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도 그리던 인류학 박물관이고 뭐고 정신없이 구경하다보니 슬슬 배에서 신호가 왔다 ㅠㅠ
아침에도 과일을 조금 먹었을 뿐이라 12시가 다 되어가니 배가 고픈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일단 박물관을 나와서 배를 채우기로 마음먹었다.
(입장권만 가지고 있으면 얼마든지 나갔다 들어올 수 있다.)
박물관 입구를 나서니 노상에서 온갖 먹을 것을 팔고 있었다.
인공색소 팍팍 들어간 것 같은 싸구려 오렌지 쥬스, '나 불량식품이요' 대놓고 써있는 과자 등등;;
그래도 뭔가 든든하게 먹을게 없나 하고 두리번 거리다가 희안한 걸 발견했다.
내 얼굴 두 배만한 넓다랗고 거무튀튀한 과자에 뭘 잔뜩 바르고 얹어서 건네주는 특이한 음식이었다.
그 미확인 식품(?)에 끌린 이유는 사람들이 엄청 줄을 서서 사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걸 먹어볼까 해서 쭈볏쭈볏 줄 맨 끝에 가서 섰다.
한참 기다린 끝에 내 차례가 되었는데 파는 아줌마가 나를 보더니 빠른 말로 뭔가를 물어보는 거였다;;
아마도 토핑을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보는 것 같은데 뭘 알아야지 -_-;;;
그래서 그냥 몽땅 다!를 외치고 아줌마가 익숙한 솜씨로 콩을 쓱쓱 바르고 이것저것 마구 얹는걸 지켜봤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빨간 소스 뿌려줄까 파란 소스 뿌려줄까 물어보길래
둘 다 맛보려는 욕심에 반반씩 해주세요 그랬다. ㅎㅎ 그랬더니 씩 웃으면서 반반씩 뿌려준다 ㅎㅎ
가격은 20페소.
이게 바로 문제의 미확인 음식물 ^^;;
사진으로는 크기가 가늠이 안되는데 거의 쟁반만한 크기이다.ㄷㄷ 두 손으로 받쳐서 들어야한다.
멕시코 사람들은 익숙한 자세로 잘 받치고 맛있게 먹고 있었다.
내공이 딸리는;; 나는 근처 분수대에 앉아서 바닥에 내려놓고 먹을 준비를 했다.
두근두근하면서 끝부분을 조금 손으로 뚝 부러트려서 입에 넣어봤다.
일단 바닥에 깔린 거무튀튀한 물체는 옥수수 가루를 반죽해서 구운 것 같았다.
그 위에 멕시코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는 콩으로 만든 페이스트를 듬뿍 바르고
절임 선인장과 실란트로(팍취)를 고명으로 얹은 후 치즈 가루를 뿌리고 살사 소스를 얹은거였다.
맛은...;; 토티야 칩에 선인장 얹어서 먹는 맛 ㅎㅎㅎㅎㅎ
모양이 임팩트가 강해서 그렇지 생각보다 별다른 맛은 나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콩을 별로 안좋아하는데 왜 이렇게 듬뿍 바른건지 ㅠㅠ
그래도 배고픈 마음에 열심히 손으로 뜯어먹었다;;
선인장 얘기가 나온김에...
선인장을 먹는다는 말만 들었지 진짜로 먹어본건 처음이었는데 멕시코에서는 선인장을 정말 많이 먹는 것 같다.
시장에서도 아주 흔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렇게 가시를 깨끗하게 손질해서 판다.
시장에서 선인장 파는 아줌마. 옆에 잘게 썰어진 선인장도 보인다.
어쩄든 그 미확인 음식물을 한 1/3쯤 먹고 나니 도저히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걸 버리기도 아깝고 어떻게 하지 마구 고민을 하다가 주변에서 신기하게 나를 쳐다보는 멕시코 가족들을 발견!
주말이라서 그런지 거의 현지 사람들뿐이었고 외국인 관광객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어서 내가 좀 튀었나보다;;;;
약간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서 좀 친절해 보이는 가족에게 다가갔다.
무작정 2/3쯤 남은 걸 내밀고 '혹시 이거 먹지 않겠니?' 했더니
부부가 '얘 뭐지?'하는 표정으로 서로 얼굴을 마주본다;;; 허접 스페인어라 설명할 실력은 안되고 매우 난감 -_-;;
할 수 없이 배를 문지르면서 '나는 배가 불러. 너네가 먹었으면 좋겠다' 라는 말을 간신히 끼워맞췄다;;
그랬더니 부부 중 아내가 웃으면서 받아들고는 Gracias! 하는거였다. 역시 바디랭귀지가 최고다;;
어휴 이렇게 남은 음식물을 처치하는데 성공 ㅎㅎ
* 나중에 집에 와서 찾아보니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도 토스타다인 것 같다.
사실 미국에서도 토스타다는 많이 팔지만 보통은 손바닥만하고 색도 노란색인데...저건 변종인가 ㄷㄷ
어쨌든 이렇게 대강 배를 채우고 다시 인류학 박물관으로 향했다.
아침에는 없던 분수까지 틀어놓았다 ㅎㅎ
헉 그런데 그 사이에 엄청나게 줄을 서있는 것이었다...
괜히 밥먹으러 나왔다가 시간 버리는거 아닌가 겁먹으면서 다가갔더니
다행히 저 줄은 특별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이었다.
(이집트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시간만 많았다면 멕시코에서 이집트 미이라를 볼 뻔 했다 ㅎㅎ)
간단한 보안 검사를 통과한 후 다시 들어가 인류학 박물관에서 자랑하는 아즈텍 관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