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달리는 미국 - 유재현의 미국사회 기행 유재현 온더로드 5
유재현 지음 / 그린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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빳빳한 새 책을 받고 몇 장 넘길 때까지는 하루만에 훌떡 읽어버릴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오래걸렸다. 물론 거의 500페이지를 자랑하는 두툼한 볼륨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통 여행서답지않게(?) 글이 빽빽하다.그만큼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였을까. 요즘 여행 좀 했다하면 아무나 여행서 내는 세상이고, 하다못해 내 주위의 날라리 여행객들도 책냈다고 연락오는 형국인데 이 책은 그야말로 다른 여행기들과 차원이 다르다. 유재현씨의 전작 쿠바 여행기를 읽었고, 저자의 경력과 함께 독특한 접근법의 여행서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쿠바'라는 곳이 나에게는 미지의 세계였기에 호기심 반, 흥미 반에 그쳤었다. 하지만 이 책은 완전 뒤통수를 때린다. 허허, 이 사람 가본데 나도 대부분 다 가봤는데, 어쩜 나랑 이렇게 정반대의 것들만 보고 왔을까. 이건 놀라움을 넘어 경이적인 수준이다.

'거꾸로 달리는 미국'이라는 제목에서부터 감을 잡아야 했다. 사회운동하던 저자의 눈에 미국이 고깝게 보일리 없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이렇게 500페이지에 가깝도록 주구장창 깔 수 있는 것은 거의 신기에 가까운 능력이다. 아니, 그만큼 미국이 모순과 위선의 나라이며, 까일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반증일까. LA에서 출발, 북진하여 캐나다에 잠시 발을 디뎠다가 다시 대륙을 횡단, 플로리다를 거쳐 남쪽으로 다시 반대 방향으로 대륙 횡단, LA에 도착하기까지 수많은 주와 도시를 돌면서 억압받고 착취당했던 계층(노동자들, 흑인들, 라티노들)에 대한 안쓰러운 시선과 함께 거대자본 및 기득권층에 대한 분노가 페이지마다 넘쳐난다. 독립전쟁이나 영토 확장과 같은 역사적 사실부터 대공황 및 금융 위기와 같은 경제의 흐름, 마릴린 먼로나 엘비스 프레슬리같은 연예계 뒷 이야기까지 술술술 풀어놓는 그 내공에 그저 감탄할뿐이다. 외지에 가서 진귀한 경험을 하고, 현지 사람들과 교감을 나누고 돌아와서 재미있게 풀어내는 여행기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이런 책은 몇 주, 몇 달 조사를 하고 공부를 한다고 해서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다. 나름 오랜 기간 동안 미국에 머물렀고, 학생부터 사회생활까지 하면서 볼거못볼거 다 보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나는 도대체 뭘 보고 살았던 것이더냐!   

비록 내가 저자의 생각에 100%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이정도의 배경지식과 이정도의 열성, 그리고 이정도의 외곬수라면 진심으로 감탄할만하지 않은가. 미국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좋겠지만 미국에 대해 '나름 알만큼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더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나라 저나라 많은 여행기를 읽었지만 감히 올해 최고의 여행기로 꼽아본다.  
 
* 한 가지 불만 아닌 불만이 있다면 사진이 좀 적다.
그만큼 글이 알찬 것은 좋지만, 그래도 여행기인데 묘사하는 풍경의 반쯤은 사진으로 실어줘야하는게 아닌가 ^^;;;  
하긴 그러면 책 분량이 얼마나 늘어났을지 상상이 좀 안가긴 한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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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10-07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재현씨 성향을 보건대 여행기보다 인문학 서적으로서 접근한 게 아닐까요.
유재현씨 책들은 다 보고 싶어요. 두 개인가 밖에 못 읽었어요.^^

Kitty 2009-10-07 14:07   좋아요 0 | URL
음 말씀 듣고보니 그렇네요 ^^ 인문학 서적치고는 사진이 빵빵하네요 ㅎㅎㅎㅎㅎ
유재현씨 책은 저도 바람돌이님께 소개받고 몇 개 읽었는데 대부분 좋더군요 ^^

플레져 2009-10-08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욕심을 줄이고 있는 형편이라 당장 장바구니행은 아니지만 기억해두었다가 꼭 읽어야겠어요.

Kitty 2009-10-08 20:48   좋아요 0 | URL
앗 플레져님 >_< !!!!!
플레져님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저도 책 욕심을 좀 줄여야할텐데 쌓여있는 책은 어쩔꼬 ㅠㅠ 입니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