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브라이슨의 아프리카 다이어리 - 케냐에서 발견한 아프리카의 맨얼굴, 그리고 몹쓸 웃음 빌 브라이슨 시리즈
빌 브라이슨 지음, 김소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사실 나도 여행 카테고리에 넣기는 했지만 이 책은 여행기가 아니다. 아프리카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다른 책을 봐야한다. 빌 브라이슨이 CARE라는 단체의 초청을 받아 아프리카의 구호 시설을 10일간 시찰하고 쓴 책이니, 10일만에 뭘 얼마나 자세히 보고 얼마나 상세한 정보가 담겨 있겠는가. 이 책은 여행기라기 보다 국제 구호 재단에 보내는 빌 브라이슨의 독특한 기부 행위라고 보는 것이 옳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으면 누구나 장기를 발휘하는 법이다. 돈이 많은 사람은 돈을 기부하고, 손재주가 좋은 사람은 이것저것 고쳐주고,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은 잡다한 자원 봉사를 한다. 빌 브라이슨은 자기가 가장 잘하는 것, 즉 '글쓰기'로 기부를 한 셈이다.  

이 책에서 빌 브라이슨의 유머는 꽤나 제한적(subdued, 영어도 못하는 주제에 이제 마땅한 한국말까지 생각 안나는거냐 -_- )이다. 내가 아는 한 영어로 글을 쓰는 사람 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유머감각을 지니고 있는 여행작가 빌 브라이슨이지만 그마저도 농담과 유머를 삼가하게 만드는 아프리카(정확하게는 케냐)의 실상이 여기 있다. 잘난 사람보고 찌질하다고 하면 농담이 되지만 찌질한 사람에게 찌질하다고 하면 욕이 된다. 아무리 천하의 빌 브라이슨이라 할지라도 차마 그곳의 사람들에 대한 농담은 할 수 없었나보다. 이 책의 유머는 자기 자신과, 함께 시찰을 한 사람들에 대한 소소한 농담의 범주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웃기다 ㅎㅎㅎ 특히 앞부분에서 엄청 웃었다.)

한 가지 미심쩍은 것이 있는데, 이 책의 원서는 표지까지 다 해봤자 50장을 약간 넘는 수준이다. 책 자체도 아주 자그맣고 글자도 빽빽하지 않다. 잘 봐줘야 '소책자' 내지는 '신경 쓴 두꺼운 팜플렛' 수준을 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책이 한국에서 어떻게 120 페이지짜리로 둔갑했는가? 영->한 번역이라고 할 때 보통 원고량이 20% 정도 늘어나는 것이 일반적인 중론인데, 그렇다면 50장짜리 책을 아무리 정성들여 번역을 했어도 60장-70장 남짓이어야 한다. 도대체 어떻게 120장을 만들었나? 신출귀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설마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번역판을 낸 출판사는 감히 이 책을 팔아서 수익을 올리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책에 실린 후기 그대로 이 책의 값 만 원은 책에 실려있는 글을 읽기 위해 지불하는 돈이 아니다. 자선 단체에 만 원을 기부하고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 이 책인 셈이다. 빌 브라이슨 본인이 일체 인세를 받지 않음은 물론, 각각 미국과 영국에서 이 책을 발간한 출판사에서도 관련된 직원들이 모두 무료 봉사를 했다고 한다. 이 책과 관련된 수익의 전액은 자선 단체에 기부된다. 단순히 아프리카 여행기라고 생각하고 주문한 사람은 책의 '물리적 겸손함'에 경악할 것이고, 어떤 취지의 책인지 알고 산 사람은 연말연시에 날씨도 추운데 잠시나마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낄 것이다. 누구나 가끔은 착한 일을 하고 싶어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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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9-01-01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의 원서를 오래 전에 사 두었었는데, 번역본은 원책의 컨셉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ㅡㅜ 가슴아픈 기획입니다.

Kitty 2009-01-02 12:17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 예상대로 -_-;;;
빌 브라이슨 책은 대부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왜 놓쳤는지 모르겠어요.
하이드님 덕분에 건진 책입니다. 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