 정승일 교수의 주장이었는데, 편의상 장하준 교수로 통칭한다). 이왕이면 김상조 교수 등과 장하준 교수가 한 자리에서 한국경제에 대한 논의를 하였다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김상조 교수 등의 주장은 장하준 교수가 우리나라 경제에 대해서 이야기한 ‘쾌도난마 한국경제’와 신자유주의에 대해 이야기한 ‘나쁜 사마리아인들’과의 비교를 통해 양자의 견해를 살펴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구체적으로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시장과 국가의 관계”에서 김상조 교수 등은 국가는 시장규칙을 제정하고 엄격한 규칙 집행과 감시를 통해 시장을 합리화해야 하고, 무엇보다 약자보호제도가 법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이러한 경제개혁이 먼저 이루어진다면 정치개혁도 자연히 따라올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장하준 교수도 비슷한 주장을 하는 것 같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관치는 무조건 나쁜 것이니까, 관료들에게 힘을 주면 안 된다는 식의 사고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 같다며, 관치는 불가피하지만 불완전 하기도 하니까 여러 가지 장치를 통해 관료들을 견제하는 시각이 훨씬 현실적이라고 한다(쾌도난마 한국경제 205쪽, 206쪽 참조).
이는 어떤 면에서는 우리 사회가 가지는 한계를 드러내 주는 대목이 아닐까 한다. 정책의 영속성이 보장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가 경제적인 면에서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면에 의해 해결되기 때문이다. 정권이 교체되면 그간 이루어졌던 정책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루 아침에 바뀌게 되고 공무원들은 복지부동하는 자세로 임하고 죽어나는 것은 국민들 뿐이다. 군부독재시절을 지나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하는 정부에서도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만들 것이라며 의욕적인 초기 모습과 달리 현실은 그 전이나 별반 다를게 없이 끝났으니 말이다. 자연히 정부에 대한 불신이 사회 전반에 팽배하게 되고, 이는 현 노무현 정부에서 극에 이르게 되는 아이러니를 낳았다.
“재벌”에 대해서 김상조 교수 등은 과거 박정희 정부의 국가주도 계획경제에서나 재벌을 통한 경제성장이 가능하지, 이제는 더 이상 재벌을 통한 경제성장이 유효하지 않다며, 전체 고용의 88%를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을 육성하여야 하고, 제도적으로는 기업집단법 제정,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제 폐지,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인프라 개선, 기술지원을 위한 혁신 클러스터 추진, 인적 자본 축적을 위한 평생학습 등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 중심의 경영 혁신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장하준 교수는 재벌 기업들은 국민의 자산(쾌도난마 한국경제 87쪽 참조) 이라고 하면서도, 자본이 부족한 상황에서 재벌을 통한 경제발전은 불가피한 일이었고, 지금 현재 재벌이 커질 대로 커져있고, 자본이 개방된 상태에서 자본을 통제하고 영미식 주주 자본주를 도입하는 것은 서로간에 대립과 갈등을 불러 일으킬 뿐이므로, 유럽식으로 재벌 시스템을 일정 부분 인정해 주는 대신, 재벌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역할을 이끌어 내는 대타협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쾌도난마 한국경제 89쪽 참조).
재벌에 대해 양자 모두 순기능을 인정하지만 재벌이 가진 역기능을 통제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김승조 교수 등은 재벌 경영의 투명성과 그에 대한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비해, 장하준 교수는 재벌 시스템을 인정해 주되 대타협이라는 모호한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과연 그 대타협이 가능할까 하는 것이 문제이고, 여기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면 군사독재 시절과 같은 관주도 경제로 치달을 염려도 있고, 관료기구의 공공성을 담보할 수 없는 현시점에서는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한다.
공룡처럼 커져 버린 재벌이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한다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우리 역사가 보여주듯이 시민들의 힘이 필요한 때이다.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니 만큼 시간을 두고 서서히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뢰성이 담보되는 정부를 선출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일관적인 정책과 투명한 정책을 통해 시간을 두고 재벌을 규제한다면 그렇게 비관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성장과 분배”에 대해서 김상조 교수 등은 현재 우리나라는 IT, 카드, 부동산 정책의 실패, 재벌 중심의 왜곡된 경제구조로 인해 양극화가 심화되었다고 하면서, 선 성장 후 분배론은 고도성장기에는 가능했지만, 이제는 적절한 분배 정책을 통해 양극화를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구조조정 촉진형 복지정책으로 한계에 다다른 영세기업이나 중소기업들을 빨리 파산시키고 다른 일을 찾도록 정부에서 보조를 해준다든가, 노사관계의 기본 틀을 개별사업장 단위에서 지역별 또는 산업별 차원에서 최소한의 공동의 기준을 만드는 틀로 바꾸고, 사회복지정책을 늘리고 세제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장하준 교수는 성장과 분배를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분배를 통한 성장은 단기적 효과 이상을 기대할 수 없고 분배만으로 성장 동력이 마련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쾌도난마 한국 경제 114쪽 내지 116쪽 참조). 양자 모두 분배와 성장을 개별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일치를 보는 것 같다.
다만 성장과 관련하여 장하준 교수는 적극적 산업육성정책, 무역증진정책, 기술육성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야 한다고 하는데 반해, 김상조 교수 등은 요소투입형 성장의 유효성은 소멸하였다고 주장하며 사람, 지식,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고 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김상조 교수 등이 너무 극단적인 견해를 가진 것이 아닌가 한다. 장하준 교수는 현재의 선진국들이 현재의 개발도상국들과 유사한 발전단계에 있을 때 경제발전을 위해 사용했던 정책이나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나, 장하준 교수는 개발도상국이 해야 할 일은 미래에 대한 투자이며, 이를 위해 개발도상국들은 부자 나라들이 사용하는 정책에 비해서 보다 투자 지향적이며 성장 지향적인 거시경제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고 한다(나쁜 사마리아인들 245쪽 참조)고 하며, 부자 나라들에게 속아 넘어가지 말 것을 경고한다. 그렇다면 아직도 요소투입형 성장은 유효하며, 이러한 성장을 통해 생성된 자본은 사람, 지식,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한 경제모형이 아닐까 한다.
“개혁과 개방”에 대해서 김상조 교수 등은 세계화와 개방에는 찬성하지만 한미 FTA는 제도개혁을 수반하지 않은 불리한 협정이라고 하며, 국내기업들의 지배구조 문제와 금융구조의 문제점이 외국자본에 의한 경영권 위협의 본질적 내용임에도 이를 왜곡하는 과장된 적대적 M&A 위협론을 경계하고, 외국자본에 국내자본과 마찬가지로 정책의 일관성과 투명성, 그리고 정책집행의 공정성이 담보되어야 하며, 금산분리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하준 교수도 세계화와 개방에는 찬성하지만 신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강자만이 살아남는 체제이자 저성장 체제라고 신랄하게 공격한다. 그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란 책에서는 아예 자유주의라는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많은 역사적 사실과 사례들을 통하여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이론 속에 도사리고 있는 허구와 위험에 대해서 이야기 하며 개발도상국들은 시장에 대항하여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경제 활동을 체계적으로 장려하는 것이 중요하다(나쁜 사마리아인들 326쪽 참조)고 주장한다.
위와 같은 논의를 통해 김상조 교수 등은 전환의 원동력은 확고한 개혁의지와 비전, 민주적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와 공정한 규칙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적 자본의 확충과 적극적인 시민운동의 세 박자가 갗춰져야 한다고 한다. 장하준 교수는 한국의 경제 성장을 둘러싼 담론들은 객관적 연구에서 나온다기보다는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은데, 현 정부까지 이어져 온 경제정책도 그와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며, 자본의 사회적 책임, 정부의 공공적 책임, 노동 측의 사회적 책임을 언급하면서 사회적 대타협이 이루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자가 주장하는 경제정책이 세부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지만(물론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국가 경제발전을 위해서 모두가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양자 모두 내노라하는 경제학자들이어서 어느 견해가 맞다고 꼬집어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하나는 명확한 것 같다. 아직 우리 경제는 낙관적이라는 것이다.
축구나 야구 등 운동경기에서 공격을 누가 먼저 할 것인지를 정할 때 심판은 동전을 사용하여 정한다. 그때 동전의 앞면을 선제공격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뒷면을 선제공격으로 할 것인지는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이 정한다. 그리고 규칙에 따라 정해진 룰을 따라 공격과 수비를 한다. 규칙을 어기면 심판이 제재를 가하고 모두가 최선을 다하는데 하물며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경제정책이 제멋대로 운영되어서야 될 말인가. 국가의 경제정책을 동전을 던져 앞면인지 아니면 뒷면인지에 따라 결정을 할 수는 없지만, 운동경기처럼 일단 채택된 정책에 대해서는 정부가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적용하고 규제를 하며, 국민들은 이를 믿고 따라주는 자세가 더없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경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전환과 21세기 무한경쟁 시대에 필요한 체질개선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며,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것들을 깨닫게 해 준 고마운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