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2일부터 시작한 엄마의 입원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엄마가 입원하면서 시작한 장마는 아직도 안 끝나고 엄마가 입원한 이후 며칠을 제외하곤 매일 비만 주룩주룩.
난소암이 뇌까지 전이되는 경우는 5% 이내라는데, 우리 엄마가 그 5% 이내의 환자일 줄이야. 우리 엄마 주치의는 그래도 인간미가 있어서 나한테 직접 전화까지 했다. 의사도 적잖게 당황한 것 같았다. 의사 전화를 받으면서는 나도 모르게 허탈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몇 주 전 엄마에게 대체 왜 이혼을 안 한 거냐고 따지듯 물었다. 엄마는 당신이 능력이 없어 우리 둘을 먹여살릴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나랑 동생이 엄마가 누운 관에 못을 박아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엄마가 이혼했으면 물론 찢어지게 가난하고 나랑 동생은 대학도 못 갔겠지만, 엄마가 지금같이 몹쓸 병에 걸리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나도... 아빠 때문에 받은 상처는 없었을 테니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평생 아빠한테 괴롭힘만 당하다 이제 좀 살만하니 난소암에 걸려 4년 동안 쉼 없이 수술과 항암을 반복하다가 결국 죽음만 기다리는 삶이라니. 뭐 이래. 엄마 팔자 뭐 이렇게 고약해. 뭐 이렇게 허무해.
서울의 메이저 병원은 뇌와 척수에 전이되면 그 즉시 모든 치료 중단 후 호스피스로 쫓겨나는 수순인데, 엄마가 있는 병원은 사립이 아니고 국립이라 그런지, 몇 개월이라도 연명을 해주기 위해 의료진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처음 뇌척수 전이 확진을 받았을 때 엄마에게 남은 시간이 약 3개월이라고 했는데, 벌써 3분의 1을 엄마가 버텨주셨다.
6월에 엄마 소식을 듣고 가장 친한 친구에게 어쩌다 보니 엄마 얘기를 많이 하게 되었는데, (난 내가 많이 하고 있는 줄도 몰랐다.) 친구가 그런 심각한 얘기에 매번 "ㅇㅇ" 이라고 답하더니 급기야 나중에는 결국 니 얘기 듣기 싫어서 대답도 하기 싫다고 말을 하더라. 그래.. 남 아픈 얘기 듣기 싫겠지. 그 친구와는 그 날로 절교했다.
친구가 니네 엄마 아픈 얘기 듣기 싫다고 한 후로는 남편을 제외하곤 누구한테도 엄마 얘기를 못하겠다. 하긴 나 같아도 사람 죽어가는 얘기 맨날 하면 듣기 싫을 거야.
한때 엄마가 너무 신기했던 적이 있는데, 난 엄마를 보면 절대 결혼하고 싶지 않은데 엄마는 매일매일 가출하고 싶을 정도로 결혼하라고 닦달이었다. 심지어 내 나이 25살부터 매년 결혼하라고 하셨으니까. 엄마는 결혼해서 그렇게 불행하게 살았으면서 대체 왜 딸인 나는 엄마 같지 않을 거란 확신을 갖는건지, 왜 그렇게 긍정적인건지. 사실 이건 아직도 의문이다. 내가 본 중년 여성 중 결혼해서 더 행복해진 사람은 천명 중 한명 있을까 말까인데 대부분은 딸들을 시집 못 보내서 안달이다. 대체 왜 그럴까? 그게 자신의 마지막 과업이라 생각하 는걸까.
어쩌다 보니 나도 결혼을 하게 되고 다행히 모든 면에서 아빠와 정반대인 남자를 만났다. 남편이 없었다면 나도 아마 엄마 따라 죽지 않았을까 싶다. 내 기도에는 전혀 응답해 주지 않는 주님이지만, 나 같은 애를 결혼하게 만드신 건 어떻게든 날 살게 하시려고 그러신 것 같다.
엄마의 뇌척수 전이 소식을 듣기 정확히 하루 전 병원에서 임신이라고 축하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임신하고 바로 엄마 소식을 들어서 매일 밤 울고 아기들한테는 신경도 못써주고 있다. (쌍둥이임) 일주일에 한 번씩 아기들이 잘 크고 있는 거 보면 기쁘고, 엄마 병원 어플로 엄마의 검사 결과를 보면 우울하고. 회사에서 일도 하고 사람들이랑 대화도 하는데 마음 한편에서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우리 엄마가 죽어가는데 내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도 되는건가... 싶어서 죄책감도 느낀다.
내가 아기를 낳을 때 엄마가 살아계실까? 엄마는 내 임신 소식 듣고 별안간 기운을 차리고 의욕적으로 치료에 임하고 있는데 도저히 엄마 곧 죽는다는 말은 못 하겠다. 2020년 여름. 참 여러모로 끔찍하다.