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Jesus saw their faith, he said to ther paralytic, "Son, your sins are forgiven" 막2:5
네 명의 남자가 자기들의 친구를 예수 앞으로 데리고 가길 원했다. 군중이 너무 많아 예수님 앞에 친구를 데려다 놓을 수 없자, 지붕에 구멍을 뚫고 예수님 앞에 친구를 내려놓는다. 그 때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 친구를 고쳐주신다. 중풍병자의 믿음이 아니라 친구들의 믿음을 보고 중풍병자를 고쳐주신다. 대체 예수님은 친구들의 어떤 믿음을 보신 것일까?
그 친구들은 예수님이라면 자기들의 친구를 고쳐주실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더 중요한 믿음은 그 친구를 고쳐주고 싶다는 그들의 간절한 바람이었을 것이다. 친구를 사랑하는 그들의 우정이 있었기에 지붕이라도 뚫어서 예수님께 데리고오고자 했을 것이다. 고쳐주실 수 있을 것이라는 예수 의존의 믿음도 중요하지만 그 이면에 사람을 사랑하는 믿음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 믿음을 인정하고 그 친구를 고쳐주신 것이 아닐까? 실제로 예수님의 삶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종교적 전통이나 형식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누누히 강조하셨다. 세리와 어부를 제자로 부르시고, 비난에도 불구하고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연회를 즐기시고(16),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있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시지 않았는가(27)! 예수님은 제사가 아니라 자비를 원하시며 형식보다 사람사랑이 중요하다고 복음서 곳곳에서 밝히셨다.
그렇다면 예수를 따라가는 제자로서 사람 사랑의 본질을 먼저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느새 바른 그리스도인이란 주일성수 잘하고 십일조 잘하고 교회의 전통을 잘 따르고 목회자의 말에 순종하고 조직의 논리에 충실한 사람으로 정의되고 있다. 예수님이 깨뜨린 바로 그 모습을 회복(?)하고 있다. 자기들과 다르면 틀린 것이고, 자기들의 정한 규칙과 형식을 따르지 않으면 매도하기 일쑤이다. 예수님이 보시면 얼마나 한탄하실까?
사람들을 끌어안자. 세리와 죄인들과 기꺼이 친구가 되신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자. 형식이나 전통에 얽매이지 말고 본질을 추구하자. 예수님처럼 사람사랑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다 무너뜨리자. 전심으로 사람들을 대하자.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섬기고 돕고 사랑하기 위해 애쓰자. 예수님처럼 만인의 친구가 되자. 그것이 예수를 따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